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도 누군가가 자신의 몸에 불을 당겼다. 건설 노동자였던 故 양회동씨와 택시 기사였던 故 방영환씨는 각각 5월과 9월, 집회 도중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였다. 올해로만 2명의 노동자가 분신으로 목숨을 잃었다.
노동자가 모종의 이유로 분신을 시도한 일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을 시도한 1970년 11월 13일 이후로도 매년 벌어졌다. 그들은 주로 비정규직이었고, 노동조합원이었으며, 임금체불을 당했거나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고 있었다. 2003년에는 대구 세원테크 공장 노동자였던 故 이해남씨가 노조 탄압에 항의하기 위해 몸에 불을 당겼으며, 2010년에는 현대자동차 하청업체 직원이었던 황씨가 비정규직 철폐와 농성 강제 진압 중단을 외치며 몸에 불을 질렀다. 2021년에는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경제적 고통을 호소하던 50대 남성 A씨가 자신의 몸에 인화물질을 부은 후 불을 붙여 사망했다.
공동공갈 혐의를 받은 어느 건설노동조합원의 죽음
건설 노동 현장은 대다수가 일용직이다. 2022년 건설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반장이나 기능공 등의 인맥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노동자는 74.9%, 유료 직업소개소를 이용하는 경우는 7.6%에 달했다. 이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직업소개소에 수수료를 내거나, 불법 하도급 업체 혹은 주선자에게 월급의 일부를 떼이기도 한다. 故 양회동씨는 건설 노동자들이 이 같은 상황을 겪는 것을 막기 위해 전문건설업체들에 직접 고용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양씨가 받은 혐의는 ‘공동공갈’이었다. 양씨가 공갈했다는 비용 중 하나는 ‘전임비’였다. 노동조합은 업체와의 단체협약을 통해 노동조합 업무에만 종사하며 전임비를 받을 수 있는데, 양씨가 그 전임비를 부당 수급했다는 혐의를 받은 것이다. 그러나 노조 측에 의하면 양씨가 받았다는 전임비는 협약 과정의 혼선과 업체의 고용 번복으로 인해, 경찰조사 이후 다시 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영장에 ‘피해자’로 명시된 현장소장 A씨는 양씨를 위해 탄원서를 작성했다.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강원도 전문건설업체 15곳의 현장소장들 역시 양씨를 위해 탄원서를 작성하고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그들은 탄원서를 통해 양씨의 전임비와 그 외 혐의를 받고있는 기타 비용이 문제없이 지급됐다고 밝혔다.
양회동씨는 조합원 채용 요구에 쓰인 ‘공동공갈’ 혐의에 “억울하다”고 외치며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앞에서 몸에 불을 붙이고 이튿날 숨졌다. 윤석열 정권이 건설 노동조합을 ‘건폭(建暴)’이라 부르며 한창 수사를 벌였던 올해 상반기, 5월 1일 노동절의 일이었다.
약 7시간 근무에 3.5시간 치 임금, 불타 죽은 후에야 인정받은 체불금 1,565만원
故 방영환 씨는 지난 9월 26일 해성운수 사업장 정문에서 분신한 끝에 숨졌다. 그는 직장에서 잘린 후 2년 만에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 복직할 수 있었던 해성운수의 택시 기사였다. 방씨는 지난 2019년 해성운수에서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한 후 약 1년간 불이익을 당했고, 20년도 ‘근로계약서 서명 거부’를 이유로 해고당했다. 방씨가 근로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은 이유는 ‘사납금제’ 때문이었다.
사납금제란 법인 택시 기사가 하루 수입의 일정액을 회사에 내고 남은 돈을 가져가는 제도로, 부당함이 인정돼 2020년 1월 완전히 폐지됐다. 그러나 ‘변형된 사납금제’는 여전히 방씨의 근로계약서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는 복직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방씨의 근로계약서에는 회사에 월 운송수입금 462만 8,000원을 납부하지 않으면 불성실 근로로 간주하겠다는 조항과, 주에 1회라도 손님을 태운 시간이 5시간 30분을 넘지 못하면 소정근로시간을 채웠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조항도 있었다.
이 같은 이유로 방씨는 복직 후에도 근로계약서에 서명하지 않고 시위를 이어오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회사는 2019년 체결한 근로계약서상의 1일 3.5시간 치 임금을 지급했다. 하루 6시간 40분을 일하고 있던 방씨는 이를 노동부에 신고했으나, 지난 2월 노동부의 판단은 ‘임금체불이 아니다’였다.
노동부는 당시 근로감독관이 1일 6시간 40분으로 변경된 취업규칙을 확인하지 못해 이 같은 판단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방씨가 변경된 취업규칙을 9월 22일에 제시해서 사실 확인이 늦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씨가 2월에 제출한 진정서에는 ‘1일 소정근로시간을 6시간 40분으로 정하고 있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근로감독관이 임금체불 판단 과정에서 방씨의 진정서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방씨의 임금체불이 인정된 것은 방씨가 분신 후유증으로 사망한 10월 6일 이후의 일이었다.
54년 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의 죽음 이후 분신은 노동 운동을 대표하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몰린 노동자들이 제 몸을 불살라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이다. 매년 11월 13일이 되면 반세기 전 그날과 오늘을 비교하는 기사가 포털에 업로드되지만, 누군가가 여전히 몸에 불을 붙이고 있다.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에서 통과된 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시위나 파업 행위에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 한다는 내용으로, 노동자의 시위권 보장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위 법안이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노동자들의 고난은 해결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