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위기
대학언론은 ‘또다시’ 위기다. 누군가는 대학언론이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있냐며 조소하겠지만, 만드는 이와 읽는 이, 두 집단 모두에게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이 시점이야말로 진정한 대학언론의 위기 상황이라 부를 수 있지는 않을지.
대부분의 대학언론에서는 스스로가 처한 위기의 원인을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 증가로 인한 대학언론의 경쟁력 감소, 최근 코로나19로 인한 일반학생의 학보사 관심 감소, 이로 인한 대학언론 지원자 감소의 악순환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가속화된 인터넷 보급 증가, 2010년대 이후 가속화된 스마트폰 보급 증가가 현재까지도 대학언론의 쇠퇴 진행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분석은 결국 대학언론을 만들어나가는 이들도 모르게 대학언론의 한구석이 곪아가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은 아닐지 의문이 든다.
대학알리 기획 4부작 “대학언론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대학언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다룬다. 이번 2부 기사에서는 전례 없는 위기론을 마주한 대학언론의 오늘, 즉 대학언론이 현재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려 한다. 이러한 문제는 현실에서 동떨어지지 않았을 뿐아니라 대학언론의 현주소이고, 이를 시사하고자 전직 대학언론인의 인터뷰를 추가했다. 부디 이 짧은 기사가 많은 이들에게 대학언론 위기의 진정한 원인을 잠시나마 고민할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위기를 분석하다
이제 대학언론의 위기는 말뿐이 아니다. 전국 대학언론 전·현직 간부들이 모여 만든 단체 ‘데드라인’의 2016년 실태조사 결과 10인 이상의 학생기자가 활동하는 대학언론기구는 50.6%에 불과했으며, 20인 이상의 학생기자가 활동하는 기구는 9.2%에 불과했다. 적은 인원은 자연히 발행 위축으로 이어졌다. 한 학기에 6회 이상 발행되는 신문은 46%, 11회 이상 발행되는 신문은 8%에 그쳤쳤다. 또 대부분의 대학언론 자체 설문에서 70% 이상의 학생이 대학언론을 알고는 있으나 직접 읽어본 적은 없다는 답변을 남겼다.
대학언론의 위기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지난 칼럼에서 대학언론은 1990년대 민주화 운동의 축소를 계기로 점차 전문기자와의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서술했다. 여기에 1997년 IMF로 인해 취업난이 더해지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학보사의 지원자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도입으로 대학언론의 필요성마저 줄어든 것이 그 시작점이었다.
그러나 이를 과연 대학언론의 근본적인 위기 원인으로 제시할 수 있을까? 대학언론과 기성언론의 경쟁은 민주화 운동에서 시작된 기성언론 검열이 아니었다면 성립될 수 없었으며, 애초에 독자들이 대학언론에게 기성언론과 같은 보도 수준을 원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IMF는 학보사뿐 아니라 전체 사회가 함께 겪은 사건이었다. 또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도입 역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 거대한 변화였다. 이 일련의 상황을 모두가 함께 겪었음에도 왜 대학언론만이 수십 년째 위기론에 시달리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원인을 고찰하다
대학언론, 그중에서도 대다수를 차지하는 대학 내 언론(학보사)이 가장 많은 마찰을 겪는 대상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독자?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대학언론에 대한 일반 학생들의 관심이 하루가 다르게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독자와의 마찰은 기대하기 어렵다. 동료 기자? 아젠다 설정의 차이, 기사 작성 방식의 차이가 그러한 마찰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대학언론인은 입을 모아 대부분의 마찰이 아이러니하게도 ‘대학’과 발생한다고 이야기한다.
대학에 소속되어 있는 대학언론은 일반적으로 총장 직속 편재로써 학교 부속기관으로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앞선 데드라인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학언론 중 총장 직속으로 편재된 대학언론은 54.7%이며, 학생처 소속(16.3%)과 홍보처 소속(10.3%)이 그 뒤를 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소속된 단체로부터 운영 비용을 지원받거나 공로장학금을 수여받는다. 학교의 산하 기관이라는 점, 그리고 학교의 예산을 사용한다는 점, 이 두 가지 사실만으로도 대학언론이 대학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할 이유는 충분하다.
특정 대학 기관에 소속되지 않은 대학독립언론도 사정이 나은 편은 아니다. 2010년대 무렵 몇몇 대학독립언론은 대학 내에서 활동하면서도 대학으로부터 편집권 독립을 이루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이들은 인력난과 자금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광고 수익, 크라우드 펀딩, 후원 시스템 도입 등 다양한 수익 창출 경로에 비해 재정은 항상 불안정했고 기자들의 사비로 많은 부분을 해결해야 했다. 결국 2010년대의 대표 대학독립언론으로 제시되던 국민대학교 <국민저널>, 성균관대학교 <고급찌라시>, 성신여자대학교 <성신퍼블리카> 등은 전부 5년을 넘기지 못한 채 정간 혹은 폐간을 결정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대학독립언론 역시 코로나19를 기점으로 대부분 폐간하는 결과를 맞았다.
추측이 확신이 되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언론 검열이 있어”라는 말을 시작으로 그들의 노력이 바래질 위기라면, 지금이 서울 소재 한 대학의 학보사 출신 A 양의 인터뷰가 필요할 때가 아닐까 싶다. 학교로부터 두 번의 기사 편집을 당한 뒤 학보사를 그만두었다는 그녀의 지난 과거는 대학이 대학언론을 검열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하는 듯했다.
Q. 과거 소속되어있던 대학언론을 소개해달라.
A. 2021년부터 2022년까지 2년간 교내 학보사 중 교지편집위원회의 기자로 활동했다. 교내신문사와는 달리 교지편집위원회는 학내,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주제의 기사를 모아 한 학기에 한 번 책 형태로 발간한다. 교지편집위원회는 타 학보사에 비해 발간 주기가 길기 때문에 주제 선정이나 기사 작성 과정에서 기자의 재량이 중요하다는 특징이 있다. 학기 중에는 해당 호의 테마를 선정하고, 이에 적합한 개별 기사 주제를 선정하여 기사 계획서 형태로 제출한다. 언론사 담당 교수의 승인을 거치면 방학 기간 기사를 작성하고 매주 자체 피드백 회의를 통해 내용을 검토한다. 기사가 모두 완성되면 다시 한번 담당 교수 피드백을 진행한 뒤, 교지편집위원회에 소속된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통해 이를 하나의 테마로 엮인 교지로 완성한다.
Q. 어떤 편집권 침해를 경험했는지.
A. 두 번의 편집권 침해가 있었다. 첫 번째는 본교 모 학과의 전임교수가 부재할 위기에 놓여있어 이와 관련된 주제를 다루고자 했다. 교지편집위원회는 기사 계획서의 중요성이 높기 때문에 당시 타 학교에 유사한 상황이 있었는지 조사하거나, 과 학생회장과의 인터뷰 질문을 미리 계획하는 등 굉장히 자세하게 계획서를 작성했던 기억이 난다. 언론사 담당 교수 검토 역시 문제 없이 진행되었고, 타 대학 사례를 조사하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는 조언까지 받았다. 그러나 해당 기사는 출간 직전 교수 검토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기사를 교지에 실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두 번째도 비슷했는데, 교내 노동자 시위와 더불어 노동자, 소외 학생 등 학내 구성원들의 권리를 증진하고자 활동하던 학생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다룬 기사였다. 학교 입장에서 민감한 소재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시위 상황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이전까지의 역사를 돌이켜보고 이로부터 기인한 학생자치활동을 중심으로 다룬 기사이기에 문제 없으리라 생각했고, 관련된 내용을 전부 기사 계획서에 상세히 담았다. 기사 계획서 검토 당시에도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계획서를 승인받았고, 3명의 기자가 함께하는 큰 학내 기사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이 기사 역시 교수 최종 검토 과정에서 교지에 실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Q.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A. 편집장을 제외한 기자는 언론사 담당 교수와 직접 대면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는 전달받지 못했다. 두 기사의 주제를 생각해 보았을 때 아직 정해지지 않은 사실을 기사화하여 학생들에게 혼선을 주는 상황을 막고자 했거나,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미연에 방지하려 하지 않았나 싶다. 기사 계획서 검토와 발간 직전 최종 검토 모두 한 명의 언론사 담당 교수가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상반되는 결과가 나온 지는 잘 모르겠다.
Q. 당시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A. 첫 번째 기사는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전임교수가 없어지면 학과가 통폐합될 수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이를 팩트체크하는 형식이었다. 이후 주제를 전공트랙제도(하나의 단과대학 내에서 원하는 수업을 선택하여 들을 수 있도록 하는 전공 교육제도) 도입 가능성으로 바꾸어 2차로 기사를 작성했다. 이 역시도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많았고, 이사회에서 논의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관심이 뜨거운 주제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학교 측에게 수정된 기사 역시 사용하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2차 기사까지 편집되자 발간까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당시 편집장이 해당 주제와는 무관한 에세이 형태의 기사를 실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기사도 발간 직전 승인이 거부되었던 데다가 3명의 기자가 함께하던 기사였기에 완전히 새로운 주제로 학내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시간상 무리였다. 그래서 학내와는 무관한 문화, 사회 관련 기사를 세 명이 함께 작성했던 기억이 난다.
교지는 정해진 총 페이지가 있고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나 교내 소식을 전하기 위해 항상 지면의 정해진 부분을 할당한다. 그러나 두 번 모두 발간 직전에 벌어진 상황이라 충분한 조사와 정리가 필요한 학내 기사를 다시 작성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론적으로 학생들도 교지를 통해서 바라볼 중요한 교내 이슈 확인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생각한다.
Q. 당시 심정은 어땠나.
A. 어찌 됐든 학보사의 존재 의의는 학우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학내 코너는 그만큼 중요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사들이 너무나 쉽게 엎어지는 모습에 조금은 피로감을 느꼈고, 결국 두 번째 편집 기사가 실린 교지를 끝으로 교지편집위원회를 퇴부했다.
Q. 오늘날 대학언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A. 대학언론의 가장 큰 이점은 그 커뮤니티에서 신뢰성을 가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에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언론이 존재하지만, 대학생 입장에서 교내 신문, 잡지라는 이름이 가지는 신뢰와 그에 따른 관심이 분명히 있다. 대학언론은 그에 발맞추어 진정으로 학우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야하지 않은가 싶다.
그래서 더더욱 학내 기사에서만큼은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보다 정확하고 가감 없이 보도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달하여 더 이상 전문기자가 아닌 대학기자의 기사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이럴 때일수록 기성언론과 경쟁해도 대학언론이 살아남을 수 있는 분야, 즉 학내 기사에 집중해야한다. 1980년대의 대학언론 검열은 사회·정치 분야가 주를 이루었지만, 현재는 학교 부속기관이라는 소속 아래 학내 분야에서 검열은 심해지고 기사는 점차 소극적으로 쓰여진다. 학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제약이 생기고 점차 외부의 대상에 집중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대학언론의 존재 의의를 망가뜨리는 행위이자 대학언론으로서 신뢰를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Q. 앞으로의 대학언론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A.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학보사 외에도 재정적으로 독립된 대학언론을 하나 더 둔다거나, 학보사 운영 비용을 학생회비로 조달하는 방식으로 돌파가 필요해 보인다. 물론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학생과 학교 모두의 지속적인 관심이다. 하지만 이건 대학언론이 어떻게 하기는 어려운 부분이기에 보다 실무적인 해결책을 고민하고 있다.
기자 개인의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현실적인 인식 변화가 조금은 필요하다. 앞서 이야기한 신뢰성과 별개로 과거와 비교했을 때 대학언론의 인지도는 낮지 않은가. 신문이나 잡지를 많이 보는 시대 자체도 아니고. 그래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기사가 대단히 큰 파장을 불러오지는 못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쓰면 가감 없이 솔직하게 쓸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작성한 기사가 더 담백하고 솔직하게 진정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사가 되는 것 같다. (웃음)
학교나 대학언론 차원에서는 분업과 전문화를 제시하고 싶다. 대부분의 학교에는 신문사, 방송사, 교지편집위원회, 영자신문사 등 다양한 대학언론이 존재한다. 따라서 각각의 강점을 살려서 서로 상호보완적인 매체가 되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한 매체는 학생들에게 유용한 정보 제공에 집중하고, 다른 매체는 학교 내 주요 사건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나머지는 사회·정치 등 대외적인 분야에 집중하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양한 관점의 기사가 발행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둘 사이의 적당한 균형을 찾는 것이 과제가 아닐까 싶다.
과거가 아닌, 현주소
2013년 배재정 의원실 조사에 따르면 대학언론인의 35%는 학교로부터 직접적인 기사 검열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또 2016년 대학언론협동조합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 180개 대학 중 142개 대학에 언론검열 관련 학칙이 존재한다. 지난 2017년 청주대학교는 횡령 혐의의 전 총장 항소심 기사가 담긴 신문을 학생들이 볼 수 없도록 회수했다. 같은 해 서울과학기술대학교는 학생회비 관련 기사가 담긴 신문을 통보 없이 수거하여 논란을 빚었다. 2019년 서강대학교는 총장 관련 보도를 불허하였고 해당 호는 전면 백지로 발행되었다. 결국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대학언론 탄압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수백에서 수천을 웃돈다.
대학과 대학언론기구의 편집권 분쟁은 과거가 아닌 대학언론의 현주소 그 자체다. 대부분의 대학언론 문제의 해결에는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부족한 역량은 교육과 워크숍을 통해 채우면 된다. 방향성의 부재는 명확한 목표 설정과 그에 맞는 운영 방식 모색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언론 탄압과 편집권 침해는 보다 이상적인 해결 방안, 즉 대학언론에 대한 일반 학생과 대중의 관심이 절실하다.
3부에서도 역시 대학언론의 현재, 그 가운데서 발생하는 문제점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이다. 2부에서 다룬 대학과 대학언론 사이의 편집권 공방이 대학언론의 태동기부터 있었던 문제라면, 3부의 문제는 비교적 최근 불거진 문제다. 대학언론의 문제는 아직,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