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0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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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자치언론기금 해산' 논란…"언론자유 침해 우려"

잇따르는 대학가 자치언론 압박 양상…"서울대가 전국 대학의 선례 될 것"

 

서울대 학생사회에서 학내 자치언론을 지원해온 ‘자치언론기금(자언기)'을 해산할지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총학생회 회계감사위원회가 자언기 운영을 두고 “장기간 회·세칙을 중대하게 위반했다”며 기금 장의 해임과 기구 해산을 요구했고, 이에 자언기 소속 언론들은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부당 감사”라며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자언기는 학내 자치언론에 인쇄비·취재비 등을 지원하는 총학생회 산하기구로, 현재 장애 인권 문집 <디스에이블>, 시사·기획 월간지 <서울대저널>, 문예지 <스누퀼>, 성소수자 언론 <퀴어플라이> 등 4개 언론이 정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자언기 재원은 학생회비에서 배분되지만, 각 언론은 편집권과 재정 운용에서 총학생회로부터 독립된 주체라는 인식이 학생사회에서 오랫동안 공유돼 왔다.

 

논란의 출발점은 지난 9월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에서 제기된 자언기 예·결산 문제였다. 당시 자언기가 심사한 산하 언론의 회식비·다과비 집행을 두고 총학생회 집행부와 단과대 학생회 일부가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총학생회운영위원회(총운위)는 자언기 전반에 대한 특별감사위원회(감사위) 설치 안건을 통과시켰다. 감사위는 약 두 달간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소명을 받는 과정을 거쳐, 11월 초 '자치언론기금 운영에 관한 감사보고서'를 작성했다.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위는 △최근 3개 학기 동안 자언기가 준회원 모집 공고를 하지 않아 신규 언론의 진입 기회를 구조적으로 제한한 점 △자언기 위원회 구성을 총운위 인준 없이 운영해 온 점 △정회원 언론들이 사비 지출 환급을 총운위에 보고하지 않은 점 △증빙 서류에 사업 진행일·담당자·세부 내역이 빠지는 등 「재정운용세칙」 기준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주요 위반 사항으로 적시했다. 보고서는 "장기간 회칙과 세칙의 기본 원칙을 준수하지 않은 채 관행적으로 운영되어 왔다"며 "기금 운영의 투명성·공정성·책임성이 중대하게 훼손됐다"고 평가했다.

 

감사위는 특히 "자치언론기금이 목적과 맞지 않는 사용 내역을 구별하고 감사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학생회칙 제54조를 근거로 자언기 장의 해임과 기구 해산을 총운위·전학대회에 요구했다. 학생회칙에 따르면, 산하기구의 장은 회칙 위반으로 운영 파행의 정도가 중대한 경우 해임될 수 있고, 동일한 사유가 지속될 경우 해당 기구는 전학대회 의결을 거쳐 해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자언기 소속 자치언론들은 18일 공동 성명을 내고 "학생회비의 투명한 집행이라는 감사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감사위가 자치언론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집행기구와 동일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반박했다. 성명은 "자치언론은 총학생회 집행기구가 아니며, 「재정운용세칙」 적용 대상도 아니다"라며 "이를 자의적으로 확대 적용해 자치언론의 재정 자율성을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취재·편집 활동의 특수성도 쟁점이다. 감사위는 취재비·다과비·도서구입비 등에 대해 "언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사업에 사용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했는데, 자치언론들은 이를 "취재원 보호 원칙을 침해하는 요구"라고 봤다. 자언기 측은 의견서에서 "익명 취재가 필수적인 민감한 사안에서 취재원과 동선, 세부 내역을 학생회에 보고하라는 것은 '권력의 입맛에 맞는 글만 쓰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자료 제출 기한과 감사 방식 역시 논쟁거리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감사위는 10월 5일 추석 연휴 중 자언기에 수십 쪽 분량의 자료를 요구하며 사흘 뒤까지 제출하라고 통보했고, 자언기가 기한 내 회신하지 못하자 활동 기간 연장을 요청했다. 자치언론 측은 "연휴 기간을 포함한 촉박한 일정과 반복된 추가 요구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소명했지만, 감사보고서는 이를 반영하지 않은 채 '개선 의지가 없다'고 단정했다"고 반발했다.

 

무엇보다 자치언론들이 문제 삼는 것은 '처분 수위'다. 서울대저널은 별도 의견서에서 "현재 방식이 최소 3년 이상 유지돼 왔고 전학대회나 총운위에서 공식 문제제기가 없었는데, 명확한 지침 없이 관행을 유지해 온 구성원에게 갑자기 최고 수준의 징계를 요구하는 것은 신뢰보호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치언론기금 운영세칙에 언론의 특성을 고려한 별도 사용 기준을 신설하고, 자언기·총운위·자치언론이 함께 의논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또한 "자언기가 해산되면 학내 자치언론 활동이 위축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문제의 근본 원인은 자치언론의 현실을 반영한 재정 운용 지침의 부재에 있는 만큼, 기준 마련과 소통 강화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언기 해산 여부는 향후 총운위와 전학대회 논의를 거쳐 결정될 예정이기에, 학생사회 내 논쟁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서울대 사례는 최근 대학가에서 반복되는 자치언론 압박 양상과도 맞물려 있다. 동덕여대 교지편집위원회 〈목화〉는 지난 5년 동안 이사장 비리 의혹과 대학 본부의 공학전환 추진을 비판했다가 세 차례 검열을 당했으며, 2025년에는 학교가 "독립된 언론인 만큼 자체 재원을 확보하라"며 교지편집비 지급을 사실상 중단해 폐간 위기에 몰렸다. 이에 대해 대학언론인들은 "검열에 이어 돈줄까지 죄는 전형적인 언론 통제"라고 비판해왔다.

 

서울과학기술대 교지편집위원회 <러비>는 지난해 교지 계좌 관리 문제를 둘러싼 특별감사와 학내 여론 악화 속에서 폐간 수순을 밟고 있다. 여성주의 교지는 더 직접적인 존폐 압박을 받는다. 건국대·홍익대·동국대·연세대 등에서 총여학생회가 해산된 이후, 이들과 맞물려 운영돼 온 여성주의 교지들은 "페미니즘 편향" "남성 역차별" 등을 이유로 폐간 요구와 혐오 공격에 시달려왔다. 최근에는 1971년부터 이어져 온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이 중앙동아리 재등록 심사에서 탈락했고, 관계자는 "인권 동아리 전반의 존속 어려움과 맞물린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원지현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의장은 "서울대 자언기 사안은 학생사회 내부 권력이 자치언론을 어떻게 바라보고 통제하려 하는지 묻는 시험대"라며 "감사를 통한 해산 압박보다는 자치언론의 특수성을 인정한 별도 기준과 상호 협의를 통해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치언론들을 '감시·규제의 대상'이 아닌, 함께 규칙을 만들어갈 학생자치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며 "서울대 학생사회의 결정이 전국 대학 학생사회의 선례가 될 것"이라고 했다.

 

 

차종관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자문위원(chajonggwan.m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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