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인체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기관 중 하나다. 그 무게는 2%에 불과하지만, 전체 열량의 약 20%를 소모한다. 이는 뇌가 상대적으로 높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곳임을 보여준다. 즉 우리 인간이 이성과 논리보다 편견과 감정에 더 의존하는 것은, 에너지 소비적 측면에서 더 경제적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지름길은 뇌를 게으르게 만들어 논리적 사고의 회로를 멈춰버린다.
알고리즘에 의한 필터 버블 현상은 지난 몇 년간 우리의 뇌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어왔다. 문과생인 필자는 그것의 원리와 체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하지만 “봤던 것을 더 잘 볼 수 있게, 보지 않던 것은 더 볼 수 없게” 만드는 알고리즘이 인간의 사고적 편향을 야기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에 대한 우려가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음에도 알고리즘은 우리의 빈약한 사고에 근거 없는 자신감을 채워줬다.
진영 논리와 양극화가 정점을 향해가는 한국 정치가 대표적이다. 편향된 정치 유튜브 채널은 알고리즘에 의해 지지자들의 정치 성향에 알맞게 전달된다. 수용자는 다양한 견해로부터 차단되고 '우리편과 상대편'이란 이분법적인 구조와 증오 정치라는 함정 속에 빠진다. 정치인들은 '논리의 빈곤'을 걱정하지 않고 '싸움의 빈곤'에 주력한다. 중도 설득보다 적은 힘과 노력으로 정치적 목표를 달성한다. 여야 간의 잦은 실언과 악마화 그리고 토론과 담론을 차단하는 팬덤정치는 이러한 '게으른 뇌'의 소산으로 이어진 결과일 것이다.
설상가상, 우리의 뇌가 무방비한 상태인 틈을 타 인공지능(AI)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진실과 거짓이란 선택지 앞에서 편향적이었던 인간은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생성형 AI의 물음에 속수무책이다. 올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트랜스젠더를 향해 혐오 발언을 내뱉는 딥페이크 영상이 확산됐고, 지난 3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체포되는 가짜 사진이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와중에 세계 각국의 언론들은 이를 속보라며 보도했다.
미국 사전 출판사인 메리엄웹스터는 2023년 올해의 단어로 ‘진정한, 진짜의’라는 뜻의 ‘어센틱(authentic)’을 선정했다. 생성형 AI, 딥페이크 등이 범람하는 요즘, 어느 때보다 ‘진짜’ 혹은 ‘진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피터 소콜로프스키 메리엄웹스터 선임 편집장은 “2023년 우리는 진실성에 위기를 겪고 있다”면서 “어떤 정치인이 실제로 이 발언을 했는지, 어떤 학생이 진짜로 이 논문을 쓴 건지 알 수 없게 됐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2016년 옥스포드 사전의 올해의 단어는 ‘탈진실(post-truth)’이었다. 진실과 거짓의 진위여부 보다 믿고 싶은 대로 믿는 탈진실시대 등장 이후 채 10년도 되지 않아 ‘어센틱’이 부상한 것이다.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정답이 아닌 자신의 신념을 내세우던 인류는 오늘날 두 갈래 길 앞에서 주저앉아버렸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정보의 진실을 외면하다 이제는 스스로가 목격한 것들조차 믿을 수 없는 이 현상에 이르렀다.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은 곧 “누가 진실을 규정할 것인가”란 질문으로 귀결된다. 전문가, 언론, 정부 등 과거의 권위를 가진 주체들의 정보 마저도 확신할 수 없다면 결국 판단의 주체는 바로 자신이 될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 준비가 되어있는지 묻고 싶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치열한 사고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떠한 정보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알고리즘에 사로잡힌 우리는 또 다시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릴지도 모른다. ‘어센틱’과 ‘탈진실’의 해법은 동일 선상에 있다. 그리고 그 해법은 알고리즘 밖에 존재한다. 이 글의 끝에 선 당신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건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유종현
* 본 칼럼은 외부 필진의 칼럼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