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대의 명(明)에게 외대의 명(命)을 묻다 [2편]
2024학년도 한국외대(이하 외대) 입시 제도의 키워드는 ‘신설 학부 도입’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큰 이슈였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시대적, 사회적 변화에 맞춰 캠퍼스별 특성화 발전을 본격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양 캠퍼스 총 8개 학부를 신설했다. 그 중 AI융합대학은 최초로 양 캠퍼스 통합운영 단과대학 체제로 운영된다. 서울캠퍼스에 Language&AI융합학부와 Social Science&AI융합학부, 글로벌캠퍼스에 Finance&AI융합학부를 설치해 외대가 가진 어문학과 지역학이라는 고유 가치와 첨단 기술을 접목한, 가장 ‘외대’다운 혁신을 꾀했다. 특히 서울캠퍼스에 설치한 AI융합대학은 서울캠 최초의 이공계 전공이라는 점에서 이목이 집중됐다. 그 중 Language&AI융합학부는 2024학년도 수시 모집 논술 전형에서 133.14:1이라는 최고 경쟁률을 기록하며 큰 관심을 끌었다.
또한 글로벌캠퍼스 내 문화기술(CT) 기반의 Culture&Technology 융합대학에 디지털콘텐츠학부와 투어리즘&웰니스학부를 신설하고, 에너지와 기후변화 정책 관련 국제협력 분야에서 기후 변화 대응 산업과 연구를 선도할 융합 인력 양성을 목표로 한 기후변화융합학부를 신설했다.
이번 학칙 개정을 통해 앞으로도 사회 변화에 맞춘 미래 연계 전공을 확대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신설 8개 학부가 운영을 시작한 지 한 학기가 지났다. 이제는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지난 학기를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미래 대학으로서의 출발을 위한 보완점과 개선점을 탐구하기 위해, 신설 학부 재학생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각각 Social Science&AI융합학부, 투어리즘&웰니스학부, 그리고 기후변화융합학부에서 한 학기를 보낸 세 학우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2024 신설 8개 학부 재학생들의 만족도는 어떨까
“학부의 방향성과 색깔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대학의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 심리적 안정감과 소속감 느낄 수 있어…”
“향후 외대만의 어문학적, 지역학적 자산과 잘 연계하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학과가 되길”
Q1) 특별히 신설 학부 진학을 선택하게 된 이유나 비전 등이 있었나요?
(Social Science&AI학부 A 학우) 아무래도 ‘유망함’ 때문이었습니다. AI는 이미 인류의 삶에 깊숙이 들어왔고, 앞으로도 일상과 산업 전반에 뿌리내릴 것입니다. 따라서 AI를 공부한다는 것은 제 미래 전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학부는 빅데이터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적 소양을 기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끌렸습니다.
(투어리즘&웰니스학부 B 학우) 사실 신설 학부라서 진학을 선택한 건 아닙니다. 원서 접수 당시 원래 희망했던 분야에 진학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아 차선책으로 선택하게 됐어요. 투어리즘이나 웰니스 분야에 오랜 관심이나 비전을 품어왔다기보다, 차선책 중 관광, MICE 산업, 호텔경영 쪽에 그나마 흥미가 있어서 진학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기후변화융합학부 C 학우)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기후변화, 환경 관련 분야를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기후변화는 전 세계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치고 있고, 또 앞으로 그 영향력이 더 막대해질 거니까요. 이 맥락에서 저는 환경/기후변화와 관련된 직업을 갖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있던 환경공학과 외에도 기후변화를 직접적으로 공부하고 사회적인 부분까지 같이 다룰 수 있는 학과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제 생각과 결이 맞는 기후변화융합학부를 알게 돼 진학하게 됐습니다.
Q2) 한 학기 동안 학교 생활을 하시면서 가장 만족했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인가요?
(Social Science&AI학부 A 학우) 교수님들의 열의와 학부 유망성입니다. 학기 초 신입생 세미나 당시 네 분의 교수님들이 전체 학생에게 우리 학부에 대해 준비한 것과 앞으로의 구상 등 세부 내용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상당히 많은 고민을 거쳐 커리큘럼을 구상하고, 앞으로 학부가 더 잘 자리 잡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게 느껴졌습니다. 그 외 평소에도 교수진과 학생들 간 소통이 활발했고, 수업 중에도 교수님들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덕에 신설 학부였지만 큰 불안이나 불편함 없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공 공부를 하며 전공 유망성 덕분에 공부할 가치가 느껴질 때마다 뿌듯하고, 앞으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욱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투어리즘&웰니스학부 B 학우) 우리 대학의 끈끈한 인적 네트워크입니다. 신설 학부 특성상 전임 교수와 선배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교양 강의나 소모임 등 학교생활을 하며 만나게 된 다른 과 교수님들과 친구들, 선배들이 저를 챙겨 주셨습니다. 외대에 다니지 않았다면 접하기 힘들었을 정보와 진로 관련 조언을 얻을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신설 학부에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타 교류를 통해 나름의 심리적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후변화융합학부 C 학우) 전공 교수님들의 열정이 넘치십니다. 좋은 기회가 있으면 알려주시고, 초청 특강도 종종 있는 편입니다. 또 전공 특성상 생소한 내용의 강의라서 처음에는 좀 걱정스러웠지만, 교수님들이 수업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셔서 좋았습니다. 수업 중간에 학부와 관련된 분야의 이야기도 해주시는 걸 들으며 모르는 부분도 알아갈 수 있습니다. 더불어 저는 학회를 하고 있는데, 학회 활동을 하면서 기후변화융합학부를 이중전공하는 선배들과 교류도 생기고 관심 분야 스터디, 포럼, 공모전 같은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부분도 만족스럽습니다.
Q3)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선되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나요?
(Social Science&AI학부 A 학우) 첫째, 필수 이수 학점이 많습니다. 이번 2학기에 사실상 필수로 들어야 하는 전공 수업이 총 11학점이고, AI융합대학 학생이 수강해야 하는 영어 수업이 6학점, 그리고 미네르바 3학점까지 하면 총 20학점입니다. 이수할 학점이 조금 많고, 원하는 교양 수업을 수강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둘째, 가능한 한 빨리 4학년까지 커리큘럼이 확실하게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불안정성을 완화하는 데에 도움 될 것 같습니다. 셋째, 1기 특성상 선배가 없어서 임시학생회의 일을 배우는 것이나 진로 팁을 얻는 것, 그 외에도 심리적 안정감이나 선후배 간 교류에서 오는 즐거움을 얻기가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투어리즘&웰니스학부 B 학우) 신설 학부 특성상 체계가 완벽히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첫 학기를 보낸다는 것을 알고 입학했음에도, 저희 학부는 유독 준비가 덜 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선 학부를 이끌어가는 사령탑이 없어서 불안했습니다. 학부장 교수님이 부재한 상태였고, 전공 강의를 맡은 교수님들도 모두 다른 과 교수님 혹은 외부 강사님이셨습니다. 신입생 세미나 역시 교수님과 교류 없이 종료됐습니다. 두 번째, 개설 과목이 ‘세 개’로 다른 신설 학부에 비해 적은 편입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전공 강의들이 열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끝으로 ‘투어리즘’과 ‘웰니스’를 묶어서 하나의 커리큘럼으로 만든 이유를 상세히 설명해주실 지도 교수님이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두 학문의 인접성에 상당한 의문을 갖고 있는 상황으로, 충분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신설 학부인만큼 학부의 방향성과 색깔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융합학부 C 학우) 커리큘럼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기후변화융합학부는 트랙이 ‘자연과학, 경제학, 에너지공학’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눠져요. 그런데 아직 에너지공학 트랙에는 교수님이 부재한 상태이고, 커리큘럼을 비교해 볼 만한 곳도 적습니다. 더불어 기존 학과에 비해 커리큘럼이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불안감을 조성하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신설 학부 특성상 불가피한 문제점이고, 교수님들이 이 부분에 대해 열심히 힘써주고 계신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라고 생각합니다.
Q4) 추가로 재학 중인 학부에 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Social Science&AI학부 A 학우) 생각보다 학부 분위기가 빠르게 안정됐고, 수업이나 임시학생회도 상당히 잘 운영되고 있어 기쁩니다. 우리 과가 정말 잘 되고 외대와 함께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학우들의 노력과 학교의 지원 및 홍보를 통해 더욱 많은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우수한 학부로 자리잡으면 좋겠습니다.
(투어리즘&웰니스학부 B 학우) 향후 투어리즘&웰니스 학부가 외대만의 어문학적, 지역학적 자산과 잘 연계돼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학과가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 더 다양한 강의가 개설돼 관광 분야와 웰니스 분야에 꿈이 있는 학생들이 관련 필드로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학부 학생들과 운영진들의 지속적이고 활발한 소통을 기대합니다.
(기후변화융합학부 C 학우) 한국에선 보기 드문 전공인 동시에 신설 학부라서 불안감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세계 화두인 ‘기후변화’ 분야를 다루고,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갖습니다. 지도 교수님들도 열정적이시고 필드에서 활발히 활동하셔서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을 바탕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더 많이 접하고 싶습니다.
세 학우가 공통적으로 언급한 건 '사람'에 대한 만족도다. 신설 학부 특성상 선후배 네트워크나 학과 운영 측면에서 기존 학과들에 비해 기반이 미비한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열정적인 교수진부터 학교생활을 하며 만난 다양한 학부생들, 그리고 함께 1기 기반을 쌓아가는 동기들까지. 신설 학부 재학생으로서의 불안정성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모두 ‘외대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반면 개선점에 대한 질문에서는 모두 '커리큘럼'에 대한 불만을 표했다. 여전히 재학생들은 4개년 커리큘럼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과목 개설의 수적 측면에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더해 일부 학과나 트랙에는 전임 교수진이 부재하여 불안정성이 극대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신설 학부의 운영 상황과 재학생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할 것은 단연 커리큘럼이다. 재학생들이 각자 미래를 구상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커리큘럼을 확정하고 학부의 방향성을 설명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제 막 시작된 ‘신입’ 학부인 만큼 더 각별한 관심과 지원을 통해 외대 ‘대표’ 학부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
기존 팽배하던 문과 차별적인 사회 분위기와 더불어, 교육과정 개정, 4차 산업혁명, 취업난 등 잇따른 사회적 변화로 인해 이/공학 전공을 선호하는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 이에 대표 문과 대학인 한국외대는 격변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과제를 받아 들었다. ‘세계 수준의 글로벌 융복합 대학’이라는 목표를 내세운 ‘외대 비전 2028’부터, 외대만의 고유 가치와 첨단 기술을 접목한 신설 8개 학부까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지속적으로 혁신을 꾀한다는 데 있어 외대의 긍정적인 미래를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재학생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기존 커리큘럼에 대한 고민과 변화는 필요해 보인다. 이러한 재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 진정한 ‘외대 비전’을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이야말로 외대가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고, 이를 외대만의 경쟁력으로 삼아야 하는 시점이다.
이은진 기자 (dldmswls0292@gmail.com)
*해당 기사는 외대알리 지면 39호 : 외대의 '명'과 '암을 알리다에 실린 기사로, 2024년 7월에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