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02 (금)

대학알리

얼마면 돼?

무너지는 국가, 차례를 기다리며

국가의 부재 속 유명을 달리한 동료 청춘들의 명복을 빕니다.

참사 현장에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당한 분들의 완전한 회복을 바라며

친구, 연인, 가족을 잃은 아픔을 함께 나누고 기억하겠습니다.

고통과 공포 속에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남은 이들이 할 수 있는 게 있으리라 믿습니다.

공동체의 일원을 잃은 아픔을 딛고,

대학알리는 대학언론의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대학알리 일동

 

 

정부가 이태원 참사 사망자에 위로금 2,000만원, 장례비 최대 1,500만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유가족과 부상자에게 세금과 통신 요금을 감면해주는 정책도 내놓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특별시 전체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설정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애도 기간동안 도어스테핑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실에선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냥 “지금의 아픔과 충격을 가족의 마음으로 함께 나눠주고 있는 언론인 여러분들도 널리 양해해주리라 믿는다"고 전했단다. 현재 누구보다 국민 앞에 나서서 질의응답을 받아야 할 사람이 한 말이다. 

 

사고의 원인은 뿔뿔이 흩어졌다. “혼잡한 상황 속 “밀어"를 “뒤로"로 잘못 들어서 위험이 가중됐다”, “4명 남짓 되는 남성 무리가 길이 뚫리지 않자 막무가내로 사람들을 밀쳐 누군가가 넘어졌고 그때부터 참사가 시작됐다”, “전년도에 비해서 경찰 배치가 너무 적었다”, “애초에 길이 미끄러웠다”…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며 시간을 끄는 동안, 핼러윈의 이태원이 얼마나 아수라장인지를 아는 사고 현장의 시민들과 상인들만이 비통한 마음으로 원인을 추측했다.

 

사상자의 윤곽이 드러나고, 외신들이 안전 시스템을 강하게 지적하며 사고 현장을 분석해서 실험까지 할 동안 정부는 사고의 원인과 책임 소재, 재발 방지 대책, 사과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대신 유족들이 요구하지도 않은 피해보상금 이야기를 꺼냈다. 

 

게다가 본질이 탈색된 '애도 강요'만 이어지고 있다. 예정된 각종 행사와 축제를 전부 취소시키는 등 국민들의 일상을 압박하며 암울한 분위기를 유지시키고, 국민들이 해당 사건에 피로감을 느끼게 만들며, 보상금으로 사태를 무마하려 한다. 국민들의 시선을 사건의 본질과 진실 규명에서 돌리게 하려는 악랄한 수법이다.

 

 우리, 이거 어디서 너무 많이 보지 않았나. 사과 한마디 않은 정부가 사후 조치 방향이랍시고 내놓은 ‘보상금 및 세금 감면' 정책은 여론이 ‘과연 피해자의 죽음이 정말 보상금을 지급받을만한 가치가 있는가'로 흘러가도록 유도한다. 이러면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 사고의 원인인 ‘행정 공백’이라는 본질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게 된다.

 

그렇다. 세월호 참사가 떠오른다. 아직 어린애들이 너무 안됐다며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은 ‘보상금' 이야기가 나오자 돌변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의 목소리는 묻혔고, ‘자식으로 시체팔이 한다', ‘그만큼 돈 줬는데 뭘 더 바라냐'는 야만적 주장이 여론을 지배했다.

 

벌써부터 ‘왜 놀다 죽은 사람한테 내 세금으로 위로금을 줘야 하냐’, ‘술 마시다 죽은 것도 보상금을 줘야 하냐’는 댓글이 스멀스멀 보인다. 피해자 유족들은 또 ‘자식 팔아서 돈 버는’ 파렴치한 사람이 된다. 여론은 더욱 싸늘해지고, 비난의 화살은 책임을 져야 하는 윗선들이 아니라, 피해자들에게 쏟아진다. 싸움의 구도에서 책임자는 쏙 빠진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 연말까지 남은 행사를 전부 취소하고 모두가 슬픔에 잠긴 채 암울한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인가? 혹은 서울시 전체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한 후 사람들을 한곳에 모이지 않도록 입 닥치게 하는 일이 전부인가? 예상 가능했던 인파에 대책조차 세우지 않았고 턱없이 적은 통제 인원을 배치한 행정안전부의 과실이 빤히 보이는데도 책임 회피에 나 몰라라 하며 ‘우리 함께 슬퍼합시다'만 강조하는 정부가 도대체 어떤 존재 의미가 있는가.

 

윤석열 대통령실은 ‘책임론' 따질 때가 아니라고 하고,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사전 신고된 집회에 병력을 배치하느라 그랬다'며 은근슬쩍 집회 탓을 하고, 오세훈 시장은 ‘유럽에서 막 돌아와 상황 파악이 덜 됐다’며 말을 피하고, 용산구청장은 전략적인 준비는 다 했고, 인파도 예상할 수 없었고, ‘예정된 행사가 아니라 어떤 현상일 뿐’이기에 사전에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나라의 수장이라는 것들이, 다 남 탓만 하고 있다. 

 

“수습이 우선.. 정치 악용 말길" 31일 대통령실이 밝힌 공식 입장이다. 정치 하라고 앉혀 놨더니 이딴 소리나 하고 앉았으니, 기가 찬다. 정치적으로 엮지 말라는 말만큼 정치적인 말이 어디 있는가.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않음으로써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건 정치 세력이다. 반지하에 거주하다 침수된 거주민, 신당역에서 스토킹 범죄자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 공장에서 빵을 만들던 청년의 죽음도 정치적이지 않으며 그저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했다고 말할 것인가. 앞으로 비슷한 일이 있으면 또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려나. 그렇다면 내 차례는 언제인가.

인정해라. 예상 가능한 인파를 통제할 안전 대책도 없었고, 안일했으며, 무책임했음을. 사전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음에도 가이드라인조차 없이 적은 병력을 배치했음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사죄해라. 

 

시스템 부재도 병력 공백도 문제가 아니었다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철없이 놀기 좋아하는 2030 청춘이 아주 안타까운 사고로 사망했다'라는 것이 정부의 입장인가? 우리는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 갔다는 이유로 ‘어쩔수 없이'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인가? 

 

나라가 단계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책임 하나 질 사람 없는 이 국가에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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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연 기자

구석진 곳을 왜곡 없이 비추고, 가려진 세상을 섬세하게 묘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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