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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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10월] 레인보우 시그널-성소수자, 드러나지 않았던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

기자는 올해 초 많은 화제를 모으며 방영되었던 tvN 드라마 ‘시그널’의 열혈한 팬이다. 드라마 속에서 현재와 과거는 무전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져, 결코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미제(未濟)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만들어간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는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아직 그 어떤 성소수자도 큰 용기가 없고서는 쉽게 스스로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보기 위해, 외대에 존재하는 성소수자들이 직접 필진으로 참여하는 코너를 기획하게 되었다. 부디 이 기획이 벽장 속에 갇혀 전달하지 못하는 이들의 마음을 전달해주는 드라마 ‘시그널’ 속 무전기 같은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 새로운 필진은 언제나 환영이야! 
‘레인보우 시그널’은 외대 구성원이신 성소수자 여러분들 혹은 그 지인 분들의 글을 기다립니다. 외대알리는 이 기획에 참가하시는 분들의 신상이 유출되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알리 내부에서도 담당 기자 한명을 제외하면 필진 분들이 누구인지 모를 만큼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습니다. 달달한 연애 이야기든, 짠 내 나는 짝사랑 이야기든 어떤 주제라도 좋습니다. 글 솜씨가 없으셔도 상관없습니다. 성소수자로서 생각하는 것들, 말로는 잘 하지 못하지만 한번쯤 얘기해보고 싶은 것이 있으셨던 분이라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담당기자 최서진, 카카오톡 ID : irene29)

 


첫사랑은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두 다리 건너서 봤을 때는 나랑은 영 안 맞는 작고 무표정한 하얀 애였는데, 평생 가까워지지 못할 것 같더니 같은 반이라는 다리가 놓이더라. 그 애의 다른 표정도 알게 된 후에는 이미 많이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다. 혼란스러웠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어떤 건지 몰랐다. 그래도 같이 있으면 좋아서 줄기차게 붙어 있었다. 같이 밥 먹고, 회전초밥처럼 산책하고, 몰래 숨어서 자고. 몰랐는데 친한 친구랑 있을 때면 인상도 쓸 줄 알더라. 하얀 애의 열 가지도 넘는 표정을 알게 돼서 기분이 좋았다.

'얘는 집 밖을 안 나가서 하얀 건가' 싶을 정도로 하얀 애는 밖에 나가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하얀 애의 집에 가서 밥을 먹고 TV를 봤다. TV 앞에는 매트리스가 놓여 있었는데, 얘도 참 대단한 게 거기서 한 발짝을 나오질 않았다. 내가 물도 떠다 주고, 라면도 끓여다 주고, 무슨 아기 하나 키우는 기분이었다. 아기랑은 다르게 얜 참 조용했지만. 하얀 애는 사이다를 참 좋아했는데, 그게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눈을 감게 하고 콜라를 사이다라고 속여서 먹였다가 손바닥으로 아프게 맞았다. 사이단지 콜란지 몰랐으면서… 

우리는 해가 떨어질 때까지 매트리스에서 TV를 보다 하얀 애가 제일 좋아하던 무한도전이 끝나면 걘 잘 준비를 하고 난 나갈 준비를 했다. 나중엔 내가 졸라서 버스정류장까지 나와 주긴 했는데, 처음엔 내가 신발을 신을 동안 이불을 뒤집어쓰고 손만 흔들어 줬다. 참 얄밉기는 한데 하얀 게 이불에 파묻혀서 손만 휘적거리니까 그게 또 귀여워서 “내일 봐~” 하고 분리수거할 쓰레기를 챙겨 나오게 되더라. 그러다 문득 이게 좋아하는 감정이 아니라면 세상이 참 팍팍하겠다 싶었다. 난 걔를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서 하얀 애가 등교하기 5분 전부터 교실 문 뒤에 서 있었고, 늦잠을 잔 날에는 5층을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집중한 입모양이 예쁘길래 과학 시간에도 졸지 않았고,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서 교실에서 앞구르기까지 해 봤다. 그날은 소리 없이 웃는 게 유독 예쁘더라. 친구들은 그걸 가지고 세 달을 놀렸다. 

집에 가는 버스에서 생각해 보니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좋아하는 거였다. 그렇게 그냥 첫사랑 타이틀을 넘겨주기로 했다. 문제는 좋아한다고 인정하고 나니까 시작이 언제인지를 모르겠더라.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언제부터 내 손을 떠난 건지 모르겠으니까. 그러다 언젠가는 가장 친한 친구가 나에게 물어왔다. 너 걔 좋아하냐고. 어, 나 걔 좋아한다고 이 한마디를 하는데 참 쑥스러웠다. 친구는 그럴 줄 알았다면서 언제부터 여자를 좋아하게 됐냐고 물어왔다. 참 이상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좋아하는 사람도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언제부터 여자를 좋아하게 됐느냐고? 내가 여자를 좋아하나? 물론 걔가 여자인 건 맞지만 걔가 여자라서 좋아하는 건 아닌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성소수자들은 자기 부정기를 거쳤다고들 한다. 사실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성소수자인지도 모르겠다. (성경험 소수자를 줄여서 성소수자라고 한다면 맞는 것 같기도 함 시X...) 내가 혼란스러워 했던 건 좋아한다는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지, 내가 좋아하는 대상 때문은 아니었다. 

누구든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면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말고. 적어도 길 가던 사람 붙잡고 물어봤을 때 절반 정도는 첫사랑을 만났을 때 '이게 사랑의 feeling인가' 하고 혼란스러워하지 않았을까? 보편적인 감정이다, 내가 봤을 땐. 나는 내가 소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적(grade)이 적은 수이긴 하지만 그걸 제외하고는 어떤 방면으로 봐도 나는 소수자가 아니다. 남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난 그렇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 보일까, 어떻게 하면 좀 더 같이 있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세상에 깔리고 깔린 사람이다. 그냥 난 그렇다.

 

나는 레즈비언이다. 내가 여자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같은 반 여자아이와 하교를 하던 버스 안이었다. 친구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친한 친구들끼리 하는 흔한 스킨십에 나는 두근거림을 느꼈고, 곧바로 그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나는 내가 느꼈던 그 찰나의 두근거림이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그때까지 나는 나를 동성애자로 칭할 용기가 없었다. 어리니까 한때 그럴 수 있다는 흔한 얘기들을 되새겼고,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첫사랑이라고 부를 만큼 많이 좋아했던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를 좋아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 친구를 좋아하면서 많은 감정을 느꼈다. 분명히 좋아하지만, 좋아하면 안 된다고 온 세상에서 이야기하는 듯 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게 무슨 잘못이냐며 위안을 삼으려 했지만,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짝사랑이라는 게 대부분 그렇듯 나 또한 혼자 고백하는 상상, 사귀는 상상, 차이는 상상 등 온갖 것을 머리에 그렸다. 그 친구가 나의 마음을 알아채서 나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고, 나에게서 도망가 버리는 상상도 했고, 나의 자존감은 점점 떨어졌던 것 같다. 동성을 짝사랑하는 건 뭔가 절망적이고 운명을 거스르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잔뜩 위축되어 미안한 마음으로 했던 짝사랑이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사실 고백을 하긴 커녕 가까이 다가갈 엄두도 나기 않았다. 짝사랑은 누구에게나 힘들지만, 이때는 짝사랑에 ‘동성’이라는 타이틀이 더해진 것이었다. 여기서 받는 압박감은 생각보다 컸다. 고백하면 차일 것이라는 두려움 외에도 ‘혹시 나에 대해 소문을 내면 어떡하지?’, ‘여자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게 미친 듯이 싫지는 않을까?’ 등의 고민이 더해졌다. 이때는 사람들이 동성애자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당장 이 점이 더 억울했고 서러웠다.

나에게 짝사랑은 숙명인 것 마냥 매년 하는 짓이 되었다. 서로 좋아하는 연애는 못 하는 병에 걸렸는지 짝사랑만 주구장창 열심히 하고, 열심히 차고, 열심히 차이면서 살고 있다. (화 난 거 아님. 우는 거 아님.) 그럼에도 지금은 고등학생 시절에 했던 짝사랑처럼 마냥 힘들고 괴로운 것만은 아니다. 내 짝사랑도 결국 평범한 짝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내 짝사랑 얘기를 듣고 “그 언니 예뻐?”, “그 언니 어디가 좋은데?” 이런 식의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일 때 특히 그걸 느낀다.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뿐이었다.

작년에 짝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 보는 낙으로 학교에 가고, 웃는 모습이 예뻐서 혼자 실실거리고, 입고 나온 옷이 예뻐서 심쿵도 당했다. 밥 같이 먹는 것을 좋아하고, 괜히 간식을 넉넉히 챙겨가서 나눠주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 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술에 취해서 이불 킥 감인 실수도 해보고, 손 덜덜 떨면서 고백도 해봤다. 무슨 용기였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차였던 날을 떠올려 보면, 고등학생 시절 짝사랑을 할 때는 괜한 고민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행히도 상대는 나의 마음을 고맙게 여겨주었고, “네가 여자여서~(싫다)”라는 식의 마음 아픈 말도 하지 않았다. 물론 원치 않은 소문도 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서로 어색하지 않게 잘 차였다.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내 짝사랑도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짝사랑이었다.
 


최서진 기자 sinnarri97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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