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이하 건대 글캠)의 강의동 및 기타 시설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아 재학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건대 글캠은 교내 7개 강의동 중 4개의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강의동은 △종합강의동 △자연과학관 △생명과학관 △국제교육관이다. 남자 기숙사와 학생회관 같은 학생 이용시설에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다. 해당 건물들은 재학생들이 수업을 듣거나 편의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많이 드나드는 시설이다. 또한 모든 건물이 지하를 포함해 5층 이상으로 이뤄져 있다. 때문에 재학생들 사이에선 엘리베이터 설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학생 95.8%, '엘리베이터 미설치로 불편함 겪었다'
건대 글캠 재학생 7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95.8%의 학생이 '엘리베이터 미설치로 불편함을 겪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중 76.4%가 △장애 △부상 △호흡기 질환 △고관절 약화 같은 신체적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장애를 가졌거나 부상을 당했을 때, 어떻게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을 이용했냐’는 질문에 65%의 학생이 ‘위험을 감수하고 난간이나 벽 등에 의지해 혼자 계단을 올라갔다’고 답했다.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는 비율이 22.2%로 뒤를 이었고, 다음으로 9.3%의 학생들이 '아예 건물을 사용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학교에 도움을 요청했다'라고 답한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발목에 깁스 찼는데..." 그냥 올라가거나, 못 올라가거나
인문사회대학 학생인 하지수(22)씨는 지난해 5월 오른쪽 다리를 다쳤다. 인대가 완전히 파열된 탓에 깁스와 목발을 하고 다녀야 했지만, 전공수업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국제교육관에서 이뤄져 불편을 겪었다. 하씨는 “수업을 듣기 위해 깁스를 한 채 난간에만 의지해 계단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그는 "학생회관 문구점을 이용할 때도 계단을 내려가야 했는데, 전공 서적을 사서 다시 올라가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체력적으로 힘든 것은 물론, 이동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하씨는 “수업에 늦지 않기 위해 더 급하게 움직여 발목에 무리가 갔다”고 밝혔다. 그는 “다리를 다쳤다고 수업을 늦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교수님께 양해는 구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부상 중 계단 이용은 회복에도 지장을 줬다. 당시 병원에서는 하씨에게 전치 1~2주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실제 하씨는 한 달 내내 깁스를 차고 다녀야 했다. 그는 “깁스를 한 상태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니 인대가 계속 늘어났다”고 밝혔다. 하씨는 한 달이 지나자 부상이 낫지 않은 상태에서 병원이 정해준 연장일보다 일찍 깁스를 빼버렸다. 깁스를 한 채 계단을 돌아다니는 게 불편했기 때문에 상태가 나아지자 부상 악화를 감수하고 깁스를 빼버린 것이다.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피해를 호소했다. 설문조사에서 11명의 학생이 '다리 부상으로 건물 이용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깁스를 한 채 난간에만 의지하여 계단을 올라가거나, 혹은 아예 건물을 이용하지 못했다. 다리를 접질려 통깁스를 했던 A씨는 5층 강의실에 가기까지 20분의 시간이 소요됐다. 무릎 내측이 파열돼 계단을 이용할 수 없었던 B씨는 교수님으로부터 공결 인정을 받지 못해 결국 결석 처리가 됐다. C씨는 입학한 뒤로 무릎 디스크가 심해졌다고 호소했다.
기관지 약한 학생들, 계단 이용 중 호흡곤란 우려
하씨는 다리가 다 나은 후에도 계단을 이용할 때 부담을 느꼈다. 하씨의 콧속 혈관은 내벽이 약한 탓에 밖으로 나와있는데, 이때문에 하씨는 코로 숨을 쉴 수가 없다. 실내 마스크 착용이 의무였을 때는 마스크를 쓴 채 입으로만 숨을 쉬며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그는 "기관지가 약하면 사지가 멀쩡해도 엘리베이터를 탈 수밖에 없다. 강의실 밖에서 숨을 고르고 들어가느라 수업에 늦은 적도 있다”며 불편함을 털어놓았다. 설문에서도 10명가량의 학생이 '호흡기 질환이나 비염 등으로 계단 이용에 불편함을 겪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계단 이용 중 호흡곤란 또는 과호흡이 온 적 있다'고 밝혔다.
장애 학생들, 입학 단계부터 어려움 겪는다
엘리베이터 미설치는 장애 학생의 학교생활에도 여러 불편함을 끼친다. 교내 엘리베이터 미설치로 인해 장애 학생들이 겪는 불편은 입학 단계부터 시작된다. 기획처 기획예산팀 백경석 팀장은 "장애 학생은 애초에 엘리베이터가 마련돼 있는 단과대로만 입학할 수 있게 한다”고 밝혔다. 그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학생을 받아야지, 시설도 없고 시설을 개선해줄 돈도 없는데 무턱대고 장애 입학생을 뽑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냐”고 말했다.
인문사회융합대학(이하 인사대)의 엘리베이터는 5년 전 장애 학생들을 위해 증축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장애 학생 대부분이 인문사회대학 계열에 소속돼 있다. 건대 글캠은 정부 지침에 따라 장애 학생을 의무적으로 뽑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뽑힌 장애 학생들은 미흡한 시설 탓에 전공 선택이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건대 글캠에 등록된 장애인의 수는 15명이다. 건대 글캠 장애학생지원센터 측은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 학생들이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을 이용할 때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 "장애 학생이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장애학생지원센터 홈페이지에는 ‘장애 학생은 이동 도우미를 신청할 수 있다’는 공지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올해 3월 창의예술관 승강기 증축, 다른 건물은?
현재 우리나라는 6층 이상, 연면적 2,000㎡ 이상인 건물에는 의무적으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한다. 건대 글캠의 엘리베이터 미설치 건물들은 모두 지상 5층을 벗어나지 않아 법적 기준을 충족한다. 하지만 법적 기준을 만족해도 학생들이 건물을 이용하며 느끼는 불편은 크다. 학교 측은 이러한 점을 인지해 올해 3월, 디자인 대학 건물인 ‘창의예술관’에 엘리베이터를 증축했다.
디자인 대학 학생들은 실습 때문에 캔버스나 이젤 같은 물품을 옮길 일이 많다. 무거운 물품을 들고 계단을 이용하다 보니 안전사고 위험이 크다. 이에 디자인대학 교수진과 학장이 엘리베이터 설치를 추진했다. 그 결과 디자인 대학 졸업생의 동문 기금과 교수진의 작품활동 기금 1억 6,000만 원이 모였다. 엘리베이터 증축 비용인 5억 2,000만 원 중 약 30%에 해당하는 돈이다. 기획처는 “만일 디자인 대학 측이 기금을 보태지 못했다면, 창의예술관 엘리베이터 설치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5년 전 인사대에 엘리베이터를 증축할 때는 약 1억 5,000만 원으로 공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사에 필요한 원자재 비용이 커졌고, 물가가 많이 올라 학교 예산만으로 공사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백 팀장은 "이번 창의예술관 엘리베이터 증축으로 (재정) 출혈이 컸다”고 밝혔다.
정부의 대학 수익사업 규제 완화, 예산 부족의 돌파구 될 수도
백 팀장은 엘리베이터 설치가 미흡한 현재 상황에 대해 "학생들에겐 늘 미안하다. 요새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이 어딨나"라고 말하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교내 건물 엘리베이터 설치'는 꾸준히 제기된 문제였다. 그는 "매번 등록금 심의 위원회에서 (엘리베이터) 증축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건물 이용이) 불편하다는 여론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해선 학교 건축기금을 사용해야 한다. 건축기금은 대학 예산의 일부로, 캠퍼스에 설치된 건물에 감가상각이 들어갈 때마다 그만큼의 예산을 축적하는 시스템이다. 건대 글캠은 올해로 설립된 지 43년째이다. 이론상으로 기금이 많이 쌓여있어야 하지만, 백 팀장은 “중간중간 건물을 신축하거나 보수하다 보니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학교에는 건축기금과 발전기금, 장학기금을 모두 합해 160억 정도가 축적돼 있다. 백 팀장은 “이걸 함부로 빼서 쓰면 (학교에) 부도 위기가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예산 부족의 또 다른 주요 원인으로는 대학 정원 감소가 있다. 건대 글캠은 최근 1년 사이 입학생 15%가 감소했으며, 외국인 유학생도 2,000명 정도가 줄었다. 이에 따라 전년 대비 감소한 등록금은 약 160억이다.
백 팀장은 “학교 차원에서도 엘리베이터 설치 예산 마련을 위해 꾸준히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건대 글캠은 현재 예산 확보를 위해 공실이 많은 국제교육관의 지하를 재정비해 외부 기업을 대상으로 임대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고등교육 특별회계 1조 7,200억 원이 추가 편성됐다. 백 팀장은 "정부에서 지원하는 예산은 용도가 정해져 있지만, 건축은 학교 기금으로 하고 그 출혈을 정부 지원금으로 막는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며, “예산이 수반된다면 엘리베이터 증축을 학식 운영과 더불어 최우선으로 진행할 것”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