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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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민주화

‘학문을 위한 대학은 없다’ 설 자리 잃어가는 지역대 기초학문

:지역대학∙기초학문일수록 ‘학과 통폐합’ 비율 높아
:학교 측의 소극적인 태도에 막막한 학생들
:취업률∙산업 중심의 정부 대책이 대학 부추겨

 


"수업이 끝나고 교수님이 저희를 따로 불러서 말씀하셨어요.

우리 과에 내년부터 신입생이 없을 거라고."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3학년 한세정(22·여) 씨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학과가 폐지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은 학생회 출범식 날이었다. 각 학과의 학생회들이 나와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폐과 소식을 접한 한씨는 "허탈한 기분에 친구와 울면서 집에 돌아왔다"고 밝혔다. 올해 학생회가 된 한씨는 업무에 미처 적응하기도 전에 'Memorial Party(학과 장례식)'을 준비해야 했다.

 

대구대학교는 지난 2021년 신입생 대규모 미달 사태를 겪은 후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학생을 위해 취업에 유리한 실용학과를 늘렸고, 상대적으로 인기가 적은 학과는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한씨가 재학 중이던 사회학과도 2025학년도 신입생 모집 중단 학과 중 하나였다. 학교 측은 일방적으로 폐과 예정을 통보했다. 학생들에게 아무런 논의나 질문도 없었다.

 

한씨는 "앞으로 학과 학생 수가 적어질텐데, 그럼 정규 수업도 줄어들지 않겠냐"며 "적어도 3년은 학교를 다녀야 하는 신입생들이 가장 불안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학생들은 전과나 편입을 준비하거나 기존의 졸업 계획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갑작스러운 폐과에 대응하고 있다.

 

한씨의 사례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지역대학일수록, 기초학문일수록 폐과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2022년 도종환 의원실에서 일반대학 학과 통폐합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9년부터 3년 간 총 700개 이상의 학과가 폐과 또는 통폐합 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지역대학의 학과 통폐합이 두드러졌다. 수도권의 약 3.3배에 달하는 539건의 통폐합이 지역대학 학과에서 이뤄진 것이다. 

 

 

통폐합 건수가 가장 많은 학과는 인문사회와 공학, 자연과학 계열이었다. 특히 기초학문인 인문사회와 자연과학은 3년 간 통폐합 건수가 200% 넘게 증가했다. 인문사회 계열에서는 총 284건, 자연과학에서는 130건의 통폐합이 이뤄졌다.

 

지역대학의 기초학문 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경남대와 대구가톨릭대, 청주대 역시 현재 사회학과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는다.  조선대학교 수학과도 신입생 모집을 중단한 상태로, 2026년 완전 폐과를 앞두고 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의 결정 앞에 '을'이 돼 버린 학생들

 

학생들은 학과 통폐합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도 힘든 실정이다. 통폐합이 진행되고 있단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올해 폐과가 확정된 을지대학교 유아교육학과 이씨(가명·여)는 "통폐합 소식을 에브리타임(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을 통해 알게 됐다"고 밝혔다.

 

이씨는 "학교로부터 관련 소식을 들은 것이 전혀 없었다"며 "학교의 이익만을 위해 강압적으로 통폐합을 진행한 것 같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씨와 학우들은 서명운동과 대자보 게시를 통해 통폐합 반대 의견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씨는 "학교의 결정에 있어 학생들의 의견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되는 것 같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한 학생들은 학교 측의 소극적인 차후 대책에 막막함을 느끼기도 한다. 현재 대구대 사회학과는 신입생 모집 중지 이후의 학생 지원에 대한 공식적인 안내서가 없는 상황이다. 대구대 사회학과 3학년 심현지(22·여)씨는 "학생회가 학교에 공식 문서를 요청한 상태"라며 "공식 문서에는 다른 학과로의 소속변경 보장 등 폐과생에 대한 차후 대책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일부 내용을 약식으로 알린 것을 제외하고는 공식 문서가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학교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도 말한다. 심씨는 "사실 폐과는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다"며 "수요가 없는 학문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도권 대학으로 인원이 몰리면서 기초학문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지역으로 오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수도권 대학 쏠림 현상과 기초학문 수요 부족이 학생들로 하여금 학과 폐지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게 한 셈이다. 

 

지역대학, 전문 취업기관이 되다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을 온전히 수용할 수 없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정부 정책이다. 현재 지역대학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사업은 대부분 지역 산학협력과 취업률 제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례로 지난해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선정된 대학 10곳 중 6곳이 지역 산업체와 연계한 혁신안을 제출했다. 글로컬대학30은 2026년까지 혁신 등을 내세운 지역대학 30곳을 선정해 1곳당 5년간 1000억을 지원하는 정부 사업이다.  

 

파격적인 금액을 지원하는 사업은 재정 상황이 좋지 않은 지역대학에겐 놓칠 수 없는 기회다. 한국대학협의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비수도권 사립대 91개교 중 74개교(81.3%)가 운영수지 적자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 학교는 취업률이 높지 않은 학과를 통폐합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 폐과를 반대하는 학생들의 의견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취업률과 산학협력 중심의 대학 운영은 기초학과 학생들에게 화살이 됐다. 대구대 사회학과 학생회장 김민정씨는 "기초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전공으로 먹고 살 수 있겠냐'는 시선을 받는다"고 밝혔다. 

 

김씨는 "막상 선배들은 졸업 후 나름대로 각자의 길을 찾아갔다"며 "그럼에도 입학 초에는 그런 시선들 때문에 정말 뭐 해 먹고 살아야 할 지 고민했다"고 털어놓았다. 학과 장례식을 다룬 기사에는 '이제 기초학문은 수도권에서만 배우면 된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에 김씨는 "인서울을 해야만 기초학문을 배울 수 있는 미래가 올까 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안겸비 기자(gyeombi116@gmail.com)

최세희 기자(darang12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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