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가 ‘금지되어야 할 폭력’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취향’처럼 여겨지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혐중정서는, 오프라인까지 세력을 넓히며 단순한 감정이 아닌 하나의 조직적인 세력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2025년 9월 중순 일어난 대림동 시위는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남겼다. 집회의 참가자들은 "차이나 아웃", "중국인 나가라", "천멸중공"과 같은 문구가 써진 피켓을 들고 행진하며, 온라인 커뮤니티, 극우 유튜브에서 유통된 혐중 밈과 음모론을 그대로 현장에서 재생산하고 있었다. 이는 감정적 혐오가 집단 행위와 정치적 메시지로 번역된 대표적 사례이다.
하지만, 이 거센 흐름 속에서도 기어이 혐오 대신 환대를, 배제 대신 연대를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차가운 시선이 꽂히는 교실 안팎에서 이주 배경 청소년들의 ‘언덕’이 되어주고 있는 교사이자 활동가, 한채민 씨를 만났다.
Q1. 먼저 독자분들께 선생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재 어떤 아이들을 만나고 계시며,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요?
안녕하세요. 한채민이라고 합니다. 우선 현재 저는 다문화 교육 지원센터에서 근무 중이고요. 2025년 3월에 처음 발령받았는데, 최근에는 2026년 2월까지 근무를 연장하기로 했어요. 이곳에 오기 전에는 구로 중학교에서 근무했어요. 이주 배경 학생들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곳이었죠. 그 시절의 경험들이 좋은 계기가 되어 현재의 센터 활동까지 이어지게 된 것 같아요.
센터에 찾아오는 아이들은 한국으로 막 이주한 청소년들이에요. 초등반과 중등반이 있고, 각 반 정원은 10명 내외예요. 센터에서는 6개월간 한국어와 한국 문화 수업을 병행하고 있어요. 이를 통해 아이들이 아무런 준비 없이 바로 일반 학교에 진학했을 때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미리 대비하고, 해결하고자 합니다.
Q2. 선생님께서는 처음부터 이주배경 학생들에게 각별한 관심이 있으셨는지, 혹은 교사가 된 이후 어떤 계기로 인해 이 아이들의 삶에 깊이 들어가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주민 아이들을 처음 접하셨을 때 겪었던 낯섬이나, 기억에 남는 첫 만남의 순간이 있으신가요?
우선 제 첫 발령지가 구로 중학교였어요. 그곳은 이미 전교생의 3~40%가 이주 배경 학생들이에요. 대부분은 중국 출신 아이들이죠.
처음 출석부를 받아서 들었을 때의 기억이 나요. 한 반 25명 남짓한 학생들의 이름 중 대여섯 개가 알파벳으로 적혀 있었거든요.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기에 동료 교사분께 물어보니, 중국 국적 학생들의 이름은 한어 병음으로 표기된단 걸 알게 됐어요. 교사를 준비할 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죠.
저 같은 경우는 영어 교사거든요. 수업 중에 습관적으로 “우리말로 번역해 보자”라고 말하곤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우리말이란 뭐지?”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한국 학생들에게 ‘우리말’은 한국어겠지만, 중국 학생들에게 ‘우리말’은 중국어가 되겠죠.
학생들과의 만남을 계기로 교사라는 직업의 의미를 깊게 성찰하게 됐어요. 이곳에 발령받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이죠. 교사가 된다는 건 단순히 학교 업무를 처리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학생 한 명 한 명의 고유한 삶과 만나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특히 이주 학생들에게 학교 선생님은, 이주 이후 처음 만나는 한국인 어른(비 청소년)일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늘 더 치열하게 고민했던 것 같아요. “나는 이 아이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어야 할까?” “혹시 내가 무심코 던진 말이 차별적이지는 않았을까?”하고 말이죠.
“선생님, 저 대림동 떠날래요”... 영화가 남긴 상처
Q3. 처음에는 교내 프로그램으로 시작하셨겠지만, 지금은 '연대하는 교사 잡것들' 같은 단체를 통해 활동 반경을 넓히셨습니다. 단순한 '교육자'를 넘어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신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아니면 아이들의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활동으로 이어지게 된 건가요?
결정적인 계기는 2017년 영화 <청년경찰> 개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대림동은 말 그대로 난리가 났어요. 청년 경찰 속의 대림동은 경찰도 못 들어가는 치외법권의 공간이자, 중국 교포(조선족)들이 납치와 장기 밀매를 일삼는 범죄 소굴로 묘사되었으니까요.
영화의 흥행은 대림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걷잡을 수 없이 강화시켰어요. 선주민 학부모님들은 “구로구를 떠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탈구로’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죠.
저는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고향이라는 건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잖아요. 한 개인의 근원이자, 정체성을 지탱해 주는 뿌리 같은 곳이죠. 그런데 선주민, 이주민 할 것 없이 아이들은 외부에서 덧씌운 편견 “대림동은 더럽고, 위험하다”-를 비판 없이 내면화하고 있었어요. 교내에서 제 의견에 공감해 주시는 동료 교사분들이 계셨고, 그렇게 뜻이 맞는 선생님들과 함께 ‘각색교사모임’을 만들었죠.
교사로서 학생들의 더 나은 삶을 고민하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학생 인권에도 눈을 돌리게 됐어요. 사실 학교는 학생을 철저히 대상화하는 공간이에요. “학생다움”을 강요하고, 성적만이 유일한 평가로서 활용되는 분위기는 학생을 온전한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게 하죠.
이주 배경 학생들의 문제도 결국 이 구조 안에 있어요. 교육도 사회의 일부이기에, 학교 안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결국 학교 담장 밖,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처음부터 “나는 활동가가 되어야지”라고 결심한 건 절대 아니에요. (웃음) 제가 고민하는 문제들의 해결법을 찾으려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저를 활동가라 불러주시더라고요.
Q4. 선생님의 글에서 F-1 비자 문제로 미래를 꿈꾸기 어려운 '해영이'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학교 제도가 철저히 선주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고 지적해 오셨는데요. 한국어/영어 수업 같은 학습적인 부분 외에도, 현재 한국 공교육 시스템이 이주배경 학생들을 소외시키는 가장 높고 단단한 '보이지 않는 장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수업 시간이나 평가 과정에서 이주 배경 학생들은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배제를 경험하게 돼요. 그런데 사실 이주민 학생들이 소외되는 지점에서는 선주민 학생들도 똑같이 소외될 수밖에 없어요. 학교라는 공간은 기본적으로 주류 가치관을 중심으로 설계되죠. 이에 부합하지 못하는 구성원들은 자연스럽게 배제하고요. 꼭 국적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예를 들어 장애가 있는 학생이 순식간에 ‘특별 관리 대상’이 되어버리는 것처럼요.
교육의 목적이 학생의 발달과 성장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학생마다 다른 출발점의 차이를 고려하고, 그 기준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봐야 해요. 하지만 지금의 한국 공교육은 이러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교사분들을 탓하는 게 아니에요. 한 선생님 당 담당해야 하는 학생 수가 지나치게 많고, 수업 외의 행정 업무도 과중하니까요. 결국 이주 배경 학생의 교육권은 교사들의 노동환경 개선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문제죠.
사실 하나를 꼽을 것도 없이, 이주 배경 학생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 장벽이자 고난이에요. 이들의 적응을 위해서는 이주민의 노력뿐 아니라 기존 사회가 새 구성원에 발맞춰 변화하려는 의지가 필요해요. 지금의 한국 사회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있어요. 시스템이 변화하는 대신, “네가 알아서 재주껏 열심히 살아남아 봐라.” 하는 식이죠.
‘다문화’는 어떻게 차별의 다른 이름이 되었나
Q5. 선생님께서는 '다문화'라는 용어가 오히려 선주민과 이주민 사이에 선을 긋는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는 이주민에게만 '다(Multi)문화'라는 수식어를 붙입니다. 마치 한국인은 '순수하고 단일한 표준'이고, 이주민은 '섞인 예외'라고 규정하는 느낌인데요. 단순히 어감을 넘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단어가 특정 집단을 타자화하고 위계를 만드는 방식, 그리고 이 용어 속에 내포된 차별적 시선에 대해 선생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다문화라는 용어 자체에 죄가 있는 건 아니에요. 마치 성소수자들을 지칭하는 단어들이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이지만, 사회적 맥락 속에서 비하의 의도로 쓰이기도 하는 것과 비슷하죠. 핵심은 그 말들이 소비되는 방식에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백인이나 서구권 선진국 출신의 이주민을 보고 ‘다문화 가정’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드물어요. 대부분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 즉 사회경제적 약자나 특정 인종에게만 선별적으로 이 딱지를 붙이죠. 결국 이 용어 속에는 ‘한국인 = 정상적이고 주류인 우리’, 그리고 ‘다문화 = 도와줘야 하거나 관리해야 할 비주류인 그들’이라는 이분법이 짙게 깔려 있어요. 겉으로는 존중과 다양성을 말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위계를 만들 그들을 철저히 타자화하고 있는 셈이죠.
본래 ‘다문화’는 여러 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함께 성장한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다문화’라는 말이 차별과 배제를 세련되게 포장하는 말로 오염되어 버린 것 같아 안타까워요.
Q6.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혐중 정서가 노골화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도 비하 표현은 있었지만, 최근에는 극우 단체의 시위처럼 그 양상이 더 조직적이고 공개적으로 변하고 있는데요. 선생님이 보시기에 최근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혐중 정서의 근원은 무엇이며, 이러한 혐오를 확대 재생산하는 주체는 누구라고 보시는지요?
어렵네요. (웃음) 혐오의 뿌리를 찾자면 훨씬 깊고 복잡하겠지만, 현재의 혐중은 다분히 어떤 정치적인 기획의 결과라고 느껴져요. 한국 극우 포퓰리즘이 예전의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가 약해진 빈자리를, 중국과 중국인 혐오로 대체하고 있는 형국이죠.
정보의 유통 구조도 한몫해요. 사실 한국 언론이 전하는 중국 소식은, 미국의 시각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자극적으로 단순화된 경우가 많아요. 대중은 이런 왜곡된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타자화된 중국을 소비하게 되죠.
결국 ‘이 혐오로 누가 이득을 보는가’를 봐야 해요. 경제 불안, 젠더 갈등, 정치 실패 같은 내부의 책임을 구조나 엘리트가 아닌 외부 타자(중국/중국인)에게 떠넘기면, 지지층은 분노의 방향을 잃지 않은 채 결집하고, 지도자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돼요. ‘공동의 적’만큼 사람들을 쉽고 빠르게 결집시키는 게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의 전략은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곪게 할 뿐이죠.
30명의 혐오를 이긴 200명의 연대
Q7. 실제로 대림동 일대에서 혐오 시위가 벌어졌을 때, 학교 안의 아이들과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리고 이런 공개적인 혐오 표현들이 자라나는 청소년(선주민 학생들)의 가치관 형성이나, 이주민 당사자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학생들의 반응은 ‘무반응’에 가까웠어요. 시위대를 그저 ‘이상한 사람들’ 취급하며 무관심하게 대했죠. 지역 주민분들의 행보와 비교하면, 청소년들의 대처가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먼저 아이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해야 해요.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학생이 무슨 정치냐’는 압박이 있잖아요. 여기에 이주민이라는 조심스러운 위치까지 겹치니, 당사자로서 이 문제에 대해 뚜렷하게 발언하기 어려운 지점이 분명 있었을 거예요.
그래도 다행인 건, 그 현장에 혐오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30~40명 남짓한 혐오 시위대 맞은편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200여 명의 시민들이 ‘맞불 집회’를 열고 혐오 세력에 대응하고 있었거든요. 혐오가 전시되는 순간조차도, 우리 사회가 ‘연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이 몸소 체험한 셈이죠. 저는 그 기억이 아이들을 지탱하는 힘이 될 거라 믿어요.
Q8.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을 거라 믿습니다. 교실 안에서 선주민 학생과 이주민 학생이 서로의 다름을 넘어 진정한 친구가 되었던 순간, 혹은 혐오를 넘어 '공존'의 가능성을 발견했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 아이들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요. 갈등을 조장하는 건 오히려 학교 밖의 어른들(비 청소년)인 경우가 많죠. 이주 배경 학생이 많은 학급에는 한국어와 중국어, 이중언어에 능통한 친구들이 꼭 있어요. 이 친구들이 양국 학생들 사이의 통역사가 되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갈등을 중재하는 ‘사다리’ 역할을 수행하기도 해요.
쉬는 시간이면 서로 자연스럽게 언어를 교환해요. “야, 이건 한국어로 뭐야?”, “그건 중국어로 뭐라고 해?”하며 묻고 답하는 풍경이 일상이죠. 아이들에게 친구는 국적 전에 그저 ‘내 짝꿍’, ‘내 친구’일 뿐이에요. 어른들처럼 비장하게 ‘우리는 공존해야 한다’라고 의식하지도 않아요. 그들의 존재가 너무 자연스러우니까요. 그냥 ”우리 반 걔? 중국에서 왔어. 근데 그게 뭐? 하는 식이죠.
Q9.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꿈꾸는 이상적인 학교와 사회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이 글을 읽을 대학생 독자들, 즉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 시민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이주 배경 학생들이 이주민으로서, 또는 학생으로서 안전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학교가 되었으면 해요. 사실 교사나 선주민 학생들은 당사자가 아니기에 절대 알 수 없는 불편함들이 있거든요. 이주민 학생들이 학교에 필요한 것을 요구하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점들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 그런 것들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미래를 꿈꿔요.
청년 시민분들에게는 ‘대림동의 이야기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넓게 보면 우리는 모두 살면서 한 번쯤 ‘이방인’이었던 순간이 있잖아요. 전학을 가거나, 이사를 하거나, 낯선 조직에 처음 들어갔을 때 느꼈던 그 막막함 같은 거요.
그때 누군가 보여준 환대의 태도가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기억해 주셨으면 해요. 환대라는 건 단순히 남을 돕는 착한 일이 아니에요. 새로운 이들과의 공존과 연대 방식을 고민하다 보면, 결국 내 시야도 더욱더 넓어지게 되죠. 저 역시도 아이들을 만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고 성장했거든요. 그런 것들을 생각할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해요.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 여러분도 언젠가는 이와 같은 기쁨을 경험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신수민 기자 (necrotix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