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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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학교

"여기는 도떼기 시장이 아닙니다." - 하종강 교수가 바라본 복사실·문구점 사태를 비롯한 학교의 문제점들

"여기는 도떼기 시장이 아닙니다."

하종강 교수가 바라본 복사실·문구점 사태를 비롯한 학교의 문제점들

ⓒ 성공회대 복사실&문구점 지킴이

4월 29일, 일만광장에 모인 성공회대학교 복사실·문구점 지킴이들에게 하종강 성공회대학교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가 찾아왔다. 하 교수는 학생들에게 커피도 나누어주고, 함께 피켓도 만들며 “여기는 도떼기시장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복사실·문구점 사장님들과 지킴이들, 그리고 학교가 치열하게 목소리를 내고있다. 하지만 여태 앞장서서 목소리를 낸 교수는 하종강 교수가 유일했다. 지킴이들을 찾아간 모습을 보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 교수는 이를 듣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 교수가 저 말고는 또 없었나요?”

 

ⓒ 김이슬 기자

다음은 하종강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알’은 회대알리의 질문, ‘하’는 하종강 교수의 답변이다.

알: 일만광장에서 총무처에 항의전화를 하는 식으로 투쟁하는 학생들을 찾아가셔서 같이 피켓도 만들고 커피도 사주었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나?

하: 학생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학생 때의 모습이 생각났다. 한 명의 지원, 한 장의 피켓이 아쉬우면서도 작은 도움에도 큰 힘을 얻었던 기억이 떠올라서 학생들을 찾아갔다. 피켓에 여기는 도떼기시장이 아니라 성공회대학교라고 썼는데, 우리 학교가 한국 진보의 상징인 대학인만큼 어떤 문제를 처리하든 다른 대학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학생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잘못된 선택은 아니라고 판단해서 일만광장으로 나왔다.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나왔던 것은 아니었다.

 

알: ‘복사실·문구점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 몇몇 학생들하고 이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았다. 처음엔 법률 부분에서 학교가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하지만 싸움의 구도를 법률적으로 잡았다가 대학에서 그 법을 어긴 게 아니라고 밝혀지면 이 싸움은 동력을 잃게 된다. 실제로 법률적 문제를 거론하다가 학교 당국이 법을 위반한 게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니 투쟁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처음부터 법률적인 논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싸움은 방향을 잘못 잡은 싸움이라고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문제는 단순히 법의 문제만이 아니다. 여기는 성공회대학교이기 때문에 꼭 법만을 내세워서 이 사태를 해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복사실·문구점 사장님들은 대학에 비하면 사회 약자이다. 성공회대학교는 사회 약자가 불이익을 받게 되었을 때 그들을 설득하거나 배려하는 과정이 다른 대학과 달라야 한다.

 

알: 학생들 사이에서는 학교가 영세업자를 일방적으로 몰아냈다는 의견이 있고, 학교는 교육부로부터 전대계약이 불법임을 지적받아 입찰을 할 수 밖에 없다며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학교는 인권과 평화의 가치를 내걸며 영세업자와 학교 모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야 했나?

하: 나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자세히는 모른다. 하지만 통보를 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설득 과정이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전대 계약이 불법임을 지적받아 입찰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 거짓말 같진 않다. 그러나 이를 통보하면 일자리를 잃게 될 사장님들을 설득하는 방식이 좀 달랐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학교가 긴 세월동안 전대계약이 불법임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거 같다. 학교의 담당 실무자가 오랜 세월 복사실·문구점을 지나다니고 이용하면서 이를 몰랐을 리도 없고, 몰랐어도 안 된다. 설령 정말 몰랐다고 해도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아채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하며, 전대계약이 불법임을 알면서 묵인해왔을 경우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노동법상 판례 중 이력서에 허위 사실을 기재해 입사한 사람이 이를 이유로 해고당해도 부당해고로 판결이 나는 경우가 있다. ‘회사가 이를 알면서도 오랫동안 묵인했을 때’이다. 그동안 묵인한 세월이 있었다는 것은 회사는 이미 불법임을 파악했으나 문제 삼지 않기로 당사자들끼리 약속했다는 뜻이다.

 

알: 이번 사태를 단순히 현재 복사실이 자본주의 경쟁에서 밀린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인권과 평화의 대학 성공회대학교가 시장 논리대로만 움직였어야만 했냐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인가?

하: 그렇다. 우리 학교에 조교 제도가 있었을 당시 1년 계약을 맺은 조교들은 법적으로는 1년이 지난 후 계약이 해지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법적으론 문제가 없더라도 한국 진보의 상징인 성공회대학교조차 비정규직을 법적으로 내세워서 조교들을 해직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그때 내가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초빙됐었는데, 부총장에게 편지를 써서 “성공회대학교가 돈이 없어서 직원을 해고시켰는데 내가 새 직원으로 들어갈 순 없다. 나를 비롯해 노동운동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에겐 이게 중요한 원칙이다.”라고 말하고 학교에 가지 않았다. 다행이 이 문제는 잘 해결되었다. 직원을 채용할 때 이들을 최우선으로 정규직으로 고용해 정년퇴직으로 자동 감면된 이들의 빈자리를 메우기로 했다. 이들은 지금도 학교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이렇게 법이 아니어도 성공회대학교이기에 가능했던 해결책이 있다.

 

ⓒ 용현지 기자

알: 입찰계약이 이미 공고되어서 뒤집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 학교가 사장님들께 할 수 있는 최상의 조치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하: 대화하면서 모색해봐야 한다. 학교 운영 주체가 다 참여해야한다 학교 당국, 학생대표, 임차인 등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이 사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다른 대학들은 법적으로 잘못된 게 없으면 그냥 넘어갈지라도 우리 학교는 성공회대학교니까 학교의 다양한 구성 주체, 이를테면 교수 대표, 직원 대표, 학생 대표, 세입자 대표가 모여서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다.

 

알: 대학역량평가 기준에 교사 충원율이 들어가 있듯 교육권 질적 상승을 위해서는 교수의 수가 중요하다. 하지만 학교 당국은 교육권 질적 상승을 위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강사법과 관련 없이 강사들을 조정했다. 시간강사가 줄었다고 해서 정교수의 수가 늘어난 것도 아니다. 학교의 논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 사실 내 직책도 전임교원이 아닌 대우교수이다. 겉으로 보면 연구실도 있고 그럴듯한 보직도 있으니 정교수와 똑같아 보일 뿐이다. 4대 보험도 보장받지 못하는 나는 어쩌면 시간강사보다 더 열악한 대우교수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는 강사 수를 조정하는 것이 앞으로 입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어 어느 해를 기점으로 정말 심각한 상황이 될 때 학교가 살아남기 위한 준비라고 말한다. 학과 폐지 문제에 대해서도 학교 측에서 “대학이 없어지는 것보다는 과가 없어지는 게 낫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우리 학교는 돈이 없는 대학교이다. 그래서 경영자들이 학생들의 등록금을 최대한 아끼면서 학교를 운영해야하는 정신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가능한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우리가 이걸 교육부나 정부가 가진 평가 지표에 의해서만 결정할 게 아니라, 비용이 좀 들고 평가지표가 낮아져 경쟁력이 낮아지더라도 우리 학교만의 독특한 철학과 정체성을 추구했으면 좋겠다.

 

알: 시간강사 해고 논란이 우리 학교에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비용을 이유로 강사를 줄이는 것은 많은 대학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대학들의 전반적인 조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 학교 내에는 저항하는 집단이 있어야 한다. 이번에 성공회대학교 복사실·문구점 지킴이들을 찾아가 피켓을 쓰면서도 ‘교수 중 한 명 정도는 투쟁하는 학생들을 도와줘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노동대학 학장이라는 사람이 이 사태에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겠는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 학생들의 판단이 옳지 않다고 해도 그런 의견집단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대학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다.

성공회대학교가 인권과 평화만을 앞세우다가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학생들은 “색깔 빼면 우리 대학이 무엇으로 경쟁할 것이냐. 우리 학교는 색깔 빼면 3류 대학이다.”라고 반박했다. “대학이 문을 닫더라도 우린 끝까지 버텨 버릴 수 없는 우리의 가치를 지켜보자”라는 의견집단이 학내에 존재하는 건 전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데에 기여를 한다, 그래서 나는 소수의 입장에 서는 편이다. 혹시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그 사람들 편이 한 명 더 있다는 것이 전체에 큰 도움이 된다.

 

알: 앞으로도 학생들과 연대할 계획이 있는가?

하: 나는 계획을 잡고 연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또 생기면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게 내가 살아온 방식이다. 간혹 가다가 이런 활동을 하면 앞으로가 걱정되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사실 내 인생 계획 속엔 교수란 직함이 없었다. 한 40년 가까이 노동 현장에서 활동하고만 있었는데, 당시 성공회대학교에 故신영복 교수님 같은 분이 계셨으니까 나에게 교수라는 직함이 붙은 것이다. 아직 나는 교수라는 직업이 안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다. 당장 교수라는 옷을 벗게 되더라도 큰 아쉬움이 없다. 그래서 자유롭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교수가 되면서 활동에 제약이 걸리는 부분도 굉장히 많기 때문에 교수를 그만둔다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 걱정거리는 아니다.

 

알: 학생들 중에는 교수들이 학교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학생들도 있다. 교수들이 쉽게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하: 학자들은 행동이 느리다. 우리 같이 노동자들을 위해 오랜 세월 동안 활동을 해온 사람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만 공부를 많이 하신 분들은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교수들은 어떤 의견이 완벽하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거기에 선뜻 찬성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알: “교수들은 완벽하지 않으면 선뜻 나서지 않는다.”는 것이 교수들이 이런 문제에 쉽게 나서지 않는 이유인가?

하: 이 문제로 교수들과 대화를 해본 적은 없다. 그런데 나도 이 문제를 잘 모르는데 바쁜 교수들 중 나보다 이 문제를 더 잘 파악한 교수들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확실히 파악하지 않았으니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들은 아직 학자적으로, 양심적으로 어느 것이 옳은 선택인가에 대한 자신감이 없다. 교수들의 경우 잘못된 선택이 앞으로도 큰 오류로 남을 수 있기 때문에 행동하는데 조심스러운 것이다.

 

알: “교수들은 이런 문제에 느리게 움직인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교수들도 학생들과 함께 연대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하는가?

하: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을 볼 때 항상 우리가 느끼는 것이다. 교수들은 신중하고 한 템포 느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교수들이 학생들을 외면하진 않을 것이다.

 

알: 성공회대학교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 다른 대학교에서는 학교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학생들이 상당히 소수이고 외로워요. 하지만 성공회대는 반대로 이런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학생들이 소수이고 소외감을 느껴요. 이런 학생들을 배려할 필요가 있어요. 이쪽(보수적인 학생들)이 변해야 우리(활동에 적극적인 학생들)가 이기거든요.

어제도 한 대학교를 방문했는데, 그 대학에서는 총장이 등록금을 낮추려고 하자 총학생회가 반대했어요. 겉으로는 학교 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댔지만, 그 학생들은 가난한 학생들이 학교에 많이 들어오는 게 싫은 거죠. 성공회대학교에서 이런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오히려 보수적인 학생들이 위축되는 경향이 있어요.

어제 방문했던 대학 같은 곳에는 저를 한번 보고 운동권이라 판단해 바로 마음을 닫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런 학생들은 그 뒤로 내 말을 절대 안 들어요. 그런 사람들이 바뀌어야 우리가 이겨요.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에요. 성공회대학교에서는 이런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소수가 상당히 외로운 존재라서 그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고, 그들이 우리를 이해하고 바뀔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어요.

 

ⓒ 성공회대 복사실&문구점 지킴이

“여기는 도떼기시장이 아니라 성공회대학교입니다.”

 

학교의 행보가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을 수 있다. 복사실·문구점 사태와 시간강사 대량해고 사태가 자본의 논리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주인은 법과 돈이 아니라 사람이고, 이곳은 ‘인권과 평화의 대학’ 성공회대학교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다함께 공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

 

취재=강민지 기자, 김이슬 기자, 박재윤 기자, 용현지 기자, 이지원 기자

글=이지원 기자

사진=김이슬 기자, 용현지 기자, 성공회대 복사실&문구점 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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