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3 (목)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무엇이든 팝니다" 아무시장 대잔치가 열린다

절대 팔 수 없는 게 있다는 말은, 영화판 안에서는 별 볼 일 없던 배우가 백악관의 주인이 되면서 고서에나 나오는 구절이 되었다. 세계적으로는 그렇고, 한국은 그보다 좀 늦었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했던 모 교회의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서부터가 본격적이겠다. 장로님의 시대 이후로, 절대 팔 수 없는 것은 없었다. 개개인에게 팔지 못할 것이 존재할지는 모르지만, 시장에서는 모든 게 팔리고 있었다. 장로님의 정성이 하늘에 가 닿아서일까. 모 영화 평론가는 2억이면 장로님의 좆도 빨 수 있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다.

큰일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대가 향할 당연한 경유지였다. 무엇이든 삽니다. 무엇이든 팝니다. 자, 싸요 싸. 서비스 많이 줄게. 한 번만 사 봐. 그래 뭐 이것저것 팔 수도 있지 그게 뭐 그리 대수겠어. 돈 받고 사람 죽인다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정말 많은 것들이 팔렸다. 밥부터 법까지, 관리부터 권리까지. 대통령님 덕일까. 지상에서나 지하에서나 경제는 늘 활성화되어 있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무엇이든 팔아야 했다. 그것이 노동력이든, 재능이든 간에 말이다. 하지만 어딜 가나 무한경쟁이 넘치는 세상이다. 경쟁은 늘 결과값을 높이기보다는 값을 낮추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내 것과 비슷한 수준의 노동력을 나보다 더 싼 값에 파는 이가 있다면, 내가 무슨 수로 그보다 더 비싸게 판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나. 자연히 나도 내 값을 후려칠 수밖에.

이것은 꽤 흔한 이야기다. ‘프리랜서 전문가의 재능’을 판다는 크몽, 위시켓, 재능넷 같은 사이트가 좋은 예다. 여기서는 무엇이든 팔린다. 정말로 무엇이든 팔린다. 로고, 일러스트레이터, 파워포인트, 인포그래픽에서부터 광고, 블로그 운영,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각종 언어의 통번역, 보도자료 작성, 강연과 멘토링, 시장조사와 분 석, 웹사이트 개발부터 프로그램 개발, 영상제작과 편집, 작명과 사 주, 역할대행과 심부름, 모델, 가수, MC와 아나운서, 파티플래닝까지. 정말 모든 게 다 팔린다.

문제는, 대부분, 너무 싸다는 것이다. 일러스트 하나에 12,000원. 명함 디자인에 10,000원. 글 하나에 20,000원. 영어 번역에 5,000원. 팔리기 위해서 자신의 가격을 후려치고, 그 후려쳐진 가격 때문에 시장에 진입하는 다른 이들의 값도 낮춰진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최저임금도 되지 않을 값을 받기 위해 그럴듯한 문구로 ‘ 사장님’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 애쓴다. 그렇게라도 무엇이라도 팔 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프리랜서들이 한 무더기니까.

나는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살고 있다.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에 대한 글쓰기를 의뢰받았다고 치자. 그럼 그 분야, 그 주제에 대해 공부하는 데 몇 시간, 글을 쓰는데 또 몇 시간, 글을 정리하는 데 몇 시간, 또 요구에 따라 글을 수정 하는데 몇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분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 며칠은 소요되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그 며칠 분의 임금을 최저시급으로 환산한 것 이상의 금액은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대부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글 하나에 5만원 정도나 되면 양반이다. 2만원, 3만원 쯤도 찾기 쉽지 않다. 후려쳐진 가격은 갑(甲)님들께 평균의 기준이 되기 마련이다. 을의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일을 받아서 해내는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도 그 정도 값을 받고 하니까. 먹고 살기 위해서, 혹은 이조차도 경력이 될지 모르니 일을 한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도 가난하다.

무엇이든 팔리는 시장이, 곧 무엇이나 싸게 팔리는 시장이 될 이유는 없다. 노동에는 다이소가 없다. 노동에는 노브랜드가 없다. 먹고 살자고 간이든 쓸개든 파는 건데, 그래 적어도 먹고 살만큼의 값은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노동의 값이 할인되어서는 안 된다. 아 무 시장이라고 아무 가격에나 팔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참. “2억이면 뭐라도 하겠다.”고 했던 모 영화 평론가는 과거 SNS를 통해 필자들의 글값이 너무 싸다고 주장하며, “매달 6건 이상의 기고문을 청탁받는 필자들이 기자 평균 월 단위 급여에 근접 하게 받아야 한다는 입장”임을 밝힌 바 있다. 모든 노동에는 적절한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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