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6 (화)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선배들의 솔직한 직장생활] 신입사원 퇴근일지②

취업 성공이 정말 끝일까. 우리는 행복하고 즐거운 ‘사회생활’을 하게 될까. 선배, 동기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문화생활도 즐기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떤 게시판에서 본 것만 같은 막장(?) 선배, 막장 상사에게 시달리게 될까.

우리의 신입사원 선배들이 보내온 일기는 건조하고 퍽퍽했다. 한 사람은 군대 같은 조직 문화가 낯설고 불편하다고 했고, 또한 사람은 권태에 찌들어가는 자기 얼굴 때문에 ‘3주 묵은 농담’을 곱씹었다고 고백했다. 의외로 ‘회사’란 ‘대학’ 만큼이나 정작 들어오면 별 거 없는 평범한 곳 아닐까. 솔직한 두 남자의 ‘신입사원 퇴근일지’.

* ‘신입사원 퇴근일지’는 실제 한국외대를 졸업한 선배님들이 솔직담백하게 작성한 일기로, 한 달에 한번 <외대알리>에서 연재됩니다. 사기업 마케팅부서와 언론계에 입사한 선배님이 각각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지난호 퇴근일지를 보고 싶은 독자님은 hufsalli@gmail.com 으로 문의바랍니다.

- 권혁일(언론정보 07)

: 2013년 10월 1일 호남지역 모 일간지에 수습기자로 입사

10월 29일

20번째 퇴근.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경찰서 마와리(경찰서 등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는 일)를 돌고, 경찰청 기자실에 들어가 각종 지역일간지 사회면 기사를 훑어보며 행여나 물 먹은 것은 없나 체크하다가 바로 나왔다. 수습기자는 경찰청 기자실에 낮 동안에는 들어가 있을 수 없다는 규칙 때문이다.

경찰청 기자실은 수습기자는 9시~18시 사이에는 들어갈 수 없다. 기자단 규칙이라는데, 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여기는 이런 규칙이 있다.

사실 기자실 출입이 무슨 대단한 특권 같은 것은 아니다. 들어갈 수 있다손 쳐도 어차피 선배들의 위세 속에서 군대 내무반에 앉아있는 이등병처럼 어색하게 앉아있기는 싫으니 일부러 안 들어가고 이곳저곳 돌아다닐 테지만, 별 특권도 아닌 것을 특권으로 만들고 있으니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다.

경찰청 청사 구석에 있는 조그만 카페에 앉아 나는 오늘자 사건 보강 취재를 시작했고, 동기는 바이스와 함께 현장 아이템 취재를 하러 나갔다. 사회부 기자 수가 적기 때문에 무슨 체계적으로 나뉜 팀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고, 그냥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움직인다.

오후에는 경찰청 국정감사가 있었다. 나는 국정감사장 한 쪽에 찌그러져서 속기를 했다. 처음에는 펜으로 하다가 짜증나서 그냥 노트북을 펼치고 속기했는데,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속기하던 게 도움이 좀 된 것 같다. 물론 이 속기록이 딱히 어디에 쓰일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단 적어놓는 게 마음은 편하니까.

저녁에는 다시 경찰서에 가서 사건을 체크하고 돌아와서 방송뉴스를 체크하고, 바이스와 아이템 회의를 하고, 사건스트레이트 기사 교정을 받았다.

하루 일과는 보통 그렇다. 아침 7시 무렵부터 경찰서 두 곳의 강력팀과 형사팀, 정보계, 교통사고조사계 등을 돌며 전날 있었던 사건사고 정보를 수집하고, 경찰청에 가 내가 놓친 것은 없는지 체크를 한다. 그리고 수집한 사건사고 정보를 가지고 담당 경찰관 등을 상대로 보강 취재를 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써서 바이스에게 넘긴다. 그러면 바이스는 그 기사를 보고 빠진 부분이 없는지 검토한 다음 보강취재를 지시하거나 문장을 다듬어 송고한다.

취재기자들은 오후 2시쯤에 편집국에 들어가 기사를 쓰고 송고를 하는데, 나는 아직 수습기자라 내 기사를 직접 올리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주기적으로 경찰청 상황실과 소방본부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사건사고를 체크하고, 연합뉴스나 뉴스1, 뉴시스 같은 통신사 홈페이지를 모니터링하며 속보를 확인하는 등의 일을 한다.

그러고 나서 저녁 6시쯤에 명목상 퇴근을 하면 곧장 다시 경찰서 두 곳을 돌고 경찰청으로 가 방송뉴스를 모니터링하고, 사회면 현장취재 아이템 회의를 하고, 오전에 썼던 사건스트레이트 기사 교정을 받는다. 그리하여 실질적으로 퇴근하는 것은 밤 10시.

물론 전국지나 방송사에 비하면 그래도 한참 덜 힘든 것이다. 하루에 4시간 이상 자는 게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라고 들었는데, 여기는 지역 단위인데다 규모도 크지 않아서 비교적 덜 빡센 것 같다. 최근에 한 방송사의 수습기자를 알게 돼서 말 놓고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새벽에도 쪽잠 자며 마와리 돌곤 한다고.

사실 몸이 힘든 것보다는 군대 같은 선후배 상하관계에 적응하는 게 더 힘들다. 그런 중에 반말로 이야기할 수 있는 수습 친구가 생겨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

K-35 Soorm(29)

: 2014421S모기업 마케팅부 정식사원 입사

58

14번째 퇴근.

영업관리로 매주 실적 전망, 소위 '숫자'라고 불리는 것을 다루고 있는 나지만, 사실 나는 숫자에 취약한 사람이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점수는 늘 바닥을 기었고, 수학 이전에 산수부터 약해서 모의고사를 치고 나면 각 과목의 점수를 합산하는데도 늘 계산기의 힘을 빌리곤 했다. 어느샌가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속한 팀,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떠나서 사회생활, 그리고 세상은 온통 숫자밖에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500점 만점에 몇 점 하는 것으로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그리고 그 이후의 인생들을) 아이들을 등급화 하듯, 연봉에 따라 사람을 보는 시선을 고친다. 유명 연예인이 몇 살 연하와 결혼했는지를 궁금해 하고, 건강한 몸 이전에 체중계에 찍혀 있는 숫자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얼마를' 기부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어떤 노래가 무슨 차트에서 몇 주째 몇 위를 했는지, 어떤 책이 몇 쇄를 찍었고, 몇 부가 팔렸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모든 것을 계량화하고, 수치화될 수 없는 가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치부된다. 나 같은 사람이 숫자로 모든 것을 말하는 세상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그들의 표현방식을 빌어 말하자면) 몇 평의 아파트에서 몇 명의 자식을 낳고 몇 살까지 살다가게 될지, 자신이 없다.

512

16번째 퇴근.

TV나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야근마저 낭만적일 회사 생활을 꿈꿨다. 하지만 곧 그것은 논스톱을 보고 대학생활, 진짜사나이를 보며 군생활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에 쫓기고 사람에 치여 힘이 들지만 그 나름의 치열함이 깃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출근길은 그저 졸림의 연속일 뿐이고, 피곤하지만 나름의 성취가 있을 것이라 상상했던 야근은 어깨 결림과 뻑뻑해진 안구일 뿐이었다.

결국 회사생활이란, 나아가 사회생활이란 모두 권태로 가는 길목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평소 쇼핑에 관심이 없었던, 그리고 돈이 없어서 잘 하지도 못했던 나지만, 요즘 인터넷 쇼핑을 들락거리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쇼핑 중독이 되는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권태가 찾아오는 삶에서 가장 즉각적인 자극을 줄 수 있는 합법적이고 비도덕적이지 않은 행위 중 하나가 소비인 것 같다. 나는 굳이 없어도 될 티 테이블을 침대 옆에 두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퇴근을 하고 있다.

513

17번째 퇴근.

언젠가 나의 사수가 다른 팀의 차장님에게 했던 농담을, 차장님은 3주 동안이나 나의 사수를 볼 때마다 곱씹었다. 3주 묵은 농담을 곱씹다니, 3년 묵은 쌀로 지은 밥만큼이나 끔찍하다. 얼마나 삶이 지리멸렬하면 이 사람들은 3주 묵은 농담을 다시금 떠올리고 또 웃고 하는 것일까. 회사를 다니다보면 깜짝 놀라게 되는 사실을 하나 발견한다. 바로 회사 사람들의 표정이 똑같다는 것이다. 지루하고, 어딘가 심드렁하고, 늘 피곤함이 얼굴에 덧씌워져있다.

그런데 퇴근 길 엘레베이터 벽면에 일그러진 내 표정을 무심코 쳐다보니, 내가 늘 보아오던 그 똑같은 표정이 내 얼굴에도 그려져 있었다. 하루 종일 엑셀을 만지며 숫자를 더하고 또 빼고 하는 일상이 어느새 내 얼굴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보다. 나는 억지로라도 얼굴 표정을 조금 밝게 웃는 얼굴로 만들려고 3주 묵은 농담을 다시금 곱씹어본다

516

20번째 퇴근.

오늘 한 일
7:30 출근해서 커피내리고 화분에 물주기(언제나처럼)
7:40 과장님이 연차휴가라 대신 연차 결재 올림
8:10 기획팀 요청으로 협력사 대표이사 주소록 새로운 포맷에 맞춰서 수정
8:30 너 뭐하냐 하시던 부장님이 왜 네가 이걸하고 있어 하면서 기획팀에 전화, 작업 중단
8:45 몰래 마무리해서 기획팀에 메일 송부
9:30 전자결제용 공인인증서 갱신, 수수료 지급 품의 상신, 부가세 나눠서 계산해야 되는데 깜빡해서 당황.
9:50 사업부장 경비처리. 내가 먹지도 않은 밥들을 처리하고 전표 입력.
10:00 미수채권현황 작업 시작
11:30 점심시간, 오늘도 내게 메뉴를 고르라는 차장님의 요구에 딱히 먹고 싶은게 없어서 우물쭈물거리다 제육쌈밥
13:30 재무팀에서 채권자료 달라고 닦달, 나는 자료를 아직 다 받지 못해 죄송하다고 전함
14:00 세월호 관련해서 화재 안전교육 실시, 옥상으로 대피 훈련, 나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 마음이 급함.
14:30 채권 작업 재개.
15:30 작업 중 사무실 커피가 떨어져서 비품 구입하러 외출
17:30 부장님 퇴근
17:40 곧 다른 팀원들도 모두 퇴근
18:00 재무팀에서 다시 한 번 독촉 전화.
19:00 재무팀 퇴근, 주말 출근해서 작업할 테니 오늘 퇴근 전에 자료 보내 놓으라고 함
19:30 자료 모두 받음. 작업 시작
20:50 자료 완성. 재무팀 메일 송부. 퇴근

오늘 하고 싶었던 일.
17:00 금요일이니 칼퇴근 후 잠실 야구장에서 NC:두산 경기 직관

이렇게 또 한 주가 지나간다.

K-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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