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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학보사 길들이기에 저항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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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숭실대학교 신문사 숭대시보 편집국장 강석찬

 

학보사는 대학의 애완견인가. 혹은 학보사는 대학의 애완견이어야 하는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은 모두 ‘그렇지 않다’이다. 흔히 ‘언론이 권력의 감시견 역할을 한다’는 고리타분한 명제를 두고 묻는 질문이 아니다. 오늘날 학보사는 ‘그렇지 않음’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다.

 

특히 대학이 위기에 빠져있을 때 학보사의 역할은 더욱 빛난다. 위기에 빠진 대학은 ‘학과 통폐합을 통한 정원 감축’, ‘재정 확보를 위한 대외홍보 확장’ 등 자구책을 마련한다. 그 과정에서 학보사 기자들은 예리한 눈으로 대학 본부를 향해 끊임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학교법인의 법정부담금 미달, 학과 통폐합의 문제점, 청소노동자들의 처우개선, 학생들을 위한 복지 확충 등을 취재하고 보도한다.

 

하지만 대학은 위기일수록 학보사의 목소리를 배제한다. 민감한 자료 제출을 고의로 누락하거나, 자료 자체를 대외비로 취급하여 으름장을 놓는 등 민감한 내용일수록 더 완고하게 취재를 거부한다. 이는 지난해 10월 2021년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 소속 23개 학보사별 편집장 설문조사를 통해 제기된 실제 사례들이다. ‘2022년 대학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냐’고 묻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른바 ‘학보사 길들이기’는 최소한 격년에 한 번꼴로 나타나고 있다. 2015년 서울여대 신문사 서울여대학보, 2017년 서울대학교 신문사 대학신문, 2019년 서강대학교 신문사 서강학보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1면을 백지로 발행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2021년, 숭대시보 편집국장으로서 학보사 탄압을 몸소 체감했다. 숭실대학교는 학생 사설을 빌미로 종이신문 발행을 막았고, 예산을 근거로 당초 계획된 발행일정표를 무시하고 신문 발행을 자체를 중단시켰다. 더 나아가 부당하게 숭대시보 기자 전원을 해임하는 등 전방위적인 탄압을 자행했다. 학보사를 길들여 대학과 총장에 비판적인 기사를 지양하도록 이른바 ‘학보사 무력화 전략’이 발동된 것이다. 또한 숭실대 장범식 총장은 ‘편집국장에게 지도가 필요하다’는 취지로 “N번방 가해자 조주빈도 그 학교를 위하는 편집국장이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숭대시보를 탄압한 이유는 그저 진실을 보도하려 했기 때문이다. 숭대시보는 총장이 외부 언론을 통해 실언한 내용을 기사화하려 했고, 총학생회를 비롯한 각 단과대학 학생회장 및 학생 200여 명의 시위를 취재했다. 그러나 숭실대는 지난해 12월, ‘기사화하는 내용은 총장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는 취지로 헌법 제21조 4항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조항을 교육부에 전달했다. 그러나 진실을 취재하고 기사화하는 것은, 훗날 언론계에 종사하기를 희망하는 예비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형법 제310조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조항에 따라 해당 사안은 위법성 조각 사유가 인정될 수 있다. 그러나 숭실대를 통해 공식적인 사과나 재발 방지 대책 등은 단 하나도 받을 수 없었다.

 

탄압의 과정에서 숭대시보 기자들의 주장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학보사는 비판과 생존의 함수관계가 매우 단순하기 때문이다. 비판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학보사에 대한 탄압은 거세지기 쉽다. 예산이라는 목줄을 당기며, 학생으로서 학교가 가진 지도권을 주장해 학보사에 대한 편집권을 정당화 하려는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는 수십 년간 변하지 않은 전형적인 ‘학보사 탄압 클리셰’이다. 물론 기성 언론 또한 유사한 어려움을 겪으며 발전해왔지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사례는 이미 강산이 여러 번 바뀐 50년도 넘은 이야기이며, 시사저널에서 넘어온 시사IN의 사례 또한 10년도 넘었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학보사는 왜 필요한지 의문이 제기된다. 학보사의 존립 이유에 대해 답하기 위해 손석희 전 JTBC 사장은 본인의 저서 <장면들>의 문구를 인용한다. “언론은 국가와 시민사회 그 중간에 위치하며, 국가를 향해서는 합리적인 시민사회를 대변하고 시민사회에는 진실을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 문장을 학보사로 치환하면 다음과 같다. “학보사는 대학 본부와 학생사회 그 중간에 위치하며, 대학 본부를 향해서는 합리적인 학생사회를 대변하고 학생사회에는 진실을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진실을 취재하고 기사화하는 과정에서 주간 교수가 “학교의 명예와 위신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기사를 쓰지 마라”고 말했을 때, 굽히지 않았다. 진실을 전하는 것에 성역은 없어야 한다는 신념이 굳건했기 때문이다. 비판의 수위가 높아 후환이 두려울지라도, 부러질지언정 꺾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기사 발행을 주장했다.

 

이렇듯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학보사는 대학 본부와 고군분투하고 있다. 고등교육법 제28조가 밝히듯 대학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중략)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므로 민주주의를 가장 활발해야 한다. 학보사는 대학 민주주의의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기성 언론이 투쟁해온 역사의 연장선에서 ‘그때처럼’ 사명 의식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에도 학보사가 존립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설명하기 위해 애완견이 아닌 감시견으로써 부르짖고 있다. 그러나 그 부르짖음은 어느새 묻히기 일쑤였고, 그렇게 수많은 학보사가 고질적인 문제로 인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우리사회가 학보사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보여야만 학보사 탄압의 굴레를 벗을 수 있다. 더 이상 암담한 패배감 속에 젖은 채로 학보사를 떠나야 했던 학보사 기자들이 있어서는 안된다. 오로지 진실을 위해 양심으로 끝까지 행동하는 학생들을 하루빨리 구원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