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1 (월)

대학알리

성공회대학교

성폭력 2차 가해 당신은 어디쯤 서 있나요?

성폭력 사건이 진정한 ‘해결’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동체의 노력이 절실하다. 올바른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사건의 예방 · 사건 대처 · 사후 대처 모든 과정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문화는 아직 많은 부분에서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 기사가 ‘에브리타임’ 익명게시판의 난장판을 통해 기획 된 것은 맞다. 하지만 기사의 내용이 이번 사건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지속적으로 공론화되는 성폭력 사건에서 기출문제처럼 반복되는 공동체 문화의 허점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보려 한다.

- 이하의 캡쳐된 이미지는 어플리케이션 '에브리타임'의 익명게시판을 캡쳐한 내용임을 밝힙니다._편집자 주

 

#Type 1 성폭력은 개인과 개인의 문제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구성원은 문제의 초점을 '당사자가 무언 가를 잘못했다'는 것에 맞춘다. 때문에 공동체 문화에 대한 논의를 할 기회를 상실케 한다. 또 소속 공동체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관련자의 퇴출을 통해 사건을 빠르게 무마하길 바라거나 언급되는 것을 꺼리게 된다.

피해자에 대한 인권침해보다 공동체의 명예 문제를 우선하여 인식되는 상황이 많다. 공동체의 명예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공동체 차원의 반성폭력 교육’보다 ‘가해자 색출·제거’가 선호된다. 성폭력 사건을 개인 간의 문제로만 치부하려 드는 공동체의 분위기로 인해 성폭력이 일어난 공동체 문화를 성찰할 기회는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Type 2 정보공개에 소홀해서 생기는 일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정보를 공개하기 전에는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입장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나쁜 경우(대부분의 경우) 가해자 측이 먼저 자신에게 유리한 사건의 전말을 유포하고, 입장을 유보하고 있거나 그나마 조용히 있던 가해 옹호자들이 적극적으로 가해자 편에서 피해자를 힐난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적절한 정보공개에 차질이 생길 경우 더 심각한 2차 가해를 야기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옹호 하는 세력을 구축하고, 가해자 버전의 사건 개요를 유포한다. 이처럼 가해자는 동맹을 구축하고 선택적 정보를 유포하는 상황에서, 흔히 말하는 비밀 유지의 원칙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목소리에 불균형을 초래한다. 또한, 가해자와 달리 얼굴과 목소리가 없는 상태에서 피해자의 ‘지지 세력’이 만들어지기는 힘들다. 비밀유지에도 ‘다양한 수위’가 있을 수 있고, 피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가해자의 이야기에 반박하고 비판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은 문제 행위와 그 행위를 유발한 문화에 대한 의미 투쟁이다.

 

#Type 3 2차 가해는 어디까지인가

남성 중심의, 강자 중심의 사회 통념을 사건에 그대로 적용하며 피해자를 비난하고 훈계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의 잘못으로 성폭력이 발생했다거나 피해자면 조용히 있어야 한다는 생각 을 강요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무분별한 2차 가해자 딱지는 사건에 대한 피로도를 상승시키며 구성원의 적극적 참여를 저해한다. 다양한 의견의 스펙트럼 중 어디서부터가 2차 가해고 어디까지를 ‘의견’으로 판단할 것인가?

사실 2차 가해라는 용어는 범죄학자 윌리엄스가 말한 ‘2차 피해’에서 나온 말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성폭력 2차 피해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사법기관, 의료기관, 가족, 친구, 언론 등에서 보이는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으로 인해 피해자가 입는 정식적,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이나 피해자 스스로 심리적인 고통을 겪는 것’으로 정의한 바 있다.

2차 가해는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구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아직 2차 가해를 규정하는 법령도 없는 만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통일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단위의 논의와 합의는 필수적이다. 일반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비난, 사건의 은폐, 가해자 두둔을 2차 가해로 규정한다. 하지만 논의와 합의 없이 중구난방으로 2차 가해를 떠들어 대며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서로의 입만 막는다면 당연히 올바른 사건 해결로 나아가는데 방해가 된다.

기존의 잘못된 통념을 반복·강화하며 피해자 책임론이 등장 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훈계를 자행하며 가해자를 옹호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에 의한 2차 가해를 막을 대책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2차 가해를 하지 않기 위해’라는 이유가 침묵을 정당화 (또는 강요)하는 매우 효과적인 핑곗거리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사건에 대해 말하는 것’과 ‘사건에 대해 폭력적·문제적인 방식으로 말하는 것’은 다르다. 2차 가해를 방지하되 '침묵'이 형성되지 않도록 공동체 단위의 대책이 필요하다.

 

#Type 4 신뢰할 수 없는 공동체

공동체가 신뢰를 잃으면 공동체의 사건 해결 능력도 믿을 수 없다. 학교 본부의 사건 해결 방향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자세도 중요하다. 이 정도 했으면 많이 했다는 식의 입막음을 통한 방해 행위는 거의 모든 공론화 과정에서 나타난다.

일반적인 피해자 요구안은 실명 공개, 공개사과, 제적, 정학, 가해자 교육 프로그램 이수, 사회봉사 등 정형화되어있다. 하지만 만약 가해자에게 정학 처분이 내려졌더라도 가해자가 그 기간 동안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거나, 다른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다시 복학하는 것이 적절치 않아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절차상 하자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뭐가 문제냐’, ‘이제 좀 그만했으면’ 같은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공동체인가?

 

지금까지 학내 성폭력 사건들은 ‘절차가 끝났으니 해결’된 것으로 보는 입장과 ‘피해자 요구안이 100% 관철되어야 해결’된 것으로 보는 입장 사이에서 ‘가장 센 가해자 징계’가 사건 해결과 같이 여겨졌다. 그리고 그 절차 이후의 문화적 변화는 별다른 논의 없이 잊히게 되고,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면 그에 대한 대응은 다시 처음부터 반복되거나 오히려 퇴보한다.

이것은 우리 성공회대학교 공동체 구성원 일반이 페미니즘 에서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학교가 성폭력 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원에 소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기존의 잘못된 가부장적 통념을 고집하며 이와 다른 생각은 들으려 하지 않는 태도도 공동체의 발전을 저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원을 '비윤리적'이라 비난하는 태도 또한 옳다고 보기는 힘들다. 논의는 일방적인 교육이 아니다. 구성원의 생각과 인식이 다르다 해서 난장판에서 진흙탕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하고 깊이 있는 논의가 우선 되어야 한다.

이렇게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는 논의는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는 기본적인 가치가 있을 때 건설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예컨대 남자에게 권력과 책임을 강제하고, 여자에게 도구화를 강요하는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의식, 또는 그보다 더 기본적인 어떠한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을 바탕 한다면 마침내 절차적 종결과 사건의 해결 사이의 간극, 사건의 해결과 공동체의 문화적 변화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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