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5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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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겐/테토는 재밌지만 퀴어는 불편한 당신에게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에겐남/녀(에스트로겐 남성/여성)', '테토남/녀(테스토스테론 남성/여성)'라는 신조어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전통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에, 호르몬 개념을 빌려 성격과 행동 양식을 분류하려는 시도는 흥미로워 보인다. 이 유형론은 과연 젠더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긍정적 움직임일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이분법적 사고일까? 에겐/테토 유형론의 틈으로 미끄러지는 사람들의 존재를 살펴보자.

*이 기사는 2025년 9월 발행한 회대알리 19호 지면에 수록한 기사입니다.

 

에겐남과 테토녀: 새로운 성격 유형론의 등장

2025년 상반기, 또 다른 성격 유형론이 온라인을 강타했다. MBTI 이후 새로운 인간 분석의 도구로 떠오른 '에겐/테토' 유형론이다.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의 줄임말에서 비롯된 이 신조어는 개인의 인스타그램 계정으로부터 시작돼 SNS를 거점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이후 에겐/테토 유형론은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등 많은 이들에게 소개되며 새로운 트렌드가 됐다.

 

 

에겐/테토 유형론은 성호르몬의 표면적 특성을 기준으로 개인을 유형화한다. 분류에 따르면 테토형은 직진형의 추진력이 있는 사람이다. 당당하고 거침없는 태도와 거친 말투, 운동 선호 등이 특징이다. 반면 에겐형은 차분하고 정돈된 이미지를 가지며, 외모 관리에 자본을 투여하는 등 감성적이고 섬세한 성격으로 분류된다.

 

이 유행어의 흥미로운 점은 기존 성별 고정관념을 뒤섞는 조합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에겐남'과 '테토녀'라는 표현은 남성도 감성적이고 섬세할 수 있고, 여성도 당당하고 추진력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런 표현은 표면적으로는 전통적인 성역할에서 벗어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얼핏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으로도 읽히는 이 유행어의 기저에는 아주 익숙한 오해가 자리 잡고 있다.

 

호르몬 이분법의 함정

한국다양성연구소의 김지학 소장(이하 김 소장)은 지난 12일 진행한 회대알리와의 인터뷰에서 에겐/테토 유형론의 두 가지 시사점을 짚었다. 첫째는 성호르몬과 사회적 성역할을 상관관계로 연결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남녀 이분법적 성별 구분만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김 소장은 "에겐/테토 유형론이 제시하는 유형 구별 기준과 유형의 서술이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역할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며 "'테토 유형은 씩씩하다',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은 에겐형이다' 등의 발화는 이전부터 쓰인 '남성/여성스럽다' 같은 표현과 크게 다름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성호르몬과 사회적 성역할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김 소장은 개인의 선호나 행동 양식을 단순히 호르몬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면서 "성역할 수행과 성호르몬은 별개의 층위"라고 설명했다. "에겐/테토 유형론이 호르몬이라는 과학 용어를 빌려와 사회적 성역할을 정당한 것처럼 보이게 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충분히 여성적이지 않은 여성이나 남자답지 못한 남성을 지칭하는 방식은 이성애연애중심주의와 동성애 혐오, 외모지상주의, 능력주의, 페미니즘 혐오, 마초이즘 등의 편견과 복합적으로 관계하며 재생산돼왔다. 최근에는 '게이 같은' 남성, '꼴페미 같은' 여성 같은 전면적 혐오 발언 대신, 에겐/테토 유형론처럼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유행어가 이러한 편견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회대알리와의 인터뷰에 응한 대학생 A씨(22, 여성)는 "친구들이 저를 '에겐남보다 에겐이 부족한 테토녀'라거나 '남자보다 더 남자 같다. 검사 한 번 해 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농담을 던질 때가 있다"며 "농담이라고 하지만 은근히 상처받는다. 여성이라고 해서 다 차분하고 섬세한 건 아닌데"라고 토로했다.

 

에겐과 테토 사이의 몸

에겐/테토 유형론은 이분법적 성별 구분만을 전제한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제기된다. 여성과 남성의 성별 구분은 아주 철저하고 초역사적인 진리인 것 같으나, 실제로는 여러 사람의 선언과 신고로 이뤄지는 '행정적 절차'에 가깝다. 먼저 의료인이 신생아의 외관으로 성별을 판단하면 보호자는 이를 바탕으로 출생 신고를 하고, 이후에는 행정 시스템을 통해 성별이 공식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성별 결정 과정에서 '헷갈리는 존재'인 간성(인터섹스)이 등장한다. 이는 "염색체, 생식샘, 성호르몬, 성기 등에서 전형적인 남성이나 여성의 신체 정의에 규정되지 않는 성징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구별하기 어려운 간성은 그 존재 자체로 매끄러운 이분법적 성별 구분 구조에 의문을 제기한다.

 

하지만 사회는 대개 이런 '헷갈리는 존재'들을 거부해 왔다. 실제로 간성으로 태어난 아이 중 대부분은 '정상화' 수술을 받는다. 이는 간성 아동의 성기를 전형적인 남성 또는 여성의 형태로 만들기 위한 외과적 시술이다. 여성과 남성 사이쯤의 몸이 계속해서 발견되지만, 새로운 구분을 만드는 대신에 수술 당사자의 의사 확인도 없이 기존의 언어/사회적 분류에 실재하는 몸을 끼워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간성뿐 아니라 여성과 남성으로 각각 분류된 사람들 또한 성호르몬의 농도, 신체적 특징 등에서 개인차를 보인다. 실제로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은 곧잘 '여성 호르몬'과 '남성 호르몬'으로 불리지만, 이는 정확한 명칭이 아니다. 평균적으로 남성은 테스토스테론이, 여성은 에스트로겐의 비가 높지만, 이 비율은 개인차가 존재한다는 의학적 사실이 있다. 모든 사람의 몸에는 두 호르몬이 함께 존재한다.

 

이렇듯 에겐/테토 유형론은 성별 이분법에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 존재들을 자연스럽게 배제하거나 문제시하는 구조를 강화한다.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의 이분법적 구조는 호르몬 수치가 일반적이지 않거나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설명할 수 없다. 이는 간성을 비정상이나 예외로 치부해 정상화 수술을 강요하는 의학적 병리화와 맥락을 공유한다.

 

이분법에서 벗어나기

에겐/테토 유형론은 트랜스젠더[1]나 논바이너리[2] 등의 존재 또한 자연스럽게 제외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김지학 소장은 "에겐, 테토에 이어 테겐, 에토 등 수많은 조합을 시도하면서도 결국 여성과 남성으로만 나누고 있는 현상도 살펴봐야 한다. 성소수자들은 이 분류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에겐/테토 유형론이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별과 젠더가 실제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젠더 브레드 퍼슨(Gingerbread Person) 모델은 이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우리가 흔히 '성'이라고 부르는 개념을 네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 영역에는 지정 성별,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젠더 표현이 있다.

 

 

사회는 이 네 가지 영역의 일관성을 가정한다. 여성 성기를 가지고 태어나면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하고 남성에게 끌림을 느끼며, 여성적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네 영역은 서로 독립된 관계이며 개인마다 다양하게 조합될 수 있다. 가령 여성으로 구별 받은 사람이 남성으로 정체화하고, 누구에게도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으면서 사회적 '여성성'에 속하는 젠더 표현을 실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에겐/테토 유형론은 네 가지 영역을 모두 구별 없이 연동시켜 설명한다. 때문에 성별 정체성과 지정 성별이 서로 다른 트랜스젠더나 젠더 표현이 사회적 기대와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설명하지 못하는 등의 에겐/테토 유형론의 한계가 드러난다.

 

물론 젠더 브레드 퍼슨 모델 역시 완전하지 않다. 인간의 복잡한 정체성을 네 개의 범주로 구분하는 시도 자체가 또 다른 단순화 과정이며, 실제 개인의 젠더 경험은 이보다 훨씬 더 유동적이고 맥락적이다. 중요한 것은 성별을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으로만 이해하려는 사고에서 벗어나 더 복합적인 관점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모자이크의 총체

김 소장은 도서 『젠더 모자이크』를 예시로 들며 "내 안에 오직 에겐성만 있거나 오직 테토성만 있는 사람은 없다. 에겐성이나 테토성, 혹은 분류될 수 없는 다양한 성향들이 '나'를 구성한다. 곧 '나'는 에겐/테토/그 외 다수가 만든 모자이크의 총체"라고 설명했다.

 

다양성을 과잉 단순화하는 에겐/테토 유형론의 한계를 체감할 수 있는 활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거나, 가지고 싶은 성격과 성향을 찾아서 작성해보라. 많이 쓸수록 좋다. 완성된 목록에는 친절하다, 다정하다, 씩씩하다, 용감하다 등 수많은 성격과 성향이 섞여 있을 것이다. 작성한 목록 옆에 '에겐/테토'의 분류를 적용해 써 보라. 100% 에겐이나 테토만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항목 자체를 에겐이나 테토로 나누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활동을 마치면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자기 특징을 에겐과 테토로 이분하려고 노력해도 에겐/테토 사이의 교집합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둘째, '나'를 에겐, 테토 같은 단어로 함축해 설명할 수 없다는 점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본인을 에겐/테토로 설명해보려고 노력할수록, 누구도 에겐/테토의 구별에 완벽히 들어맞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 김 소장의 설명이다. 이같이 특별히 비정상적인 존재만을 '사이에 있는 몸'이라고 지칭하기 보다는, 모든 몸이 기준과 구별점의 사이에 있다고 해석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에겐, 테토, 그리고 성공회대학교

에겐/테토 유형론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대중의 이중적 태도이다. 에겐/테토 유형론에는 우호적인 데에 반해 '에겐'과 '테토'를 넘나드는 성별 다양성을 포용하기 위한 시도는 거부한다. 성공회대학교 안에서도 이런 모순적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대학 새천년관 지하 1층에 자리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하 모장실)은 성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다. 다양한 몸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포용하려는 물적 시도이다. 하지만 모장실 설치 전후로 "학교 예산을 낭비한다",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만들기 위해 억지를 부린다"는 등의 반대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하는 성공회대학교 퀴어문화축제 또한 마찬가지다. 학생활동의 문화 다양성을 증진을 목표로 하는 이 축제에는 "나에게도 성소수자를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 "혐오 또한 표현의 자유가 아니냐" 등의 반발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익명의 성공회대학교 퀴어문화축제 추진위원단원은 "에겐/테토 유행어가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기존의 성별 이분법을 위협하지 않기 때문" 이라며, "'에겐남/테토녀' 같은 조합을 통해 성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듯한 착각을 주면서도, 생물학적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모두의 화장실'이나 학내 퀴어문화축제는 성별 이분법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다양한 성정체성의 존재를 가시화한다. 이는 기존의 성별 질서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기 때문에 불편함을 야기한다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김 소장은 이 같은 모순적 태도에 대해 "성별 이분법 안에서만 작동하면 어떤 분류든 재미있는 유행이 되지만, 그 경계를 벗어나면 거부 대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성소수자들이 다양한 용어로 자신을 설명하려 할 때는 '왜 그렇게 많은 라벨이 필요하냐'며 과도하다고 비판하지만, 에겐/테토처럼 성별 이분법과 성 역할 고정관념 안에 머무는 분류는 적극 소비한다"며 "명백한 이중 잣대"라고 설명했다.

 

에겐/테토를 퀴어하게 오독하기

지금은 성소수자를 뜻하는 영단어 'Queer'는 본래 '괴상한', '이상한'이라는 의미였다.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이 단어를 새롭게 해석해 본인들의 단어로 전유했다. 에겐/테토 유행어에도 이와 같은 '퀴어한 오독'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김 소장은 "에겐/테토 유형론이 호명하지 않는 다양한 존재가 있다"며 "이 유형론을 비틀어 새롭게 설명하거나, 유형론을 넘어선 다른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겐/테토' 유형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모호한 범주를 발견할수록, 이 유형론이 표상하는 성별 이분법, 성역할 고정관념 등의 한계가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같은 '오독'의 사례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일부 사용자들은 "나는 둘 다야", "상황에 따라 달라져", "이 분류로는 설명이 안 돼" 같은 반응을 보이며 의도치 않게 이분법적 분류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에겐도 테토도 아닌, 혹은 완전히 다른 무언가인 존재들을 발견하는 일은 '에겐/테토' 유행어를 지탱하는 편견에 균열을 낸다. 이처럼 '이상한' 유형론에 '이상한' 질문을 던지는 퀴어한 오독은 편견을 재해석하는 도구가 된다.

 

 

 

[1] 태어날 때 지정받은 성별과 다른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

[2] 남성과 여성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

 

취재, 사진 = 윤영우 기자, 이혜성 기자

글 = 윤영우 기자

디자인 = 윤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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