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8 (월)

대학알리

대학언론

다음 세대들이 지속가능성의 해답을 모색해나가길

강유나 전 <외대학보> 편집장, 전 <외대알리> 발행인

 

*본 기사는 '2024 대학언론인 콘퍼런스: 불씨' 행사의 일환으로 기고된 전직 대학언론인 활동 수기입니다.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것을 말할 권리는 내 목숨을 걸고 지킬 것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Voltaire) 평전에 수록된 위 한 문장은 2010년도 초반의 대학언론을 가장 잘 표현하는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대학본부의 편집권 침해에 대항하던 어느 학보사의 결단

 

저는 2011년에 대학에 입학한 후 교내 학보사에 입사해 정기자로 활동했습니다. 학보사실 한쪽 벽에는 졸업한 선배들이 붙여놓은 “자유언론 정론직필”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는데, 새내기였던 제 눈에도 제법 멋있어서 볼 때마다 자부심에 가득 차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학보사 기자실 문을 열었는데, 당시 편집장이었던 선배가 벽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 조용히 문을 닫고 도망갔어요.

 

그 다음날 편집장이 긴급회의를 소집했고, 우리가 다함께 밤새워 작성했던 몇몇 기사들이 우리가 작성한 대로 발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기사에 거짓말이라곤 단 한 마디도 쓰지 않았는데 기사를 갈아엎는다니요. 하지만 발행된 학보를 보니 제가 쓴 기사는 더 이상 제가 쓴 기사로 볼 수 없을 만큼 수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때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2012년, 제가 편집장이 되자, 주간교수는 제게 학보를 조판할 때마다 첫 인쇄본을 처장단 회의가 열리는 회의실에 들고 오라고 지시했습니다. 기자들의 땀과 눈물이 담긴 첫 인쇄본은 처장단 교수들의 빨간펜에 의해 이리저리 수정되고 삭제되었어요. 이건 학교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이니 좀 더 온건한 방향으로 수정하라는 등, 저건 총장과 사이가 나쁜 동문이 기고한 칼럼이니 삭제하라는 등 이유도 각양각색이었지요. 저는 전임 편집장처럼 처장단 회의가 끝나고 학보사 기자실로 돌아오면 벽을 보고 울곤 했습니다. “자유언론 정론직필”에 부끄럽지 않은 기자가 되고 싶은데 현실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습니다.

 

처장단 교수들이 이토록 적극적으로 학보 기사에 개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학칙 제53조에 “학생단체가 간행물을 발행할 시에는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학교 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해결책을 촉구하는 기사는 승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급기야 당시 총학생회장 선거에 단선으로 출마한 학생이 특정 학부 소속이라는 이유로 선거에 관한 기사를 아무것도 쓰지 말라는 지시까지 떨어졌습니다.

 

저와 학보사 기자들은 더 이상 기자로서의 양심을 저버릴 수 없었어요. 학보사 기자들이 눈을 감고 학교 지침에 순응하면 수많은 학생들이 총학생회장단 선거에 앞서 총학생회장단이 발간하는 공약집과 포스터 외로는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 채 투표소에 가게 되기에, 우리는 “자유언론 정론직필”을 지켜야만 했습니다.

 

제가 지시를 따를 수 없다고 항의하자, 주간교수는 조판소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저는 학보사 기자들과 함께 밤을 새워 선거특집호를 제작했고, A4용지에 기사를 인쇄하여 학교 강의실마다 배포했습니다. 그리고 편집장직에서 해임당했습니다.

 

갓 태어난 독립언론의 험난한 생존기

 

저는 저처럼 해임되는 편집장이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주간교수가 바뀌더라도 학칙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편집권 침해는 몇 번이고 반복될 것이 분명했고, 학칙을 바꿀 방법은 쉽게 찾을 수가 없었어요.

 

제가 다니던 대학뿐 아니라 당시 수많은 대학의 학보사와 방송국에서 편집권 침해를 당하는 사례가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중 국민대학교에서 편집권 침해를 겪은 학생기자들이 뭉쳐 국민저널이라는 자치언론을 세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학보사를 독립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대학 본부의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언론을 만들고 싶었던 제게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언론협동조합 이사장, 국민저널 기자들, 교내 학보사 및 학생회 구성원들을 포함해 수많은 사람들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2013년 11월 20일 외대알리라는 독립언론을 세웠습니다. 알리에 소속된 학생 기자들은 학생들의 알권리를 최우선으로 삼으며 기사를 쓰고 스스로의 기사에 책임을 졌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자리를 잡은 후에는 대학언론협동조합과 함께 알리라는 독립언론이 다른 대학에도 뿌리내릴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대학언론협동조합은 대학알리로 거듭나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는 학보사의 편집권 침해가 극에 달했던 시기에 독립언론을 탄생시킨 세대였습니다. 이제 막 탄생한 독립언론은 살아남기에 급급했어요. 독립언론 역시 발행비가 없으면 지면을 발행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생 기자들은 매번 발행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요. 알리라는 브랜드 가치를 완전히 정립하지 못했기에 후원 체계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매일 학생회실들과 대학가를 하이에나처럼 누비며 광고 지면을 채웠고, 나중에는 귤까지 팔며 발행비를 벌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도, 독자들은 알리를 사랑해주었어요. 독자들이 알리를 사랑하는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재미있으니까.”

 

생존의 영역에서 지속가능성의 영역으로 가려면

 

결국 독립언론의 생존은 독자들이 얼마나 재미있게 기사를 읽어주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더 확장한다면, 독자의 관심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다음 세대 학생 기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생존의 영역에서 지속가능성의 영역으로 옮겨가기 위해서, 다음 세대 학생기자들은 학생 자치라는 파이 안에서 얼마 남지 않은 관심을 가져가기 위해 다툴 것이 아니라, 무관심 속에서 시들어가는 학생 자치라는 파이 자체를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활발한 학생 자치 활동을 기반으로 독자와 소통하며 독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기사를 발행해야할 테지요.

 

대학언론이 위기에 처한 현상은 이전 세대에도, 제가 활동하던 세대에도, 지금 세대에도 여전합니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토론도 사골을 우리듯 반복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토론해야 합니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아내는 노력은 반복되어야만 합니다. 학생 자치가 당면한 어려움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이전 세대가 찾아나간 방향은 지금 세대에서 더 이상 똑같이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학언론인 콘퍼런스를 통해 다음 세대 학생 기자들이 지속가능성의 해답을 모색해나가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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