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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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도 이런 총장과 ‘대화’해야 한다.

[칼럼] 우리도 이런 총장과 대화해야 한다.

-이화여대가 남 이야기가 아닌 이유

지난 7월 말부터 지금까지 이화여대 학생들이 학교 본관을 점거하고, 미래라이프 단과대학 설립을 학생들의 의견 수렴 없이 졸속으로 처리한 학교와의 대화를 요구했다. 경찰력까지 동원하며 강하게 대응했던 이대 본부는 지난 3일 계획을 철회하며 사태는 일단락된 듯 보인다. 하지만 이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촉발시킨 원인이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 학교의 의사결정 구조와 그 태도에 있었다. 이는 중요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외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외대는 고백, 이대는 파.괘.한.다.

학교를 사랑해 달라. 김인철 한국외대 총장은 지난 6월 총장과의 대화 행사에서 학생들에게 때아닌 고백을 했다. 김 총장은 물에다 부정적인 말을 한 후 꽃에다가 주면 죽어버린다는 잘못 알려진 과학적 사실을 이야기하고, “학교가 최선을 다하고 여러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도 여러분들이 부정적인 측면에서 평가하고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진다면 달리 방법이 없다.” 라고 말하며 학생들이 학교의 정책에 긍정적인 판단을 해야 학교가 발전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뒤이은 발언에서 김 총장은 신설학부의 명백한 문제점을 토로하는 LT학부 학생회장에게 “문제를 부인할 수 있으나 하진 않겠다.” 며 긍정의 힘을 믿고 기다리다 보면 해결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학생들이 제시하는 문제를 외면하고, 기다리다 보면 알아서 잘 되어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학생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대 역시 학교 본부가 학생들의 의견 수렴 없이 학내 사안들을 처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5월에는 이대 학생들이 프라임 사업에 제출을 철회하기 위해 본관 점거 농성을 진행했지만, 학교는 본관에 들어찬 학생들의 눈을 피해 프라임 사업 계획안을 제출했다. 이대 본부는 비슷한 시기에 열린 대동제 기간에 프라임 사업 반대 행동을 할 경우 대동제에 지원되는 교비를 제한할 수 있다는 협박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미래라이프 단과대 설립에 반대하여 본관을 점거한 학생들을 상대로 경찰력을 동원했다. 그나마 설득과 고백이 오가는 외대의 참으로 훈훈한(?) 모습에 비해 이화여대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학교의 태도는 “널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다” 는 식에 가까웠다.

학생, 가만히 있으라.

위에서 살펴본 일련의 사건에서 보여지는 외대와 이대 학교 본부의 태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두 학교 본부가 모두 본질적으로 학생을 학교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시킨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동에는 “우리가 학교 발전 어련히 잘 알아서 하니 학생들은 가만히 취업이나 하고 공부나 하라”는 뜻이 반영되어 있다. 나름의 완벽한 학교 발전 계획을 세운 그들에게 학생의 의견은 별로 중요치 않다. 두 학교에서는 모두 이러한 학교 본부의 독단적인 운영 철학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외대 본부는 전면 상대평가가 외대 학점 경쟁력을 높여 학생들의 취업에 도움이 될 거라며 학생들과의 논의 없이 성적평가방식을 소급 적용해버렸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은 “순수하게 학내 교육 문제 이야기를 하는 학생들만 데려놓고 이야기하고 싶다.”며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주장, 그들의 의견 자체를 부정해버리기까지 했다.

학교 본부가 학생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도 사실은 생색에 가깝다. 최경희 이대 총장은 본관 점거 시위가 한창인 지난 1일 미래라이프 대학 설립을 철회하겠냐는 질문에 대해 “철회에 대해 정확히 말씀드릴 수 없다. 이는 학교의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는 것” 이라 말했다. 그런데 학교 본부 측이 말하는 그 “합법적인 절차”는 학생들의 의견을 배제하고 학교 본부 측 구성원들의 의사결정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한, ‘비민주적인’ 절차일 가능성이 높다. 이대 본부 측은 7월 29일 발표한 미래라이프대학 신설에 관한 입장문에서 에서 미래라이프대 설립을 학교 독단이 아닌 학내 구성원들과의 협의를 거쳐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협의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회의체는 처장회의, 학장회의, 평의원회, 교무회의, 법인이사회다. 그런데 이 회의체들은 평의원회에 입회하는 총학생회장 1명을 제외하면 모두 교수들과 학교 관계자들로만 이루어져있다. 이대 본부의 "협의했다"는 주장은, 학생을 학내 구성원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사실 애초에 이대나 외대나 학생 측이 의결권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내 회의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외대를 살펴보면 학생이 들어갈 수 있는 학교 회의체는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와 대학평의원회 정도인데, 그마저도 기울어진 저울이다. 학교 본부는 등심위에 들어가는 학생 대표 측에게 등록금 산정을 위한 자료도 주지 않고, 대학평의원회에서는 학교 관계자 8명 사이에 학생 측 양캠퍼스 총학생회장 딱 두 명만 들어간다. 특정 사안을 민주적으로 논하는 자리에서는 상반되는 입장들이 동등하게 공존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매우 중요한데, 외대에는 학생 측이 학교와 똑같은 크기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내 회의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 외에는 학생회가 학교 본부 관계자들과 관련 사항에 대해 면담하는 수 밖엔 없다. 심지어는 이 면담마저 잘 안 이루어질 때도 많다. 올해 1월, 성적평가방식 논의를 위한 외대 총학생회측의 면담 요청과 공문 발송에도 답변하지 않았던 외대 서울캠퍼스 교무처장은 총학생회가 교무처로 항의 방문을 하고 나서야 면담에 응하기도 했다.

학생이 철저히 빠진 이러한 의사결정 구조에서 학교가 “구성원과 협의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반쪽도 안되는 사실이며, 학교의 착각이다. 또한 이런 구조 하에서 학생들이 학교 발전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어쩌면 학교가 제일 좋아하는 학생은 역설적이게도 많이 알고 자기 주장을 확실히 펴는 학생이 아닐지도 모른다. 외대 총장의 말마따나 애교심이 넘쳐나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가면서까지 학교가 제시한 학교 발전 방법을 모두 지지하는 학생, 아니면 모든 학내 이슈에 무관심한 학생. 학교는 이런 류의 학생들을 더 좋아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한 짤 요약>

우리는 이들과 ‘대화’라는 것을 해야 한다.

사실 이것보다 더 절망적인 문제는 학교 본부와 학생들은 결국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교육받는 주체인 학생의 권리는 지켜져야 한다. 사실 이 경우에 ‘대화’라는 말이 성립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들어줄 학교 본부는 생각도 안 하는 이상한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학교 본부는 여전히 학생을 두려워하지 않아 의견을 들어주지 않는다. 학생들이 학교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구조적으로 보장이 안 돼있다. 학내 의사결정과정에 포함되지 못하니, 학생들은 학교 본부 측이 진짜 학생들이 면담 등으로 전달한 의견을 고려하고는 있는지 알 길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은 무기력증에 빠진다.

무기력증. 학교와 대화를 원하는 학생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어쩌면 학교 본부는 학생들이 이렇게 제풀에 나가떨어지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힘겨운 상황에서 결국 학교 본부에게 학생들의 의사를 전하려면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을 바라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대화의 ‘판’을 짜야 한다. 학교 본부를 어떻게 설득하고 의견을 관철시킬 것인지. 열심히 고민하고 전략을 연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학생들이 학내 이슈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같이 소통해야 한다.  

이렇게 학생과 학교와의 소통을 지적하는 글의 끝은 흔히, “대학의 지성에 맞는 학교 본부의 성숙한 소통을 기대한다.” 정도로 끝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소통하는 학교 본부는 정말 학생들이 참 오래, 꾸준히 기다려왔다. 하지만 슬프게도 바뀐 게 없다. 이제는 학교 본부의 행동변화를 기대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더욱 더 우리 학생들은 목소리를 더욱 강력하게, 효과적인 방법으로 전달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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