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6 (화)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선배들의 솔직한 직장생활] 신입사원 퇴근일지⑥

* ‘신입사원 퇴근일지’는 실제 한국외대를 졸업한 선배님들이 솔직담백하게 작성한 일기로, 한 달에 한번 <외대알리>에서 연재됩니다. 사기업 마케팅부서와 언론계에 입사한 선배님이 각각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지난호 퇴근일지를 보고 싶은 독자님은 hufsalli@gmail.com 으로 문의바랍니다.

권혁일(언론정보 07)

2013년 10월 1일 호남지역 모 일간지에 수습기자로 입사

4월 16일

135번째 퇴근.

배가 가라앉았다.

1면과 사회면은 저녁이 돼서야 조판이 시작됐다.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으로 취재단을 꾸려 기사를 쓰기로 했다. 배가 출발한 인천을 거점으로 삼고 있는 경인일보가 대부분의 기사를 썼지만, 우리 신문 기자들도 몇 명 움직였다. 공동취재단에서 사진기자도 파견한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정확하게 어떻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오늘 당번이었기 때문에 마지막 판이 넘어갈 때까지 사실관계와 오타를 체크하는 역할을 맡았다. 희생자 수 같은 것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데다가, 타 언론들이 속보경쟁을 하면서 섣부른 정보들을 너무 남발해놔서 맞춰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경인일보 기자가 쓴 공동기사에도 틀린 정보들이 많이 있었다. 이런저런 팩트 체크 등으로 인해 최종 마감은 10시 45분,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늦었다.

제목을 놓고도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사회면 편집을 맡은 선배는 아직 모르는 거니까 최대한 희망적으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래서 6면 머릿기사 제목은 무사 구조를 기원하는 식으로 달렸다.

이럴 때 신문이 맡아야 할 역할이 뭘까, 이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부디 모두들 무사히 귀환하기를. 그냥 잠깐 연락만 안 됐던 것이기를.

4월 17일

136번째 퇴근.

어째서 약속이나 한 듯 비가 오고 기온은 떨어지는가.

하루종일 멍-하니 있었다. 그냥 멍-한 채로 제목을 달고, 레이아웃을 그렸다. 배가 바다 속에 처박혀 있고 그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고 대통령은 가서 구조장비 반입도 방해하면서 사열을 받으시고 ‘진두지휘’를 하시고 하나라도 더 선정적인 것 찾아내던 언론들은 대통령과 정부 관료들 입으로 시선을 홱 돌리고 비는 오고 날은 춥고 탐스신발은 젖었고 혓바늘은 돋은 그 하루 동안에도 육지 사람들의 일상은 또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으니, 당연히 신문도 만들어져야 했다.

‘기레기’라는 단어를 편집국 사람들이 하나둘씩 알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단어를 보면서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적어도 우린 그런 보도는 안 하잖아’라고 자위할까? ‘일부 돼먹지 못한 놈들 때문에...’라며 화를 낼까? 잘 모르겠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사실은 잘 모르겠다.

일상. 이 한 순간의 센세이션이 지나가고 나면 똑같은 일들을 계속할 테고, 또다시 센세이셔널한 이슈가 터질 것이고, 그 때에도 똑같은 보도 관행이 반복될 것이다. 내가 만드는 신문이 세상에서 대체 무슨 역할을 하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퇴1

4월 20일

137번째 퇴근.

육상의 시간은 여전히 흘러간다. 사실 시간이라는 건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같은 중력장 안에서는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흘러왔다. 육상과 해저의 시간이 다르고 청와대와 진도의 시간이 다르고 계단과 저상버스의 시간이 다르고 고속버스와 휠체어의 시간이 다르지만, ‘객관적’으로는 흐르는 시간은 같다. 엄밀히 말해서는 ‘객관적’으로 같은 시간이란 건 없는 개념이지만, 이 지구 내에서라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수요일 이후로, 새벽까지 관련 기사를 찾아보느라, 그리고 화를 눌러내느라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특히 정부가 보여준 무능과 무례는 도저히 측정할 수 없을 정도다.

항상 출근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신문 읽기였다. 바빠도(사실 바쁠 건 없었지만) 최소 1~2가지 전국지는 정독하고, 그 외 2~3가지를 간단히 스캔하곤 했다. 오늘은 신문을 쳐다보고 싶지가 않았다. 내가 신문을 만드는 일, 그것도 직접 지면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신문 보는 게 고역이었다. 아니, 이게 일이기 때문에 고역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상은 일상이다.

4월 28일

143번째 퇴근.

취재기자와의 협업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 전에는 어법에 맞게 문장만 윤문하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전화를 걸어서 어떤 내용을 추가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러이러한 걸 어디어디에 넣으면 어떻겠냐, 이 기사의 야마가 이건데 이걸 강조하려면 이 단락을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냐,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 받는다. 내가 뭔가 하긴 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기사를 뿌려놓고 보면 아쉬움도 남긴 한다. 물론 기사를 편집자 입장에서 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내가 기자로서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이상으로 삼아왔던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게 가능하긴 할까, 하는 생각이 자꾸 머리를 맴돌고 있다. 입사한 지 이제 7개월이 지났는데 아직 답을 못 내고 있는 걸 보면, 당초에 생각했던 것과 현실은 달라도 너무 많이 다른 것 같다. 회사 안에서 오타나 잘못된 용어를 볼 때마다 지적질을 하는 걸로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이 신문사 사원으로서의 책임은 되겠지만, 언론인으로서의 책임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Soorm(29)

2014년 4월 21일 S모기업 마케팅부 정식사원 입사

9월 12일

110번째 퇴근.

회사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내가 가진 큰 결점을 발견했다. 나는 화를 잘 내지를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화가 잘 나지 않는 편이다. 이따금씩 투덜거리고 짜증은 내지만 면대면으로 표현할 정도로 화를 내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잘 못 나온다거나(그냥 먹을게요 배고픈데 허허), 식당에서 어린 아기가 큰 소리로 운다거나(귀여워) 누가 내 물건에 흠집을 낸다거나(어차피 물건을 워낙 험하게 쓰는지라 언젠가는 내가 낼 흠인데 뭘)하는 일로는 화를 내지를 않는다. 머리가 어느정도 크고나서부터는 친구와 싸운 적도 없고, 심지어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여동생과도 자라면서 싸운 적이 거의 없다. 화를 잘 내지 않는 성격이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큰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단점일 가능성도 많다), 단언컨대 회사 생활에서 화를 내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우리 회사와 운송업체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미스로 인해 작은 이슈가 생겼다. 큰 손해가 생긴다거나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일을 어떻게든 처리하려면 귀찮은 과정을 밟아야 하는 정도의 이슈였다. 그 쪽 업체에 전화를 걸어 서로 이런이런 잘못이 있으니, 우리가 이 정도 양보할 테니 이 만큼 협조달라 요청을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내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우리 사수인 대리님이 나를 불러 한 소리 했다. 항의 전화를 그딴 식으로 하냐면서. 그래서 상호간에 실수가 있으니 무작정 항의하는 게 아니라 서로 양보하면서 조율해야하는 것이 아니냐 말했더니 사수는 딱 잘라 상호간에 잘못이 있더라도 이럴 때 ‘지랄’할 수 있어야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대답을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해하고 싶지 않다.

이 일은 어떻게 마무리가 되었느냐, 서로 양보하는 선에서 내가 처음 제안했던 것보다 훨씬 깔끔하게 처리되었다. 화를 내지 않고, 무턱대고 ‘지랄’하지 않고도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게 나를 안도하게 하지만,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치명적인 결함이 될 수 있는 환경에서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갈 수 있을지 하는 걱정이 생긴다.

퇴2

9월 22일

116번째 퇴근.

내 일이 생긴다는 것에 대해서

팀을 옮긴지 어느덧 3개월이 됐다. 지금도 모르는 것 투성이긴 하지만 정말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던 것에 비하면 확실히 내 담당 업무가 생겼고, 내 나름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고, 내가 자리라도 비우면 전화를 해서는 내게 뭔가를 물어보는 일도 자주 생긴다. 할 일이 남으면 알아서 야근을 한다. 이건 놀라운 변화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알아서 야근을 하는 것이다.(학창시절의 나는 절대로 착실한 학생이 아니었다. 과제나 시험이 없으면 절대로 도서관에 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3,4학년 때조차) 그래서 내 일이 생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하면 곧 내가 책임을 져야하는 영역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 판단으로 내 인생만을 결정하던 시절을 지나 내가 속한 조직의, 회사의, 그리고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것이다.(물론 아직은 아주 미미한 영향이겠지만) 술 담배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게 된지도, 투표를 할 수 있게 된지도, 어떤 무엇을 하든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 없게 된지도 벌써 십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이제서야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9월 26일

120번째 퇴근.

이 미묘함을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 중 하나, 내가 그들의 ‘동료’라는 사실에 적응하는 것. 물론 자세히 따지고 보면 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상하관계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상대가 부장이든 차장이든 나는 그들의 동료가 된다. 동등한 입장에서 싸울 수도, 양보할 수도, 협조를 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난 아직까지는 완전히 학생티를 벗지 못한 것 같다.

9월 30일

122번째 퇴근.

기본적으로 8시 출근, 5시 퇴근의 사이클이지만, 요즘 같은 마감 때는 야근을 하는 일이 잦다. 그리고 앞서 맞이했던 두 번의 월 마감과 달리, 이번은 3분기 전체를 마감해야 한다. 처리해야할 일이 많기도 하고, 내가 아직 일이 손에 익지 않기도 해서, 모두 퇴근한 11시정도까지 혼자 야근을 하다 퇴근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지쳐 집에 돌아오면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고, 6시에 일어난다. 매일같이 6시에 일어난다는 게 엄청나게 힘든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 익숙해지면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다. 잠에서 깨면 아무 생각 없이, 아주 익숙하게 출근 준비를 한다. 너무 피곤하다거나, 출근하기 싫다거나 하는 잡념조차 끼어들 틈이 없을 정도로 정형화된 패턴으로. 그렇게 7시에 집을 나와 7시 12분 버스를 탈 때까지의 과정이 ‘정형화된 패턴’이다. 그렇게 버스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그제서야 뇌가 잠에서 깨어나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제서야 출근하기 싫다…하는 생각이 비로소 드는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이미 나는 버스에 올랐으니까. 어쩔 수 없지, 이미 나는 입사를 한거니까. 어쩔 수 없지, 나는 따로 출퇴근이 없는 직업이 아닌 회사원이 되기로 마음 먹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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