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가 기록상 가장 더운 해였다고 공식 발표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탄소 배출량 역시 역대 최대치를 갱신했다.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불리는 평균 상승 기온 1.5도는 머지않아 무너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기록적인 장마와 폭염 등 이상기후는 지속되고 있고, 지구온난화를 부르는 명칭은 기후변화에서 ‘기후 위기’, ‘기후재앙’까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무분별한 개발로 온실가스 배출은 가파르게 늘어났고 농촌 인구가 도시로 급격하게 몰리면서 그동안 이루어 왔던 마을 공동체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공동체의 해체로 인한 소통의 단절은 개인주의, 무한 경쟁사회로 이어지는 발판이 되었다. 이러한 기후 위기와 공동체의 부재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대안적 삶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을이 있다.
밝은 누리 인수마을
서울시 강북구 인수동*의 한 골목에는 길을 따라 빌라와 찻집, 도서관 등 마을 공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마을을 알리는 표지판도, 울타리도 없지만 이 근방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 ‘밝은 누리 인수 희년 마을’(이하 인수마을) 사람들이다.
*서울 강북구에 있는 행정동으로 법정동은 수유동이다.
인수마을의 첫 시작은 대학교 동아리 모임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생명 평화 중심의 대안적 삶을 이어가기 위해 학교 주변의 작은 방에서 함께 생활했던 것이 이후에 규모가 커지며 본격적으로 마을 공동체를 이루었다. 현재는 밝은 누리라는 이름 아래 인수마을을 시작으로 강원도 홍천과 경기도 군포와 양평에 마을을 두고, 마을 찻집과 마을 밥상, 마을 학교, 텃밭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인수마을의 시작부터 10여년 넘게 살아 온 장철순 청년학당 사무국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순환하는 삶
“저희는 생명의 현상을 운동의 중요한 동력으로 삼아요. 그리고 생태, 생명이라는 것은 주고받는 것, 순환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대전제를 갖고 있죠.”
인수마을에서는 음식물 쓰레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식사할 때 음식을 남기지 않는 문화가 자리잡혀 있고 쓰레기가 나온다고 해도 농촌에 퇴비와 함께 부산물로 보내어 농사에 활용한다. 마을 밥상에는 계절 흐름에 따른 채식 위주의 제철 음식이 올라온다. 공동체 구성원은 각자의 살림을 최대한 줄이며 공동 공간의 살림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운다. 이처럼 인수마을은 도시에서 접하기 힘든 생활 방식을 이어오고 있다. 인간이 자연을 소비하는 기존의 삶이 아닌 자연과 함께 순환하는 삶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비닐과 같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마을에 있는 친환경 먹거리 매장인 밝은 두레에서는 곡물과 물품 일부가 포장되어 있지 않다. 대신 이용자들이 장바구니와 용기를 가져와 직접 담아간다. 이러한 생활은 공동체의 문화로 자리 잡아 자연과 사람의 순환을 일상에서 이루어낸다. 장철순 사무국장은 “활동 자체가 의미를 가지려면 삶의 근본이 되는 것들,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것들에서 단순 소박한 삶을 살아가며 순환을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5년여 동안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사본 적이 없어요.”라고 전했다.
자생, 마을, 대안 공동체
대부분의 마을 공동체는 2012년 이후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시가 마을 공동체 사업을 시정으로 채택해 지원한 것이 주요한 동력이었다. 이후 10여 년간 서울 마을 공동체 종합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서울시의 꾸준한 지원을 통해 마을 공동체가 성장하며 대중화되었다. 2019년 서울시가 모니터링 활동가와 함께 제작한 마을 공동체 지도에는 총 810곳의 공동체 장소가 집계됐다.
그러나 2022년 오세훈 시장은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 의회에서 마을 공동체 지원 사업의 기반이 되었던 조례가 폐지되었고 이후 다수의 마을 공동체 활동이 축소되었다.
서울시의 급작스러운 지원 중단 발표 당시 시민사회와 공동체 구성원 중심으로 큰 반발이 일었으나 결국 서울시의 지원은 중단됐다. 이에 따라 인수마을이 위치한 강북구의 경우 마을 공동체 공모 사업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등 대다수의 마을 공동체가 축소 또는 해체되었다. 현재는 각 자치구의 지원 예산으로 간신히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인수마을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관’의 주도가 아닌 ‘민’이 주체가 되어 공동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91년도에 마을을 형성할 당시 물적 토대의 기반은 정부의 지원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이었다. 장철순 사무국장은 “스스로 (자생)할 수 없을 때 관의 협력을 받게 되면 그 지원이 끝나면 그냥 없어지는 거죠.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때 관이랑 협력을 하게 되면 관을 우리의 운동에 초대하는 것이 되는 거예요. 태세가 완전히 바뀌는 거죠.”라며 인수마을의 자립성을 강조했다.
인수마을은 생활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를 공동체 안에서 갖추고 있다. 인수마을을 포함해 밝은 누리는 10명 단위의 두레라는 소규모 공동체가 여럿이 모여 촘촘한 관계망을 만들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형태이다. 이 같은 방식 덕분에 외부의 도움과 지원을 최소화한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장철순 사무국장은 “기존에 안이 있는데 새로운 안을 만드는 게 대안이잖아요. 대안을 한다는 것은 기존의 교육과 다른 교육을 통해서 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살아갈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대안 교육은 대안 사회와 함께 가야 해요. 그래서 마을이라는 공동체와 같이 가지 않으면 제도권 사회와 교육에 편입될 수밖에 없어요.”라며 밝은 누리에서 추구하는 공동체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이처럼 밝은 누리는 다른 마을 공동체들이 육아, 공부, 봉사와 같은 특정한 주제로 모여서 활동하는 것과 달리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함께 한다. 즉 하나의 작은 사회, 마을을 만든 것이다. 이는 외부의 지원 없이도 자생할 수 있는 공동체로 이어졌으며, 밝은 누리가 마을 공동체인 동시에 대안 공동체로 불리는 이유이다.
농도 상생 마을 공동체
인수마을의 주요한 특징은 농촌과 도시의 상생이라는 데 있다. 도시가 농촌으로부터 자원을 얻는 기존의 일방적 관계가 아닌 도시와 농촌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 속에서 인수마을 구성원 일부가 강원도 홍천으로 귀농해 마을을 형성했다. 현재 인수마을은 청년과 도시 직장인이 주요 구성원으로 남아 마을 학교(교육), 마을 밥상(식당)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홍천마을은 농생활(하늘땅 살이), 생태 건축, 교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두 마을은 일상의 여러 부문에서 교류한다. 농지 부족 등 농사 부문에서 명확한 한계를 가진 인수마을은 홍천마을의 농촌을 방문하고 농사에 쓰일 부산물을 전달하기도 한다. 또한 마을 텃밭과 농촌에서 일군 열매는 먹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열매의 씨앗을 모아 씨뿌리는 시기인 다음 봄에 마을 사람들과 나누는 씨앗 나눔 잔치를 연다. 또한 인수마을의 마을 학교는 중학교 교육 과정까지 다루기 때문에 인수마을의 학생들은 고등, 대학 과정을 홍천마을에서 배우게 된다. 일상적 교류와 함께 공동체로서의 관계를 깊게 맺어가는 것도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는 중요한 고리이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관계를 깊게 맺어가는 것, 이런 관계의 축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멀리서 새로 온 사람에게서도 같이 살았던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같은 뜻을 가지고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마음이 있으니까요.”
농촌과 도시의 상생으로 자연과 인간의 순환을 이어오고 있는 밝은 누리 마을들은 대안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이들의 삶의 방식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삶이 아닌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전의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고, 자연을 소비하는 삶이 아닌 자연과 함께하는 삶으로의 복귀다. 기후 위기에 대한 답도 이곳에서 엿볼 수 있다. 기후 위기 이전의 환경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대안을 내놓는 것 못지않게, 이전의 삶의 모습을 돌아보는 것 또한 필요하다.
*인터뷰에 함께 해주신 이수연 님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취재, 글, 사진 = 이혜성 기자
디자인 = 이혜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