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뭔가 이상하다. 뭔가 잘못됐다.
다가오는 11월, 한국외대의 새로운 총장이 선출된다. 총장은 학교를 대표하는 기관장으로서 19개 단과대학과 4개 학부를 이끌고 학생지도와 교무를 통할한다. 총장은 학내 구성원 모두의 이익을 도모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진리, 평화, 창조’의 창학 정신을 구현해야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렇게 학교를 대표하는 자리에 앉을 총장을 선출하는데, 정작 구성원들에게 총장을 선출할 권한이 없는 상황이다.
1. 일단, 총장은 어떻게 선출되는 것인가?
쉽게 말해 총장은 교수가 추천하고 이사회가 승인한다고 보면 된다. 이사회는 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2명의 총장후보자 중 1명을 총장으로 승인한다. 관례상 1등을 총장으로 선출한다.
총장후보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협의회 회칙’ 제 10조(총장후보자, 총장해임권고) 제 1호 규정인 ‘① 총장후보자의 선출 및 총장해임권고는 전체교수협의회에서 직접 비밀 투표에 의한다.’에 의해 선출된다. 교수들은 비밀·직접투표로서 총장후보추천위원회에 후보등록을 한 후보에게 투표한다.
이런 선출제도에선 당연히 후보자들은 학내 구성원 모두의 이익보다 자신을 선출해주는 교수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된다. 현 김인철 총장이 선거 당시 제시했던 대표 공약인 교수 연봉 2000만원 인상, 교수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 설립, 교수들을 위한 연구 목적의 별장 건립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2. 노조, 학생회, 교수협의회의 생각
학교의 주인이자 세 구성원인 학생, 교직원 그리고 교수는 총장선출과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노조: 민주적 총장 선출 제도로 한국외대의 위기 극복하자
1) 투명한 대학운영이 필요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속에서 이화여대의 모습은 대학이 권력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대학의 권력이 얼마나 셌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많은 대학에서의 부정과 비리는 구성원들의 투쟁, 탄압, 희생 등을 통해서 밝혀졌지만 자정의 노력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불법과 비리가 이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건전한 견제, 비판, 그리고 감시가 가능한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한 시스템의 핵심은 바로 민주적 총장 선출제도이다.
2) 대학내 민주주의 또한 확장되어야 한다.
총장 직선제가 한때는 대안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렸으나 지금은 교수들의 폐쇄적인 대학운영이 가능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른 대학 구성원들과 갈등을 일으켰고 학생과 직원의 권리는 더 이상 그들의 관심사가 되지 않았다. 사회적으로 민주주의의 수준이 발전한 만큼 사회적 수준에 맞게 대학의 민주주의도 확장되어야 한다. 교수들만이 참여하는 총장 직선제는 당시에는 개혁적이였지만 지금은 반개혁적이다.
3) 외대의 재정위기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
한국외대가 재정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는 교육부가 주관하는 각종 사업에 무모하게 응모한다. 당장에는 30억이 들어오겠지만 몇 년 뒤에는 각종 사업 운영이 학교에 상당한 부담이 될지도 모른다. 학교는 재정위기를 단기적인 시각으로만 충분한 고민도 없이 보고있다. 교수들의 폐쇄적인 운영구조로는 위기진단도, 대학운영도 제대로 책임질 수 없다. 책임행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또다시 위기가 닥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만이 되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단기적인 대안만 내놓는 학교를 보고만 있을 수 없다. 대학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하고 감시하고 협력할 수 있는 민주적인 총장선출 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우리대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힘이다.
총학생회: 총장은 학교를 대표할 수 있는가?
총장을 선출하는 과정 어느 부분에도 학생이 속해 있지 않은 현 구조상,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 아래 우리학교 총장들의 공약은 교수들의 표심만을 겨냥하게 된다. 현 김인철 종장이 선거 당시 제시했던 대표 공약도 교수 연봉 2000만원 인상, 교수 자녀들을 위한 유치원 설립, 교수들을 위한 연구 목적의 별장 건립 등이다.
실제로 김인철 총장의 임기동안 교수를 위한 복지는 나날이 향상되고 있지만 학생대표자들에게는 총장을 만나 대화하는 것 조차 쉽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학내 구성원으로서 편향적인 운영만을 낳는 낡은 총장 선출 방식에서 벗어나 민주적인 선출방식을 마련해야만 한다. 현재 총장 선출권에 관한 정관은 ‘이사회에서 총장을 임명한다.’ 라는 것 외에는 교수협의회나 어떤 학칙에도 명기되어 잇지 않고 단지 관례로만 존재해왔다. 이처럼 근거마저 부족한 우리 학교의 총장 선출권, 이제는 우리 모두기 바꿔야 한다.
교수협의회: 절차의 공정성?문제없다! (김은경 교수협의회장)
Q. 노조와 학생이 총장선출 과정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총장을 선출하는 기존 방식이 있기 때문에, 교수 이외 학교 구성원들의 총장선출권 참여에 대해 논의한 바가 없다. 현재 총장 선출 방식이 공정하지 않다는 판단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교수협의회는 총장을 선거하는 것이 아니고 총장 후보를 선출해서 올리는 것이지 총장 자체를 뽑는 것은 아니다. 규정을 잘 읽어보아야 한다. 다른 대안이 나와도 현행 규정에 따르면 이번 선출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시간을 두고 진행해야 할 일이기에 그 다음 선거에나 가능하다.
Q. 현재 총장선출과정에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하지 못하는 절차를 문제라고 인식하는가?
절차의 공정성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노조나 학생들은 선출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규정상 참여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이런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잘 해왔고 다른 문제도 없었고, 절차에서는 문제가 없다. 누가 누구를 뽑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직선제를 잘 고수한 것은 아름다운 전통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Q. 후보자들의 공약이 교수들의 복지에 집중되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더 많다 덜 많다의 문제는 아니지만 교수들의 복지보다는 학생들을 위한 복지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후보자들의 공약에 학교의 발전방안이 얼마나 있는지, 학교학생들에게는 얼마나 교육적으로 잘할 수 있는지 우리도 다 본다.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이번 총장 선출에서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에 신경 쓸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헛공약을 내지 않는 학교의 발전방향을 진솔하게 갖고 오는 분이 뽑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교수님들마다 모두 생각이 다르실 테니 의견들을 잘 공정하게 규합하는 것이 교수협의회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3. 구성원의 동의도 없이 앉은 대표의 자리, 거짓 감투 아닐까
. 정리하자면, 현재 한국외대 총장선출권은 학교법인 동원 육영회가 소유하고 있으며 교수협의회는 총장후보자를 선출한다. 2인의 후보자를 이사회에 보내고 관례적으로 1등을 총장으로 선출한다. 실질적으로 교수협의회가 총장을 선출한다고 봐도 무방한 것이다.
9월 11일 교수협의회는 총장후보자선출일정을 공고하였다. 모든 과정은 교수만이 참여 가능했다. 교수협의회 김은경 회장의 '다음번이나 가능하다'라는 발언을 통해 어느정도 예견되었던 일이다. 총장후보자 선출에 대한 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쯤되면 가능 불가능의 문제가 아닌 교수협의회의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든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직제규정에서는 총장을 ‘총장은 본 대학교의 교학 및 행정전반을 총괄하며 본 대학교를 대표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학교는 학생, 직원, 동문, 그리고 교수 네 구성원들이 공존하는 단체이다. 과연 지금의 제도가 외대인 모두를 대표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