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수구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와하’라는 이름의 이 곳은 난민 및 여성 이주민들이 위기 상황이나 환경적 어려움 속에서 쉼과 회복을 찾을 수 있는 ‘오아시스’로 운영된다. ‘한국이주인권센터’의 활동가이자 ‘와하’ 커뮤니티의 실무, 책임 역할을 담당하는 박정형 씨는, 2018년 4월을 시작으로 꾸준히 이 공간을 관리하고 지켜오고 있다.
Q. 센터장님 소개와 함께 ‘와하’가 어떤 곳인지 독자들을 위해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이주인권센터의 활동가 ‘박정형이라고 해요. 저희 센터는 2001년에 만들어졌어요. 처음부터 아랍/난민 무슬림 여성분들을 대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아니에요. 시작은 산업 연수제였죠. 저 역시도 초창기에는 산업 연수제와 관련해 이주노동자분들과 상담하는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2016년쯤 도움을 얻으려 무슬림 난민분들이 인천 지역에 등장하기 시작했죠. 그게 첫 만남이었어요.
센터가 원래는 부평구에 있었는데, 운영진과 협의 후 연수구로 이사했어요. 감사하게도 이전 사실이 알려진 이후 많은 아랍 여성 분들이 와서 굉장히 환영해 주셨었어요. 개소식 때 음식을 가져와서 나눠 먹기도 하고요. 정리하자면 저희 ‘와하’는 아랍/난민 무슬림 여성분들을 위한 편안한 공간이자 쉼터를 목표로, 인천 내 아랍권 커뮤니티와 그 커뮤니티의 여성분들을 중심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현장에서 보셨을 때 느끼신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일자리 문제죠. 난민, 인도적 체류자분들이 주로 받는 게 G 비자 거든요. 이 비자 자체로는 취업할 수 없는데, 사업주와 고용 계약서 작성 후 출입국, 외국인청에 가 취업 허가를 받으면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출입국, 외국인청 직원분들이 난민, 인도적 체류자를 상대한 경험이 많이 없으세요. 그러다 보니 서류를 준비하고 찾아가, 근거를 설명해도 거절당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리고 G 비자 카테고리 자체가 표준 비자 분류로 처리되지 않는, 여러 특수 사정의 외국인을 위한, 어떻게 보면 약간 잡다하다고 할 수 있는 비자에요. 이러다 보니 일을 할 수 있는 비자인데도 정부, 지역사회에서 취업 관련 지원이나 프로그램, 설명이 아예 부재한 상황이에요. 이런 상황 속에서는 사실 불법으로 일할 수밖에 없죠. 당장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까요.
Q. “무슬림 여성”에 특별히 더 관심을 두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어머니 분들이 혼자 오실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게, 어머니 분들이 토로하시는 고민의 내용이 남편들의 것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거예요. 여성분들은 가정의 양육, 가사노동을 담당하며 실질적인 생활을 책임지는 존재에요. 남성분들의 상담 내용은 대체로 근무처에서의 불합리한 대우 문제에요 그런데 여성분들의 이야기에서는 타국에서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오는 근본적인 고립감, 공동체 연결의 부재에서 오는 고독이 깊게 느껴져요. 저에게는 어쩐지 그 분들의 그런 얘기들이 굉장히 와닿더라고요. 그래서 여성분들을 위해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Q. 과거와 비교했을 때 한국사회가 무슬림 이주민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변화가 있다고 느끼시나요?
무슬림은 여전히 한국 사회 내에서 소수 중 소수에요. 그래서 사실 수용의 단계까지 왔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요. 오히려 이들의 유입 이전부터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편견이 점점 더 굳어지고 있다고 느끼구요.
한국 사회가 무슬림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무슬림 여성들이 소극적인 피해자이기만을 바라는 것 같아요. 이슬람이 가진 가부장적인 측면을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아직도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정 내에서 여성과 남성이 가지는 발언권과 결정권에서 크기 차이가 있다는 게 느껴져요. 다만 그런 측면만을 이슬람과 무슬림의 전부라고만 생각한다면, 그 안의 사람들, 그중에서도 무슬림 여성들의 삶은 필연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어요.
무슬림을 이야기할 때 오직 이슬람이 ‘여성에게 얼마나 억압적이고, 차별적인지’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 담론 속에서 여성들은 영원히 피해자로만 남게 돼요. 이런 식의 담론은 당사자들 삶의 실질적인 개선에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에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 사회 내에 살아가는 무슬림 여성들의 주체적인 존재를 지우는 일이에요.
Q. 센터 내에서 이주민 아동들을 위한 공부방도 운영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학교생활 적응에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 현장을 지켜보시면서 필요하다 느끼셨던 지원이 있으시다면 무엇일까요?
공부방이 확실한 대안은 되지 못한다고 느껴요. 센터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활동을 진행하는 거죠. 소수의 케이스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이주 아동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아이들과 학업 성취도 부분에서 격차가 생기게 돼요. 아무래도 한국 사회는 교육의 상당 부분을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특히 수학과 과학의 비중이 크죠. 어느 시점부터 난이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니까요.
사실 안타깝죠. 왜냐하면 정말 어린 시절부터 봐온, “아 이 친구는 정말 총명하다.” 느꼈던 아이들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벽을 느껴 학업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Q. 센터를 운영하시며 가장 큰 보람을 느끼시는 순간이 있으시다면 언제일까요
아주 보수적인 가정의 여성분이 계셨어요. 그런데 그 여성분의 남편분이 이 공간에 오는 건 예외적으로 허락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런 얘기들을 듣다 보면, ‘와하’라는 공간의 존재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되죠.
센터가 여성분들이 한국 사회 내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자유롭게 모일 수 있는 공간으로서 보존되길 바라요. 가끔 여성분들이 와하 공간을 대여해 행사라든지, 모임을 주최할 때도 있거든요. 그럴 때마다 또 ‘와하’라는 공간이 여성분들께 자원이 되어주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죠.
Q. 센터장님께서 꿈꾸시는 이주민과 한국인이 진정으로 함께 어우러져 사는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한 문화권이 힘을 받으려면 이주민들이 성장해야 해요. 이주민들이 기존 구성원들과 함께 성장하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는 세상이 건강하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에요.
성공하는 이주민들의 사례가 많아져야 해요. 유학생들뿐만 아니라, 이미 한국에서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 특히 어린 시절부터 한국 사회를 경험하며 살아온 이주민들의 성공 사례가 필요해요. 이주 아동들은 부모님 나라(본국)와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를 가진 존재에요. 이 아이들이 성장한다면 지금 제가 하는 활동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저는 그때가 너무 기대돼요.
Q.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게 될 독자 분들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요
최근 이주민 혐오증이 심해지고 있어요. 시위와 같은 방식으로 이 혐오를 조직적으로 표현하는 세력도 증가하고 있고요. 하지만 돈과 상품이 이동하는 세상에서, 사람이 이동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요. 이러한 이동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막고 싶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이주민들을 돕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끔 생각해요. 종종 이주민들을 불쌍한 사람이여서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세요. 이런 분들은 기대와 다르게 실제 이주민들이 ‘불쌍하지 않다는 걸 발견하면 실망하거나, 배신감을 느끼시죠.
이주민분들을 돕는 이유는 그분들이 불쌍해서가 아니에요. 정의와 연대의 관점에서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이주민들은 같은 사회 구성원이지만 제도적으로 공정하지 못한 위치에 놓여있고. 차별적인 상황을 경험하고 있어요. ’불쌍해서‘ 돕는 것이 아닌, 사회가 같은 구성원에게 동등한 권리를 제공하지 않는 것에 항의하는 것이에요.
한국 사회 난민의 역사는 1970년대 베트남 피난민의 수용과 함께 시작된다. 이후 1992년 12월 3일 난민협약에 가입한 후, 2001년에 최초의 난민을 인정한 바 있다. 그 후 2011년 12월 29일 난민법안이 국회 본회에서 통과되었고,2013년 7월부터 난민법이 제정돼 시행되기 시작했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할 수밖에 없었어요. 참고할 수 있는 선행 사례, 예시 자체가 부재했던 상황에서, 가정 구성원들의 기초적인 생활과 정착을 지원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당사자분들과 최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며, 그때그때의 요구사항과 필요를 보충해 나가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활동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동기는 박정형 활동가가 아랍/난민 무슬림 여성들에게 가진 개인적인 연민과 애정 이상의, 정의와 연대의 관점이었다. 아직 변화는 완성되지 않았다. 박정형 활동가의 ‘와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신수민 기자(necrotix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