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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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사회

뜨거웠던 예비교사들의 함성, 3.26 공동 행동을 돌아보다

 

꽃샘추위가 가시지 않은 탓인지 이날 세종대로 인근은 유독 쌀쌀했다. 빌딩 숲 사이로 시도 때도 없이 강풍이 몰아쳤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각자 자신의 옷깃을 세웠다. 

 

수 차례 강풍이 불어닥칠 때마다 인파 사이로 수십 개의 깃발이 나풀거렸다. 깃발에는 각기 다른 학교의 마크와 이름이 적혀있었다. 깃발 아래로는 다시 수십 명의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이들은 각자 다른 학교 소속이었지만 그들의 손에는 모두 같은 피켓이 쥐어져 있었다.

 


 지난 3월 26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정부의 교육 정책을 규탄하는 ‘전국예비교사 분노의 집회’가 개최됐다. 전국의 교육대학, 사범대학에서 교사를 꿈꾸는 대학생 1,500여 명이 이날 서울의 도로 한복판으로 모였다.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이 주관한 이번 집회에는 전국 19개 대학이 참여했다. 교사노조연맹,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 시민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도 자리에 함께했다.

 

이들이 분노한 이유는 정부의 교육 정책 때문이었다. 정부는 올해 초부터 교원 감축으로 인한 교육 현장의 충격을 완화하고, 보다 전문성을 갖춘 교원을 양성하기 위해 △정원 외 기간제 교사 제도화 추진 △교육전문대학원 도입 △교육자유특구 신설을 골자로 정책을 추진 중에 있다. 
 
정부는 해당 정책들이 향후 저출산에 따른 교육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취지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래 교육을 책임질 교대생을 중심으로 반발의 움직임이 거세다. 이들은 정부의 정책이 실효성이 떨어질뿐더러 경쟁을 심화시키는 역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오후 1시, 집결 시간이 되자 스태프들이 분주해졌다. 단상에 오른 사회자들이 인파를 진두지휘하자 앞에서부터 빼곡하게 자리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능숙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마지막 사람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질서를 지켰다. 행렬의 양 끝에는 각 학교의 깃발을 든 학생들이 나란히 정렬했다. 모든 준비를 끝마치자 시곗바늘이 예정보다 살짝 늦은 오후 1시 40분을 가리켰다.

 

단상 위의 사회자가 인사를 올리자 길게 뻗은 행렬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회자가 이날의 일정을 설명하고 안전을 당부하는 동안 점점 더 집회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지나가는 시민들도 집회의 광경에 재촉하던 발길을 멈춰 세웠다.
 

사회자가 먼저 “교육 불평등 심화시키는 교육부 정책을 반대한다”며 구호를 외치자 참가자들은 “반대한다, 반대한다”라고 호응하며 피켓을 흔들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은 빌딩 숲에서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칠 때마다 그 목소리는 더욱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구호 연습이 끝나자 발언자들의 차례로 넘어갔다. 사회자는 이날 집회를 제안한 성예림 제11기 교대련 의장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무대 위에 선 성예림 씨는 준비해 온 발언을 담담하게 읽어 내려갔다.

 

 

“우리는 오늘 교육 불평등의 고리를 끊기 위해 거리로 나왔습니다.
초등학교 교실부터 대학까지, 경쟁이 심해지는 현실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 예비 교사들은 우리 손으로 직접 학생이 중심이 되는 교육을 만들겠다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뒤를 이어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경북대 사범대학에 재학 중인 김상천씨였다. 전국의 사범대학을 대표하는 마음으로 단상 위에 선 그는 발언 내내 참가자들과 눈을 마주치며 거침없이 정부의 잘못을 꼬집었다. 단상에서 내려온 그를 찾아가자 그의 진솔한 생각을 더 자세하게 들어볼 수 있었다.

 

 

 “우리는 오늘 미래 교육을 책임질 예비 교원으로서 직무를 다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지금 교육부에서는 단순한 논리로 교원의 수를 줄이려고 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잘못된 정책이 현재의 문제를 만든 원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입니다. 지금의 정부가 추진하는 바와 같이 단순히 교육 기관의 형식을 바꾸는 방식으로는 그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정부가 교육지자체들과 협의를 함으로써 교육 정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발언과 발언 사이에는 대학생들이 준비한 흥겨운 공연이 펼쳐졌다. 경인교대 댄스 동아리 ‘플레어’가 준비한 무대는 집회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고, 광주교대 중운위가 준비한 풍물패 공연은 신명 나는 흥겨움을 더했다. 특히 이날 참석한 19개 학교를 상징하는 자켓을 입은 학생들의 합창 무대에선 여느 때보다도 큰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토록 달아오른 분위기는 마치 학교 축제를 연상시켰다. 사회자들은 분위기가 꺼지지 않도록 곧바로 다음 순서로 이어갔다. 5명의 학생 대표가 단상 위에 올라 준비한 선포문을 낭독했다.

 


 “교육부는 예비 교사들의 요구에 응답하십시오.
교육부가 말하는 맞춤형 교육은 무엇입니까.
진단이 잘못됐으니 대책도 잘못됐습니다.
우리는 이번 공공 행동을 시작으로 정부에서 포기한 공교육을 다시 정상으로 돌려놓을 때까지 계속해서 행동해 나갈 것입니다”

 

선포문 낭독이 끝나자 무대에는 블록이 차곡차곡 쌓였다. 블록에는 ‘졸속 추진 교육전문대학원’, ‘기간제 교사 확대 정책’ 등 이들이 규탄하는 정부의 교육 정책이 적혀 있었다. 방금 전 선포문을 읽었던 학생 대표들이 블록의 뒤로 돌아가자 사회자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사회자와 참가자들이 함께 ‘제로’를 외침과 동시에 세워졌던 블록들은 세차게 무너졌다.

 

 

무너진 블록은 행렬의 끝까지 파도타기를 통해 전달되었다. 행렬의 끝에 다다랐을 무렵, 블록은 거꾸로 뒤집어져 다시 행렬의 앞으로 옮겨졌다. 뒤집힌 블록을 단상 위에서 다시 쌓자 ‘교육전문대학원 전면 철회’, ‘학생이 중심되는 교육 환경’ 등의 문구가 나타났다. ‘깜짝 퍼포먼스’에 참가자들은 다시금 환호를 보냈다.
 

퍼포먼스가 끝나자 참가자들 뒤로 트럭 서너 대가 행진할 채비를 마쳤다. 소식을 전해 들은 사회자와 스태프들은 다시금 분주히 행진을 위한 대열을 준비했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참가자들은 곧잘 대열을 갖추었다. ‘교육 불평등 심화시키는 교육부 정책 반대한다’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선두에 내걸리자 사회자의 신호와 함께 행진이 시작됐다. 

 

 

이날 행진은 세종대로에서 시작해 삼각지역까지 이어졌다. 3km가 넘는 거리를 내리 걸어야 함에도 학생들의 발걸음은 나들이를 떠난 듯 가벼웠다. “교육 불평등 심화 정책 반대한다”, “기간제 교사 정책 철회하라”. 학생들의 목소리는 행진 내내 서울 도심을 가득 메웠다. 이들의 행렬을 정신없이 쫓아가다 보니 숭례문이 보였다. 그러자 행렬의 가장 선두에 있던 차량이 멈춰 섰다.

 

멈춰진 차량 앞으로 스태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테이프를 이용해 차로에 플래카드를 붙였다. 플래카드에는 ‘정원 외 기간제 제도가 교육부 성과다’, ‘교원양성체제 개편은 정부의 권한’, ‘교육이 상당한 경쟁시장 구도가 돼야’라고 적혀 있었다. 다시금 차량이 움직이자 학생 행렬은 차로에 부착된 플래카드를 밟고 지나갔다. 아예 플래카드가 찢어지도록 발을 구르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이 모두 밟고 지나간 플래카드는 넝마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행진이 법적으로 신고된 지역은 삼각지역 부근까지였다. 서울역을 지나 삼각지역 가까이에 다다르자 수십 명의 경찰들이 바리케이트로 도로를 완전히 막아섰다. 대통령실 인근인 탓인지 경찰의 분위기가 한층 엄숙해 보였다 행진은 정확히 경찰의 바리케이드 앞까지 이어졌다. 바리케이드에 가로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자 선두 차량은 멈춰 섰다. 행렬도 덩달아 멈췄다.

 

전진을 멈춘 행렬 옆으로 ‘교육전문대학원’과 ‘정원 외 기간제 제도화’가 그려진 현수막이 펼쳐졌다. 그러자 학생들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글귀를 담은 불 모양 스티커를 현수막 위에 붙였다. 수백여 개의 불 스티커가 현수막에 빽빽하게 붙여졌다. 현수막의 글귀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화형’을 재치 있게 나타낸 것이었다. 

 


행진을 마친 학생들은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오늘 하루 동안 수없이 외쳤던 구호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


“교육 불평등 심화시키는 교육부 정책 반대한다” “반대한다, 반대한다”


마무리 발언으로 서울교대에 재학 중인 최윤정 씨와 광주교대에 재학 중인 송재희 씨가 나섰다. 이들은 오늘 하루를 소회하면서 정부의 정책 시정을 촉구했다.

 

“많은 학우분이 참석해 다 함께 우리의 요구안을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예비 교원들이 똑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또 한마음 한뜻으로 변화의 물결을 바라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철회할 때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변화의 폭풍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마무리 발언이 끝나자, 사회자가 공식적인 해산 선언을 함으로써 이날 집회는 종료되었다. 집회가 끝난 이후에도 많은 학생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다. 이날 집회에 참여했던 A씨는 하루를 곱씹으며 소감을 밝혔다.

 

“다 함께 구호를 외치면서 삼각지역까지 행진했던 것이 무척 즐거웠어요.
거리가 먼 만큼 힘들기도 했지만, 저 혼자가 아니라 모두와 함께 걸으니까 힘이 났습니다.
저의 오랜 꿈인 교사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이런 집회에 자주 참여하고 싶습니다.”

 

집회가 끝난 후 전국교육대학생연합 김민아 집행위원장은 소감을 이야기하며 정부가 교육정책을 시정할 때까지 오늘의 공동 행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민아 집행위원장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Q. 오늘 공동 행동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린다.


A. 사실 공동 행동의 준비가 급하게 이뤄져 행동 직전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금전적 문제도 있어 후원을 받고자 홍보를 올렸는데 많은 학우분이 호응해 줘 다행히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오늘 공동 행동 현장에서도 볼 수 있었듯 많은 학우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평화적인 해결을 강하게 바라고 있다. 주최를 결정한 입장에서 이런 분위기가 큰 힘이 되었다. 잘못된 정책들을 바로잡을 때까지 이런 행동을 이어 나가고 싶다.


Q. 정부가 발표한 여러 정책이 교원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큰 반발심을 준 것으로 보이는데, 어느 부분에서 가장 반발이 심했는지.


A. 어느 한 정책을 콕 집어서 이야기하기 어려운 문제다. 정부와 교육부의 전반적인 교육 정책에 대한 입장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번 공동 행동도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추진되었다. 향후 정부의 교원 수급 계획이 발표되는데, 교원 감축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우리가 힘을 합쳐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이렇게 공동 행동에 나서게 됐다.


Q. 향후 어떻게 학교 간 소통을 이어갈 예정인지.


A. 교육대학과 사범대학 간 유기적인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향후에도 다양한 제안을 드릴 예정이다. 또 지금까지 온라인으로만 연락을 취했다면 이제는 직접 찾아뵙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고민 중에 있다. 향후 함께 적극적으로 활동을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 4월 24일 향후 3년 간의 교원 수급 계획을 발표했다. 발표된 계획안에 따르면 2024년부터 공립 교원의 신규 채용은 현재 규모(초등 3,561명, 중등 4,898명)에서 최대 초등 600여 명, 중등 800여 명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정부는 감소 수준을 매년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해 2027년까지 초등 2,600명 내외, 중등 3,500명 내외까지 신규 채용을 줄인다는 계획이다. 올해 시범적으로 운영될 예정이었던 교육전문대학원은 여전히 답보하고 있다. 교육부는 교육전문대학원에 대한 교육계의 반발이 심해지자 시범 운영 계획을 전면 연기하고 의견 수렴에 나섰다. 3.26 공동행동을 주최했던 전국교육대학생연합은 교원 수급 계획의 철회를 요구하며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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