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9 (금)

대학알리

윤하의 END THEORY, 청춘을 관통하다

윤하가 말하는 새로운 끝과 시작

"우리는 선택한 대로 살아간다. 설령, 선택이 정해져 있더라도. 모든 선택은 고민의 끝에서 이루어진다. 모든 끝은 저마다의 기준으로 시간을 일단락한다. 모든 탄생은 끝에서 시작된다. 예외는 없도록 설계돼 있다."
-END THEORY 앨범 소개 中

 

 

여행의 시작


윤하는 정규 6집 'End Theory'에 수록된 대부분의 노래 작사와 작곡에 직접 참여했다. 이 작업에 대해 윤하는 "코로나19로 인해 곡 작업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팬데믹 상황으로 자신의 끝을 상상해 봤으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고민을 깊이 했다고 전했다.

 

그 흔적이 앨범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그가 오래 지속한 고민의 결과물은 마치 지도과 같은 형태로 세상에 나왔다. "윤하라는 가수는 항상 그 자리에 있을 테니 제 노래가 여러분의 인생의 응원가, BGM이 됐으면 한다"는 윤하의 소망이 있었기에, 그가 앨범에 눌러 담은 진심은 청자에게 무사히 전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 노래 말고도 인간의 상실, 성장, 도전에 대한 곡이 매우 그리웠다"며 "윤하는 그런 것을 노래할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는 찬사는 그녀의 라이브 영상 반응에서 빠짐없이 발견된다. 윤하는 앨범 안에 대중의 갈증을 다방면으로 위로하는 메시지를 눌러 담았다. 그 가운데 자리 잡은 약 10곡이 이루는 서사에 특히 주목할 만하다. 사건의 지평선이 명곡인 이유는 앨범 수록곡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완성된다. 그만큼 'END THEORY'의 스토리 라인은 심오하고 탄탄하다. 자연물에 대한 비유지만, 사람의 이야기에 다름없는 노랫말에 청자는 더욱 몰입할 수 있다.

 

윤하가 이 앨범을 '인생의 BGM'이라고 말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앨범 명은 '끝에 대한 이론'이지만, 그 메시지가 비단 사건의 지평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END THEORY'에 실린 노래에는 유기성이 있다. 말 그대로 사건의 지평선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이 그려진다.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는 '끝'보다 '인생'이다. 앨범 소개에서 확인할 수 있듯, 이 앨범은 탄생과 죽음 사이, 무수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 자체를 다룬다. 사건의 지평선은 그것을 완벽히 마무리 짓는 매듭이라는 것을, 수록곡을 차근히 듣다 보면 알게 된다. '끝은 회피할 수 없다는 것, 하지만 모든 탄생 역시 끝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는 이 명제를 거부할 수 없는 우주의 순리로 표현했다. 그래서 윤하의 앨범은 확실한 끝이 아닌, 아주 확실한 희망이다.

 

 

사건의 지평선에 도달하기까지


-상처와 구원


행성에 소행성과 충돌하며 생긴 자국이 가득하듯, 누구나 살아가며 상처를 품고 살아간다. 'Truly'에서는 일종의 트라우마를 다룬다. 다쳤던 기억 때문에, 어떤 존재가 다가올 때 화자는 되려 두려워한다. 그에게 걱정 어린 위로는 환상에 가깝다. 그것이 진실일지 쉽게 단정하긴 이르다. 하지만 그는 세상의 빛을 아주 거부하지 않는다. 세계와 소통하길 갈망한다. 누군가의 삶을 짊어지기엔 여유롭지 않지만, 그럼에도 내 마지막 숨을 지켜 줄, 갈팡질팡하는 날 안아 줄, 존재가 있을지 고민한다. 모순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그의 마음은 진심이다. 상처 많던 화자는 살아가며 구원의 순간을 맞이한다.

 

누구나 살아가며 스스로는 일어설 수 없을 때, 한 번쯤 손잡아 줄 존재를 마주한다. 'Savior'에서는 화자를 일으켜 준 구원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해 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 같은 것은 없던 화자는, 이제 불완전한 날 안아 준 그 품에 기대, 꿈을 꾸는 법을 배운다. 화자는 아직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있다. 하지만 단정하기 이르다던 그는 무엇이 진짜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도 해답을 적어 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Cause you will always be my savior.' 모든 것은 자신을 일으켜 준 그 누군가 덕분이다. 미완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이끌어 준 존재와 그 불완전함을 채워 갈 여정을 시작한다. 


-더 멀리 전진


End theory의 서사 중 가장 많이 다루어진 것은 바로 나아가는 존재의 모습이다. 윤하는 성장하는 청춘을 단일한 언어로 대변하지 않는다. 상처를 스스로 딛고 일어서는 순간부터,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까지. 화자의 성숙 과정을 상세히, 다채롭게 표현한다.

 
그 중 '별의 조각'은 포용의 과정이 그려진다. 적응하지 못하던 세계에, 노래 속 화자는 서서히 익숙해진다. 나를 실수했다 해도 자신이 딛고 서 있는 별이 맘에 든다고 말하기까지, 화자는 던질수록 커지는 질문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떠날 수 없는 자리에서 이 별에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을 바라보며, '더 사랑해 보겠다'고 다짐한다.

 
'반짝, 빛을 내'에서는 한층 더 나아가, 아팠던 과거를 보내 주는 첫 발걸음이 그려진다. 화자는 '오늘이 좋겠다'고 말하며, 방 밖으로 나갈 순간을 스스로 정한다. '차곡차곡 쌓여 있던 눅눅함'을 보내 줘도 괜찮냐며, 과거의 자신에게 다정하게 묻는다. 그는 이미 때론 눈물짓던 날까지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모든 웃고 울던 날을 안은 채, 좁은 방 밖에서 쏟아진 햇살을 따라 문을 열고 나선다. 그런 화자의 눈에 비친 풍경은 익숙하지만 새롭다. 매 순간을 하나하나 온몸으로 느끼고 어제에 작별 인사를 건네며, '시작보다 더 어려운 끝'을 위해 노력한다. '더 밝게 빛나는 날들을 쥐고 싶다'는 욕심을 품은 그가 앞으로 나설 때, 어둠 속에서 한순간 반짝, 빛을 낸다.


'나는 계획이 있다'와 '물의 여행'에서는 과감한 도약이 시작된다. '나는 계획이 있다'에서 화자는 당당하게 여정을 선언한다. 지도 없이도, 자신을 믿으며 더 높이 더 멀리 모험을 떠나는 마음에는 '결국에 만나게 될' 이데아에 대한 갈망이 가득하다. 그 여정에는 무성한 가시밭도 따가운 모래 먼지도 있지만, '다친 마음은 소나기일 뿐'이라는 확신과 함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다.

 

'물의 여행'은 시작은 미약하지만, 언젠가는 바다에 닿겠다는 도전을 노래한다. 이 두 노래에서는, 자신의 상처를 반복해서 되새기고 보듬는 화자가 보인다. 고여 있던 어제에 안녕을 고하는 모습에서 '반짝 빛을 내'의 이미지가 겹치기도 한다. 그렇게 화자는 물방울처럼 끝없이 원을 그리며, 다가올 미래의 문을 두드린다. 물의 여행에서 그려지는 모험의 이미지는 순환이라면,  '오르트 구름'에서는 세계가 무한히 확장된다. 물의 여행에서 두려움을 던져 버린 채로, 더 넓은 세계로 나갈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는 경쾌한 탭 댄스와 함께, 벅찬 맘으로 경계선을 사뿐히 넘어간다. '녹이 슨 심장에 끝없이 불꽃을 피워 내며, 다치고 망가져 버거워진 항해'를 숨 한 번 고르고 망설임 없이 이어간다. 그는 이제 꿈꾸던 소망이 멀게 느껴져도 두렵지 않다. 무모해도 포기하지 않고, 더 나아질 자신을 믿는다.

 

오르트 구름은 태양계를 둘러싸고 있는 가상의 껍질을 일컫는 개념이다. 청중은 자연히 태양계를 여행하는 보이저 호에 이입하며, 용기 내 우주를 여행하는 모험에 동참한다.


-사랑했던 것과 이별의 순간


태양계를 벗어난 화자는 곧 블랙홀을 마주친다. 'Black hole'에서 화자는 쭉 함께해 오던 존재를 보낼 순간이 됐음을 직감한다. '여기까지 오기 전 모든 기억은 사라질지' 묻지만, 이별을 거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새 시작을 함께할 수 없는 슬픈 현실이지만, 오래 기억하고, 지켜 본다고 담담히 이별을 준비한다. 그리고 어두운 밤 속에서 당신을 지켜보겠다고 약속한다. 거대한 블랙홀 앞에서 화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침내 이 모든 여정의 매듭을 지을 사건의 지평선에 다다랐다. 별이 사라진 자리의 잔광을 바라보며 화자는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무언가를 회고한다. 그리고 한 번 넘으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갈 준비를 한다. 그런 과정에서도 역시, 화자는 어떠한 미련도 없다. '아낌없이 반짝인 시간은 마음속에 남을 것'을 믿으며 이별을 받아들이는 화자. '반짝, 빛을 내' 속, '끝이라는 것은 늘 시작보다 힘들다'던 그는 이제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미련 없이 산뜻한 안녕을 고한다. 우리는 여정의 끝에서 단단하게 성장한 화자를 마주한다.


-에필로그


사건의 지평선 트랙 이후 배치된 노래는 '잘 지내'다. 이 곡에서는 이별 후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살별이 프롤로그였다면, 잘 지내는 6집의 에필로그다. '인연은 우연히 다가와 떠나가고 노력할수록 상처로 남아, 이런 내가 됐다'는 가사에서 잠시 'Truly'에서 두려워하던 화자의 사연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하지만 사건의 지평선에서 망설임 없이 끝을 받아들일 정도로 성숙해진 화자. 이제 그는 과거 마음에 마음을 가누려 애를 쓰던 아이를 안아 줄 만큼 성장했다. 가끔은 막막해도, 이제 그는 더 울지 않는다. '잘 지내?'는 6집에서 처음으로 타인에게 묻는 직접적인 안부다. 다른 존재를 걱정할 만큼, 화자의 삶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우리는 이를 엿볼 수 있다. 이 곡의 제목은 더 이상 곁에 없는 존재에게 건네는 인사이자, 자신이 잘 지내고 있다는 대답이다.

 

 

별이 사라진 자리에는

 

End Theory는 철저한 엔딩으로 막을 내리지만, 앨범의 궁극적 메시지는 새로운 시작이다. 끝이 난 후 남은 것은 더욱 성숙해진 '나'다. 긴 역사를 간직한 천체가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별이 만들어지듯, 끝이 곧 새 삶이 되는 무한한 희망을 전한다.


윤하가 관찰한 우주 속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누구나 본인의 삶의 조각을 6집 서사에 이입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삶을 쌓아 가는 과정에 있는 청춘이 이입할 만한 요소가 많다. 상처를 극복하고 성장해 마침내 끝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한 여행자의 서사는, 수많은 도전과 만남 ,좌절과 이별을 경험하는 청춘의 길에 큰 위로일 것이다. 대학 축제에서 청년들 앞에 선 윤하, 그리고 그의 진심을 알아본 학생들. 살별의 '듣기만 해 줘도 된다는,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오차 없는 희망'이 아니었을까. 

 
적절했던 만남의 순간, 준비돼 있던 가수, 삶을 치유할 서사를 완성한 앨범. 한 곡도 빠짐없이 우리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끌 노래다. 오늘도 상처받고, 꿈꾸고, 언젠가 끝을 마주할 당신에게 윤하는 6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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