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4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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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가 불러온 파문

※ 20대, 대선

 

이번 대통령 선거는 ‘87년 개헌 이후 최악의 선거’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고개 돌리지 않고 우리 20대 목소리가 세상에 소멸되지 않기 위해 크게 외칩니다. 독자 여러분 역시 ‘20대, 대선’ 필진이 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여성’이란 단어에 주홍글씨 새겨졌다

 

전체 예산 중 여가부 예산은 0.23%

 

여성가족부는 ‘공정’의 일환

 

 

 

 

 

 

 

 

 

 

 

 

‘여성가족부 폐지’

 

단 일곱 글자였다. 부연설명도 없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지난달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귀다. 파장은 컸다. 과연 여성가족부 폐지가 옳은가. 공정을 위해서라면 여가부 존치는 물론 확대가 옳다.

 

일곱 글자는 20대 남성(이대남) 여론도 뒤바꾸게 했다. 당시만 해도 ‘이대남’은 윤 후보를 향해 등을 돌린 상태였다. 지난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와 신지예 前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선대위에 영입한 탓으로 해석된다. 또한, ‘이대남의 대변인’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갈등의 골이 깊어진 탓도 크다.

 

실제로 지난 달 2-7일에 실시한 리얼미터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20대 남성 윤석열 후보 지지율은 24.8%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30.1%)에 비해 5.3%p 낮은 수치였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폐지 언급 이후인 지난달 9-14일 조사에서는 20대 남성의 58.1%가 윤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이 후보 지지율은 17.5%로 폭락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선거 전략의 관점으로써는 윤 후보의 페이스북 일곱 글자는 최고의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즉 ‘갈라치기’에 성공한 것이다. 이대남은 여가부의 적극적 비토(Veto)층이다. 단합된 이대남의 압도적인 지지를 공략한 것이다.

 

만만한 게 여가부?…여가부는 왜 ‘악(惡)’이 됐는가

 

페미니즘에 대한 악성 소문들은 끊임없이 재생산됐다. ‘여성가족부가 (여성의 성기 모양처럼 보이기 때문에) 죠리퐁 판매를 금지했다’는, 누가 이런 말을 믿을까 싶었던 유치한 거짓 소문은 20년 동안 유통되고 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2015) 中 권김현영 해제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

 

이대남은 10대 시절부터 여성가족부의 악마화를 학습해온 세대다. 이러한 악성 소문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던 시절이 있었다. 만약 그 소문들이 사실이라면 ‘비상식적인’ 여가부는 폐지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허무맹랑한 유언비어일 뿐이다. 아직도 일부 여가부 폐지론자들은 ‘소문’을 근거로 들고 온다. 확증편향이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왜 여가부는 악의 근원이 된 걸까. 이대남은 여가부 악마화 학습과 더불어 여가부의 소관인 여성 정책에 대한 혐오 반응을 보인다. 그들은 ‘기성세대의 여성 차별이라면 인정한다. 그러나 상관도 없는 우리가 왜 역차별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인식이 팽배해 보인다.

 

‘여성’가족부가 필요한 이유

 

 

잊지 말자. 여성을 향한 차별과 위험은 상례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여아 낙태는 다반사였다.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출생성비는 1990년 116.5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1995년 113.2명, 2000년 110.1명이었다. 이는 출생성비 정상범위(103-107명)에서 벗어난 기록이다. 2007년이 돼서야 106.2명으로 정상범위에 속하게 됐다.

 

그렇다고 이 시절 살아남은 아이들이 자라 여성 차별을 겪지 않은 건 아닌가. 잘 모르겠다. 2년 전 ‘현관문 옆방은 K-장녀 방이다’라는 트윗이 20·30대 여성으로부터 유행이 된 적 있었다.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겨레21>은 “집 안에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가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들리는 이 방은 가족의 중재자이자 가족 대소사에 과도한 책임을 느끼는 K-장녀의 역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수많은 K-장녀는 부모로부터 부담을 부여받은 채 성장했다. 그들은 맞벌이로 부모가 부재한 가정을 대신 돌봐야 했고, 맏딸이기에 사회적으로 뭐든지 잘해야 했다고 한다. 어떨 때면 부모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도 했다고 말한다. 과연 우리 사회는 여성 차별이 사라진 사회일까. 이를 개인적 서사로 치부하기에는 이러한 사례가 흔하지 않은가. 실제로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 발표한 지난해 성 격차 지수 순위에서 156개국 중 한국이 102위를 기록했다. 지표 중 경제적 참여·기회 격차가 가장 낮았다.

 

여성은 항상 위험에 도사리고 있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는 주변에 대학 4개가 있어 원룸촌 규모가 크다. 그렇다 보니 여대생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만연하다. 3년 전에는 여대생 피살 사건이 발생했고, 지난해에는 피살 현장 인근에서 여대생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례는 대연동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여성가족부 예산 뜯어보니

 

이러한 여성의 어려움을 정책적으로, 제도적으로 덜어주는 역할이 여성가족부 소관이다. 부처를 폐지해야만 마뜩한 사회가 되는가. 악의 축으로써 취급받아야 할 집단인가. 과연 여성가족부는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책 ‘이갈리아 딸들’ 속 사회(가부장제가 전복되고, 가모장제 사회가 되는 이야기)를 건설하기 위한 목표를 지니고 있는가. 아니다. 현실을 들여다보면 ‘여성 퍼주기’라는 비난이 무색해질 정도다. 정작 문재인 정부 들어 여성의 삶이 정책으로 인해 더 나아졌는가도 살펴봐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2022년 정부 전체 예산 중 0.23%(1조 4,115억 원)에 불과했다. 예산이 가장 적은 부처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주요 예산 지출 내역을 살펴보면 여성’가족’부다. 한부모 가족 지원 사업이 4,331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아이 돌봄 지원 (2,564억 원) ▷청소년 사회 안전망 구축 (1,018억 원) ▷가족 서비스 지원 (992억 원)에 이어 여성 경제활동 촉진 지원이 737억 원에 그쳤다. 여성 관련 예산은 뒷순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가족부 확대

 

윤석열 후보는 연일 ‘공정’을 강조하고 있다. 윤 후보의 공정이 어떠한 공정인지 의구심이 든다. 외려 진정한 공정을 위해서라면 ‘여성가족부’ 예산 증액이 옳다. 가족 관련 예산 증액은 물론이며, 여성 격차 해소를 위한 여성 관련 예산 증액 역시 필요하다.

 

한 여성이 있다. 남편은 빚을 남기고 가출했다. 두 자녀는 성년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생계를 위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콜센터 상담원이나 정수기 코디네이터 일을 전전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성가족부가 마련한 안전망이 있었기에 생계가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자녀들 역시 혜택을 받고 큰 것이다. 이처럼 비슷한 사례가 많으리라 예상된다. 그러나 정책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이 도처에 존재할 것이다. 진정한 공정을 위한다면, 이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여성가족부 확대가 옳은 방향 아니겠는가.

 

한편 윤석열 후보 공보물에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빠졌다. 그러나 윤 후보는 “여가부 폐지는 핵심 공약이 맞다”며 공약 철회는 유언비어라고 강도 높게 해명했다. 애써 모은 ‘이대남’ 표를 잃을까. 부리나케 화(火)를 진압하는 모습이 그려진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공정한 사회를 반드시 만들어내겠다”고 말했다.

 

우리가 약자를 배려해야 하는 이유는 약자가 생존 가능한 사회에서만 우리는 모두 우리의 취약함을 감당하고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2015) 中 권김현영 해제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다’>

 

박주현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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