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몰아치는 흐린 날에도 팔레스타인 해방을 외치며
“안녕하세요. 4월 19일인 오늘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의 구호 물품을 차단한 지 49일 차입니다. (…) 유엔 인도주의 업무조정국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집단 학살을 시작한 이래 가자 지구의 인도적 상황이 정말 최악이라고, 그리고 국경 없는 의사회는 이제 인도주의 활동가들조차 굶기 시작했다고 발을 구릅니다. (…) 7주 동안 구호물자가 정말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것은 처음입니다.”
뎡야핑 활동가의 정세 보고가 울려 퍼지는 이곳은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 앞이다. 지난 4월 19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 규탄 한국 시민사회 39차 긴급 행동 <윤석열 파면, 다음은 가자 학살 중단!>’이 열렸다. 비바람이 치는 궂은 날씨에도 시민 수십 명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내 집단학살과 구호물자 차단 조치 중단을 촉구했다.
현장에서는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이스라엘 규탄 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정윤서 학생에 대한 연대 발언도 이어졌다. 팔레스타인 학생 공동 행동(이하 팔학)은 “재판 과정 동안 윤서 학생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언급하며, 또한 학생 연합으로서 법에 따라 탄압받는 어떤 학생도 홀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 현재 팔학은 정윤서 학생을 위한 연서명을 진행하고 있다.

요르단강과 지중해를 넘어 학생이라는 이름 아래, 팔학
팔학은 지난해 12월 6일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학생 문화제’로 첫걸음을 뗀 팔레스타인 연대 대학생 네트워크다. 대학생이라면 학교 소속과 관계없이 팔학에 가입할 수 있다. 지난 3월,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상북도가 히브리대학교 유발 노아 하라리 교수를 초청하자 팔학은 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주최하기도 했다. 저서『사피엔스』로 잘 알려진 유발 하라리는 가자 지구 학살을 두고 인종 청소의 의도가 없다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된 바가 있다.
집회에 참여한 활동가 유스라 씨, 서강대 재학생 로리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모두 팔학 소속이다. 현재 팔레스타인의 상황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을 묻자 로리 씨는 “이스라엘이 아동이나 임산부 같은 약자들을 표적으로 한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임산부가 남편과 아이들 앞에서 성폭행당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전했다.
유스라 씨는 “식민 지배가 70년 넘게 지속돼 왔다는 게 가장 충격적”이라며, “많은 사람이 학살에 반대하지만 정부 주체들과 대기업들은 이를 방관하고, 심지어 동조하기도 한다”고 비판했다.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돌아보며 국제 연대의 책임을 강조하는 발언도 나왔다. 로리 씨는 “한국은 일제 식민지와 미군정을 거쳐 4.19나 5.18과 같은 저항의 역사를 만들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이스라엘과 군사·외교 협력을 계속하며 국제주의 정신과 모순된 행보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어떻게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할 수 있을까? 로리 씨는 “함께 공부하기 위해서 조직을 만들고, 질문해 나가는 과정이 연대”라고 답했고, 유스라 씨는 “이스라엘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친(親)이스라엘 기업인 스타벅스, 맥도날드, 디즈니를 보이콧하는 간단한 행동도 연대가 될 수 있다”는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더해서 로리 씨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깨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기에, 우리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며 “우리 모두 해방될 때까지 누구도 진정한 해방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격언도 덧붙였다.

울타리 밖에서 연대하는 사람들
한편 ‘팔학’이라는 울타리 밖에서 연대하는 대학생들도 있다. 이들은 집회에 참여하고, 가자의 소식을 공유하며, ‘요르단강부터 지중해까지’ 연대를 이어간다.
‘사람 죽는 게 싫어’서 연대한다는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고려대 분회 소속 조찬우 씨는 12.3 비상계엄 이후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이스라엘 대사관에 현수막을 교체하는 일을 돕기도 한다. 빈번하게 걸려 오는 반대 세력의 시비에 대응하는 일은 늘 고충이다.
조 씨도 대학생들의 연대 방법으로 불매 운동을 제시했다. “맥도날드, 스타벅스 등 식품 기업의 마케팅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런 기업들의 불매운동에 목소리를 높이는 게 중요한 것 같다”며 의견을 제시했다.
덧붙여 “만약에 ‘군인, 서울에서 20명 무차별적으로 살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있다고 해보자. 이는 굉장히 심각한 일이다. 그런데 가자 지구에서는 이와 같은 사회적 참사가 매일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이들의 죽음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익숙해지지 말고, 같이 연대해 이들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도 남겼다.
동국대 대학원에 재학 중인 김원 씨도 학부 시절부터 꾸준히 집회에 참여해 왔다. 올해부터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한국 시민사회 긴급행동의 집회 실무 담당팀에 소속돼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김 씨는 “팔레스타인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가끔 ‘하마스 나쁜 사람들 아니야?’라고 물어보곤 한다”며 또 다른 고충을 털어놓았다.
김 씨는 “물론 하마스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있기 오래전부터 팔레스타인을 억압해 왔다. ‘하마스 때문에 그런다’는 건 핑계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을 지우고 싶을 뿐이다”는 말로 답했다.
더해서 “이스라엘 사회 내 팔레스타인인들은 2등 시민으로 살아간다. 언제나 감시당하고, 위험한 인물인 것처럼 취급받으며 살아간다. 한국 사회 내 이민자, 성 소수자와 같은 사람들이 겪는 억압과 맞닿아있다. 이것만 연대하고 저것은 연대하지 않겠다며 선택할 순 없는 것 같다”며 연대의 이유를 밝혔다.
조수민 기자 (2kzmzip@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