2024.04.2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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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명명백백하게 사실 그대로 밝혀야죠" 외대생 12사단 GP 사망사고 유가족 인터뷰

청천벽력처럼 날아든 비보 "제 아들이 입대 후 3달 만에 총상으로..."
귀국 직후 사고 현장을 방문한 아버지 "극단적 선택 아니다"
코로나로 인해 대학 생활을 즐기지 못하고 입대한 아들
갈수록 믿을 수 없는 군 당국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고 싶다"

지난달 28일 저녁 강원도 인제군 육군 제12보병사단(이하 12사단) 소속 일반전초(GOP) 부대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김 모 병사(21)가 몸에 총상을 입은 채 사망했다. 당시 감시초소(GP)에서 근무하던 김 병사는 이제 막 군 생활을 시작한 이등병이었다.

 

지난해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한 김 이병은 1학년을 마치고 군 휴학을 한 후, 지난 9월 12사단에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김 이병은 최전방 수호병으로 자진해 선발된 후 GP 근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입대한 지 3개월 만에 변을 당했다.

 

개인 사업 때문에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던 김 이병의 아버지는 비보를 접한 직후 한국행 티켓을 끊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내년 설 연휴 즈음 귀국하려던 김 씨였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김 씨가 2년여 만에 마주한 아들은 싸늘한 주검이었다.

 

사고 시점으로부터 열흘 정도 흐른 지난 주말, 김 이병의 아버지를 어렵게 만났다. 김 씨는 사고 발생 후 열흘간 풀리지 않는 의문과 군 당국을 불신할 수밖에 없는 답답함을 함께 전했다.

 

청천벽력처럼 날아든 비보 "제 아들이 입대 후 3달 만에 총상으로…"

 

Q. 사고 직후 군으로부터 어떤 연락을 받으셨나요?

 

A. 사고가 월요일(28일) 밤에 있었어요. 한국 시간으로 8시 44분에서 45분 사이에 일어났는데, 부대에서 아내에게 9시 넘어서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사업 때문에 인도네시아에 있었는데, 한국으로 바로 가는 직항 항공편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싱가포르를 경유해서 인천에 도착하니 화요일(29일) 밤 10시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싱가포르 공항에서 제가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하나같이 아이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추정하더라고요. 대응도 못하고 경황이 없는 사이에 자살한 것으로 언론에 매도가 됐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싱가포르 공항에서 보배드림(인터넷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어요.

 

 

우리 아이는 평소에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일 정도로 마음이 약해요. 또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오랫동안 살다 보니 성격도 소극적인 편이라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게 이해가 안 돼요. '왜 그랬을까. 내가 못해준 게 있나?' 아니면 '우리가 문제 있는 가정인가' 혹은 '아이가 여자친구랑 헤어졌나?' 다 생각해 봤는데, 그런 거 다 없거든요. 이런 상태에서 자대에 배치된 지 한 달도 안 돼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 말이 안 되죠. 군대에서는 자기들 편의상 명목을 갖다 붙이는데, 데려갈 때는 조국의 아들이고 사건 터지면 빨리 치워야 될 똥입니까?

 

Q. 다음 연락은 어떻게 받으셨나요?

 

A. 잠시 후에 큰 아들이 한 중령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장례 절차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묻더라고요. 사망 통보를 한지 불과 한 두 시간 지난 다음에 장례를 어떻게 하냐고 묻는데, 이 사람들 도대체 공감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까?

 

Q. 장례 절차 관련해서 중령에게 전화가 왔다고 하셨는데, 당시 사인에 대한 설명은 없었나요?

 

A. 없었습니다. 사건 당일 밤 9시 즈음 아내에게 사고 통보를 하고 아내가 쓰러져서 전화를 못 받으니까 큰 아들에게 중령이 전화해서 장례 절차를 물었습니다. 이때 군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얘기는 안 했습니다. 사고 발생 사실만 알려주고 장례 절차를 물었죠. 그래서 28일 언론을 통해 '극단적 선택 추정'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오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한테 얘기할 때는 그런 말 하면 날뛸 것 같으니까 안 했을 수도 있겠죠.

 

Q. 이후 수습은 어떻게 하셨나요?

 

A. 사고 당일 비가 많이 왔습니다. 제가 외국에 있어서 제 형이 먼저 부대에 도착하니까 새벽 3시(29일)가 넘었죠. 아이가 비를 그대로 맞고 밖에 놓여 있다고 얘기를 듣는데, 어느 부모가 옮기지 말라고 하겠습니까. 아무리 죽었어도 내 새끼가 추운데 비를 맞고 있다고 해서 옮기라고 했습니다. 국군홍천병원으로 옮겼습니다.

 

Q. 시신 검시를 통해 확인하신 내용이 있으실까요?

 

A. 1차로 검시를 했을 때, 육안 상 특별한 외상은 없었는데 왼쪽 팔에 멍이 들었다가 풀리는 자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에 2차 검시를 했는데 총알이 수평으로 몸을 통과했더라고요. 부검의는 총알이 심장을 관통하고 대동맥을 뚫고 나간 것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질병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Q. 사고 직후 바로 CPR(심페소생술)을 실시했다고 하는데, 초동 대처에 대해 들으신 내용이 있으실까요?

 

A. 수사관에게 물어보니까 총격으로 자살하고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살임에도 불구하고 탄이 정확히 일직선으로 관통했던 점 등 총상 흔적 부분이 의심스러워 더욱 정밀하게 조사할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해당 총기는 K2 소총에 유탄 발사기가 장착되어 있어 한 손으로 들기 더 어렵고 반동도 더 크기 마련입니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하면 한 손으로 총을 쐈을 텐데, 반동으로 인해 총알이 수평 각도로 갈 수가 없습니다.

 

 

Q. 최초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군이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하고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아직 조사 중인 사안임에도 섣부른 보도라고 보시는지요?

 

A. 그렇죠. 만약에 언론이 정말 궁금했으면, 유가족한테 직접 물어봤어야 하는데 군의 말만 일방적으로 내보내서 마치 우리 아이가 자살한 것처럼 단정 지어 버렸어요. 아들이 9월에 입대해서 훈련받고 GP에 자원해서 들어갔습니다. 이런 아이를 언론이나 군 당국에서 이런 식으로 비추면 안 됩니다.

 

Q. 군 생활에 있어서 아드님께서 힘들어하신 부분은 있었나요?

 

A. 11월에 자대 배치받고 가족 단체 채팅방에서 다들 당연히 힘든 거 없냐고 물어봤죠. 아이는 '군대가 다 그렇지'라고 하더니 '유독 한 놈이 이유 없이 괴롭힌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냥 묵살하라고 했더니 본인도 '시간이 지나면 다 나아지겠지' 정도로 넘겼어요. 연락은 매일 안 해도 제가 카카오톡을 보내면 다음날이라도 아이가 읽거나 짧게 답장은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18일에 카톡을 하나 보냈는데 읽기만 하고 대답을 안 하더라고요. 이등병이라 선임들 눈치를 봐서 그렇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25일에 또 카톡을 하는데 그때부터는 카톡 자체를 읽지 않더라고요. 일과 끝나면 핸드폰을 사용할 텐데 이상하게 그때부터는 카톡을 안 열어봤습니다. 그리고 28일에 사건이 터졌습니다.

 

Q. 한 사람이 유독 이유 없이 괴롭힌다는 내용에 대한 조사가 추가적으로 필요해 보이는데, 따로 군에 요청하신 것 있으신가요?

 

A. 제가 수사관 통해서 알아봐달라고 했습니다. 수사관 측에서는 그 부분을 참고해서 수사하겠다고 했는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죠.

 

Q. 아드님께서 GP에 들어가니까 연락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미리 전했나요?

 

A. 아니요. 그런 점은 전혀 없었습니다. 아들한테는 휴대전화를 쓸 수 있는 자유시간이 있다고 들었고 그 시간에 저희랑 연락을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25일부터 카톡을 읽지 않길래 '선임들의 압박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귀국 직후 사고 현장을 방문한 아버지 “극단적 선택 아니다”

 

Q. 사고 이후 부대를 방문하셨나요?

 

A. 지난 30일(수)에 부대 방문을 했습니다. 가보니까 현장이 깨끗하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GP 내부 초소까지 갔는데, 그곳에서 뭘 찾는다는 게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아들 생활관 사물함에 병영 수첩이 있었습니다. 수첩에는 10-15장 정도의 지형⋅지물 그림이나 글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을 다 스스로 써놨다는 것은 아이가 부대에 적응하려고 노력을 했다는 거죠. 당일 부대에서는 사건과 관련해 아무 말도 들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제가 경황이 없어서 생각을 못 했는데,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일이 이렇게 됐으면 간단하게라도 부대에서 설명했어야죠.

 

Q. 현장을 둘러보실 때, 소속 부대 지휘관이 나와있었나요?

 

A. 지휘관이 나와도 저는 모릅니다. 제가 보고 누가 지휘관인지 어떻게 알겠어요. 본인들이 저한테 와서 소개하지 않는데. 저랑 동행했던 분들은 수사관이셨고 현장에는 영관급으로 보이시는 분들이랑 다른 간부들 몇 명 있었습니다. 이분들도 본인 소개는 없고 그저 나와서 서있기만 했어요.

 

Q. 방탄조끼 같은 현장 물품을 확인하셨나요?

 

A. 그건 모르겠습니다. 저희한테 설명이 없었습니다. 월요일(12일)에 다시 방문할 예정인데, 변호사분하고 같이 그런 부분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Q. 현재 내부 조사가 진행 중인데, 1차 조사 결과는 언제 나올 예정인가요?

 

A.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당분간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지난 월요일(5일)에 휴대전화 포렌식을 했습니다. 극단적 선택을 암시할 만한 내용은 없었어요. 그런데 27일(사고 발생 전날)과 26일에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검색한 기록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극단적 선택이랑은 거리가 더 멀어 보이죠. 정말 군에서 추정한 것처럼 자살할 정도면 그런 거 안 합니다. 왜 하겠습니까.

 

Q. 사건 발생 직전과 직후 상황은 어떠했다고 들으셨나요?

 

A. 2인 1조로 근무하는데, 선임인 일병은 초소 안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아들은 초소 밖에서 철책을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CCTV가 초소 내부 문 위에서 북쪽 방향을 비추고 있으니까 선임만 보였습니다. 사고 나기 바로 직전에 선임이 밖으로 나가는 게 보였고 15-16초 정도 화면에서 사라졌습니다. 잠시 후에 선임이 급하게 들어오더니 앞에 있는 전화기로 상황을 보고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초소 밖에는 CCTV 설치가 안 돼 있었습니다.

 

Q. 조사 중 새로운 정황이 나온 부분에 대해 군으로부터 즉각적인 전달을 받고 계시나요?

 

A. 아뇨. 전혀 없습니다. 군에서 공유해 주는 내용이 없어서 제가 군에 요구할 사항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익명으로 자살이 아니라는 제보를 받은 후에 수사관한테 이 내용을 전달했더니 참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고요. 이후 관련 얘기가 없길래 이틀 즈음 뒤에 제가 연락해 보니 ‘신빙성이 낮아서’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이 익명 제보가 신빙성이 낮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Q. 어떤 익명 제보였나요?

 

A. 아들 초소 번호랑 이름, 그리고 랜턴을 줍다가 총기가 오발됐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군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서 사실 관계를 전혀 얘기 안 해줍니다. 저는 아들이 12사단에서 근무하는 것만 알지 몇 번 초소인지는 몰랐고 보배드림에 글을 올릴 때도 아들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익명 제보에서는 제 아들 이름이랑 초소 번호까지 언급하면서 자살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중에 수사관한테 아들 사고 난 곳이 해당 초소가 맞냐고 물어보니까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Q. 최초 익명 제보 이후 다른 제보는 있었나요?

 

A. 추가 제보가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군에 신뢰가 안 가서 공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수사관이 수사한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믿겠습니까. 그래서 추가 제보 내용은 변호사를 통해서 대응하려고 합니다. 군에서도 현재 수사 중인데,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나중에 결과가 나오면 보여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상황 이해가 쉽지 않아서 간간히 수사관을 통해 파악하고 있습니다.

 

Q. 사건 발생 직후 군이 바로 수사를 시작했나요?

 

A. 군에서는 사건이 일어난 뒤에 바로 수사를 개시했다고 합니다. 11월 30일(사고 발생 이틀 후)에는 제가 사고 현장을 보러 갔던 것이고 이후 현장 재연을 해야 합니다. 군이 현장 재연을 휴대전화 포렌식 다음 날인 지난 6일(화)에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이걸 왜 하루 간격으로 급하게 하나 싶어 다음 날인 7일(수)로 미뤘습니다. 또 군이 국선 변호사 선임을 제안했지만 그대로 하면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수요일에 못 간다고 전달한 후, 사선 변호사를 구해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다음 주 월요일(12일)에 현장 재연 예정입니다.

 

Q. 군에서 순직 처리 언급이 있었나요?

 

A. 전혀 없습니다. 저희가 안 물어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순직 처리 언급은 없습니다. 저도 순직은 조금 나중 문제라 생각하고 지금은 무엇 때문에 아들이 그렇게 됐는지 시원하게 얘기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이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휴대전화 포렌식에서도 의심 가는 내용도 안 나왔고요.

 

코로나로 인해 대학 생활을 즐기지 못하고 입대한 아들

 

Q. 아드님은 두 학기를 마치고 입대를 했던 건가요?

 

A. 맞습니다. 그런데 말이 두 학기지, 작년에 코로나19 때문에 학교도 못 갔습니다. 아이 말로도 매일 온라인 강의만 듣고 대학이 재미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코로나가 금방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군대도 어차피 다녀와야 하니까, 1학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1학년 마치고 휴학계를 내서 9월까지 기다렸다가 입대한 겁니다.

 

 

Q. 입대 후 아드님과 나누셨던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A. 제가 아들한테 훈련소 마치고 나서 전역하면 뭐 할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복학 후에 3학년 즈음 네팔이랑 남미, 유럽 쪽을 여행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돈이 좀 들 텐데"라고 하니까 월급에서 몇 만원 빼고 전부 적금을 넣을 거라고 했어요. 그 돈으로 저한테 손 벌리지 않고 알차게 여기저기 돌아보고 하겠다고요. 애가 여태까지 혼자 여행을 안 다녀봤거든요. 그래서 전역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겠다고 했어요.

 

Q. 군 휴학 후 입대 전까지 아드님은 무엇을 하면서 지냈나요?

 

A. 게임도 하고 쉬면서 보낸 것 같습니다. 아들이 저하고는 데면데면해서 카톡 좀 보라고 두세 번 말해도 초성 하나 딱 보내고 끝납니다. 아니면 '나중에 할게요'하고 또 안 합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마다 뻣뻣한 개작대기라고 했거든요. 그래도 입대하고 나서는 답을 조금 했습니다.

 

Q. 아드님은 평소에 어떤 성격이셨나요?

 

A.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를 열심히 안 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올라가서 열심히 하더라고요. 대학교 가서도 가끔 학교도 나가고 담당 교수님이랑 이야기도 하고 했는데, 제게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세상 공부도 하고"라고요. 중국에 오래 살아서 중국어도 잘하고 독학으로 일본어도 했어요. 그리고 네팔 쪽을 여행하겠다고 영어도 공부했었거든요. 대학 와서는 공부가 힘들었는지 저한테 "머리털 나고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기는 처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Q. 아버님은 사업 때문에 인도네시아에 계신다고 들었는데, 그럼 아드님 뵈러 한국으로 오셨던 건가요?

 

A. 코로나 때문에 출입국 절차가 복잡해서 한동안 못 왔습니다. 못 본 지 2년이 넘었어요. 그래서 제가 코로나도 잠잠해지고 사업도 안정화되고 나서 내년 설 즈음에 한국에 갈 계획을 잡은 와중에 일이 이렇게 돼버렸죠.

 

갈수록 믿을 수 없는 군 당국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고 싶다"

 

Q. 사건 발생 후 열흘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현재 군에게 가장 바라시는 점이 있으신가요?

 

A. 국가에서 아이를 데려갔으면, 데려간 그 상태로 돌려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의 의무인데 그렇지 못합니다. 하다못해 길에서 누구랑 부딪혀도 상대방이 설명을 다 해주는데, 군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어느 사람 하나 나서서 우리한테 속 시원하게 설명해 주지 않아요. 군은 그 정도 용기도 없냐는 겁니다. 군이 뭐가 무서워서 설명을 안 하는 건지 전체적으로 숨긴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Q. 어떤 부분에서 군이 숨긴다는 느낌을 받으셨나요?

 

A. 결정적으로 공감 능력이 없어요. 사건을 통보하고 몇 시간 만에 부대 책임자라는 사람이 전화해서 장례 절차를 묻는 게 충격입니다. 저희가 군이랑 연락할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수사관도 수사를 하는 사람이지 설명해 주는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면 소속 부대에서 명확하게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전혀 그런 노력이 없습니다. 부대에서는 사고 발생 통보 이후 연락도 없습니다. 현장 재연도 다 수사관하고만 연락했습니다. 수사관이랑만 연락하고 군부대랑 연락이 안 되니까 제일 답답합니다. 여기에 28일 '극단적 선택 추정'이라는 언론 보도를 보니까 군대를 더 믿지 못하겠습니다. 명확하게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저는 12사단 훈련소 앞에서 1인 시위라도 할 겁니다. 절대 최전방 근무 투입하지 말라고요. 설혹 정말 극단적 선택이라고 해도 군에서 유가족과 얘기 없이 일방적으로 언론에 얘기하면 안 됐죠.

 

Q. 소속 병사를 관리하는 간부랑 전혀 연락이 안 되신 건가요?

 

A. 네. 병사 관리하는 간부들이랑 전혀 연락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소속 소대장이나 중대장이라 하면 제가 앞전에 부대를 방문했을 때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얘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혹시 경황이 없어서 얘기를 했는데도 못 들었나 싶어서 큰 아들이랑 형한테도 물어봤는데 전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Q. 가족분들은 현재 어떤 상태이신가요?

 

A. 아이 엄마는 싸매고 누워있죠. 다닐 힘도 없고요. 저도 혹시나 싶어서 큰 아들한테 "어디 가지 말고 그냥 엄마 옆에 있어라." 이러고 있습니다. 가족 삶 자체가 전부 망가져 버렸습니다.

 

Q.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실 예정이신가요?

 

A. 명명백백하게 사실 그대로 밝혀아죠. 제가 군 수사 관계자들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이미 내 아들 사건은 벌어진 일이니 무리한 수사로 남아있는 병사들한테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게끔 해달라." 제 아들 일을 위해 압력으로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지 말라고요. 그 부모들 입장도 똑같을 겁니다. 저는 내용만 사실 그대로 알고 싶다는 거지, 무리한 수사로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한편 군 당국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내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수개월 이상 소요될 가능성도 있지만, 유가족은 명확한 사고 원인과 진상 규명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국가를 지키겠다며 최전방 근무를 자원했고 전역 후 자신의 미래를 그리던 김 이병. 한 청년의 안타까운 죽음이 억울하지 않도록, 군 당국의 면밀한 조사와 더불어 유가족에게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저는 젊은 사람들 보면 다 아들, 딸 같아요. 요즘 취업이고 뭐고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도 젊을 때 즐길 거 즐기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취업도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젊을 때 누릴 수 있는 것들 다 포기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들은 못 누렸지만 친구들은 대학 생활 즐기면서 재밌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기하늘 기자(sky41100@naver.com)

오기영 기자(oky98@daum.net)

이승진 기자(lsg10227@naver.com)

 

* 외대알리는 지난 12월 10일(토)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유가족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전달하기 위해 인터뷰 내용은 최소한으로 편집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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