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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1주년, 추운 겨울 보내며 틔워낸 시민들의 싹을 확인하다

촛불 1주년, 추운 겨울 보내며 틔워낸 시민들의 싹을 확인하다

2017.10.28. 촛불 1주년에 다시 찾은 광화문의 모습 Ⓒ 이혜원 기자

촛불 혁명 1주년, 다시 그곳으로...

2016년 겨울, 광장을 밝힌 촛불세력의 한 일원으로서 함께 했던 필자는 전철역 내부에 붙어있는 촛불혁명 1주년 기념집회 포스터를 보았다. 스스로가 혁명의 중심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온기가 그리웠기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여나 “예전만큼 악에 받친 감정이 없어서, 나른한 마음에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도 살짝 들었다.

그런데 그저 주말이고 날도 포근하니 데이트를 하러 나온 연인, 혹은 산책하러 나온 가족들인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광화문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런 하나 된 느낌, 약 8개월만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경찰 수는 전보다 적었고, 살벌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어쩐지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음성이 축제의 막을 올리는 느낌이었다.

일 년 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청소년들이 활동하는 단체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것과, 대체적으로 시민들의 얼굴에 근심과 분노보다는 편안함과 밝음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한 쪽에서 청소년 참정권 보장 운동이 진행되고 있었다. 청소년들이 머리에 검은 띠를 두르고 청소년인권법제정을 위한 서명을 부탁드린다고 외치고 있었다. 기분이 새로웠다. “내가 청소년이었을 때 저런 활동이 활발했었더라면 이번 대선은 달랐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 할 수 있는 것은 촛불의 중심에는 항상 청소년들이 있었고, 촛불의 미래에도 그 청소년들이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피켓팅 모습 Ⓒ 이혜원 기자

 

좀 더 자유로워진 분위기

전보다 자유로운 집회 분위기에 반가움마저 느껴졌다. ‘눈에 띄는 새끼들은 모조리 잡아간다’는 눈빛이 아닌 ‘차가 오지 않는다고 차도로 무작정 뛰어들면 위험해요’라고 말하는 듯 한 경찰들의 모습. ‘태극기 집회 따위는 신경 쓸 것이 아니고, 우리 집회가 즐거우면 됐어’라며 서로를 향하는 애정 가득한 시선. 사람들은 차가운 바람에 맞서 서로 목도리를 빌려주고, 따뜻한 물을 나눠 마시며 온기를 나눴다.

1년 전 광화문을 내내 즐겁게 만들어 주었던 노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비록 가사는 슬프지만 우리들의 다짐을 보여주었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가 다시 울려 퍼졌다. 1년 전에는 악으로, 분노로, 한으로 질렀던 노래를 이번에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즐겼다. 단 두 음절에 리듬을 입혀 시민들을 단결시키고, 동일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노래의 힘을 다시 느꼈다. 가수 이상은 씨가 ‘비밀의 화원’과 ‘언젠가는’을 불렀고, 전인권 밴드는 ‘걱정말아요’ 외 1곡을 불렀다. 따라 부르며 좌우로 부드럽게 촛불을 흔드는 시민들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공연을 보는 시민들. 손에는 촛불을 든 모습이 보인다 Ⓒ 이혜원 기자

무대를 보는 동안 수화통역사가 3분 정도 교대했다. 전보다 초와 종이컵을 끼워 무료로 나눠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신천지반대, 청소년인권법제정, 스텔라데이지호 진상규명 및 수색, 양심수 석방, 이명박 구속, 탈핵, 트럼프 방한 반대 등 서명운동의 종류는 훨씬 다양해졌다.

시민들이 전쟁 반대의 촛불을 밝히고 있다 Ⓒ 이혜원 기자

이번 해는 국내 문제보다는 국제 문제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있는 것 같았다. 박근혜와 최순실이 이미 감옥에 들어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명박이나 김장겸, 황교안과 같은 국내 적폐들의 얼굴보다는 트럼프의 얼굴이 더 많이 보였다.

보도블럭 등 집회장소 곳곳에 트럼프의 얼굴이 붙어있다 Ⓒ 이혜원 기자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입법과 헌법 개정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발언하시는 분, 청소년촛불자원봉사자로서 임하게 된 계기와 작년과는 사뭇 다른 감회를 말하는 학생, 직장인이지만 작년 촛불의 힘에 많은 감동과 응원을 받아 감사하다며 떨리는 진심을 전한 분. 전보다는 한층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무대에 올라 발언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이정미 정의당 대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와서 자리를 함께 했다. 이렇게 바뀐 이유에는 움직인 시민들의 힘도 있었지만 더 강한 공격들을 앞서서 겪어야 했을 많은 정치인들의 노력과 정성의 힘도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배우들’이라는 단체가 무대에 올라 레미제라블 OST ‘민중의 노래’를 불렀다. 집회가 아닌 한편의 뮤지컬을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혹독한 추위 속 탄핵이라는 눈을 맞이하고, 새 정권을 뽑아 다시 돌아온 일 년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스토리 같았다. 마지막 가사 ‘너는 듣고 있는가’를 부르며 뒤에 있는 스크린을 가리키는데 이명박이 보였다. ‘다스는 누구 것입니까?’라는 문장이 계속 떠올랐다. 모두가 웃었고 모두가 외쳤다. “이명박~”

집회장소 곳곳에 이명박 전(前) 대통령을 규탄하는 문구들이 있었다 Ⓒ 이혜원 기자

 

시민, 연대, 촛불 새싹의 성장을 확인하다

이제 촛불시민들은 스스로 배터리 촛불을 들고 오기도 하고, 초가 없으면 휴대폰 라이트를 켜 대체할 줄도 안다. 쓰레기봉투에 본인이 버린 것이 아니어도 바닥에 보이는 쓰레기들은 습관처럼 주워 버린다. 높은 깃발들은 양 옆으로 위치할 줄도 알고, 집회가 아홉시에 끝나는 것도, 가만히 무대를 보고 앉아있으면 춥기 때문에 겉옷을 챙겨가야 한다는 것도 안다. 꼭 투쟁만이 아니더라도 함께 해야 하는 것을 알고, 함께 하는 힘이 크고 무섭다는 것도 안다.

그렇게 무대 측에서 집계한 인원 약 5만 명이 9시까지 광화문을 밝혔다.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우린 서로를 칭찬할 만하다.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쉬고 싶은 주말이었겠지만 함께 해준 시민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번 촛불 1주년 집회는 다시 한 번 더 시민의 힘을, 연대의 결과를, 촛불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추웠던 겨울을 지나, 우리는 더욱 굳건한 싹을 틔웠다. 새로 밝은 광화문의 10월 28일 촛불시민 1주년 콘서트 감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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