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나눔재단이 1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마루180에서 소셜 섹터 관계자와 비영리스타트업 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비영리스타트업 콘퍼런스 2025'를 개최했다. 비영리스타트업 콘퍼런스는 국내 소셜 섹터의 최신 트렌드와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아산나눔재단의 사회혁신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아산 비영리스타트업'에 참여 중인 성장트랙 기관들이 수행해 온 사회혁신 프로젝트의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다.
올해 행사는 '뉴 필란트로피, 변화의 지렛대'라는 주제로 비영리스타트업들과 함께 비영리 생태계의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포럼 수준의 라인업으로 구성해 개최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엄윤미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비영리스타트업은 규모가 작은 조직인 만큼 지속가능성과 문제해결력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필란트로피 활동가들이 협력해 더 큰 사회적 시너지를 만들어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봉진 "기부는 하면서 배운다…스타트업처럼 시작하라"
첫 순서로 무대에 오른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창업자의 키노트 스피치는 행사장의 분위기를 단번에 달궜다. 김봉진 창업자는 배달 앱 '배달의민족' 성공 후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대표적 필란트로피스트다.
김 창업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트업 방식의 필란트로피를 강조했다. 그는 "2018년에 100억 원 기부를 처음 선언했다. 어떻게 할지도 모르고 일단 선언부터 했다. 먼저 질러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이게 스타트업 정신이지 않나"라고 털어놨다. '기부도 해봐야 배우고, 직접 부딪혀야 길을 찾는다'는 의미다.
아울러 김 창업자는 자신의 필란트로피 여정을 소개하며 '구조적 변화를 추구하는 기부'를 강조했다. 단순 자선이 아닌 사회 구조를 바꾸는 필란트로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기부도 사업처럼 작게 시작해 검증하고, 필요하면 과감히 피보팅(전환)하며, 공식이 잡히면 대규모로 확장하는 스타트업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아산나눔재단의 '아산 비영리스타트업' 프로그램 소개가 진행됐다. 재단은 2021년부터 해당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혁신적인 초기 비영리 조직들을 발굴·성장 지원해왔다. 강은선 아산나눔재단 사회혁신팀 매니저는 비영리스타트업을 "기업가정신·기술·경영 역량을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초기 비영리 조직"이라고 정의했다. 올해도 도전 트랙(초기 팀)과 성장 트랙(스케일업 팀)으로 나눠 총 8개 팀을 선발했다.
아산 비영리스타트업 지원팀으로 첫 발표에 나선 장한우리 지구를지키는소소한행동 대표는 "2023년에 우유팩 70만 개를 모아 국가 재활용률을 0.04% 올렸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만으로 국가 통계를 바꿨다는 게 의미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에는 제주를 여행하는 렌터카 이용자들이 여행 중 커피박을 수거하는 '커피박 줍서예' 캠페인을 진행했다. 동시에 도내 커피박 재활용 체계를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작은 자원순환 운동이 지역의 탄소중립 노력으로까지 확대된 셈이다.
박수빈 계단뿌셔클럽 공동대표는 "이동약자가 이동할 때 겪는 심리적 장벽을 '부수는' 팀"이라고 단체를 소개했다. 계단뿌셔클럽은 수만 곳의 장소 정보를 모았지만 서비스 실제 사용자 수는 기대만큼 늘지 않는 문제를 겪었다. 박 공동대표는 "원인을 분석한 끝에, 앱에 데이터만 쌓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당사자들이 직접 콘텐츠 생산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설명했다. 그는 "서비스 UX에 변화를 줬다. 방문 리뷰 기능을 객관식으로 간소화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만들고, 리뷰 작성 시 '칭찬 팝업'을 띄워 이용자들이 성취감을 느끼도록 했다. 그러자 단기간에 핵심 사용자 60여명을 확보하며 커뮤니티가 활기를 찾았다"고 말했다.
이수영 자원(ZAONE) 대표는 "기업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불량품, 부산물, 재고, 자투리와 같은 휴면자원을 아이들의 교육 재료로 전환하고 있다"고 단체를 소개했다. 휴면자원이란 흔히 폐자원으로 분류되지만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서 잠들어 있는 자원을 뜻한다. 자원은 여러 제조기업과 협력해 쓰이지 못한 자투리 자원들을 수거하고, 이를 장난감·과학교구 키트 등으로 제작해 학교나 지역아동센터 등에 제공해왔다. 버려질 뻔한 재료가 아이들의 놀이로 되살아나고, 동시에 폐기물을 줄이는 자원 순환의 선순환을 만든 셈이다.
이 대표는 객석에 "사회 문제는 깊어지는데 왜 해결은 느릴까요?"라며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여러 지표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가파르게 심화되고 있지만, 비영리 조직들의 전통적인 대응 방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자원은 현장에서 검증된 해결책이 자발적으로 퍼져나가는 비선형 확산 구조를 모색했다. 작은 시범사업들이 '운동'으로 번져가는 그림을 그린 것이다.
"전략적 기부를 말하다" - 뉴 필란트로피 패널 토크
2부에서는 국내 필란트로피 분야의 다양한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패널 토크가 펼쳐졌다. 각자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뉴 필란트로피'의 철학과 실천 과제를 논의했다.
모더레이터로 나선 박성종 아산나눔재단 사회혁신팀장은 "'필란트로피'란 그리스어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뜻하며 자선(체리티)과 달리 사회 문제 해결과 삶의 질 개선을 추구하는 실천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대의 필란트로피는 사회 문제의 근본 원인에 대한 구조적 해법을 모색하는 전략적 접근으로 발전하고 있다"며 "패널로 참석한 연사들이 작은 자원을 지렛대 삼아 큰 변화를 만들어가는 필란트로피스트들이다"라고 소개했다.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대표는 "2014년에 처음 '비영리스타트업'이라는 말을 꺼냈을 때는 모두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 말이 일반명사가 될 정도로 비영리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회고했다. 그는 "프로그램만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며 "사람·조직·인프라 같은 기반을 잘 조성해야 비영리 생태계가 더욱 건강하고 풍성해진다"고 강조했다.
허재형 루트임팩트 대표는 "'누구나 사회·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투자나 금융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유망 조직들을 돕고자 2022년에 자선자본을 활용한 필란트로피 지원 사업을 본격화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3년간 8개의 비영리 조직을 선발해 매년 1억원씩 최대 3년간 지원하고, 금전적 지원뿐 아니라 조직 역량 강화를 위한 다양한 도움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송인 봉앤설이니셔티브 사무국장은 "김봉진·설보민 부부의 뜻으로 설립된 봉앤설이니셔티브가 스타트업 DNA를 바탕으로 매우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조직 내에 기부자가 있어 함께 기획하고 즉각 피드백을 주고받는 짧은 의사결정 구조와, 재단·사단법인이 아닌 유한책임회사 형태로 조직을 설립한 덕분에 하고 싶은 필란트로피 활동을 기동성 있게 펼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육심나 카카오임팩트 사무국장은 "사회혁신가 약 3만명과 연결하는 지원 사업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이 임팩트의 크기를 키우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 역량이 있는 혁신가는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내지만 기술이 부족한 혁신가들도 많기 때문에, 카카오임팩트는 개발자 등 기술 전문가와 사회혁신가를 연결해주어 임팩트를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한 참석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실험을 이어가는 이들이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우유팩을 모으고, 계단을 기록하고, 버려진 자원을 되살리는 일 하나하나는 소소한 행동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연결될 때 사회 구조를 움직이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참가 소회를 전했다.
차종관 대학언론인 네트워크 자문위원(chajonggwan.me@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