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4일 오후 7시, 서울 노원구 염광고등학교 운동장은 서먹함과 설렘으로 가득 찼다. 주인공은 지난달 공식 창단된 ‘신생팀’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캠퍼스 여자 축구부 ‘Hufshot’(이하 훕샷). 선수들은 창단 이후 두 번째 공식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작이 가까워지자 운동장은 어느덧 20여명의 선수로 붐볐다.
선수들의 표정에는 설렘과 긴장이 공존했다. 대부분 선수들에게는 첫 공식 훈련이었다. 모집 공고를 보자마자 지원했다는 신입 지민경 씨는 “항상 축구를 보기만 했는데, 직접 해보는 건 처음이다. 너무 힘들 것 같아 걱정도 된다”며 축구화를 갈아 신었다. 반면 옆에 있던 이다은 씨는 “초중고 시절부터 축구를 해왔는데, 대학교에서도 해보고 싶었다. 너무 기대된다”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축구를 처음 시작하는 학생부터, 이제껏 축구를 즐겨왔던 학생까지. ‘훕샷’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선수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축구를 마음껏 즐기기까지의 길은 쉽지 않았다. 이들은 오직 열정 하나만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열정 하나로 시작한 축구, 전문 코치 갖춘 ‘정식 축구부’ 되기까지
시작은 동대문구 3개 대학(외대, 경희대, 서울시립대) 연합 체전 ‘트로이카 역동전’이었다. 축구에 관심이 있던 학생들이 모여 2023 역동전 여자 축구에 외대 대표팀으로 출전했다. 그러나 축구를 처음 접한 이들이 대부분인 상황, 제대로 된 훈련을 진행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외대 대표팀은 조별 예선 1승 1무로 결승에 진출했고, 준우승 쾌거를 달성했다. 이듬해에도 마찬가지. 초기 멤버들과 새로운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은 2024 역동전에서도 준우승을 거머쥐었다.
그 과정에서 ‘축구부 신설’ 목표가 피어났다. 경희대와 시립대는 여자 축구부가 있어 코치진 주도로 체계적인 훈련을 진행했다. 반면 외대 대표팀에는 전문 훈련을 가르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글로벌캠퍼스 여자 축구부 주장이 플레잉코치로 도움을 주긴 했지만, 전문 축구부를 따라가긴 역부족이었다. 결국 2023년부터 대표팀에 몸담았던 김가민 현 부주장은 “연속 준우승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축구부를 창설해 축구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며 축구부 신설을 추진한 이유를 밝혔다.
결국 올해 10월 축구부 정식 창설 이후, 곧바로 전문 코치 섭외에 들어갔다. 이들은 ‘기초부터 가르쳐줄 수 있는 코치’라는 기준을 세웠다. 총 다섯 명의 후보와 면접을 거쳐 체계적 훈련과 장기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홍혁진 코치를 선임했다. 세미 프로에서 활동했던 홍혁진 코치는 “전문 훈련을 받음으로써 대회 출전 도전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외대 축구부와 지향점이 맞았다”며 코치직 지원 이유를 밝혔다.
체력부터 기본기, 실전 훈련까지…서툴어도 빛났던 선수들의 ‘구슬땀’
훈련은 체계적인 단계를 거쳐 진행됐다. 코치의 주도 아래 선수들은 운동장 세 바퀴를 돌며 몸에 열을 끌어 올렸다. 이후 스트레칭과 런지를 진행하며 굳은 몸을 풀었다. 기본 중의 기본이었지만, 이조차 익숙지 않았기에 몇몇 선수들은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후 축구의 근간이 되는 ‘움직임 훈련’을 진행했다. 사다리를 펼쳐 놓고 잔발 스텝을 밟으며 공을 받고 차기 위한 기본자세를 배웠다. 다음으로 일정 간격으로 콘을 세운 뒤, 양발을 활용한 드리블 훈련까지 진행했다.
일반 동아리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그간 계속해서 축구를 해왔던 선수에게도, 처음 시작하는 선수에게도 낯선 훈련이었다. 그러나 선수들은 코치에게 “천천히 보여주세요”, “이렇게 하는 게 맞나요?”, “여기서 반댓발은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학구열을 불태웠다. 코치 또한 선수 한 명의 동작까지 자세히 관찰하며, 자세 교정에 힘을 쏟았다.
훈련의 마지막은 미니 게임. 좁은 공간에서 공을 컨트롤해 보는 실전 훈련이었다. 아직은 ‘에이스’들이 주도하는 판세로 진행됐지만, 모든 선수가 30분 내내 끊임없이 뛰어다니며 열정을 보였다. 그렇게 약 세 시간가량의 훈련이 마무리됐다. 코치의 총평을 듣는 선수들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가득했지만, 눈빛만큼은 초롱초롱 빛났다.
여자 스포츠 불모지서 피어난 훕샷, 더 큰 미래를 그리다
선수들의 목표는 뚜렷했다. 훈련 시작 전 걱정이 가득했던 지민경 씨는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힘들었지만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 게 의미 있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능숙하게 훈련에 임하던
이다은 씨는 “오랜만에 뛰니 개운했다. 내년 역동전에서 무조건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열의에 불타올랐다.
‘훕샷’은 벌써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안소윤 주장은 “축구부를 체계적으로 운영해 양구 대회 등 다양한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고 싶다. 한국외대를 대표하는 명문 축구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밝혔다. 특히 한국축구연맹이 주관하며 매년 강원도 양구군에서 열리는 전국여자클럽축구대회 출전 의사를 강력하게 드러냈다.
‘훕샷 신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자 스포츠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간 한국외대 서울캠퍼스에 여학우만으로 구성된 팀은 핸드볼부 하나뿐이었다. 절대적인 참여 기회 자체가 부족했다. 남성들이 주를 이루는 과/학부 차원의 축구부에 여성 선수가 참여, 경기를 소화한 적이 있으나 손에 꼽을 정도였다. 훕샷의 신설로 여학우들이 주도적으로 스포츠를 선택해 참여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남성 중심으로 진행됐던 학내 스포츠의 저변을 확대한 것이다.
여자 스포츠의 불모지에서 피어난 ‘훕샷’. 열정 하나로 시작한 아마추어 축구가 1년 만에 전문 코치를 갖춘 ‘정식 축구부’로 발전했다. 이를 통해 선수 개인의 성장, 나아가 다양한 종목에서 제2의 훕샷, 제3의 훕샷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없으니까 안 된다’는 통념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 ‘훕샷’의 도전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박진우 기자(ggj05398@naver.com)
문소연 기자(언론정보전공 스포츠 저널리즘 1조)
이예선 기자(언론정보전공 스포츠 저널리즘 1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