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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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시각장애인 대학생을 만나다

지난 2월 시각장애인 이명지(가명) 학생과 그를 돕는 도우미 정지안(가명) 학생을 만났다. 시각장애인이 캠퍼스에서 겪는 어려움부터 그를 도와주는 도우미 학생의 일상까지. 이들은 캠퍼스 생활과 일상 속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어울려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터뷰 말미에 명지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구별 없이 모두가 똑같이 살아가는 세상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장애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명지와 지안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학 입학 전 명지의 생활


Q. 대학 입학 전 학창 시절은 어떠셨나요?

명지: 초등·중학교는 특수학급이 있는 일반학교를 다니면서 일반학급에서 공부했어요. 일반학교 다닐 때 개학 전에 점자 교과서를 못 받은 경우가 많았어요. 더러 개학 후에도 못 받은 적도 있었죠. 첫 수업 시간에 저만 책이 없었어요. 저와 부모님이 학교와 교육청에 여러 번 요청했죠. 이후 교과서 수령과 개학 시기의 간격이 점차 줄어들었고 결국 개학 전에 교과서를 모두 받을 수 있었어요. 

 


대학 입학과 장애학생지원센터


Q. 대학 입학 과정은 어떠셨나요?

명지: 장애인 입학 전형으로 들어왔어요. 외대는 장애인 입학 전형이 없어서 못 썼죠. 당시 외대에 장애인 입학 전형을 문의했는데, 담당자분이 사무적인 태도로 그냥 없다고만 하셨어요. '만약 내가 여기 합격해도 지원을 잘 받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대학 내에 특수교육 관련 전공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학교의 관심도 차이가 크다고 느껴요. 관련 전공이 없다면 대학 내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역할이 더 중요하죠.

(관련기사 보기) 학교 내 장애인 학생 세명뿐, 그 이유는 무엇일까?

 

Q.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잘 되어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명지: 사람의 마음가짐은 말에서 드러나고 행동으로 나타나요. 하는 말이 형식적인지 실질적인지는 추후 성과에서 확인할 수도 있죠. 사실 장애학생지원센터라 하더라도 장애인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지원을 해주지도 못하고 장애 학생을 다 이해하기도 어려워요. 초등학생 시절 한 특수교사분이 시각장애인을 처음 본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 "너는 안 보이는데 책을 어떻게 봐?"라고 상처 주는 말을 했죠. 활동도 못할 텐데 지원이 무슨 필요가 있냐는 식으로 단정 짓더라고요. 이후 제가 계속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자 선생님도 생각이 바뀌셨어요. 이를 계기로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지원센터도 "여기는 여러분을 위한 곳이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도 된다. 오히려 연락을 많이 해줘야 더 많이 도움을 줄 수 있다"라고 말씀하셔서 감동했어요. 실제 도움이 많이 주고 계셔요.

 

Q. 장애 학생들 간 네트워킹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나요?

명지: 아직까지는 없어요.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명지를 만나기 전, 지안이가 준비해야 할 것


Q. 장애 학생 도우미를 지원한 계기가 있다면요?

지안: 명지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많이 친해졌고, 1학기 때 명지를 도와줬던 친구와도 가깝게 지내서 장애학생 도우미 활동에 대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2학기 도우미 활동에 지원했죠.

 

Q. 명지님은 어떤 아르바이트를 하셨나요?

명지: 작년 7월에 장애 인식 개선 행사를 하는 카페에서 알바를 했어요. 점자로 포스터나 엽서를 만들어 전시하거나 손님들이 원하는 점자를 찍어주고 도와드렸죠. 점자로 음료 이름을 표시하기도 했어요.

 

Q. 도우미 학생 지원 방법과 활동 기간은 어떻게 되나요?

지안: 장애 학생과 도우미 학생이 사전에 연락해서 서로 마음이 맞으면 국가근로장학생으로 신청해요. 저 같은 경우는 명지가 연락해서 시작했죠. 매 학기 신청하는데, 여러 학기를 갱신해서 이어가는 친구들도 있어요.

 

Q. 국가근로장학금 형태로 장학금을 받으시는데, 근로 시간에 제한이 있나요?

명지: 한 달에 최대 60시간 근로할 수 있다고 알고 있어요.

 

Q. 활동 전 교육이 있나요?

지안: 사전에 비대면 교육을 100분 동안 이수했어요. 장애 유형별로 도움을 주는 방법과 마음가짐을 배웠죠.

명지: 동영상이 장애 학생을 도와주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요. 도우미 친구들이 '실제 활동 전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기본적인 접근과 도움 방식을 알려주니까 문턱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지안이의 도우미 활동


Q. 교육과 현실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지안: 영상에서 도우미 학생이 장애 학생보다 반 보 앞에 걸어야 하는 점이나 의자의 등받이 유무 등 규칙을 알려줘요. 그런데 이런 규칙이 장애 학생이랑 같이 다니다 보면 바뀌거든요. 예를 들어 장애 학생이 도우미 학생의 팔꿈치 부분을 잡는 게 정석이지만, 저희는 팔목을 잡거든요. 또 계단이 있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자세한 상황 설명을 선호하는 장애 학생이 있고 아닌 경우도 있어요.

 

Q. 명지님은 구체적인 설명을 선호하시나요, 그 반대의 경우를 선호하시나요?

명지: 저는 대화 흐름이 끊기는 것이 싫어서 설명이 적은 경우를 좋아해요. 전맹(빛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처럼 안 보이는 기간이 긴 친구들은 대부분 긴 설명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보지 않고도 인지할 수 있는 게 생각보다 많거든요. 뜨겁고 차가운 온도로 사람이 몰려있는 정도를 느끼거나 엘리베이터의 소리로 오래된 기계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있어요. 반면에 안전을 중요시하는 친구들은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것을 좋아해요.

 

Q. 학교생활하면서 어느 범위까지 도움을 주시나요?

지안: 저는 명지의 이동을 함께하는데, 수업 시작 30분 전에 만나서 강의실로 이동해요. 주로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 강의실까지 이동하고, 공강 사이에도 이동을 돕죠. 밥도 같이 먹고요. 장애 학생이 당장 도움을 필요로 하다고 요청할 때도 도와줘요.

명지: 언제 만나서 이동하는지는 개인마다 달라요. 다른 친구랑 했을 때는 그때그때 연락해서 만났어요. 저는 도우미 친구에 크게 의존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장애학생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독립적으로 시도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거죠. 예컨대 판서 같은 경우도 교수님께 '저는 판서를 볼 수 없으니 미리 저에게 말해주시거나 수업 방식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해요.

 


명지와 지안이의 '슬기로운 대학생활'


Q. 학교생활 스케줄은 어떻게 조정하시나요?

지안: 수강신청 전에 명지랑 시간표를 같이 짜요. 결정된 시간표를 학교에 제출하면 그대로 수강신청 없이 수업을 들을 수 있어요. 일종의 도우미가 갖는 특권이죠. 다른 도우미 친구들과 시간표를 조율하기 때문에 크게 어려운 점은 없어요.

 

 Q. 교내 기숙사 시설이 장애인이 사용하기에 편리한가요?

명지: 저는 기숙사에 살지 않지만, 주변 친구들이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해요. 익숙해지면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세탁실 이용 방법이나 기숙사 구조 익히는 것도 보행 교육 때 말해놓으면 같이 할 수 있고, 중간에 입사해도 복지관에 얘기하면 언제든지 받을 수 있어요. 특히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잘 운영되고 있는 학교의 경우 1인실을 제공한다고도 들었어요.

 

Q. 교내에 시각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어떤 게 있나요? 애로사항도 있을까요?

명지: 장애인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걱정돼서 도와주는 분들이 참 고마워요. 그리고 간혹 점자로 무슨 관 강의실 몇 호라고 쓰여있는 경우가 있으면 강의실을 찾기 수월해요. 또 건물 구조가 대칭이면 이동하기에 편하죠. 안 좋은 점은 셔틀버스 안내 방송이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집 가는 버스를 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 적이 있어요. 부저벨도 없는데, 벨보다 안내 방송이 우선이에요. 벨만 있으면 어차피 여기가 어딘지 몰라서 못 누르거든요. 버스 정류장에서 곧 도착하는 버스 알림이 정확하지 않아서 불편할 때도 있고, 버스를 탈 때 탄다고 손짓을 하지 못해서 놓친 적도 있어요.

지안: 비장애인 입자에서는 이런 점들을 느끼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고 느껴요.

 

Q. 도우미 학생 없이 수업을 듣거나 학교를 거닌 적이 있나요?

명지: 도우미 학생이랑 시간이 맞지 않는 경우에는 혼자 다녀요. 지난 1학기에는 수업 시작 30분 전에 미리 만나는 약속이 없어서 혼자 자주 다녔어요.

지안: 버스가 학교에 들어오는 길 중에 사거리가 있는데, 신호등이 없어서 운전자와 시선이 맞아야 차가 멈추고 사람이 지나갈 수 있어요. 장애인을 넘어서 비장애인한테도 너무 위험하죠.

 

Q. 비대면 수업은 어떻게 수강하셨나요?

명지: 저는 개인적으로 대면 수업과 큰 차이가 없었어요. 그러나 시각장애인이 웹사이트나 프로그램 등 정보에 원활히 접근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노력이나 개발자의 지원이 병행돼야 해요. 이미지에 'OK 버튼'이 그냥 '버튼'이라고 읽히거나 다르게 읽히는 경우도 종종 있거든요. 제 친구는 혼자서 시험 점수를 확인하지 못했죠. 나중에 부모님이랑 영상통화를 통해 확인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점은 아쉬워요.

 

Q. 새터나 동아리, 학생회 같은 수업 외의 학교생활은 어땠나요?

명지: 저는 웬만하면 다 참여해요. 시각장애가 있어서 누가 지나가도 모르기 때문에, 제가 먼저 다가가고 상대의 목소리, 말투, 성격 등을 기억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서 지금까지 종강총회 뒤풀이 빼고는 다 참여했어요. 술 게임 중 제가 하기 힘든 게임이 나오면, 친구들이 규칙을 바꾸자고 제안해 줘서 서로 맞춰가고 있어요.

 


명지가 바라보는 배리어프리


Q. 학교나 사회에서 장애인이 느끼는 꼭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면요?

명지: 물병에 점자로 '삼다수'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한 달 전까지도 안 적혀 있어서 놀랐죠. 점자법 강화와 인식 개선이 뒷받침된 덕분이에요. 일반 교육과정에 점자를 포함시키면 좋겠어요. 외국인이랑 소통할 수 있는 영어는 배우면서, 내국인끼리 소통할 수 있는 점자는 왜 안 배우는지 의문이에요. 아직도 캔 음료수는 구분 없이 '탄산'이나 '음료'라고만 적혀있어요. 그래도 최근에는 '테라'라고 적혀있는 맥주를 발견했어요. 다만 점자가 정확히 튀어나오지 않거나 거친 경우에는 읽기 힘들어요.

 

Q. 글이나 영상 자료는 어떻게 감상하시나요?

명지: 영화관에서 배리어프리 영화를 상영하면 보거나, 더 깊이 보고 싶은 작품은 시각장애인 커뮤니티에서 봐요. 사실 공유되는 자료들이 배리어프리까지는 아니에요. 배리어프리는 수화까지 포함돼야 하죠. 화면 해설을 통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봤어요. 본방송이 방영되면 해당 커뮤니티에는 다음 회차 방영 전에 공유돼요. 화면 해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대본은 맹학교 선생님 같은 시각장애인 관련 종사자분들이 작성해요. 다만 액션 영화는 자막이 없어서 보기 힘들어요. <신과 함께>를 볼 때 가족들한테 많이 물어봤는데, 원작인 웹툰을 미리 봐서 그나마 다행이었어요. 웹툰은 전문 성우들이 소리 만화로 제작하는 경우도 있어요. 화면 해설은 원본 소리를 유지하는 동시에 해설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작이 어려워요. 성우들이 적절한 시기에 말을 해야 해서 녹음이 가끔씩 아쉬울 때가 있어요.

 


함께 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명지의 꿈


 

Q. 꿈은 무엇인가요?

명지: 수필을 쓰는 게 최종 목표예요. 제가 좋아하는 동요도 쓰고 싶고요. 사람들이 다 똑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장애가 있다고 해서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장애인들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 내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개선점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인들이 더 적극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해요. 그다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도움에만 의존하려고 하면, 결국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도움을 주는 사람도 친구나 동료, 혹은 부모님과 함께 간다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서로가 평화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위해 평생 살고 싶어요. 아이들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끔 하고 싶고 "재밌었어요"보다는 "다음에 또 하고 싶어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특수교사가 되고 싶어요.

 

 

기하늘 기자(sky41100@naver.com)

류효림 기자(andoctober@naver.com)

오기영 기자(oky9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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