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1 (목)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플래카드, 다시 달게 해준다고?

“안녕하세요~ 계세요~?” 

“이 자루 좀 살펴봐도 될까요?”

 

끝난 줄 알았던 추위가 다시 찾아온 지난 21일. 기자들은 서울캠퍼스 본관 뒤에 위치한 쓰레기 처리장으로 향했습니다. 수요일 새벽 학교가 철거한 ‘박철 명예교수 해임 촉구’ 관련 플래카드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직원분께 양해를 구한 뒤 포댓자루에 플래카드로 보이는 폐기물들이 쌓인 것을 발견하고 직접 뒤져봤지만, 해당 플래카드들은 총학생회와 단과대학이 게시한 플래카드는 아니었습니다.

 

같은 날 오전 10시, 서울캠퍼스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 위원들과 함께 총장실 항의방문을 진행했습니다. 자리를 비웠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김인철 총장은 비대위장단을 만났습니다. 이 자리에서 총장은 “학교 본부 입장에서는 교육부 감사가 굉장히 중요한 만큼 올바른 감사 진행을 위해 협조를 바란다”며 “플랑 강제 철거가 특별한 목적을 갖고 학생들의 의사에 반하는 명분이 있었다면 사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어서 ‘박철 명예교수 임명 철회’에 대해 “학생들뿐 아니라 교수님들, 동문들 등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다양하게 듣고 있다”면서 “학생들의 입장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여러분의 입장을 잘 반영해서 상의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날 총장의 발언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목은 다음 내용이었습니다. 

 

 “모집 관련 내용이 아닌 이상 일주일이면 플래카드 내용의 의사가 잘 전달된다고 본다”. 

 

플래카드가 일주일 이상 걸려 있었기 때문에 학생사회의 의사가 충분히 전달되었고, 따라서 더 이상 플래카드의 효용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거된 플래카드는 대체 어디 있는 걸까요? 이 질문에 이선범 신임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장)은 “학생지원팀 측에서 안내실에 해당 플래카드들을 쌓아 두었으며, 교육부 감사 기간이 지나면 다시 게시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의사가 충분히 전달되었다’는 김인철 총장의 발언을 감안한다면 플래카드가 버려지지 않고 잘 보관되어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직접 플래카드의 위치를 찾아 나섰습니다.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본관 1층 안내실에 방문했지만, ‘우리 관할이 아니니 시설관리팀에 문의해보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이미 저녁 6시를 넘긴 터라 시설관리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쓰레기 처리장까지 확인했지만 플래카드는 없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찾은 시설관리팀에는 담당자분이 돌아와 계셨습니다. ‘본관이 아닌 정문 안내실 창고에 모아두었다’는 답을 듣고 곧바로 정문 안내실로 향한 기자들은, 경비 선생님께 협조를 구한 뒤 창고에 쌓인 플래카드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문 안내실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플래카드들(사진 - 정지우 기자)

 

플래카드들은 돌돌 말린 채 가지런히 쌓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수가 50여 개에 달한 데다가 시간이 늦은 탓에 어떤 것이 명예교수 해임 촉구 플랜카드인지는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때문에 다음날 아침, 사실 확인을 위해 수요일 새벽 당시 철거를 진행했던 시설관리팀 측에 다시 문의했습니다. 

 

철거를 진행한 담당 선생님은 “(철거 전에) 학생처장님, 행정처장님, 총괄지원팀 등 여러 분들이 다 모여서 ‘교육부 감사가 있으니 (플래카드를) 임시로 보관을 좀 하자’고 말씀하셨다”면서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해볼 테니 일단 새벽에 철거를 했다가 (감사가) 끝나면 다시 달자고 하셨다”라고 철거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또 많은 학우들이 의문을 가졌던 ‘새벽 5~6시가 경비 선생님들의 업무 시간이 맞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아침에 각자 청소구역에서 청소를 진행하는데, 그때 동시에 철거도 진행했다”라고 하면서 “그 이후(6시 이후) 시간에는 학생분들이 오시니까 강의실 청소도 해야 했기에 그렇게 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이어서 “학생들이 붙인 것 외에 교수님들이 붙인 것, 다른 내용으로 붙어 있는 것도 모두 같이 철거를 했는데, 학교 측에서 ‘클린 외대’를 지향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교육부 감사 기간에 한해서 플래카드를 철거한 것이고, 현재 정문 안내실 창고에 보관된 플래카드들은 감사 기간이 끝나는 29일 이후에 다시 게시될 예정인 셈입니다. 

 

학교 및 재단에 대한 교육부의 회계 감사계획서 (출처 - 교육부 홈페이지 캡쳐)

 

그렇다면, 교육부 감사가 대체 무엇이기에 처장님들이 한자리에 모이시고 꼭두새벽부터 플래카드를 철거하도록 지시한 것일까요? 현재 진행 중인 교육부 감사는 ‘회계부분감사’입니다. 한국외대를 운영하는 학교법인 동원육영회의 재무 및 회계 관리, 재산 운용 및 관리 등과 학교의 예산, 회계 연구비, 계약, 기자재 관리 등이 이번 감사의 대상으로 교육부의 감사 계획서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 내용들만 놓고 보면 명예교수 해임 촉구 플래카드를 비롯한 여러 게시물이 교육부 감사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이선범 비대위장 역시 이에 대해 “교육부 감사를 이유로 박철 전 총장의 치부를 감추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다”라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취재를 마친 후, 처음으로 돌아가 총장님의 말씀을 다시 곱씹어보았습니다. 

 

“모집 관련 내용이 아닌 이상 일주일이면 플래카드 내용의 의사가 잘 전달된다고 본다”. 

 

추측하건대 김인철 총장님께서는 -총장님의 말을 빌려본다면- ‘귀가 뚫려 계신 분’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의사를 잘 전달받으신 것으로 보이지만 약간의 착오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박철 명예교수 규탄 플래카드를 내건 것은 박철 명예교수 임명에 대한 총장님의 적극적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지 단순히 의견을 전달하려는 소극적 목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내가 내용을 잘 알아들었으니 (플래카드를) 내리자.’라는 답변은, 감사가 끝나고 다시 플래카드를 걸겠다는 약속과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입니다. 결국 학내의 문제를 가리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철거를 진행했음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과연 플래카드는 다시 걸릴 수 있을까요? 다시 게시하는 것을 조건으로 철거를 진행한 만큼, 더 이상의 소모적인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학생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했다면, 그리고 그 입장을 충분히 반영할 것이라면 박철 명예교수 임명 철회의 목소리가 명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플래카드를 걸어야 할 것입니다.

 

한달수 기자(hds80228@naver.com)

정지우 기자(stardustji@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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