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04 (토)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알리어답터] 해외살이의 꽃, 외교관의 삶을 탐구하다. 주벨기에EU한국대사관 박윤래 참사관 이야기

한-벨 수교 125주년, 결코 가벼운 관계일 수 없어..
외교관은 백조의 물갈퀴, 봉사정신 투철해야해..

*[알리어답터는] ‘외대알리’와 ‘얼리어답터’의 합성어로, 외대알리의 인터뷰 시리즈입니다. 많은 외대생들이 궁금해 했지만 쉽게 만날 수 없었던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이 시리즈를 통해 인터뷰이의 진솔한 목소리를 왜곡없이 전하겠습니다.

 

한국학 연구소, 한국문화원에 이어 이번에는 주벨기에EU한국대사관을 방문하여 박윤래 참사관을 만나보았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녀는 외무고시 합격 이후, 약 20년 간 선진 대한민국의 외교를 위해 힘써왔다. 오늘은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외교관이 되는 법, 외교관의 삶, 그리고 한-벨 관계의 중요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본 인터뷰는 주벨기에EU한국대사관의 공식 입장과는 무관한 인터뷰이 개인의 입장임을 알려드립니다.

 


Q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1. 안녕하세요, 주벨기에 대사관 겸 주EU대사관 겸 주나토 대표부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윤래 참사관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이곳 벨기에에서 양자와 유럽 의회, 그리고 공공 외교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담당 업무가 변경되어 지금은 EU 경제와 유럽 의회 파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Q2. 주벨기에EU한국대사관 소개를 좀 간단히 부탁드리겠습니다.


 

A2. 우선 대사관의 성격을 소개 드리자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하나는 수교를 맺은 해당 국가에 파견된 대사관의 성격, 국제기구에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파견된 대표부의 성격이 있습니다. 저희 대사관은 벨기에라는 국가를 담당함과 동시에 유럽연합(이하 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이하 NATO)에서 한국을 대표하여 일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희 대사관의 장이신 대사님은 주벨기에 한국대사 겸 주EU한국대사 겸 주NATO한국대사, 총 세 가지 역할을 맡고 계십니다.

 

 

우리가 EU, NATO회원국은 아니지만 둘다 우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국제기구들이기 때문에 안보, 경제와 관련하여 세세히 팔로우 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과정 속에서 한국 국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늘 열심히 불철주야 활동하기도 합니다.

 

 

 


Q3.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업무가 무엇일까요?


 

A3. 외교관에게 제일 중요하면서도 기본인 일이라하면, 본인 담당 업무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정세 변화 대응과 저희가 흔히 본부라고 부르는 한국에 있는 외교부와의 소통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하루 종일 현지 언론 동향을 파악하는데 총력을 다합니다.

 

 

밤 사이에 벨기에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혹은 이웃 국가들과 특별한 문제는 없었는지, 현지 언론 동향을 철저히 체크하고 본부에서 특정 지시가 하달되었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늘 고민하곤 합니다.

 

 

이 외에 대외적으로는 외교관으로서 인적 네트워크 관리를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현지에 거주하는 한국인들과 현지인들과 친분을 잘 쌓아놔야 정말로 우리가 도움이 필요하다거나 정보를 얻어야 할때 더 쉽게 문제 상황에 접근할 수 있고,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어 신문인 ‘The Brussels’를 자주 챙겨보고요, EU 관련 동향을 추적하기 위해서 'POLITICO'를 즐겨 읽곤 합니다.

 

 


Q4. 현재 한국과 벨기에의 관계에서 가장 활발한 협력 분야와 기대되는 분야(혹은 행사)가 궁금합니다.


 

A4. 저도 사실 벨기에 파견 전까지는 이 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놀랍게도 벨기에와 우리나라가 수교한 지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올해가 무려 수교 125주년입니다. 수교를 맺은 지도 굉장히 오래되었고 또한 벨기에가 한국전쟁 참전국이기도 하다보니 자세히 찾아보면 우리나라와 벨기에의 협력 산업이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첨단 분야에서 화학과 R&D 분야의 교류는 매우 활발한 편입니다. 루벤의 IMEC에도 상당히 많은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연구원들이 파견되어 근무 중이고, 이 외에 제약 분야, 항만 분야에서 교역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안트베르펜항은 워낙 허브항이다 보니 우리나라와 對유럽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기대가 되는 분야는 방산업 측면입니다. 사실 벨기에가 주변 강대국들에 비하면 방위력이 강력한 국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근래 들어 러-우 전쟁 발발 이후 벨기에 내에서 국방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고, 저는 이 지점이 우리나라 방산업체들에겐 큰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원자력 교류도 기대주 사업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사실 전 세계에서 원전 산업 생태계를 갖추고 있는 국가는 정말 몇 안 됩니다. 프랑스, 미국, 한국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죠. 물론 프랑스가 지리적으로 밀접하기 때문에 시장 점유를 높게 가져갈 확률이 높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손 놓고 있을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 벨기에 정부도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지하면서 원전 사업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 또한 우리나라에게는 또 하나의 찬스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Q5. 벨기에 내 한국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였을까요?


 

A5. 사실, 제가 벨기에에 온 이후로는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이미 우리나라가 충분히 널리 알려진, 선진국 반열에 오른 뒤였기 때문이죠. 벨기에 내에서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도 상당하고 그랬기 때문에 적응하는데 있어서 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여기서 오래 일하셨던 선배님들께 여쭤보니, 벨기에는 한국전쟁 참전국이기도 하고, IMF 외환위기 당시 외국 국가들 중 처음으로 투자 조사단을 파견하여 한국의 투자 가치를 재평가하고 꽤나 긍정적인 의견을 전달한 국가이기에 나름의 지원군과 같습니다.

 

 

요즘은 그 선배님들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동안 어려웠던 한국을 벨기에가 도왔고, 현재는 혼란한 유럽 정세 속에 있는 벨기에를 도울 국가로서 한국은 매우 충분하다’고 말이에요. 이제는 벨기에도 한국을 동반성장할 대등한 국가로서 인정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고, 오히려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K-POP이라던지, K-드라마라던지 여러 요소에서 한국이 벨기에 내에 선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Q6. 참사관님의 학창시절을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A6. 제가 96학번인데, 그때만 해도 정말 대학에 들어가면 아무 것도 안 하고 놀기만 했습니다. 그나마 저는 모범생 기질이 좀 있어서 수업을 다 결석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학년 때는 무아지경으로 놀았습니다. 학점 걱정 따위는 날려버렸죠.

 

 

그러던 중 정신을 좀 차리고 공부를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을 때, 저희 학과에 학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서 그 당시 한국정치학회, 국제정치학회, 경제학회, 정치사상학회 등 다양한 학내 학회가 있었죠. 저는 하나의 학회만 골라 활동하지 않고 여러 학회를 배회하며 맛보기 식의 공부를 했고 꽤나 큰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사실 수업 시간때 배운 지루한 원론들보다는 선배들과 책도 읽고 독서 토론을 하던 나날들이 정말 재미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업 같은 경우에는, 외무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시험과 관련된 과목 위주로 수강했고, 대학생활 후반부터는 고시 공부에 전념했습니다.

 

 

또한 저는 1, 2학년 때 과 소식지 기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때 활동을 하면서 과 내 이모저모를 취재 및 편집하고 신문 발간까지 했었는데,당시 가장 좋았던 점은 선배들에게 활동 조언과 활동비를 받기 위해 발로 뛰며 연락도 드리는 그런 인적 네트워크 형성 연습을 한 것이 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총 7년 간의 외무고시 수험생 생활을 했습니다. 중간에 이런저런 일로 공부를 중단하고 취업의 길을 고민한 적도 있지만 여차저차 다시 마음을 잡고 공부를 시작했고 결국엔 외교관이라는 꿈을 달성했으니 참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Q7. 이 일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될까요?


 

A7. 저는 사실, 고등학생 때부터 외교관이 되고 싶었습니다.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였고요. 저희 때만 해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은 아닐 때이다 보니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꾸준히 했고 때 마침 역사책을 읽다가 서희 담판에 대한 내용을 접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 무력 없이 전쟁을 막아낸 외교력에 감탄했고 저 또한 그러한 외교관이 되고자 결심했습니다.

 


Q8. 대학 시절, 인상 깊은 일화 혹은 취업에 도움이 되었던 경험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A8. 저는 취업 준비보다 고시 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조언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해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제 경우에도 학회를 선배들에 강요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친구들과 주도했고 그 덕에 자기주도적 활동성을 배운 것 같습니다. 모르는 선배들에게 무작정 찾아가 후원 스폰을 위해 사실상 용돈(?)을 빌기도 해보고, 이곳 저곳 부딪히고 직접 소통하며 정말 날것의 경험을 했죠.

 

 

저는 이 과정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상대방을 설득하고 함께 소통하는 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 경험이 나중에 제가 사회에 나와서도 상대방과 공적 담화에 임하는 태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대학생활에서 학점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다른 활동들을 통해서 자아실현을 하는 과정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9. 외교관이 되는 과정을 자세히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9. 고시 공부 과정을 생략하고 합격 이후를 말씀 드리자면, 일단 외교원에 가서 1년 동안 교육을 받습니다. 요즘은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이라 부른다고 하던데, 과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육 이후에는 각 부서로 혹은 각 국가로 배치를 받아 업무에 임하면 됩니다.

 

 

공부는 사실 정해진대로 열심히만 하면 됩니다. 정해진 대로 성실하게 열심히 하되, 다만 운도 약간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보다 실력은 좋았지만 결국은 외교관이 되지 못한 분들도 계시거든요. 하지만 그분들도 지금은 변호사, 기자라던가 교수가 되신 분들도 있고, 결국 또 다른 길을 찾아 멋진 삶을 살고 계십니다. 이런 것들을 미루어 보아 결국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결국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파견지의 경우, 저희가 모두 우선순위를 매겨 지원을 합니다. 그러면 상부에서 저희의 고과나 이전 파견지 목록을 모두 고려하여 새로운 파견지를 배정해줍니다.

 

 


Q10. 외교관으로 일하시며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A10. 정말 보람있었던 경험은 제가 이집트에서 근무할 때의 일화입니다. 당시 코로나가 창궐하여 이집트 내 한국 교민들의 백신 수급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집트 내 삼성, LG 공장에 우리나라 직원들이 많이 근무하고 계셔서 더욱 시급한 상황이었죠.

 

 

그분들도 백신을 간절히 맞고 싶으셨는데, 아무래도 현지에서는 외국인 신분이다 보니 백신접종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상황이었고, 현지 행정시스템의 원활하지 못한 작동 탓에 백신 접종 당일에도 접수처와 접종처가 달라 결국 교민분들이 백신을 맞지 못한 해프닝도 벌여졌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저희가 직접 발벗고 나서 이집트 보건부와 협상을 통해 우리 국민들에 대한 백신 접종분을 확보하고자 했고, 결국 약 5-600인분의 백신 접종분을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를 통해 반나절 만에 모든 분들의 백신 접종을 완료했고 한 분 한 분에게 접종 증명서를 드리는 순간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뿌듯합니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를 알려드리자면, 제가 아프리카 과장을 맡을 당시의 일화입니다. 2024년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아프리카 54개국 정상을 초청하여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개최했습니다. 그때 제가 주무과장을 역임하며 의제도 만들고, 행사도 구성하고 갖갖이 업무를 도맡아 성공적으로 회담을 개최했습니다. 그 경험 또한 외교관은 국가 정상의 성공적인 외교활동을 위해 물밑에서 열심히 갈퀴질을 하는 지느러미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Q11. 반대로 가장 어려웠던 경험은 무엇이었을까요?


 

 A11. 역설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경험 또한 이집트에서의 백신 일화입니다. 이집트 보건부를 설득하는 과정, 장소를 마련하고 백신 접종 플랜을 저희가 직접 구상하는 단계까지 뭐 하나 쉬운 것이 없었지만 몇 되지도 않는 우리 인력들이 다같이 고생하여 해낸 그 경험은 정말 값지고 소중할 따름입니다. 늘 그렇듯 사람의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잖아요? 이제는 힘든 것은 다 잊고 좋은 것만 남았나 봅니다.

 

 


Q12. 외교관으로 일하시기 전과 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어떻게 될까요?


 

 A12. 세상을 보는 시야가 매우 넓어졌습니다. 이 전에는 제 가족과 저 하나 건사할 궁리만 했다면 이제는 국제 정세 동향도 살펴야 하고, 외국 문화나 세계사에도 관심을 가져 타 국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여전히 노력 중입니다.

 

 


Q13. 외교관으로서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가치나 태도가 있으시다면요?


 

 A13. 외교관은 해외에 나와 일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희생정신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꺼이 희생할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이러한 봉사정신 없이 외교관이 되겠다고 결심한다면 모든 직업이 그렇듯 쉽게 동기부여를 잃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본인이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 깊게 고민하고 스스로에 대한 동기부여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Q14. 외교 분야를 꿈꾸거나 진로 고민에 빠져 있는 청년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A14. 제 입으로 말하기 좀 부끄럽지만 외교관은 참 재미있고 멋있는 직업입니다. AI가 세상을 덮치는 중이지만 당장은 AI가 외교관을 대신하라리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결국 외교관이 하는 일들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거든요. 그런 측면에 있어서 외교관이야말로 외국 정부의 사람들을 상대로 또는 우리 국민들을 위해 일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가공된 지식은 AI의 독자적 학습으로 파악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외교관이 되면 외국인을 자주 만나고 우아한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이와 거리가 적지 않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외교관은 헤엄치는 백조의 물갈퀴 같은 존재입니다. 보이지 않는 수면 밑에서 우리나라의 외교를 위해 열심히 헤엄치고 동동동 구르는 존재들이죠. 따라서 지금 외무고시를 준비하고 고민하는 학생들이 예상하는 것 만큼 우아하고 멋진 직업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국익을 위해 때로는 과감하게 소리도 지르며 맞서 싸워야 할 때도 있고, 무리한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더 큰 국익을 위해 양보해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외교관은 참 재미있는 직업이다라고 말씀드리며 현재 젊음을 사는 학생들에게 주저 없는 도전을 권하고 싶습니다.

 

 

 

오세권 기자(dhwlddj0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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