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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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토종 씨앗 지키기

“씨앗이나 모종을 대부분 육묘장이나 종묘상에 가서 사는데 이건 농민들의 생산비가 늘어나는 일이거든요. 토종 씨앗을 심고, 가꾸고, 보존하는 일이 농민들의 생산비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작물과 식량주권을 지켜낼 수 있어요. 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농사를 짓는 농민만이 아니라 전국민적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식탁 위에 올라오는 많은 곡물, 채소, 과일들의 상당수가 외국 기업이 판권을 가지고 있는 품종이다. 20세기 말부터 다국적 기업들이 인수와 합병을 공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종자의 독점을 가속화하고 있다. 종자는 농업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종자가 점차 독점되면서 다국적 기업이 부과하는 로열티가 농민들의 생산비 부담을 크게 늘리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종자 시장의 74%를 7개의 기업이 점유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종자 시장 점유율이 1%도 채 되지 않으며,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농작물 종자의 로열티로 지급한 금액은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총 1,358억 원에 달했다.

 

한국 토양과 기후에 적응한 토종 씨앗은 안정적인 수확량을 확보할 수 있어 지속가능한 농업을 실현할 수 있다. 또한 토종 씨앗은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의 위험성, 다국적 기업의 종자 독점으로부터 믿을 만한 먹거리를 생산·소비하는 기반이 된다.

 

이러한 토종 씨앗을 지키고 보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은 산업화된 관행농업에 맞서 지역과 소농 공동체를 토대로 한 지속가능한 농업 실현을 목표로 한다. 전여농은 비료, 농약, 제초제가 없는 다품종 농사를 지으려 노력하고 있는데, ‘토종 씨앗 지키기’ 운동이 중요한 일환이다.

 

전여농은 소속 여성농민들의 지식과 경험을 주요한 기제로 삼고 있다. 농촌의 60대 이상 여성농민들은 해당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적응하며, 씨앗을 심는 것부터 수확하는 모든 과정에서 요구되는 지식을 체화했다.

 

전여농은 토종 씨앗 지키기 운동을 식량주권 사업인 ‘언니네 텃밭’ 꾸러미 사업으로 확대했다. 
언니네 텃밭 꾸러미 사업은 다국적 기업의 농산물을 거부하고 농촌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의 연대를 통해 소득·소비 체계를 구축하는 사업으로 여성 농민들이 생산부터 가공, 판매 전반에 참여한다. 현재 전국 9곳(강원도-횡성, 경북-봉강, 제주-동드레우영, 강원-오산, 경남-함안, 경남-고성, 전남-영광, 전남-다시, 전남-무안)에서 ‘언니네 텃밭’ 꾸러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함안군에서 언니네 텃밭 꾸러미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아라씨앗드리’ 공동체의 정은미(53) 사무국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경남 함안군 여항면 주서리에 위치하고 있는 함안군 아라씨앗드리 공동체(이하 함안 아라씨앗드리)는 함안군 여성 농민회 토종 종자 지키기 사업의 이름인 ‘아라씨앗드리’를 사용한다. 함안 아라씨앗드리는 60대 이상 여성농민 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니’라는 표현은 농촌의 여성 생산자와 도시 여성 소비자의 의식적인 연대와 농업 ‘생산자’로서 강한 정체성을 상징한다. 함안 아라씨앗드리는 2011년 5월 꾸러미 공동체 활동을 시작해 토종 종자를 지키고 확대하자는 의미에서 생산자 모두가 한 가지 이상의 토종 씨앗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정 사무국장은 언니들과 같이 공동체 활동을 하며 농사의 지혜로움을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언니들은 지혜로워요. 농사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알뜰하게 하시고, 채종도 잘하세요. 언니들은 밭 하나에 한 가지 작물만 심는 것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마늘밭의 골에는 열무나 상추를 심어서 수확해요. 이렇게 혼작의 이로움 같은 노하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농사의 지혜로움을 많이 배울 수 있어요.”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농업 재해의 발생빈도와 피해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기후위기와 농어민 인권에 관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농업인이 85.7%, 기후변화 현상이 심각하다고 답한 농업인은 92.4%로 나타났다. 농업 부문 피해 정도를 1~4점 사이 점수로 응답한 결과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피해 정도 전체 평균은 3.28점으로 나타났다. ‘기온 상승으로 인한 병해충 발생’은 3.38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풍수해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3.36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기후변화 속 농업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어떠한 피해를 입고 있는지 보여준다. 정 사무국장에 따르면 올해 역시 폭우로 인해 수확이 쉽지 않을 것이라 설명했다.

 

“올해처럼 이렇게 장마를 만나게 되면 수확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고추 같은 경우는 탄저병농작물에 누런 갈색의 병 무늬와 붉은색의 덩어리가 생기는 병이 와서 수확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올해 4월 남부지역 기후가 10도 이하로 떨어지면서 작물들이 냉해를 입기도 했어요. 또 기온이 자꾸 상승하면서 심는 시기와 수확시기가 계속 빨라지게 되는 것 같아요.”

 

지난 106년(1912년~2017년) 동안 대한민국의 연평균 최고기온은 17.5°C, 최저기온은 8.9°C를 기록했다. 여름은 19일 길어졌고, 겨울은 18일 짧아졌다. 최근 10년 동안은 한랭일과 서리 일수가 증가하고, 강수량은 20세기 초보다 124mm 증가하였다. 이러한 기후 변화는 농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 사무국장은 개량종의 경우 작물들의 특정 성분들만 골라 만들어 놓은 품종이기 때문에 토종 작물보다 생산성이 높을 수 있지만, 토종의 경우 우리 기후와 토양에 맞게 스스로 변화된 것이기 때문에 농사를 지어보아도 병해충에 강한 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기온상승으로 인한 병해충 발생에 따른 농작물 피해가 적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2022년 발생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곡물과 에너지 수급 부족이 발생하고, 기후변화로 인해 곡물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식량 자급에 더욱 많은 관심이 기울어졌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식량 자급률(사료용 제외)은 45.8%로 조사되었다. 1990년 식량자급률보다 14.6% 줄었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쌀은 1990년대 이후 꾸준히 하락세를 보여 2020년 92.8%로 1990년 대비 15.5%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식량 자급률이 50% 미만이라는 것은 국민들이 먹는 음식 중 우리 땅에서 생산된 식량의 비중이 50%도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함안 아라씨앗드리는 토종 씨앗으로 식량 주권을 지키고 농민들이 기업으로부터 씨앗 자주권을 갖기 위해 토종 농사를 짓는다. 정 사무국장은 앞으로 토종 씨앗을 보급종과 보존용으로 구분하여 농사를 짓고, 보급종은 토종 씨앗을 상품화하여 알리는 데 힘쓸 계획이라 밝혔다. 이어 농민의 생산비를 절감하는 것부터 시작해 기후변화로부터 작물과 식량주권을 지켜내는 일이 토종을 보존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씨앗이나 모종을 대부분 육묘장이나 종묘상에 가서 사는데 이건 농민들의 생산비가 늘어나는 일이거든요. 토종 씨앗을 심고, 가꾸고, 보존하는 일이 농민들의 생산비를 줄이는 것뿐 아니라 작물과 식량주권을 지켜낼 수 있어요. 먹거리에 대한 인식이 농사를 짓는 농민만이 아니라 전국민적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토종 씨앗 지키기 운동은 특별한 사명으로부터 시작한 것은 아니다.

 

“토종 씨앗 지키기 운동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토종을 지키고 보급하기 위해 나누어 심고 있는 종자도 있지만 수십 년 동안 농사 지어온 덕에 지켜진 토종 작물이나 씨앗도 있어요. 도라지나 들깨 같은 오래된 종자들은 토종에서 지켜야 한다는 것보다는 윗대에서 물려받았던 종자이기 때문에 계속 농사를 짓고 있죠.”

 

함안 아라씨앗드리의 언니들이 오랜 시간 농사를 지어오며 자연스럽게 지켜진 토종 작물이나 씨앗들이 오늘에 이르러 토종 씨앗 지키기 운동을 지탱하고 있다. 언니들의 지혜로운 토종 씨앗 지키기는 계속된다.

 

 

취재, 글 = 정하엽 기자

사진 = 함안 아라씨앗드리

디자인 = 장채영 디자이너, 권동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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