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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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룩스 특집]목숨이 여러개인 그분들의 취미, 야구

|외대알리| 매일 저녁 여덟시 쯤. 당신은 페이스북에 접속한다. 어김없이 야구팬 친구의 글이 떠 있다. “아... 암 걸릴 것 같아.”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대부분이 매일매일 병마와 싸우는 야구 팬 친구를 한 번쯤은 목격하였으리라.

프로야구 700만 관중시대, 수많은 사람들이 주먹만한 공에 울고 웃는다. 그 많은 사람들은 대체 왜 야구에 열광하는 걸까? 이 사람들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이해하고 싶으셨던 많은 분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니가 야구를 그렇게 좋아해? 알리로 따라와

 기자 : 수소문 끝에 야구에 목숨 건다고 유명하신 두 분 모셨습니다. 자기소개 먼저 해주세요. 일단 저부터. LG8년차, 프랑스어교육과 13학번 이하연입니다. 제가 극성팬 인터뷰 해야 한다고 하니까 주변 분들이 거울 놓고 셀프인터뷰 하라고들 말할 정도로 LG를 좋아해요.

민철 : 안녕하세요. 롯데야구 때문에 수능 두 번 본, 네덜란드어과 14학번 민철입니다 반갑습니다!

승원 : 작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4강 진출을 목도한, LG팬 영어교육과 10학번 이승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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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롯데에 인생 배팅중인 민철(네덜란드어14)
아래: 주변에서 많이들 모르지만 사실 누구 못지 않게 엘지에 목숨거는 이승원(영어교육10,무직)

기자 : 야구 팬이 아닌 일반인들, 일명 머글들의 영원한 미스테리가 있죠. 도대체 어떻게 누구는 엘지 팬이 되고, 누구는 기아 팬이 되는 건지! 각자 응원하는 팀은 어디고, 그 팀의 팬이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민철 : 롯데 자이언츠 팬이에요. 아버지가 경남 분이시거든요.어릴 때부터 주말마다 경기를 봤죠. 요새 애들이 뽀로로 보듯이(폭소). 제대로 팬이 된 건 2008년 로이스터 감독이 부임하면서 부텁니다. 이 때 처음으로 야구의 재미를 느꼈죠.

승원 : 글쎄, 저도 그게 궁금하네요. 도대체 제가 왜 LG팬인지. 그래서 아버지께 여쭤 봤는데, LG는 그냥 가족처럼 삶의 일부인 거라 이유가 없는 거라 하시더라구요(웃음)

기자 : 두 분 다 모태 팬이시구나. 저도 그래요. 아버지가 프로야구 창설 연도부터 쭉 한 팀만 응원하셔서 선택의 기회도 없이 LG 트윈스의 팬이 됐어요. 대부분의 야구팬이 두 가지 부류로 나뉘는 것 같아요. 저희 셋처럼 모태 팬이거나, 아니면 한 순간 딱 꽂혀서 팬이 되거나.

저 같은 경우는 처음 야구장에 간 날이 그래요. 아버지가 참 오래 야구를 좋아하셨는데, 알고 보니 LG가 야구를 너무 못 하니까 아버지가 야구장을 안 가신 거에요. 그래서 전 중학교 때까지 아버지가 야구를 좋아하시는지도 몰랐어요. 그러다가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에 처음 갔는데, 응원에 확 꽂혀버려서 LG팬이 됐고 완전 미쳐서 두 달 동안 야구 게임만 하며 룰 공부만 했죠. 말 그대로 LG 팬이 되려고 공부를 한 거에요. 하하...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민철 : 사실 저는 2008년에는 그냥 재밌어서 봤고, ‘운명이구나싶었던 건 2009년이에요. 당시 조성환 선수가 부상을 당했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한 게.... 울컥울컥 하고. 그 때 비로소 롯데가 내 팀이구나싶더라구요.

기자 :한달에 야구장은 몇 번 정도 가시나요? 돈은 얼마 정도 쓰시는지 궁금하네요.

민철 : 야구장은 많이 못 가요. 롯데의 홈 구장이 부산이다 보니까, 수도권 구장에서 수도권 홈 구단과 경기를 하지 않으면 부산까지 가서 봐야 하거든요. 물론 인천까지는 커버하는 편이고(웃음). 재수하면서 목표가, 대학에 가면 수도권에서 열리는 모든 롯데 경기를 다 가는 거였거든요. 그리고 돈은.....일단 유니폼이 네 개고, 정말 야구 보러 부산까지 가기도 하고...

승원 : 야구에 쓰는 돈은 얼마 없습니다. 거지라서(너털웃음)

기자 :백수니까(웃음)

승원 :. 무직(폭소). 하지만 시간만은 누구에 뒤지지 않게 많이 쓰는 것 같아요. 돈은 없고 시간은 많으니. 야구 보는 시간 3시간, 걱정하는 시간 2시간, 뉴스 보고 복습하고 프리뷰하는 거 2시간. 하루에 적어도 7시간씩은 쓰는 셈이죠. 수업 시간에도 뉴스를 계속 보면서 누가 부상이고 누가 올라오나 이런 걸 계속 체크하고.

기자 : 저도 유니폼만 세 개거든요. 엘지의 상징인 유광점퍼도 있고. * 포스트 시즌을 가을에 하니까 날이 쌀쌀하잖아요. 그 때 입는 게 유광점퍼인데 LG가 하도 바닥에서 구르니 팬들이 그 점퍼를 살 일이 없었죠. 근데 작년에 드디어 11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가면서 가족들이 30만원을 들여서 일괄구매 했어요. 하하. 아버지가 술 거하게 드시고 들어오셔서 하신다는 말이 “하연아! 주문해!”(폭소)

 야구에 목숨 거는 이유는 목숨이 여러개라서가 아니다

 기자 : 대체 야구의 어떤 매력이 여러분을 끌어당기나요. 궁금해요!

민철 : 보다 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고나 할까? 팽팽한 투수전을 보면 긴장되잖아요. 경기가 언제 뒤집어질지도 모르고. 야구는 또 4점 차이까지 한 번에 만회가 가능한 게임이니까..... 그런 게 재미있는 것 같아요. 호쾌한 홈런을 보는 재미도 뺄 수 없죠. 아무리 점수 차이가 많이 나도 홈런 한 방이면 뒤집을 수 있으니까요.

승원 :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야구가 내 삶인데, 삶의 매력이 뭐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굳이 말하자면.....(1분간 침묵) 야구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LG니까 보는 것 같네요. 숙명처럼?

기자 : 월드컵 시즌이고 하니 비유를 해 보자면, 국가대표 한일전을 매일매일 보는 기분인 것 같아요. 내 팀은 한국, 상대팀은 일본(웃음). 많은 분들이 야구를 몸 쓰는 게임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사실은 완전 ‘멘탈 게임’이잖아요. 아무리 약팀이라도 분위기를 한번 타면 뒤집어버리기도 하고, 하위팀이라도 급반등하기도 하고. 정신적인 요소가 정말 많이 차지하는 게임이라는 게 매력 요소인 것 같아요. 약간 육성 시뮬레이션 같기도 하고.

민철 : 진짜 그 비유가 맞는 것 같아요. 매일이 한일전이죠. ,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매일매일 고정프로를 진행하는 느낌이랑도 비슷하죠. 꼭꼭 챙겨봐야 되고, 복습하고, 되게 하찮은 부분에 꽂혀서 열광하고.

기자 : 사실 야구하면 핫 키워드가 바로 아닌가요. 암 걸릴 것 같으면 안 봐도 되지 않나요? 왜 계속 보시면서 암을 키우시는지.

승원 :안보면 안보는 대로 암에 걸리니까요.

기자 :영원히 고통받는구나 진짜.

승원 : 본다는 게 질까봐 안 본다는 건데,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는 거니까요. 야구를 이기기만 하려고 보는 것도 아니고. 하하. LG니까 다 봅니다.

민철 : 애인이랑 한번 싸운다고 헤어지나요. 좀 지나면 보고 싶고 그런 것처럼 야구도 똑같죠.

기자 : 그래도 심하게 싸우면 헤어지는데(웃음)

민철 : 이건 짝사랑이니까(폭소) 좋아하니까 욕하는 겁니다. 정말로.

 기자 : 개인적으로, ‘이라는 게 야구 팬덤을 지탱하는 가장 큰 부분이라 생각해요. 욕 자체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있으니까.

민철 : 맞아요. 사람들이 정말 기가 막히게 별명을 짓잖아요. 롯데에 강민호라는 포수가 있는데, 2013년부터 하락세를 타서 야구를 정말 못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우스개로 강민호라는 선수는 2012년에 은퇴했고, 요새는 강극혐이라는 선수가 뛰고 있다.” 고 한다거나.

그래도 항상 욕만 하는 건 아니에요. 야구만 잘 하면 됩니다. 예를 들면, 문규현이라는 선수가 있거든요. 작년까지는 야구를 너무 못하고 항상 패배하는 경기의 발단이 돼서 별명이 문발단’, ‘문그놈이었어요. 근데 올해 야구를 잘 하니까 문그놈문그분이 되고(폭소)

기자 : 확실히 야구보다 욕하는 거 자체가 더 재밌을 때도 있죠.

승원 : 선수들 뒷담 같은 거. 재밌고 좋긴 한데 딱 팬 수준에서만 끝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를 넘어가면 좋은 영향보다는 악영향이 큰 것 같아요. 우리끼리 웃고 즐기는 수준으로만 하면 재밌게 즐길 수 있죠. 예를 들면 2땅선생이라던지, 하는 별명들로 조롱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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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반도의 지킬앤하이드.jpg

기자 : 그럼 이쯤에서, 내가 좋아하는 팀 한번 시원하게 까 봅시다.

민철 :이 팀은답이 없습니다(폭소). 해체해야 되요. 우승 할 마음도 없어 보이고. 2년동안 한 게 나이 두 살 더 먹은 것 밖에 없다니. 선발 투수-경기를 시작하는 투수-중에 가장 어린 선수가 30살일 정도로 어린 선수들이 하나도 없어요. 지구가 멸망해도 안 되는 수준이죠.

승원 : 긴말할 것 없이 야구를 너무 못합니다(한숨). 분명히 능력이 있는데도 그 능력을 못 보여주고, 그렇다고 안 쓰기에는 너무 능력이 아까운 계륵같은 선수들이 아쉽고요.

기자 : 진짜로 답이 없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제가 답답하다고 뭐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밥 먹고 야구만 하는데도 못하는 선수들이 저보다 더 답답할 거에요, 아마. 직업인데. 능력과 적성이 안 맞으면 참 힘들지(웃음)

 기자 : 이상하게 하위팀 팬들이 유난히 많고, 또 열정적인 경우가 많잖아요. 왜 그런 걸까요?

민철 : 아무래도 힘든 시절을 같이 겪다 보니 전우애가 있어요. 의리고 정이죠. 같이 굴곡을 겪으면서 정이 드는 거에요. 부산에서는 롯데가 이긴 날에는 택시비를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팀을 배신했다고 여겨지는 선수들은 굉장히 미움을 받죠. 팀을 이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적 후에 전 팀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한다던지.

홍성흔이라는 선수가 있어요. 롯데에서 뛰다가 서울 팀인 두산으로 이적했는데, 마치 부산에서 귀양살이 하다 온 것처럼 항상 인터뷰를 하고(폭소). 이런 거 진짜 기분 나쁘고 싫죠.

기자 : 굳이 ‘하위팀이라서’가 아니라 대도시들을 연고지로 두고 있어서 그렇다는 시각도 많아요.

승원 : 한화의 연고지가 대전이잖아요. 한화가 근래 계속 하위권이었거든요. 한화가 충성도는 높지만 팬 층이 두터운 팀은 아닌 거 보면 연고지가 중요한 것 같기도 한데.....솔직히 LG가 참 이상하죠. 야구도 못하는데 팬은 안 떨어지니. 참 이상하죠.

내가 제일 답 없다! 전국~ 덕력자랑!

기자 : 혹시 야구 때문에 이런 것 까지 해봤다하는 것 있으신지.

민철 : 기숙학원에서 재수를 했거든요. 그런데 야구를 보려고 기숙학원 와이파이를 뚫기까지 했어요(기자 세상에나”). 올스타전에 좋아하는 팀 선수들을 보내려고 매일매일 지인들의 아이디를 이용해서 10개씩 투표하기도 하고.

기자 : 1인당 1표밖에 안 되니까 아이디를 막 빌려가지고(웃음)

승원 : 재수학원에서 맨날 DMB로 보고 그랬죠. 정말 매일매일.

기자 : 다들 야구아니었으면 외대알리 인터뷰 안 하고 계실 분들이네 이거(폭소) 신촌알리라던가, 관악알리 인터뷰 하고 계실 텐데(폭소) 저 같은 경우는, 야구 때문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부산에 내려가서 올스타전 자원봉사를 했었어요. 처음으로 부모님 없이 하는 여행마저도 야구. 나 좀 심한가?

민철 : 저도 작년 여름방학 때 야구 하나만 보러 부산까지 가기도 했었어요.

기자 : 전 친구랑도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친한 친구가 롯데 팬인데, 저랑 야구 보러 가면 꼭 진다고, 저랑 안 간다고. 하하.

기자 : 야구 팬으로서 잊지 못할 경기가 혹시 있으시다면.

민철 : 909 대첩이라고, 10대 몇으로 이기다가 마지막에 뒤집혀서 졌던 적이 있어요. 어휴(폭소) 플레이오프에서 2연승 해 놓고 3연패 해서 떨어졌던 거? 한번만 더 이기면 결승 가는 건데. 그 날은 정말 멍해가지고. 2011년에 최동원 선수 영구결번식 하던 날도 기억이 나네요. 그날 승리는 정말, (잠깐 멈추고) 의미 있었어요.

승원 : 작년 마지막 경기죠. 11년 만에4강 진출, 그것도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짓는 순간.

기자 : 맞아요. 저도 그 경기. 저 그날 야구장에서 진짜로 거짓말 안하고 오열했잖아요(폭소). 야구 보면서 그렇게 행복했던 경기는 처음이었어요. 머리 끝까지 엔돌핀이 막 도는 기분.

승원 : 지금 생각해보면 쉽게쉽게 할 수 있는 걸 왜 그렇게 똥줄 태웠나 좀 화도 나네(웃음)

기자 : 혹시 보고 있을, 자신의 넘버원선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민철 : 손아섭 선수. 사랑합니다. 롯데의 심장이고 그 자체이십니다. 지금처럼만 쭉 잘 해주세요. 아프지 말고, 다른 구단도 가지 말고, 감독도 하고 우리 오래오래 해 먹어요.

승원 : 박용택 선수. 올해 FA인데, 엘지가 돈을 많이 안 줘도 남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구단이 섭섭하게 하는 게 있다면 제가 대신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어느 자리에서도 열심히하는, 그 자리에 맞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너무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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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직 야구장에 관중이 꽉 들어찬 모습. ⓒcheolstar, wikipedia

기자 : 마지막! ‘야구 팬을 장래희망으로 삼는 수많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팀을 어필하자면.

민철 : 롯데는 어메이징한 팀입니다. 물론 잘하는 팀은 아니고. 보다 보면 빠져드는 팀이에요. 야구를 못 하니까 팬들이 스스로를 꼴데’, ‘꼴빠라고 칭하지만 다른 팀들이 꼴데라고 하면 화를 내죠. 전형적인 경상도 팀이라고나 할까. 그만큼 열정적이에요. 혹시.....고통을 즐기시는 변태라면(폭소), 롯데 팬 하시는 거 추천합니다. 확실한 고통을 보장합니다.

승원 : ..(일단 한숨). 굉장히 어려운데. 우선은. 연고지가 서울이라는 점. 유니폼이 예쁘다는 점. 응원이 정말 재밌다는 거? 메가 트윈스포라고 불리는 호쾌한 공격이 터지는 날엔 정말, 정말 재밌어요. 세련된 팀이죠. 넥센과 두산(두 팀 모두 서울 연고지)과 비교했을 때, LG만의 독특한 컬러를 확연하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드루와!

야구에 목숨 걸기로 유명한 두 명의 학우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어느 새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이 훌쩍 흘러가 있었다. 순수한 열정이 묻어나는 이 인터뷰가, 주위의 ‘야구에 열 올리는’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기를 바란다. 혹시나 ‘야구 팬’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드셨다면, 언제나 환영이다. 밑에 적혀있는 메일주소로 연락 주시라. 기자는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잠실야구장 잔디 앞에서 닭다리 같이 뜯을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주의사항.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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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연 기자 marobeblanch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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