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1 (일)

대학알리

대학 축제,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청년을 이끌다

<1편> 윤하가 말하는 새로운 끝과 시작

 

역주행 공식을 ‘깨트려 버리자’

 

지난해 11월, 또 한 번 역주행 소식이 들려왔다. 2022년 3월 발매된 윤하의 노래 '사건의 지평선'이 그 주인공이다. '사건의 지평선'은 인기 아이돌 그룹의 타이틀 곡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5주째 음원 차트 1위에 머물렀다. 윤하의 재조명은 신선했다. 굳어졌던 '역주행 공식'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역주행은 벚꽃 시즌이나 연말 시즌에 맞춰 특정 노래가 차트를 거슬러 오르거나, 공연 영상이나 팬이 촬영한 '직캠'이 알고리즘을 통해 대중의 '픽'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사건의 지평선은 달랐다. 대학 축제 공연을 시작으로 많은 리스너가 모여, 거대한 팬층이나 'N만 조회수' 없이도 1위를 차지했다. 그 시작이었던 대학 축제 현장으로 돌아가, 그곳에 서 있던 청년의 목소리를 들어 보려 한다.

 

 

돌아온 대학 축제, '페스티벌 여왕'의 회귀

 

대학 축제는 아티스트와 청년이 가장 가까이에서 호흡하는 소통의 장이다. 많은 학생이 대학 입학 후 축제를 고대하고, 캠퍼스에 찾아올 뮤지션을 기다린다. 그러나 지난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부분의 강의가 비대면으로 전환되며 대학 축제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축제 시즌마다 북적거리는 캠퍼스도 적막했다. 신입생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2022년, 거리 두기 규제가 대폭 완화되며 모두가 기다린 축제가 2년 만에 다시 열렸다. 기다린 만큼 뜨거워진 반응에, 다채로운 가수 라인업이 열기를 더했다. 윤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이전부터 뛰어난 라이브 실력으로 학생들과 소통하고 무대를 함께 꾸미며, '대학 축제의 여왕'이라는 호칭을 얻은 바 있다. 그 명성대로 윤하는 ▲숭실대 ▲숙명여대 ▲덕성여대 ▲경희대 등 수많은 학교의 축제 현장을 찾았다.

 

윤하는 2년 만의 대학 무대에서, 학생들에게 자작곡 '사건의 지평선'을 새롭게 선보였다. 그렇게 그는 두 개의 청춘 페스티벌을 비롯해 20개 남짓의 학교를 누볐다. 그리고 사건의 지평선은 점차 대중에게 알려졌다. 대학 축제에서 학생의 큰 호응을 끌어낸 뒤, 유튜브와 SNS 등에서 입소문을 탔다. 지난해 10월 4일, '멜론차트 TOP100'에 98위로 진입했으며, 3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엄청난 기세로 지난해 11월 6일, 사건의 지평선은 발매된 지 8개월 만에 1위를 차지했다.

 

대중은 윤하의 역주행을 환영했다. 그들이 사건의 지평선과 사랑에 빠진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이지 리스닝과 힙합이 대세였던 음악 시장에서, 오랜만에 신선한 록 발라드를 알게 돼 행복하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특히 어릴 적 윤하의 노래와 함께 자랐던 대학교 고학번 학생은, 다 커 버린 지금, 어린 날의 향수를 자극한 노래라며 반가워한다.

 

대중의 다양한 감상평은 모두 '대학 축제에 두 발로 뛰며 참여한 윤하의 노력'과 '명곡의 만남'에 대한 극찬으로 수렴한다. 그녀의 역주행은 운 좋게 이뤄진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중의 인정은 수많은 학교에서 올라온 라이브 영상이 증명하고 있다.

 

 

청년, 사건의 지평선을 마주하다

 

본 기자는 숙명여대 19학번으로, 지난 2019년 윤하의 공연을 이미 직관한 바 있다. 그 현장감을 잘 알고 있기에, 직접 사건의 지평선을 접한 청년의 생생한 소감을 기사에 담고자 한다.

 

윤하가 방문한 날 축제에 참여한 숙명여대 중어중문학과 학생 H 씨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H 씨는 21학번으로, 입학한 후 처음으로 모교 축제에 참여했다. H 씨는 축제 이후로 사건의 지평선을 계속 찾아 들으며 애정을 가지고 있기에, 인터뷰에 흔쾌히 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숙명여대에서는 가수의 라인업이 공개된 후, 윤하는 현재 다소 생소한 가수가 아니냐는 반응이 불거진 적 있었다. 이에 2학년이었던 H 씨의 의견이 더욱 궁금했다.

 

축제 이전부터 아티스트 윤하의 노래를 즐겨 듣는 편이었냐는 질문에, H 씨는 '놀면 뭐하니'라는 프로그램에서 윤하의 무대를 본 뒤로, '기다리다'와 '비밀번호 486'을 플레이리스트에 담아 뒀다고 답했다. 두 노래는 윤하를 대표하는 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건의 지평선을 역주행 이전부터 알고 있었냐고 물음에는 "그런 음원이 있는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대학 축제에서 이 곡을 처음 접한 청중 중 하나였다.

 

본격적으로 축제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 축제를 찾은 아티스트의 노래를 직접 들었을 때 느낌이 어땠는지 들려 달라고 말했다. 그는 "윤하가 사건의 지평선 전곡이 아니라 노래를 아주 짧게 불러 줬는데, 처음 듣고도 신선한 노래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고하며 "그 순간의 충격에 꼭 찾아서 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제목을 메모해 뒀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전곡 라이브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H씨의 말은 곡을 짧은 시간 동안만 들었지만 뇌리에 박힐 만큼 인상 깊었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H 씨 외 타 학생들의 호응도 뜨거웠는지, 당시의 '현장감' 그 자체가 궁금했기에, 함께 있던 관객을 묘사해 달라고 부탁했다. "주변 제 친구들도 처음에는 낯선 노래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 노래 뭐야? 왜 이렇게 좋아?'같이 놀랍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며 "새로운 음악을 알게 돼서 좋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말했다. 윤하가 완곡을 하지 않았음에도 곡에 매료된 관객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건의 지평선이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음을 더욱 실감했다.

 

역주행에는 청중이 음원을 계속해서 찾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축제에서 신선한 충격이 컸다는 H 씨가 그날 이후에도 사건의 지평선의 꾸준한 리스너가 됐는지 궁금했다. 공연에서 곡을 접한 이후, 자의로 사건의 지평선을 찾아 들었는지 이유와 함께 질문했다. H 씨는 "노래 제목을 메모해 두긴 했지만, 자의로 노래 재생 버튼을 누르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축제에 방문한 관객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H 씨는 "이후 SNS나 유튜브 등에서 여러 대학에서 윤하가 부른 사건의 지평선 완곡 영상을 봤다"며 "그 영상을 보며 메모해 둔 노래 제목이 생각났고, 그제서야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듣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축제에서 노래를 듣고 매료된 관객'과 '그 관객을 통해 영상으로 노래를 접한 대중'의 공명이 이뤄진 것이다.

 

H 씨는 그 이후로도 사건의 지평선을 계속 들은 이유를 설명했다. "이 노래를 많이 들어 왔지만, 항상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노래의 처음부터 끝까지 윤하의 목소리가 지친 나를 이끌어 준다. 사건의 지평선을 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힘들거나 지칠 때마다 노래를 찾아 듣고 있다. 그래서 시험 기간에 수학 문제를 풀고 공부하면서 사건의 지평선을 반복 재생했던 기억이 있다." 그는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소재 자체도 독특하지만, 무엇보다 요즘 진부할 정도로 많이 나오는 사랑 노래 사이, 자신의 힘겨운 마음을 움직인 노래가 오랜만이라고 했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당시 무대를 계기로 아티스트 '윤하'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있는지 궁금했다. H 씨는 "당시 무대 전에는 단순히 발라더나 싱어송라이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무대 후, 사람의 마음을 다독이는 노래를 만드는 따듯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며 "사건의 지평선을 통해 윤하의 목소리와 가사의 다독임을 직접 느꼈다"고 했다. 또 "많은 사람이 사건의 지평선을 듣기 시작하고 역주행으로까지 이어진 것을 보고 윤하가 여러 대학 축제를 방문한 것이 곡이 널리 알려진 데 크게 기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윤하와 사건의 지평선 특유의 따듯한 분위기가 싸늘했던 가을, 청중의 마음을 녹이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닐까.

 

 

대중이 찾던 노래

 

이처럼 대학 축제를 무대로, 사건의 지평선은 대중을 향해 도약했다. 이번 역주행에서 주목할 점은, '대학가 축제'라는 청년 문화와 네트워크가 주축이었다는 점이다.

 

청년은 축제에서 겪은 경험을 동시다발적으로 공유하며, 축제에 오지 않은 사람에게도 간접 경험을 가능하게 했다. 또 2년간의 팬데믹이 한층 완화된 상황에서 고대하던 순간을 맞이한 만큼, 청년의 적극적인 참여와 즉각적인 반응이 이러한 흐름을 증폭시켰다. 윤하는 오랜 시간 힘든 나날을 버텨 온 학생들에게 사건의 지평선이라는 추억을 선물하고, 그곳에 있던 학생들은 사건의 지평선을 음원 차트 정상에 올리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그렇게 사건의 지평선은 대중을 향해 널리 퍼져 나갔다. 명곡과 대중의 환호는 빠르게 어우러졌다. 이는 곧 음원 차트 1위라는 가시적인 결과로 증명됐다. 사건의 지평선은 오랜 시간 한정된 장르에 익숙해진 청중의 음악적 갈증을 해소했다. '윤하 세대'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며 스며들었고, 그의 노래를 처음 접하는 연령층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사건의 지평선은 오랜 기간 음악 차트 상위권을 유지하며 대중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노래는 사람들의 삶에 배어들었고, 노래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깊이 스며들었다. 시험 공부를 하며 지칠 때마다 사건의 지평선을 반복 재생했던 H 씨처럼, 노래와 대중은 일련의 관계를 형성해 갔다.

 

사건의 지평선의 비상에는 서사가 있다. 대학 축제를 발판으로 청년을 통해 더 넓게, 그리고 많은 대중의 삶에 더 깊게 스며들었다. 그 이야기의 감동이 '1위'라는 성적보다 더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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