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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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점거 그리고 뒷이야기들-박철 전 총장 명예교수 임명 문제

박철 전 총장 명예교수 임명건으로 날 선 대립을 지속하고 있는 학교와 학생들. 알리가 우리학교 교수들의 입장, 학생 징계 시도 등 모두가 궁금해하는 점거의 뒷이야기들과 학교의 입장을 취재해봤다.

 

대화 거부당해 총장실 점거했지만……


8월 10일 오후 1시경, 무더위로 뜨거웠던 본관 복도에서 막는 교직원과 뚫으려는 학생의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박철 전 총장의 명예교수 임명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총장실 진입을 시도한 것이다. 2시간여 전 열렸던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총학생회 비대위는 총장실 점거를 의결했다. 오후 4시쯤 김인철 총장을 비롯한 학교 본부 관계자들이 총장실에 나타나 학생 측과 최초의 면담을 가졌다. 학생들이 그렇게 요구하던 대화는 점거 이후에나 시작되었다. 

 

점거는 18일까지 8일간 지속되었다. 김 총장과의 면담은 2번 더 있었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무기력하게 끝이 났다. 학생 측은 박철 전 총장의 횡령 혐의, 학교 구성원 탄압 등을 들며 명예롭지 않은 박철 전 총장의 명예교수 임명을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학교 측은 이미 학교 절차에 따라 진행된 임명 진행을 철회할 수 없으며, 일단 임용 후 박 전 총장의 횡령 혐의 재판이 끝난 후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서로의 의견이 너무 명백하게 차이가 나서, 서로 다른 말을 쓰는 듯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대화’에 염증을 느끼고만 학생들은 결국 총장실을 빠져 나왔다.

 

학교는 9월 1일, 결국 박 전 총장을 명예교수로 선임했다. 총학은 점거를 해산했으나, 교육부에 감사를 요청하고, 정문 선전전등을 진행하며 계속 반대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생각이 없는 학교와, 물러서지 않는 학생들이 서로의 입장을 견지한 채 대립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점거 뒷이야기

외대알리는 근 2주에 걸쳐 학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학교 본부측과 교수들의 입장, 학교 본부측의 점거 중과 점거 후의 행보를 취재했다. 그 결과 점거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나 학생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여러 자료들을 입수하기도 했다.

 

1. 김인철 총장의 “교수님께 드리는 글”

" 일부 학생들이 3월 10일 오후 총장실을 무단 점거한 후 현재까지 농성중입니다. 전임총장의 명예교수 임용 철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학교 입장을 교수님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_ 해당 서신 발췌

점거 해산 이틀 전인 8월 16일, 총장 명의의 서신이 이메일을 통해 외대에 재직하는 모든 교수들에게 전해진다. 이 서신의 발신자인 김 총장은 명예교수 임용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이에 반대하는 점거농성은 교권 침해라는 내용과, 소통의 기회를 계속 가져왔음에도 학생들이 비합리적인 수단인 점거를 선택한 것은 학생들의 잘못이며 엄정 조치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 첫째, 학생들 주장의 주된 근거는 전임총장이 교비횡령으로 벌금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총장 업무 수행 상 학교 법인을 위한 변호사 비용으로 불가피하게 교비를 일시 지출한 데서 비롯된 일입니다. 지난 6월 16일 1심 판결문도 '개인적인 이득을 취한 것은 아닌 점, 학교 법인이 변호사 비용 등으로 사용된 교비 전액을 법인 회계에서 교비회계로 전입시켜 이를 보전한 점'을 적시하고 있습니다. "

가장 눈 여겨 봐야 할 부분은 서신의 ‘첫째’로 시작하는 부분이다. 김 총장은 박철 전 총장이 “학교법인을 위한 변호사 비용으로 불가피하게 교비를 일시 지출”하여 횡령 혐의로 고발됐으며, 1심에서 위법으로 판결됐던 박 전 총장의 횡령혐의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박철 전 총장이 교비 사용은 학교 정상화를 위해 어쩔 수 없었던 조치라며 재판정에서 주장한 내용을 학교 본부가 옹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장의 근거는 1심 판결문에 적힌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았고, 소송에 사용된 교비 전액을 법인회계에서 교비회계로 전입시켜 이를 보전한 점”이라는 구절이다.

 

" 한편, 피고인이 이사건 범행으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한 것은 아닌 점, 학교 법인이 변호사 비용 등으로 사용된 교비 전액을 법인 회계에서 교비회계로 전입시켜 이를 보전한 점, (...) 기록에 나타난 형법 제 51조 소정의 양형 조건을 모두 참작하여, 피고인에게 약식명령과 동일하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하기로 한다. " _ 박철 전 총장 횡령 혐의 1심 판결문, 9쪽 발췌

하지만 판결문은 김 총장의 주장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판결문이 김 총장이 인용한 부분을 ‘적시’하고 있는 이유는 해당 내용이 박철 전 총장의 혐의에 대한 양형조건을 참작하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학교 정상화를 위해 교비 사용이 불가피했다는 김 총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아니다. 박철 전 총장의 교비 횡령 혐의는 양형조건이 참작되었다고 해도, 1심 재판부는 “죄질이 좋지 않다”는 언급과 함께 명백한 위법으로 판결하였다. 물론 학교 본부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박철 전 총장의 위법 여부는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려보자는 입장이므로, 앞으로도 김 총장과 같은 주장을 계속 견지할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장은 또한 대화와 소통의 기회를 갖고자 노력해 왔으나, 학생들은 점거라는 비합리적 수단을 동원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항의방문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임명안에 대한 학생과의 대화 자리를 가지지 않았으며, 점거 후 겨우 총장을 비롯한 학교본부와 면담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학교 본부는 학생들이 원하는 소통과 대화를 제공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또한 김 총장이 소통 행보의 예로 들었던 “총장과의 대화” 행사에서도 LD, LT학부 관련 질문을 받은 총장이 “신설학부의 문제점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어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지 말고 긍정의 힘으로 기다려라.” 등의 발언으로 몇몇 학생들의 빈축을 산 바 있어, “총장과의 대화”가 학생들을 충족시킬만한 소통의 장이 아니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2. 교수협의회 입장문

학생과 학교 본부가 주요 등장인물이었던 점거 상황에서, 학생들이 가장 궁금했었던 것 중에 하나는 교수들의 입장이었다. 총장의 서신이 전해졌던 16일, 외대 내 교수들의 협의 기구인 교수협의회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다. 교수협의회는 명예교수 임명에는 절차상 하자가 없었으니 정당한 의사 결정이고, 학생들이 이를 따르지 않는 것은 “교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보았으며, 점거 중인 학생들에게 “본연의 학업에 복귀하라”고 촉구했다. 학교 본부에는 교권이 침해되는 사태의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교수협의회의 입장은 학교 본부와 일치한다. 명예교수 선임 과정은 정당했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 학생들은 교권 침해를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연히 학교에게 선임 과정상에서 대화와 의견 수렴이 거부당해 점거 농성을 시작했던 학생들은 교수협의회의 입장에 공감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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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학생 징계 시도

 

학교 본부 측은 점거에 참여한 학생들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고 있다. 9월 2일 금요일 열린 중앙운영위원회 회의에서 비대위장단은 “범위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학교 교무위원회에서 징계위원회를 소집하는 것을 논의 중이다.” 라고 발언했다. 학교 측은 학생 징계 규정 12조에 따라 점거 농성에 따른 교권 침해를 문제삼고, 교육부에게 감사를 요청한 것을 학교의 명예 실추시켰다고 보아 징계를 고려하고 있다.

' 제 12조 ( 학업 방해 행위 ) - 학교의 허가 또는 정당한 이유없이 시위, 농성 등교거부 등의 집단적 행위로 학교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또는 학업에 지장을 초래한 학생은 유기정학 징계처분을 한다. ' - 학생규정 제 12조.

알리가 총학생회를 통해 입수한 교무위원회 입장문에서는 학교 본부가 교육부 감사 요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여실히 들어난다. 교무위원회 입장문에서는 “공개적 교육부 감사 요청은 외대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자기파괴적 해교 행위”라 규정하며 매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김형환 총학 부비대위장도 “학교가 점거보다 교육부 소청에 더 화가 난 것 같다.”고 밝혔다. 학교 본부는 학내 문제가 교내를 넘어 공개적으로 학교 밖의 행정기관을 통해 문제제기가 이루어진 것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사운영에 대해 학내 구성원들이 반대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으나 교내에서 평화적인 방식에 의해야 할 것이다. 일부 학생들이 8일 간의 총장실 점거 등 비상식적인 방법을 동원한 것은 물론 사안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교육부 감사를 요청한 것은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자기 파괴적 해교 행위이다. 학생들의 자숙을 당부한다. '_ 8/24 총학생회에 전달된 교무위원회 공문 중 발췌

당연히 총학 측은 부당한 징계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22일 있었던 제 5차 대학평의원회 회의에서 이슬 비대위장은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총장실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며 점거는 대화를 위한 정당했던 조치이며, 징계 논의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교권 침해가 아니니 징계가 부당하다는 의견도 있다. 신승철 대학노조 외대 지부장은 같은 대평의 회의에서 ”수업을 방해한 것이 아니니 교권 침해를 논할 상황이 아니며, 총장과 보직교수는 교수 이전에 행정가이므로 교권과 관계가 없다.” 라 말하며 학생 편을 들기도 했다.

 

여태까지 점거 농성을 근거로 학생들에게 징계를 부여한 사례가 없었다는 것을 볼 때, 학교 본부측의 징계 검토는 예외적인 조치이다. 그만큼 해당 사안에 대한 점거, 교육부 소청 등의 일련의 행위들을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의 심각한 잘못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점거 전 총학 측의 대화 요청을 모두 무시한 후, 점거가 시작되고 나서야 대화에 임한 학교 본부가 강수인 점거를 통해서라도 대화를 시작하려 한 학생들을 징계하는 것은 무리한 처사라는 비판의 여지가 존재한다. 총학 측은 징계를 받는다면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학교 본부에 전달한 가운데, 귀추가 주목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학교의 입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미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선임한 명예교수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심각한 교권 침해이며, 비합리적 점거를 강행하고, 교육부 감사 요청을 통해 학교의 위상을 깎아내린 학생들은 징계를 받아야 한다.”

 

왜 대화는 ‘싸워서 얻어야 하는 것’ 이 되었나.

조직의 대소사를 결정 할 때, 구성원들과의 대화와 소통을 통하여 원만한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꼭 필요한 행위이다. 하지만 외대 학생들은 이번 여름, 학교와 대화를 할 수 없어 싸워야만 했고, 학교는 학생들이 점거를 하고 나서야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돌아온 것은 학교의 똑같은 답변으로 인한 염증과 징계 검토뿐이었다. 왜 너무도 당연하게 진행 되야 할 대화를 위해 누군가는 싸워야 하고, 상처를 입고, 벌을 받아야만 하는가. 학교는 학생들의 총장실 점거를 비합리적인 방식이라 비난했지만, 학내 소통 구조는 본래 비합리적이었다. 

김종혁 기자 hwase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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