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1 (일)

대학알리

대학언론

대학언론은 실패할 수 밖에 없지만

정상석 전 <전북대신문> 편집장, 전 <대학언론협동조합> 이사장

 

*본 기사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불씨'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대학언론을 위해 많은 일을 했지만 돌아보면 후회뿐이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이것밖에 못 했다는 후회. 하지만 극복했다. 실패했지만 이것보다 잘할 수도 없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는 학보사에서 3년, 대학언론협동조합에서 5년, 20대의 8년을 대학언론으로 채웠다. 학보사에서 편집장을 하면서 총장, 주간교수와의 편집권 갈등을 겪었고 퇴임한 이후 비슷한 사정의 친구들과 함께 2013년 5월, 대학언론협동조합(현 대학알리)을 창업했다.

 

대학의 예산과 검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탐사보도 하는 독립언론을 확산하고자 프랜차이즈 사업 ‘N대알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한국외대에서 ‘외대알리’를 시작으로 성공회대 ‘회대알리’, 세종대 ‘세종알리’, 이화여대 ‘이대알리’, 서울시립대 ‘시대알리’, 한림대 ‘한림알리’, 단국대 ‘단대알리’ 등을 창간 지원했고 연합 인터넷 언론사 ‘대학알리’를 창간했다.

 

대학언론협동조합은 소속 기자들에게 미디어와 경영 교육을 제공했고 광고영업과 각종 지원사업을 통해 발행비를 지원했다. 각 알리 경영팀은 개별 상권에서 각자 광고영업과 후원금을 유치했다. N대알리 기자들은 각자 탐사보도로 학내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했고 온라인에서는 당시 잘 나가던 페이스북에서 참여율 높은 페이지로 각자 자리 잡았다.

 

N대알리의 경쟁자는 대학내일과 대학생 커뮤니티였다. 독자의 시간을 두고 경쟁한다는 점에서 그랬다. 탐사보도 외에도 대학생의 라이프스타일에 필요한 콘텐츠를 독자의 감성과 밈에 맞춰 제작했다. 지역에 제약이 없는 콘텐츠는 다른 알리로 공유해서 효율성을 높였다.

 

하지만 대학생 사업이 대체로 그렇듯 핵심 멤버들의 번아웃 또는 생애주기에 따른 이탈을 피할 수 없었다. 신규 구성원 유입이 줄어들고 교육을 통한 성장이 지체될 때 침체기가 찾아왔다. 구성원들의 갈등도 점차 잦아졌다. 모든 것이 나의 책임으로 느껴졌다. 나 또한 건강과 군 입대를 이유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겉으로 보면 실패한 대학언론을 두고 군대로 도망간 모양새다.

 

대학언론에게 성공이 무엇인지 되물어야 한다. 매체가 없어지면 실패이고 유지되면 성공일까? 그렇다면 독자에게 외면받지만 어떻게든 존재하는 언론사가 성공한 곳일까, 잠깐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장렬히 산화한 언론사가 성공한 곳일까? 누구도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대학언론이 실패하건 말건, 대학언론인은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다. 스스로의 한계를 많이 깬, 승리의 기억을 많이 남긴 사람이 성공적인 대학언론인이다. 내겐 사람을 모아 새로운 기업과 미디어를 만들고, 새로운 탐사보도 콘텐츠로 대학 사회에 변화를 만든 성공의 경험이 앞날을 살아가는 자신감의 근거가 됐다.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에서 누구도 쓰지 않았던 콘텐츠를 만들었기에 누구보다 못했을 수 없다.

 

스스로 최선을 다했기에 대학알리의 기억이 힘이 된다. 학보사에서 독립언론으로 넘어간 이유는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주간교수에게 싫은 소리 안 듣고 적당히 장학금 받으면서 쉬운 기사만 쓰는 사람이 가장 이득을 보는 곳에서는 의미도 없고 개인의 성취도 낮았다. 지금은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때 그걸 해냈는데 이걸 못하겠냐는 생각이 든다.

 

현재의 대학언론인들은 과거보다 사정이 더 열악한 것처럼 보인다. 대학사회는 더 파편화되었으며 혐오가 가득하고, 온라인에 재미있는 콘텐츠가 넘쳐난다. 하지만 사정은 늘 안 좋았다. 90년대부터 대학언론을 둘러싼 환경은 쭉 악화일로였고 선배들도 우리도 항상 답이 없다고 투덜거렸다. 답을 찾아내는 과정은 현역의 역할이다. 그 결말이 좋든 나쁘든 과정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성공적인 대학언론인으로 스스로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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