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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성추행 이후, 나는 세 번의 상처를 입었다.

[단독] “얼빠진 해병대”…군복 입고 여성 3명 성추행 혐의

2016-03-13 16:45

휴가를 나온 해병대 소속 장병이 지나가던 여 성들을 잇따라 성추행한 혐의로 붙잡혔습니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강제추행 혐의로 해병 대 1사단 소속 김 모 상병을 현행범으로 체포했 다고 밝혔습니다. 김 상병은 지난 12일 오전 0시 40분쯤 술에 취한 상태로 서울 창천동의 한 거리에서 여성 3 명의 신체 부위를 잇따라 만지고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군복을 입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김 상병은 검거 당시 혐의를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 으며 군 헌병대로 인계됐습니다.

[ 김순철 / liberty@mbn.co.kr]

 

나는 성추행을 당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3월 12일, 나는 자정 즈음 친구와 함께 술집 계단에 서서 입장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로 몸을 돌리며 내 앞의 사람과 등을 진 자세로 서 있었다. 한참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엉덩이와 다리 사이에서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오가니, 내 패딩이 닿는 것이거나 타인의 신체가 의도치 않게 잠시 닿았나 보다 생각하고 다시금 대화에 집중했다. 그런데 계속 느낌이 이상했고 나는 이윽고 그것이 누군가의 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손은 내가 찰나에 그런 판단 을 내리는 와중에도 계속 머물러 있었다. 나는 뒤돌아보았다. 군복을 입은 군인이었다. 그 군인은 마치 어린 시절 친구의 사탕을 훔치고 모른 체하는 것처럼 티 나게 몸을 돌리며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으며 모른 체를 했다. 그 군인은 취한 척을 하였지만, 술 냄새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나는 당황했고 무서웠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첫 번째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 소름 끼치는 인간과 장소와 상황으로부터. 그래서 나는 친구와 함께 자리를 떠났다. 한 10m~20m쯤 걸어갔을 때, 나와 친구는 다시 그 술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왜 내가 자리를 떠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군인이 또 어떤 죄 없는 여성분들을 추행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술집 주인에게라도 알려서 쫓아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입구에 다시 도착했을 때, 문득 그 주변에서 저 군인이 너도 만졌어? 하는 이 야기를 하는 여성분들을 마주쳤다. 나는 다가가서 사실 확인을 한 다음 같이 술집을 들어갔다. 들어가서 그 술집의 직원에게 말을 하였다. 경찰을 부른다든가 하는 별다른 조처는 없었다. 나는 당황했고 그 군인은 태연자약하게 술집을 벗어나 산책하듯 천천히 걸어갔다. 그 군인은 벗어나는 와중에도 길거리에 서 있던 여성들의 엉덩이를 만지고 지나갔다. 나와 피해자들은 같이 그 군인을 쫓아갔다. 쫓아가다 나는 친구의 위치를 확인하려 전화를 한다고 잠시 뒤처졌다.

 

신고와 연행의 과정에서: 남성, 군인에 관한 묵인과 더할 나위 없는 관용을 마주하다.

  그러다 약간 헤맨 끝에 다른 피해자 여성분들과 마주쳤고, 그 남자 는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우리 바로 맞은편의 지하 노래 방 앞에서 담배를 꼬나물고 있었다. 그 여성분들은 이미 신고를 하였다고 했다.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나 자신이, 이런 표현을 쓰면 웃기지만, 고등교육을 받는 여성으로서, 이런 상황쯤 잘 대처하리라 생각 했었는데,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던 조금 전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어쨌든 우리는(피해자, 목격자 여성분들과 나를 우리라고 통칭하도록 하겠다.) 그 군인의 바로 앞에서 있었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 고 싶었지만 그럴 힘이 있는지도 미지수였고 그 군인의 신체를 잡기엔 무서웠고 잡기도 싫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니 그 군인은 노래 방안에 들어갔다. 우린 그 계단을 따라갔고 그 남자는 다시금 나왔고 우리 또한 뒤로 물러나서 다시 후퇴했다. 그러자 노래방에서 주인인 듯한 4~50대 사이의 아저씨가 나오셨다. 나는 ‘이 군인은 변태고 성추행을 했으며 경찰을 불렀으니 아저씨가 이 군인 도망 못 가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군인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다음 이어진 아저씨의 말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군인인데 봐줘라.”

 

  그 노래방 아저씨에게 나만 한 딸이나 조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감상적인 부분은 차치하고라도, 우리는 피해자였으며 그 군인은 피의자였고, 우리는 상대적 약자로 곤경에 처한 상태에서 남성 어른이기에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 노래방 아저씨에게 되레 우리의 피해 상황을 평가절하당하고 그리하여 우리의 인격을 깎아 먹는 수치감마저 느꼈다. 그 사람이 군인이건 노인이건 무엇이건, 심지 어 여자건 그 조건들은 처벌의 경중 혹은 처벌 자체의 무산과 무관하다. 우리가 피해자고 그 사람이 피의자란 사실, 그리고 성추행이라고 느낄만한 타인의 신체 부위를 허락 없이 만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예 외 없이 성추행이란 것과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처벌을 받아야함은 당연한 사실일 따름이다. 나는 두 번째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경찰차가 왔고, 우리는 인근 지구대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간단한 인적사항을 말하고 조사하는 도중, 그 군인은 경찰서 내의 봉에 연결 된 수갑을 차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이름과 번호를 대었고, 그 상황은 그 군인과 분리된 장소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불만이고 무서웠다. 모두가 정신없는 상황에서, 나는 무섭지만, 그 군인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군인은 휴대전화기를 세워서 후면 카메라를 바깥에 향한 채로 있었다. 나는 주시했다. 이윽고 핸드폰 기본 카메라의 동영상 저장 시 나는 소리가 났다. 나는 직감했고, 경찰 아저 씨에게 저 사람이 동영상을 찍은 것 같다며 확인해달라고 하였다. 그 군인은 아무 사진첩이나 보여주다가, 다른 피해자의 지적에 결국 동영상을 찍은 것이 들통났고, 자신의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했 다. 그 폰은 압수당했다. 그리고 그 군인은 지구대에 계속 있어야 했 고, 아마도 헌병대로 넘겨지리라 생각한다.

 

상담센터로 향하는 도중: 이대생에 관한 편견, 여성의 몸가짐에 대한 강제

  그리고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은 경찰차를 나눠 타고 여경이 있는 인근 상담센터로 향했다. 향하는 도중에 나는 목격자인 내 친구와 함께 그저 일상얘기를 하다, 학교 얘기가 나왔다. 경찰 아저씨는 반색하시 며 이화여대생이냐고, 좋은 학교 다닌다고 하였다. 나는 이대를 다닌 이후로 그런 겉보기 듣기 좋은 말 이후엔 언제나 역접과 함께 내게 상처 주는 말들이 동반되는 것을 알기에 그 얘기가 전혀 달갑지 않았고 오히려 무서웠다. 어떤 편견을 가진 말이 뒤따를까 싶어서. 내 예상은 정확했다. 경찰 아저씨는 이런 얘기 하면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하시며(싫어할지도 모르는 얘기는 그냥 하지를 않는 게 상책이다. 네가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 성질이 이러하니 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얘기해서 너에게 상처를 줄 거라는 것과 도대체 뭐가 다른가) 이대생들은 술을 잘 마시는 거 같다는 소리를 했다. 나는 그 일반화에 화가 났다.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오며 이런 때 없는 일반화의 오류는 무엇이란 말인가. 당장 재학 중인 학생들만 만 구천여 명인 종합대학의 구성원들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쉽게 내려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인가?

  그래서 나는 그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 같으시고, 제 동기 중 에도 잘 마시는 친구도 있지만 한 잔만 먹어도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있다는 말을 하였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아저씨가 보는 이대생 중에 술 잘 마시는 이대생이 많은 건, 아저씨가 이대 인근 지구대에서 야간근무를 자주 하기에, 또 사람들은 비단 이대생에 국한하지 않고 누구나 주로 밤에 술을 마시기에 아저씨가 자주 보는 이대생 중 술을 잘 마시는 이대생이 많을 것이라고 나름의 논리적 반박을 덧붙였다. 실상 경찰 아저씨가 자주 목격하는 사람들은 아저씨의 근무시간과 직 업(경찰관)으로 인해 술 먹은 직장인, 술 먹은 노숙자, 술 먹은 대학생... 일 것이다. 이대생은 그 수많은 사람 중 어느 종합대학을 다니는 대학생일 뿐이다. 덧붙이는 와중에도 나는 상처 입었다. 왜 내가 피해를 봐서 이동하고 있는 와중에 나를 보호해줘야 할 공권력은(말단이 라도 그것은 공권력이다) 저런 말 같지도 않은 말로 내게 상처를 주는 가.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가관이었다. 걱정하는 건네는 말로, 나는 세 번째로 상처 입었다.

 

“아가씨, 이 밤중에 술 적당히 마셔요.”

 

  나는 너무 화가 났고 또 화가 났고, 내가 배운 것과 옳다고 믿는 것들을 다 저버리는 오늘의 밤에 절망했다. 나는 그래도 당당했기에, 반박하였다. 아저씨. 제가 성추행을 당한 것과 제가 이 밤에 술을 적당히 마셔야 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에요. 나는 그 말들은 언제나 네가 너 스스로 쉽게 상처 입을 여지를 보여줬으니 너는 내게 혹은 누군가에게 상처 입어도 유구무언이어야 한다는 폭력에 가까운 압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했다. 왜 내가 피해자이고, 공권력의 보호를 요청한 상태에서 내 몸가짐을 탓하는, 이런 폭언을 들어야 하지? 내가 뭘 잘못했지? 나는 오늘 하루 열심히 놀기 위해 며칠 동안 밤새 과제를 마감하고 제출하고, 열심히 수업을 듣고, 동아리 일도 제때 처리하고 발품을 팔았으며, 그 모든 걸 다이어리에 기록해 서로 겹치지 않도록 일정을 조율하였는데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고 또 당하고 상처를 받아야 하지?

 

‘적당히’라는 것은 내 행동의 주체인 내가 판단한다.

  피의자가 군인이니 처벌을 ‘적당히’하고 봐주라던 노래방 아저씨, 여대생에게 ‘적당히’ 술 마시고 들어가란 경찰 아저씨. (나는 안다. 이대생임을 칭찬하고 이대생은 술을 잘 마신다며 적당히 마시고 들어가라는 그 얘기는, 뭔가 부잣집 아가씨들에 정숙하고 학벌 좋은 남자 좋아해서 그런 남자랑 결혼하길 꿈꾸며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교양을 쌓고 적당히 현모양처답게 자라길 바라는, 사회에서 고등교육을 이수 하는 여성들 특히 이대생에게 강제되는 틀이자 또한 그런 자신들의 같잖은 기대에 어긋나는 밤새 ‘술’을 마시고 ‘놀고’싶어 하는 여성들을 탐탁지 않게 보는 시선이자 이들을 쳐내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여성상을 2016년에도 지켜가고 싶어 하는 칼날과도 같은 말이란 것을)

‘적당히’는 내 행동의 주체인 내가 판단합니다.

 

그럼에도: 살아가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나는 오늘 성추행을 당했다. 나는 세 번 상처 입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사실’은 ‘원래’그러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원래’ 그러한 것은 바뀔 수 있다고. 변할 수 있다고 변해야만 한다고.

  우리는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수치스러워해야 한다. 성추행을 당한 사실이 아니라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그런 모멸적이고 폭력적인 시선과 언사가 쏟아지는 오늘의 상황, 그 사실을 우리는 수치스러워해야 한다. 집이 도둑을 맞거나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에게 “네 몸가짐이 잘못되었어.” “너 왜 거기에 그 시간에 있었니.” “너 적당히 해.” 라는 말을 누가 건네던가? 성추행 피해자에게도 여타 범죄 피해자들 과 마찬가지로, 가장 처음으로 건네져야 하는 말은 “괜찮아” 이어야 한다. 나는 오늘 발목까지 오는 청바지에 회색 겨울 목폴라 티에 패딩을 입고 있었다. 몸가짐, 같잖은 소리다. 그건 피해자가 비키니만 입 고 있어도 할 소리가 못 된다.

몸가짐을 조심해야 할 대상은 피해자가 아니라 성적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는 피의자들이다.

이 글을 썼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는 피해자고,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부끄러워하거나 숨길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피해사실과 대처경험을 드러내면서, 이를 겪지 못한 타인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같은 피해자에게 위로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발화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의 상처까지도 치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 이 글을 읽을 다른 사람들이 이런 피해를 볼 때 주저 없이 신고하란 얘기, 이런 피해를 당할 때 주저 없이 도와주란 얘기를 해주고 싶어서다. 이건 옷차림, 주량, 활동반경 따위 개인의 문제에 국한 될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 제’임을 모두가 인식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내 파급력이 사회의 양화에 이바지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익명을 쓰지 않고 이렇게 글을 썼다.

  나는 경찰서에서 몇 시간 조사를 마치고 나와 같은 피해자와 목격자끼리 술을 마시고 밤새워 놀았다. 그것 또한 나름의 치유방법이며 숨길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상은 내 상처와 무관하게 흘러가야 하며, 일상이 흐름으로써 내 상처도 치유되리라 믿는다. 비단 성추행뿐만 아니라, 다른 범죄, 다른 인간관계 등에서 상처 받은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을 목격한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그 상황과 사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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