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의전화(이하 한여전)는 1983년 여성폭력 근절, 성평등 실현을 목적으로 설립되어 올해 42주년을 맞은 여성인권운동단체다. 한국사회 최초로 폭력피해 여성을 위한 상담을 도입한 후 쉼터를 개설했으며, 현재 전국 1만여 명의 회원과 전국 24개 지부를 갖고 있다.
한여전은 여성폭력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차별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가정폭력처벌법, 스토킹처벌법 등 제도 변화를 꾀하는 법 제⋅개정 운동을 펼쳐왔다. 또 먼지차별 캠페인, 성평등한 장례문화 만들기 캠페인 등 시민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각종 캠페인을 진행해오고 있다.
지난 1월 17일, 대학알리는 한여전 사무실에서 7년차 활동가인 도경은 기획조직국 국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캠페인, 여성인권영화제 등 각종 문화 행사를 통해 한여전 회원들을 만나고 시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Q. 최근 어떤 캠페인 활동을 진행하셨나요?
성차별적 사회문화와 관습을 바꾸는 캠페인에서 ‘그런 후원금은 받지 않습니다, 그런 감형도 안 됩니다’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요. 가해자가 감형을 위해 (한여전에) 후원을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거든요. 그래서 내부적으로 후원인이 가해자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이런 걸 감형 요소로 인정하는 기준 자체가 문제라서 사법부의 변화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원래 2022년까지 감형 요소에 ‘진지한 반성’이라는 게 있었는데, 기부금 영수증, 반성문 쓰기가 포함되어 있던 것이 캠페인 이후 조금 바뀌었어요. 작년에 진지한 반성으로 감형받는 가해자 수가 대폭 줄었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죠. 그래서 저희는 가해자가 감형 목적으로 후원하는 돈은 받지 않고 기부금 영수증도 발행해줄 수 없다는 모금윤리를 갖고 있어요.
또 성평등한 장례문화 만들기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상주는 항상 남자여야 하고, 장례복도 성별에 따라 다르게 입잖아요. 남자는 정장을 입지만, 여자는 핀을 꼽고, 치마와 저고리를 입어요. 왜 그래야 할까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서 캠페인 기획단과 함께 리플렛을 배포하고, 카드 뉴스를 발행했죠. 여성 인권 이슈에는 큰 관심이 없는 시민분들도 장례는 내 삶과 밀접한 문제다 보니 생각보다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는 등 반응이 좋았어요.
Q. 사람들이 폭력이라고 잘 인식하지 못하는 종류의 폭력도 있나요?
먼지차별이라는 게 있는데요.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먼지처럼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차별이라고 해서 저희가 ‘먼지차별’이라고 이름 붙여서 알리는 캠페인을 했었어요. 성차별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차별도 있잖아요. ‘기분 나쁜데? 내가 예민한가?’ 이런 생각이 드는 경우인데요. 외모 지적, 화장, 결혼, 성적 지향, 혹은 나이 등 다양한 이유로 차별받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이름이 붙여지지 않으니까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2015년부터 꽤 오랜 기간동안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리플렛을 제작하고, 먼지차별 사례를 모아 캠페인 사이트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요.
또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캠페인이 있어요. 정서적 폭력은 가해자와의 관계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기도 하고, 우리 사회는 물리적 폭력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요. 이 부분을 가시화하고자 위 슬로건을 만들었어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같은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은 사랑의 이름으로 포장되는 문제가 많죠.
Q. 캠페인 홍보와 시민 참여를 위해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슬로건을 만들 때 공명할 수 있는 메시지를 뽑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우선 홍보해야 시민들이 보기 때문에 매체에 맞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일에 신경쓰고 있어요. SNS가 종류별로 특성이 다 다르고, SNS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리플렛을 배포하는 등 전달 방식을 많이 고민해요. 이 문제가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하려면 ‘내 삶에서 그런 비슷한 일이 있었는가?’ 이런 걸 생각해보는 계기가 필요하죠. 그래서 시민분들께 사례를 접수 받아서 시민분들의 말로 알려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Q. 최근 가장 시급한 여성폭력 의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정폭력⋅데이트폭력⋅스토킹에 대한 직장 내 대응 강화를 작년부터 새롭게 의제로 제시하고 있어요. 이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많이 알고 있거든요. 직장에 찾아와서 피해자를 곤란하게 하거나, 피해자를 통제해서 출근을 못하게 하는 등 경제활동을 방해하기도 해요. 직장이 중요한 경제활동 공간인 만큼 직장에서 피해자의 여성폭력 문제를 같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어요.
호주는 피해자에게 유급휴가를 주기도 하고, 어떤 회사는 피해자에 대한 보호체계를 가지고 있기도 해요. ‘이런 걸 왜 한국에서는 못하지?’라는 생각으로 해외 사례를 연구하고, 호주 연구자와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죠. 이를 바탕으로 2025년에는 직장에 다니는 여성을 인터뷰하고 시민 대상 설문조사도 실시해서 본격적으로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Q. 여성운동가로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캠페인을 열심히 고민해서 진행해도 사람들이 공감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어떻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지? 공감하게 하지?’ 이 부분은 늘 어려운 지점이에요. 논평, 성명은 어렵기 때문에 친근하고, 가까운 말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특히, 서명운동 결과를 제출한다고 해서 바로바로 변화가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 변화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일을 하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Q. 어떤 여성활동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일을 잘 해내는 활동가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을 미리 겁내거나, 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가 하는 일이 많잖아요. 그래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할 줄 알아야 하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동료들도 한여전이 필요할 때 제 역할을 잘 해내는 걸 중요시해요. 거창하게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다기 보다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만큼 필요한 일을 잘 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있어요.
도경은 활동가는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에 대해 “활동하면서 공부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여러 가지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일들이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밝히며 “공부나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고, 필요한 역할을 잘 해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실제로 그는 한여전에서 근무하는 동안 대학원에 진학해 논문을 발행하고 석사 학위를얻기도 했다. 이어 “우리가 가진 고민, 문제의식, 그리고 배운 것들을 잘 펼쳐내는 활동가가 되어 오래오래 잘 활동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한편, 한여전은 대학생들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오고 있다. 지난해 연세대학교와 한양대학교 인권축제에서 부스를 운영했다. 한여전이 언론에 보도된 여성살해 사건 기사를 집계해 발표한 통계인 ‘분노의 게이지’ 관련 퀴즈 맞히기, 먼지차별 알리기 등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생들을 만났다. 또, 대학 내 여성주의 교지 등 커뮤니티를 조사⋅취합 후 여성수첩을 선물로 보내는 등 대학생들의 여성운동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 활발한 노력을 펼쳐오고 있다.
정수연 기자(jsyeon101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