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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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주권을 위한 청년 농부들의 반란

 한국에서 ‘지속가능한 음식’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같은 인식은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나는데, 2018년 환경 국민의식 조사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환경문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오직 2%만이 농업과 연관된 환경문제를 꼽고 있을 뿐이다. 또한, 같은 조사에서 ‘환경 보전을 위해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친환경 농산물’ 혹은 유기농 인증 식품을 구매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런 상황은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근 발의된 그린 뉴딜 사업에서 농업 관련 이야기는 주요 내용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반면에 유럽연합은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푸드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그린 뉴딜 정책의 핵심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 농부가 있다. 바로 ‘논밭상점’의 박푸른들 대표(이하 ‘박 대표’)다. 박 대표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귀농한 2년 차 새내기 농부다. 그가 농사를 지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판로 확보’다. 아무리 좋은 토지에서 건강한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도, 판로 확보가 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논밭상점은 박 대표의 그런 유통에 대한 고민에서 탄생한 농민들의 작은 거래처라고 할 수 있다. 논밭상점에는 박 대표가 직접 기른 허브들과 채소들, 그리고 다른 농민들이 기른 각종 채소들이 저마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 채소와 허브들은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된다는 점이 논밭상점만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음식이란 고통, 착취, 억지가 없는 음식이라 생각해요”

 

 고통, 착취 그리고 억지. 논밭상점에는 없는 것들이다. 이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토양과 농작물을 보존하려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논밭상점에서 자랑하는 대표적인 농산물은 유기농 꿀 고구마, 유기농 당근, 제주 친환경 감귤이다. 이들 모두는 껍질이 있지만, 흙만 살짝 털어내면 껍질째 먹을 수 있다. 유기농이므로 껍질에 농약이 묻을 걱정은 없기 때문이다. 농약에 익숙해져 과일 하나를 먹을 때도 반드시 껍질을 깎아야 한다는 도시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광경이다. 

 

 또한 논밭상점의 채소들은 어딘지 모르게 다소 투박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귤 껍질에는 거무튀튀한 회갈색 흠집이 많고 당근의 모양은 제각각이다. 심지어 같은 채소를 구매하더라도 그 맛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억지, 착취, 고통 없이 자연스럽게 자란 유기농 채소들의 특징이다. 마트에 진열된 도시의 채소들은 마치 기계가 재단한 것처럼 모양과 맛이 천편일률적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취향에 맞게 가공된 인위적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에게도 개성이 있듯이, 채소에도 그가 살아온 환경, 자라온 토양에 따라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 논밭상점의 유기농 채소들은 그런 개성 있는 맛과 모양을 우리에게 선사해 준다. 

 

 

# 논밭상점의 히트상품, ‘마녀의 계절’

 

 계절을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은 바로 ‘밥상’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식탁에는 ‘계절’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사시사철 어디서든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녀의 계절’은 우리들이 잊고 살았던 그 계절을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켜 준다. 게다가 제철 농산물이다 보니 온도나 습도 조절을 위해 인위적으로 화석 연료나 에너지 등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마녀의 계절’은 작년까지 논밭상점에서 판매됐던 전국 청년 페미니스트 여성 농부들의 연대 농산물 꾸러미 사업이다. 각자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청년 여성 농민들이 계절을 나눠 꾸러미를 순차 발송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봄에는 달래와 아스파라거스, 산나물을, 여름에는 쌀과 여름철 채소를, 가을에는 고구마와 토종 콩 등의 밭작물을, 겨울에는 저장성이 좋은 농산물을 선별해 스페셜 꾸러미를 구성하고 있다. 

 

 

# 아이스팩 재사용 프로젝트

 

▲사진 제공= 논밭상점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친환경, 유기농 농산물을 구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친환경 농산물을 구매하면서, 이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반친환경적인 행위를 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떤 제품을 구매할지도 중요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구매하고, 구매 이후의 뒤처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중요하다.

 

 지난 봄, 논밭상점과 예산홍성환경운동연합이 합작하여 진행했던 아이스팩 재사용 프로젝트, <아이스팩, 여기에 버려주세요>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코로나 19로 가정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마켓컬리·헬로네이처·오아시스 등 온라인 식자재 판매업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그에 따라 각 가정에 배달된 아이스팩 또한 늘어났다. 그러나 비닐, 미세플라스틱 등으로 만들어진 아이스팩은 소각과 매립방식 등 처리방식에 따라 모두 심각한 환경문제를 일으킨다. 논밭상점은 이렇게 처치 곤란한 아이스팩을 수거해 재사용함으로써 환경오염으로부터 우리 지구를 보호하고자 했다. 

 

농사도 짓고, 기부도 하는 청년들의 모임. 인텔리겐치아

 

 

 실천하는 지성인이라는 뜻의 인텔리겐치아는 도시에 사는 청년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 수확한 작물을 기부함으로써 그 결실을 소외계층과 함께 나누는 단체이다. 농사에 대한 지식을 공부하고, 정기적으로 밭에 모여 작물을 키우는 것이 주 활동이다. 올해 농사에서는 사라져가는 토종 종자를 보존하고 있는 기관으로부터 씨앗을 공급받아 키워볼 예정이다. 

 

 그러나 이들의 농사가 그리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전문 농업인이 아닌, ‘초짜’ 농업인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인텔리겐치아의 박승원 회장은 “저를 비롯한 회원들이 넘치는 열정에 비해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하고, 농사 현장 경험이 적기 때문에 밭일에 적응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립니다. 그때까지 잡초로 착각해서 새싹을 뽑는 실수도 자주 하고 많이 헤맵니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들의 작물은 100%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길러지기 때문에 수확하는 데 여간 힘이 많이 드는 것이 아니다. 일례로, 자라다 말고 시들어 버리는 작물들도 더러 생긴다. 화학비료를 이용해 토지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살충제를 뿌려 병충해를 예방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친환경 농법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무엇보다도 가장 고된 일은 잡초를 뽑는 것이다. 농사 일과 중 절반 이상은 잡초와의 사투를 벌이는데, 그래도 사방천지는 잡초뿐이다.

 

 그렇게 해서 수확한 작물은 마르쉐 농부 시장으로 향한다. 마르쉐는 많은 농부의 참가 지원을 받아 꾸려지는데, 유기농, 친환경 농산물에 자부심이 강한 농부들이 주로 매대를 차지한다. 인텔리겐치아는 농부 시장에서 밤고구마, 자색고구마, 호박고구마 등을 한 팩으로 묶은 “모두담아 고구마”를 팔았다. 수익금은 많지 않았지만 모두 열매나눔재단에 후원금으로 사용했다.

 

 

‘지속가능한 음식’을 위한 환경

 

 논밭상점의 박 대표는 인터뷰에서 “고통, 착취, 억지가 없는 지속가능한 음식이 가능하려면, 농업과 농촌은 지속가능한 곳이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농촌의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주체는 다름 아닌 정부라고 말한다. 이어 박대표는 정부의 소극적인 농업정책을 비판했다. 2021년 농업예산은 총 16조 2,856억 원으로 2020년(15조 7,743억)에 비해 5,113억 원 오른 수치다. 그러나 농업예산은 올랐지만, 국가 전체 예산에서의 비율은 2.92%에 그쳤다. 전체 예산에서 농업예산이 3% 미만으로 떨어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충남 당진에서 농사를 지은 전 청년 농업인 김재현덕씨는 “우리나라가 (농업에서) 생산자에게 유리한 시장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농가에 풍년이 와도 수입유통 구조상 농민들이 절대로 수익을 많이 올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가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해주기도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농업을 전업으로 삼기가 매우 힘든 수준이다. 따라서 정부가 진정으로 기후 위기에 관심이 있고 환경 변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면, 이 같은 농업 홀대 정책은 개선되어야 한다. 

 

 소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소비자가 원하는 음식에 따라 농산물 시장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소비 트렌드가 아보카도라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늘 것이며, 만감류(귤, 레드향 등)라면 설치 과정에서 화석연료가 소모되는 재배시설이 농촌에 늘 것이다. 박 대표는 “우리가 어떤 음식을 고르느냐에 따라 환경, 농업 형태는 좌우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마트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소포장 된 식재료는 우리들에게 편리한 끼니를 제공한다. 하지만 편리함에 현혹돼 소포장된 재료들만 찾게 되면 원물 자체 생산 외에 추가로 가공시설을 늘릴 것이고 포장지는 날이 갈수록 많아질 것이다. 

 

 인텔리겐치아의 박승원 회장은 성숙하지 못한 한국의 농산물 소비 풍토를 지적했다. 그는 “아직 우리는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바꾸려면 반드시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을 허락할 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우리들은 ‘친환경’을 단순히 ‘문화 트렌드’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은 것 같다. (우리들은) 소비활동에서는 반플라스틱 운동을 펼치고,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며 ‘친환경 소비’를 말하지만, 정작 매일 있는 식사 시간에는 ‘친환경’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박승원 회장은 “음식을 소비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은 ‘수요’를 움직이는 첫걸음이고 이는 곧 공급, 즉 음식의 재배부터 유통, 조리 과정에도 변화를 주어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박 대표와 박승원 회장의 답변처럼 농업 생산 구조에서 소비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중요하다. 우리들이 어떤 음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농부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은 달라진다. 친환경 유기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없으면, 농부들은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가며 굳이 유기농가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국가의 정책 역시 국민들의 인식을 따라가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 발표한 ‘그린 뉴딜’ 정책은 환경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 씨는 그의 책 <위대한 식재료>에서 위대한 식재료는 위대한 소비가 만든다고 말한다. 우리들이 친환경 농산물에 관심을 많이 가질수록 유기농법으로 재배하는 농민들은 더 많아질 것이고, 더 나아가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환경도 조성될 것이다. 우리들이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해 기른 채소들보다는 친환경, 유기농산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해당 기사는 지면 '외대알리 35호: 변화를 주도하는 청년들'에 실린 기사로, 1월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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