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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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수기 공모전 우수상작]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이 순간의 나’를 발견하다

[편집자의 말] 가대알리는 지난 8월 산티아고 순례길 수기 공모전을 개최했습니다. 마치 함께 순례길을 걷는 것처럼 생생한 글솜씨로 소중한 경험을 나누어 주신 두 편의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논어에 따르면 ‘길을 걷는 자만이 발견한다’고 하였다. 무엇을 발견하는가? 그것은 발견하는 자에게 달려있다. 나는 올해 포르투갈의 포르투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260km를 걸었다. 그리고 나는 ‘이 순간의 나’를 발견했다. 

 

처음에 산티아고 순례를 결심한 이유는 ‘답’을 찾고 싶어서였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미래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의 꿈은 청년들을 위한 심리 복지센터를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영리단체의 운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의류 사업을 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당장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사업을 시작해야 하고, 비영리단체는 20-30년 뒤에 설립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 막연함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여행을 시작했다.

 

생각할 시간이 많을 줄 알았는데 막상 걷기 시작하니, 은근히 바빴다. 갈림길을 만날 때 지도도 봐야 하고, 중간에 쉴 곳도 찾아야 하고, 숙소와 식당도 알아봐야 하고, 배낭에서 버릴 것이 더 없나 고민하는 것 등. 순례길에서 답을 찾으려던 계획은 어느새 포르투갈 바다에 휩쓸려 가버렸다. 나는 이미 흩뿌려진 고민을 붙잡으려 하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은 눈에 담아도 담아지지 않고, 카메라는 더욱더 그러했다. 왜냐하면 풍경은 그 순간의 미묘한 계절과 기후, 자연물, 건축물,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받는 영향, 나의 반응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진을 찍기보다는 내가 느끼는 것들에 집중하기로 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연 자체의 고요함과 평안함에 머물렀다. 포르투갈만의 소박함과 정을 느꼈다. 산티아고를 함께 걸어가는 친구들에게 긍정적인 응원을 할 수 있는 나를 발견했다. 또 “BUEN CAMINO(부엔까미노: 좋은 길 걸어)”라고 나에게 인사하는 현지인들의 따뜻함에 감동했다. 

 

4일 차쯤, 23km를 걸어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나의 한계선 어딘가에 머무는 것 같았다. 마치 코가 수면 경계에 있어 숨이 넘어갈 듯 말 듯 한. 구글맵의 남은 거리를 부여잡으면서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감사함과 동시에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는 뿌듯함이 몰려왔다. 첫날에는 1시간마다 쉬었지만, 5일 차부터는 2-3시간에 한 번씩 쉬기 시작하는 나 자신을 보며 자신감이 더 붙었다. 누구나 처음은 어렵다. 숨 고를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고, 익숙해질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의 나에게 시간을 주어야 한다. 나를 닦달하지 말자. 초조해하지 말자. 나에게 인내심을 가지자!

 

눈치 게임을 시작한다. 누가 먼저 인사할 것인가? 순례자들을 지나쳐 갈 때, 혹은 그들이 나를 지나칠 때, “Hola(올라: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그리고 바로 헤어지는 사람도 있지만, “Where are you from?” 이 질문으로 넘어가면, 다양한 이야기를 하며 2-3시간씩 함께 걸어가는 ‘camino(까미노: 길) friend’가 된다. 그들만의 긍정성, 유쾌함, 리액션은 과거와 미래의 어둠을 걷어내고 ‘지금 순례길 위에 있는 나’로 존재하게 했다.

 

순례길의 모든 사람은 그저 순례자이다. 내가 한국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재산이 얼마나 있으며, 외모가 어떠한지 등 이런 것들은 순례길에서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배낭을 메고 오늘의 알베르게를 향해 걸어간다. 빨래를 하고, 2층 침대가 여러 개 있는 하나의 방(도미토리)에서 잠을 자야 한다. (호텔에 가서 자는 선택지도 있지만)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유명한 사람이든 평범한 사람이든 모두 한 길 위에서 똑같은 일상을 보낸다. 남과 비교할 것이 없다. 나는 이 길 위에서 내세울 것도, 위축될 것도 없다. 나는 그저 ‘나’로 존재할 따름이다. 나는 이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순간의 나’로 사는 훈련을 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다. 그래서 나는 내년에 또 산티아고에 갈 예정이다.

 

 

심리학과 이은비 학우


편집인: 김단비 부편집국장 (국어국문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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