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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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기자단, ‘비리의 토양’이 되다

“기사가 검찰이 원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생각도 들어”
‘김만배 사건’으로 얼룩진 법조기자단 민낯 드러나
자성의 목소리가 향하는 방향은

지난 1월 종합일간지 세 곳(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의 간부와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사이에서 수억원 상당의 돈거래 정황이 포착됐다. 해당 언론사들은 각각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사건 파악에 나섰고, 돈거래를 한 당사자 3명은 모두 기자직을 내려놓게 됐다.

 

김만배와 세 간부의 공통 분모는 법조기자단이다. <한겨레>가 발표한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법조라는 출입처는 “기자이자 부동산 사업가인 김만배가 20여 년 활동해 온 환경이자 토양”이었다. 실제로 김만배와 금품거래 정황이 있거나 화천대유에 임직원으로 영입되는 등 관련성을 보인 언론인 10명 중 8명은 각 언론사 법조팀장 출신이다.

 

한겨레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은 김민정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법조브로커로 알려진 김만배가 기자단에서 주로 하는 일은 친분 유지였다”면서 "검찰이나 출입처에 있는 사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해 (상호간의) ‘민원’을 해결하는 역할을 했기에, 법조기자단 문제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까다로운 법조기자단 가입 요건

법조기자는 서울 서초동의 대법원과 서울중앙지법,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등에서 팀 단위로 근무한다. 법조기자단은 네 곳의 기자실을 총칭한다.

 

법조기자단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법조팀장들이 모여 있는 대법원 기자단에 가입을 신청해야 한다. 이후 6개월 동안 최소 3명의 기자가 법조 관련 기사를 보도하면 요건이 충족된다. 그 다음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 서울중앙지법 소속기자단이 재적인원 3분의 2 이상 출석한 가운데 투표를 진행한다. 과반수가 찬성하면 1차 심사를 통과한다. 다만 대법원 기자실이 한 차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모든 과정은 정성평가로 이루어진다.

 

 

취재 편의를 제공하는 법원과 검찰

법조기자단은 취재 과정에서 법원과 검찰청으로부터 편의를 제공받는다. 까다로운 가입 조건과 더불어 폐쇄성을 지적받는 또 다른 이유다. 기자단에 속하지 않으면 기자실을 이용할 수도, 출입증을 발급받을 수도 없다.

 

2021년 12월 <미디어오늘>과 <뉴스타파>, <셜록> 등은 각각 서울고등검찰청과 서울고등법원에 출입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이들은 모두 법조기자단에 속하지 않은 상태였다. 사실상 취재 요청을 거부한 것과 다름없다.

 

이후 <미디어오늘>은 서울고법에 <뉴스타파>와 <셜록>은 서울고검에 소송을 제기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022년 12월 1일 최종 패소했고 <뉴스타파>와 <셜록>은 1심 승소 후 2023년 8월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미디어오늘>의 최종 패소 이후 성명을 통해 “대법원 판결이 법조출입처 제도의 문제를 정면으로 대하지 않고 회피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한다”고 밝혔다.

 

법조기자단의 취재 관행

통신사 기자 A씨는 법조기자단에 가입하지 못한 언론사는 어떤 방식으로 취재하냐는 질문에 “많은 불편이 있는 건 사실이다. 기자실에 못 가고 출입증조차 받지 못한다”며 “의미 있는 기삿거리를 찾아내는 게 사실상 어려워 많이 제한적인 상황”이라고 답했다.

 

물론 법조기자단에 속하더라도 모든 취재가 수월하진 않다. 인터넷 매체 기자 B씨는 “수사 주체인 검찰은 기자들이 알아내고자 혈안이 된 정보에 있어 당연히 갑의 위치에 있다. 이런 정보를 ‘미끼’로 검사가 기자를 길들인다는 건데, 단독이나 특종을 위해 기자 입장에서는 검사들이 평소에 보도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에 대해서는 보도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검사의 한마디에 의존하기도 한다. 종합일간지 기자 C씨는 “티타임* 이나 정식 공보를 통해서는 많은 정보가 나오지 않다 보니 친분 있는 검사들이 알려주는 정보에 의존하게 된다”며 “일방의 입장인 검찰발 정보가 비중 있게 담긴 기사를 쓰다 보면, 기사가 검찰이 원하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고 언급했다.

*티타임: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건에 대해 검찰 중간 간부급인 차장검사가 기자들과 만나 질의응답을 하는 ‘비공개 정례 브리핑’

 

언론사가 자사 법조기자에게 요구하는바 또한 크다. B씨는 “법조팀이라는 게 일반적으로 언론사 내에서 엘리트 기자들만 오는 곳이라서 하나같이 자부심이 강하다”며 기대에 부응할 필요를 느끼고 타사 기자와 경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검찰의 힘이 더욱 강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만 모든 법조기자단이 경쟁적인 형태는 아니다. A씨는 “법원 같은 경우 (기자) 상호 간 예의를 중시하고 협력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기자가 수많은 재판을 모두 들여다볼 수 없기에 법조기자단 내부에서 언론사마다 돌아가며 (재판 내용을) 받아적고 공유한다. 일종의 공조다. 기자단에 속하지 않으면 이런 과정에 참여하기 어렵긴 하다”고 첨언했다.

 

 

검찰발 보도가 가지는 딜레마

정보를 가진 자와 캐내려는 자 간의 정보 비대칭성은 편향적 보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박홍기 성균관대 초빙교수(전 서울신문 상무)는 “어느 날 검사가 넌지시 특정 기자에게 수사 상황을 흘린다면, 기자가 다각도로 검증은 하겠지만 검사의 말을 (일단) 신뢰할 것”이라며 “검사가 검찰 조직 차원에서 수사 내용을 흘리면 검찰에 유리하게, 검사의 의도대로 보도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윤리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김 “검찰 수사 단계에서의 피의사실은 한 쪽의 주장일 뿐 확정된 진실은 아니다. 그런데 언론이 (검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면 이러한 보도를 접한 다수의 시민들은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피의자를 범죄자로 바라보게 되고, 이는 무죄추정 원칙에 위반된다”며 “피의자가 받게 될 고통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검찰발 보도를 검찰 편향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검사 출신 이창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언론에 흘려주는 관행이나 티타임은 피의사실 공표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수사 진척에 대한 객관적인 상황을 알리는 것”이라며 “(검찰이) 말을 하지 않으면 (기자는) 취재를 할 수 없고, 수사 상황이 다르게 보도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은주 <한겨레> 법조팀장 역시 “검찰 보도를 단정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며 복잡한 법조 보도 관행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기자가 압수수색 등의 정황으로 변호사나 검사에게 관련 정보를 요구할 수도 있다. 검찰발 보도가 모두 흘려주는 정보를 받아먹는 형태로 구성되지 않는다. 단순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쉽게 폐지할 수 없는 법조기자단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출입처를 쉽게 없앨 수도 없는 상황이다. 언론사들은 뉴스를 제시간에 제작하고 기자들의 업무를 효과적으로 분담하기 위해 출입처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법조기자단 역시 주요기관으로부터 뉴스가 될 만한 정보를 상시 공급받을 수 있다.

 

A기자는 “(출입처라는) 폐쇄적인 조직은 단점도 존재하나 어느 정도 순기능도 있다”며 “인터넷이 발전하며 언론사라고 보기 힘든 매체도 많아진 게 현실이다. 이런 매체들이 모두 검찰이나 법원으로 향한다면 혼란이 야기될 공산이 크다”고 언급했다.

 

이 교수는 법조기자단에 대해 “검찰과 긴장관계를 유지하기도 한다”면서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못 하면 비판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C기자 역시 “출입기자단이 뭉쳐 거대 국가기관의 결정에 항의할 수 있다는 장점도 지닌다”고 설명했다.

 

개편 방향은?

이른바 ‘김만배 사건’ 이후 <한겨레>는 자체 진상조사위를 꾸려 돈거래 사건의 발생 원인과 그 영향을 분석한 뒤 재발 방지를 위해 보도 관행의 변화를 약속했다. 정 팀장은 “법조 매뉴얼을 만들고 모니터링도 시작했다. 매달 법조기사가 어떤 식으로 나오고 무슨 장단점을 가졌는지 등 타사와의 차이를 비교한다. 긴 호흡의 사건과 재판 과정을 읽기 쉽게 기사로 만드는 방법도 고민 중이다. 한 기자가 한 사건을 전담해 취재하는 방법도 시도하고 있다. 초창기라 성과를 따지긴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검사와 기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 교수는 “전지적 검찰 시점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 제도와 관행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미국은 페이서(PACER: 연합법원의 소송서류 공개시스템)라는 제도를 통해 사법 정보를 대부분 공개한다. 우리나라도 정보공개법이 있지만 공개성과 투명성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정보공개가 이뤄진다고 볼 수는 없다”며 “정보가 곧 힘이 되는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법조기자단의 변화만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 교수는 “검찰 권력이 압도적인 이유는 국민과 정치인이 그곳에 가장 큰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안을 법으로 끌고 가기도 한다. 한편 현재 우리사회에서 법조계에 대한 신뢰는 매우 낮다. 검찰 수사의 편향성이나 법원 판결의 불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또 모든 걸 법조계로 가져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며 사회 전반의 자성을 촉구했다.

 


 

수십 년간 문제로 제기된 검찰과 언론의 관계, 법조기자단의 폐쇄성이 김만배 사건을 계기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언론계 내부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으며 보도 관행의 변화를 모색하는 긍정적 시도도 돋보인다. 비리의 토양으로 전락한 법조기자단이 어떤 ‘토양’으로 탈바꿈할지는 앞으로의 움직임에 달렸다.

 

김혜중 기자(khj991222@gmail.com)

 

*해당 기사는 외대알리 지면 38호: '청년의 시점으로 바라본 세상은'에 실린 기사로, 2023년 7월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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