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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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 기사 후속보도] 못 찾겠다 꾀꼬리! 어디있니? 찾아보자, 레인의 정치적 권리와 의무

[레인 기사 후속보도] 못 찾겠다 꾀꼬리! 어디있니? 레인의 정치적 권리와 의무

Ⓒ Ludovic Bertron from Wikipedia

레인의 신규동아리 인준 신청은 1학기 마지막을 복잡한 논쟁으로 장식했다. 최소한의 절차와 요건에 대한 아무런 합의도 갖추지 않았던 레인과 퀴어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로 점철된 일부 동아리 대표자들이 맞부딪혔다.

동아리연합회(이하 ‘동연’, 회장 황선명)는 퀴어 동아리를 포함한 소수자에게 더 친화적인 동연을 만들기 위해 2학기에 동연 회칙을 개정할 계획이다. 레인도 2학기에 신규동아리 인준을 다시 신청한다. 하지만 레인이 동아리로 인준된다 하더라도 동연 내에서 여타 비정치/비퀴어 동아리와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고려가 필요하다. 동연이 회칙을 개정하려면 고민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 레인이 동아리로 승격될 때, 또 승격된 이후에 부딪힐 문제는 없을까? 또 다른 학교에서 성소수자 동아리가 비슷한 문제를 해결한 선례를 살펴보자. 마지막으로, 레인과 동연을 위한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봤다.

 

레인의 동아리 인준을 위해 먼저 개정되어야 할 회칙들

1. ‘동의’보다 ‘평가기준’에 의한 인준을

- 현재 동연 회칙이 규정하는 신규동아리 등록 요건은 크게 동아리의 목적, 회원 수와 구성, 구비서류의 제출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정확하게는 ‘대학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목적’으로 결성하고, ‘본 회에 소속되지 않은 10인 이상의 정회원으로 구성되고 회원 모집에 편협성이 없을 것’, ▲신규등록원서 ▲동아리 회칙 1부 ▲1년 사업계획서 ▲10인 이상의 정회원 명부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레인은 ‘대학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목적’을 갖추었지만, 구비서류 중 1년 사업계획서와 10인 이상의 정회원 명부가 미비하므로 현재 회칙 상 신규 동아리로 인준받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추더라도 경우에 따라 신규동아리 인준이나 준동아리 승격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 현재 회칙 상 신규동아리는 전동대회 참석자의 2/3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준동아리는 ‘동아리대표자수련회’에서 2/3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구하는 조건은 있지만 의결 결과는 조건의 충족과 무관할 수 있다. 레인은 이를 ‘동연이 가진 권력’이며 ‘외부에서 동연으로 진입하기에 매우 폐쇄적인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아무리 구비서류 및 인준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들, 아무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이를 멋지게 보고한다 한들 동아리 인준과 준/정동아리 승격은 조건과 무관하다. 조건의 충족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대표자들의 의결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은 현재 회칙이 갖고 있는 분명한 문제점이다.

따라서 신규 동아리 인준이나 준/정동아리 승격은 현재 활동 중인 동아리의 ‘동의’가 아니라 평가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두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각 동아리의 활동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면 “활동보고와 질의응답을 가진 후 참석 단위 2/3 이상의 동의”와 같은 두루뭉술한 규정은 더욱 문제가 된다. 정기모임 횟수와 정회원 출석률 검토, 예결산 공개, 사업계획서와 사업 평가 및 보고서 제출 등과 같은 정성평가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2. 두루뭉술한 표현에 관례적 해석 대신 명확한 규정을

- 또한 회칙 중 ‘회원 모집에 편협성이 없을 것’이라는 문구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문구는 관례적으로 ‘특정 학과에 편중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나, 해석하기에 따라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하는 레인의 회원 모집이 편협하다고 주장할 여지도 있다. 같은 논리로 특정 종교 동아리 등도 배제될 수 있다. ‘편협하지 않다’는 두루뭉술한 서술보다 “회원의 소속 학과가 3개 학과 이상으로 다양할 것” 등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

3. 회칙은 아니지만, 기권은 표가 아닙니다

- 회칙의 문제는 아니지만, 전동대회의 표결 방식에 대한 동연 내부의 관례도 문제가 있다. 기권을 마치 유효한 투표방식처럼 다루는 관례는 의결 결과를 왜곡할 소지가 있다. 기권은 표가 아니다. 민주적인 회의 진행을 위한 교본인 ‘로버트 의사규칙’에 따르면, 만약 의결 조건이 ‘투표 인원의 과반수나 2/3’인 경우 기권은 계산에서 제외된다. 예를 들면 10명 중 찬성 4명, 반대 3명, 기권 3명이라면 투표 수 7명 중 과반이 넘는 4명이 찬성했으므로 안건이 가결되는 식이다.

동연총회와 전동대회는 ‘출석인원의 2/3’을 의결조건으로 하기 때문에, 기권이 반대표와 같은 효력을 갖는 구조다. 물론 민주적 원칙에서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로버트 의사규칙’은 “어떤 경우에도 기권은 표가 아니”라고 못 박고 있다. 기권을 ‘이유가 있어서 찬성을 못하므로 던지는 제3의 선택’ 쯤으로 생각하는 관례는 잘못된 관례인 셈이다. ‘기권표’를 낼 수는 없다. 투표를 하지 않은 것뿐이다.

동연 구성원들이 동연 내부에 이미 관례적으로 ‘찬성하기 애매하면 기권’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개혁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출석인원의 2/3’의 찬성을 구하는 현재 회칙을 아예 ‘출석 인원의 2/3 투표, 투표 인원의 과반수나 2/3 찬성’ 정도로 바꾸면 된다. 이 경우 기권이 속출하는 의결은 아예 의결로서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권리의 포기인가, 의무의 거부인가

레인은 구성원 전원을 공개할 수 없으며 지금까지 전체동아리대표자회(이하 ‘전동대회’)의에 참석하여 공개발언을 해온 것만으로도 아웃팅을 강요당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동아리원 명부를 제출할 수 없고, 동아리연합회총회에 참석할 수 없고, 전동대회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게 현재 레인의 입장이다. 레인은 명부 제출은 회원의 아웃팅 우려가 있고, 아웃팅의 우려가 있으니 총회에 참석할 수 없고, 레인의 회원 중 커밍아웃한 대표자가 항상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전동대회에도 참석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사회적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소수자성을 무작정 ‘공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구성원을 확인하는 절차와 회의공개원칙은 민주주의에서 절차적 정당성을 충족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구성원 확인과 회의공개원칙 없이는 의결과 투표, 선거를 포함한 모든 민주적 의사결정을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렵다.

동아리연합회 회칙은 선거 참여, 총회와 전동대회 참석을 동연 정회원의 의무로 규정한다. 현재 회칙에 의하면 선거 참여, 총회 및 전동대회 참석을 포기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동아리연합회 회원이 행사할 수 있는 정치적 권리를 포기하는 동시에 동아리연합회원으로서의 의무를 거부하는 것이 된다. 동연회칙은 동아리원 2/3 이상이 선거와 총회에 불참하거나 대표자가 전동대회에 반복적으로 불참하는 행위는 징계 대상으로 규정한다. 이와 같은 행위는 ‘경고’ 대상이며, 경고 1회를 받은 동아리는 예산청구권 박탈, 경고 2회를 받은 동아리는 동아리 제적 심사 대상이 된다.

또한 제대로 된 명부를 확인하고 검증할 방법이 없다면 다른 동연 정회원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것까지 통째로 정지시킬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민주적 원칙에 의한 회의라면 예외 없이 정족수와 의결정족수가 있으며, 모든 선거에는 선거인명부가 있어야 한다. 구성원의 실존을 확인할 수 없는 명부는 명부로서의 가치가 없다. 구성원의 실존이 확인되지 않으면 동연총회와 전동대회의 정족수 및 의결정족수를 확정할 수 없고 동연회장 선거에서 선거인명부를 작성할 수 없으며, 투표의 효력이 발생하는 투표자 수가 몇 명인지 셀 수 없다. 명부를 검증할 수 없다면 전동대회 의결을 제외한 동연의 모든 정치적 절차는 효력을 가질 수 없다.

 

다른 학교 퀴어 동아리와 레인을 비교하면 어떨까?

다른 학교에서는 이와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중앙SUNDAY 보도에 따르면 성소수자 동아리를 정식 동아리로 인준하거나 자치기구로 인정한 학교는 서울대학교 ‘큐이즈’(99), 이화여자대학교 ‘변태소녀하늘을날다’(02), 고려대학교 ‘사람과사람’(03), 연세대학교 ‘컴투게더’(07), 서강대학교 ‘춤추는Q'(13), 서울예술대학교 ’녹큐‘(14), 한양대학교 성적소수자인권위원회(14). 중앙대학교 ’레인보우피쉬‘(14) 등 총 8개 학교다. 알리는 이들 동아리가 의결과 명부 제출 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조사해봤다.

Ⓒ 김서정 기자

만약 레인이 인적사항을 전혀 공개하지 않고, 모든 의사결정 자리에 불참하는 대신 서울대학교 ‘큐이즈’의 사례처럼 모든 의결권을 포기한다면 상황은 간단해진다. 회칙에 퀴어동아리에 한해 회비 납부를 제외한 의무를 면제하되 의결과 선거에 참여할 권리 역시 주지 않는다는 예외규정을 두면 된다. 그러나 이 경우 레인이 동아리 인준을 통해 동연에 진입하는 정치적 의미가 완전히 퇴색한다. 학내 정치기구에 진입함으로써 퀴어의 가시화를 목표로 한다면 의결과 선거에 참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만약 레인이 동연 내에서 의결과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명부를 제출하고 총회와 전동대회에 참여할 방안을 합의해야만 한다. 회칙상 모든 동아리가 재등록 절차를 밟아야 하고 재등록을 진행할 때마다 정회원 명부를 제출해야 하므로 명부제출은 일회적인 절차가 아니다. 또한 ‘10명 이상’이라는 인원 규정이 있으므로 인원에 대한 검증은 모든 동아리가 피해갈 수 없다.

따라서 레인 역시 어떤 식으로든 명부를 검증할 필요성이 있다. 연세대학교 ‘컴투게더’의 사례처럼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위험을 최소화하거나, 고려대학교 ‘사람과사람’의 사례처럼 최소한의 정보는 제출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레인과 동연을 위한 법률 전문가의 조언은?

레인이 무조건 현재 입장을 고수한다면 동연총회 정족수와 동연회장 선거의 선거인명부 문제를 해결하기는 요원하다. 회칙 개정과 퀴어동아리 인준 지지를 이미 공언한 동연 회장단 입장에서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치적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알리는 회칙도 일종의 규칙이고, 동연 내의 법률 같은 기능을 한다는 점에 착안해 정당법 등 정치와 관련한 법에 밝은 법률전문가의 의견을 물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신장식 변호사는 “최소한 동아리원이 실체가 존재하고 가상의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을 합의해야 한다”며 “동연과 해당 동아리 양측이 합의하는 중재인이 명부를 검증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민사재판 중에도 중재인을 선정해 그의 결정에 따르는 방법이 있고, 레인과 동연 양측이 신뢰할 수 있는 외부 전문가를 중재인으로 선정할 수도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은 근본적으로 사회가 퀴어에게 평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편견과 차별이 사라져 ‘퀴어인권동아리’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오지 않는 한 완전한 해결책, 완벽한 정답은 없다. 신 변호사 역시 “서로 이야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쉽지 않은 문제지만 양쪽 모두 아웃팅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동아리 인준의 기준을 맞출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며 “쌍방이 신뢰를 갖고 문제를 푸는 방향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강조했다. “일단 선을 그어놓고 ‘저쪽이 얘기하는 건 이게 의심스럽고 이건 무슨 의도가 있는 것 같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답이 없”으니, 양측 모두에 전향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가 레인과 동연에 건네는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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