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3 (토)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잉여들의 방학을 위하여

이곳은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의 한 자취방. 침대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아, 오늘의 주인공 김잉여씨다. 외대의 방학이 시작 된지 벌써 일주일이나 되었지만 김잉여씨는 딱히 하는 일 없이 5평의 좁은 방 안에서 먹고/자고/싸고를 반복하고 있다. 12:00 PM. 드디어 김잉여씨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그/그녀의 눈에는 구석에 일주일째 짜게 식어 있는 책가방, 그리고 가방에서 삐죽 튀어나온 외대 알리 6월호가 비친다. 할 것도 없는데 저거나 읽어야겠다며 외대 알리를 펼치자 ‘잉여들의 방학을 위하여’라는 기사제목이 보인다. ‘잉여’라는 글자를 보자 지난 일주일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 스쳐갈 게 없다. 생각에 잠기는 그/그녀. 그리고 결심한다, 오늘은 문화생활을 좀 즐겨볼까? 굿 다운로드 사이트에 접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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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펼쳐지는 영화 속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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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1. 잉투기: 잉여+격투기가 아니라구요!

감독: 엄태화

주연: 엄태구(태식/칡콩팥), 류혜영(영자), 권율(희준)

장르: 액션, 드라마

러닝 타임: 98분

 

주인공들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만난다. 그들이 사용하는 닉네임도 참 별로다. ‘젖존슨’과 ‘칡콩팥’. 아무튼 이 둘은 인터넷으로 ‘누가 더 싸움을 잘하는가’로 싸우다가 실제로 만나 싸우게 되고 이 대결에서 진 콩팥이는 존슨이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를 가는 내용이다. 그래도 내가 철없는 저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잉여씨. 칡콩팥은 참 찌질한데 표정과 말투는 세계선수권 나가는 선수 마냥 진지하다. 어, 근데 이 영화 생각보다 재미있다. 이런 영화가 재밌다니, 어이가 없지만 참고 보긴 한다. 그러나 영화가 끝난 후 잉여씨는 인정한다, 행동하고 생각하는 영화 속 저들이 아마 가만히 있는 나보다 나은 인생을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영화#2.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감독: 벤 스틸러

주연: 벤 스틸러(월터 미티), 크리스틴 위그(셰릴 멜호프), 숀 펜(션 오코넬)

장르: 모험, 드라마, 판타지

러닝 타임: 114분

 

콩팥이가 나보다 낫다니, 나도 나름 외대생 인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잉여씨는 어서 다음 영화를 다운로드 한다. 아, 벤 스틸러가 주연인 영화다. 벤 스틸러 역시 찌질한 캐릭터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계기로 인해 그린란드로 즉흥여행을 떠나게 된다. 웅장한 산과 바다를 배경으로 길고 긴 아스팔트 위를 보드로 달려 나가는 벤 스틸러의 모습. 여행을 통해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모습에서 벗어난 그는 어느 장면보다 자유로워 보인다. 그린란드와 벤 스틸러, 그 조합이 참 시원하다. 잠시 모니터에서 눈을 떼어 어둡고 퀘퀘한 냄새가 나는 자신의 방을 둘러보는 잉여씨. 잉여씨는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 청소를 시작한다. 잉여씨의 마음도 저 그린란드의 풍경처럼 상쾌해 진다. 방이 깨끗하고 밝아졌다. 아, 내일은 멋진 포스터 하나 벽에 붙여 놔야겠다.

 

영화#3.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잉여인 듯 잉여 아닌 잉여 같은 그들

감독: 이호재

주연: 이호재, 이현학, 하승엽

장르: 다큐멘터리

러닝 타임: 105분

 

알리에서 추천해준 영화를 봤더니 뭔가 달라진 느낌이다. 다음 영화도 기대해본다. 이 영화는 평범한 한국의 대학생이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고 무작정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는 내용이다. 부족한 여행자금이지만, 자신들이 묵는 호텔의 홍보 영상을 찍어서 여행하는데 보탠다. 잉여씨의 마음에 의문이 생긴다. 저들이 잉여라고? 영상도 만들고 아이디어도 좋은데? 아, 저들은 만렙 잉여인가 보다.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실소하다 질문을 던진다. 왜 감독은 자신들을 ‘잉여’라고 했을까.

 

잉여 (剩餘)[잉ː여] [명사]

1. 쓰고 난 후 남은 것. ‘나머지’로 순화

돈은 용돈이 들어오면 항상 다 써서 남은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러니 ‘돈’에 ‘잉여’라는 말이 붙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잉여씨. 그렇다면 시간 때문이지 않을까? 비록 그동안 무언가를 할 때 시간이 부족하다며 불평했었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자면 시간은 항상 남았었다. 과제하고, 공부하고, 놀고 남은 그 나머지 시간에 이들처럼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등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들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남는 시간을 잘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잉여씨는 한 평생 고치고 싶던 자기 이름에 대한 걱정을 한시름 놓는다. 그리고 이번 방학은 저들처럼 살아보리라고 생각한다.

 

김주현 기자 wmgusd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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