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입사원 퇴근일지’는 실제 우리학교를 졸업한 선배님들이 솔직담백하게 작성한 일기로, 한 달에 한번 <외대알리>에서 연재됩니다. 사기업 마케팅부서와 언론계에 입사한 선배님이 각각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지난호 퇴근일지를 보고 싶은 독자님은 hufsalli@gmail.com 으로 문의바랍니다.
권혁일(언론정보 07)
2013년 10월 1일 호남지역 모 일간지에 수습기자로 입사
12월 22일
58번째 퇴근.
아침부터 스펙터클 터지는 하루였다. 오전 내내 트위터 붙잡고 정동의 상황을 보면서 속만 끓이다가, 그러다가 출근했다. 노총도 노총이지만, 지금 민주노총 사무실이 있는 건물은 경향신문 사옥이다. 이 나라의 공권력은 그러니까 언론사 사옥의 정문을 오함마로 깨부수고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들어가고 있단 얘기다.
기자 사회는 회사 구분 없이 입사시기를 따져서 선후배로 엮이는 사회다. 우리 신문사 기자가 아니어도 선배이거나 후배인 것이다. 나로선 잘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지만, 그래도 그만큼 동료의식도 높으니 그렇겠거니, 식으로만 생각했다.
경향신문사 사옥이 털려도, 속보를 전하는 방송들은 그냥 태연하게 "공권력 투입"만 얘기하고 끝난다. 그렇게 보도하는 사람들의 동료이거나 선배이거나 후배인 사람들이 일하는 곳 문이 공권력에 의해 깨져나가고 있다. 언론인들의 동료의식은 어디 갔나?
일요일은 휴일이 아니다. 경향신문 기자들도 오늘은 다들 출근했을 것이다. 월요일판 신문을 내야 하기 때문에. 오늘 경찰은 기자들이 다 대기하고 있는 그 앞에서, 카메라와 펜과 수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벌였다. 기자들이 각자의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쳐다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어떤 기자는 후배들 마와리 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희들이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경찰들이 피의자에게 함부로 못하는 것이다"라고. 적어도 내가 알고 있던 기자는 그런 존재였다. 그런 기자만 수십 명이 현장에 있었는데도 경찰은 거리낌 없이 폭력을 행사했다. 압수수색영장이나 구속영장도 아니고 체포영장 한 장 만으로. 이것은 언론인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다. 언론이 저들에게 얼마나 우스웠으면 이런 일이 일어났겠는가.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저녁 마와리 돌러 가는 길에 시내 촛불집회 현장으로 다시 갔다. 정리집회 격으로 모였다가 해산할 줄 알았는데, 서울 상황을 지켜보면서 철야까지도 할 생각들인 모양이었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인터넷 대안언론 기자도 만났다. 매번 집회나 기자회견 현장에서 마주치는 얼굴이다. 오늘 처음으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가 노조원, 시의원에게 나를 소개할 때, 그는 "OO일보 기잔데요, 굉장히 열심히 하는 기자예요."라고 했다. 얼굴만 몇 번 마주쳤을 뿐인데 나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구나, 그래도 내가 석 달 동안 아주 의미 없는 일을 한 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2월 31일
66번째 퇴근.
수습기자로서의 마지막 날. 수직적이고 경직돼 있는 문화에 많이 실망하기도 했고, 그 속에서 괴롭기도 했고, 그래서 뛰쳐나올 생각을 여러 번 했던 그 기간 3개월이 끝났다. 동시에 정식 부서발령을 통해 새해부터는 편집기자로 일하면서 특별기획취재팀에서도 뛰기로 됐다.
한 해 결산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세차 한 번 할 시간도, 머리 한 번 손질할 시간도 없이 지내느라 2013년이 고작 2시간 정도 남은 이 시점에도 별 생각이 없다. 편집부에 있는 동안에는 아무래도 사회부 수습 시절에 비해서는 여유시간이 좀 생길테니, 그동안 못 읽은 책을 읽고 못한 공부를 하고 못 쓰던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다짐이 얼마나 갈 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딱히 의욕적으로 공들여서 한 건 별로 없지만, 석 달 동안 매일매일 퇴근할 때마다 잊지 않고 퇴근일지를 써온 것만으로도 남은 건 있었다고 할 것이다.
바라건대는, 내년은 부디 흔들리지 않고 언론윤리와 내 시각과 심지를 지키면서 기자에게 필요한 것들을 착실히 모아나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싶다. '어떠어떠한 기자'가 되겠다고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제대로 된 저널리즘으로 언로가 막혀 있는 이들의 표현의 자유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 기자라는 직함을 지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1월 5일
68번째 퇴근.
아직은 지면 편집에 대해 교육을 받는 기간이라, 오늘은 연습용 판을 가지고 지면 편집 연습을 했다. 우리 회사의 지면 편집용 프로그램은 내가 전에 독립 잡지 편집할 때 쓰던 인디자인과는 조금 사용법이 달라 살짝 당황. UX도 뭔가 미묘하게 불편한 것 같은 느낌이 들고.
편집기자가 해야 하는 일은 그냥 간단하게 보면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기사의 제목을 뽑는 것이고, 또 하나는 지면의 레이아웃을 짜는 것이고, 마지막 하나는 짜인 레이아웃과 제목과 기사를 가지고 실제로 판을 만들어 윤전기로 보내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은 편집기자가 하는 일 세 가지 중 하나일 뿐이고, 정말 중요한 건 바로 레이아웃을 짜는 공간디자인과 기사 제목을 뽑는 센스다. 그 중에서도 제목 뽑는 건 정말 많이 읽고, 많이 써보고, 많이 생각해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회부 수습 시절에 비해 노동조건이 압도적으로 좋아져서 뭔가 멘탈이 회복되어가는 느낌. 주5일제가 칼 같이 지켜지고(어차피 신문이 나오지도 않는 날에 편집할 이유가 없으니!), 오후 2시쯤 출근해서 강판 끝내고 10시쯤 퇴근하면 된다. 편집부에 있는 기간을 기회 삼아서 바짝 공부해야겠다.
1월 9일
72번째 퇴근.
조판 실전 투입은 한 주 미뤄졌다. 회사의 세세한 조판 매뉴얼이 아직 손과 머리에 익지 않았다고 부장이 판단한 모양이다. 내 부담이 조금 덜어진 건 좋지만 다른 편집기자들의 부담이 장기화되는 건 아무래도 좀 마음에 걸린다.
편집부 일은 사실 외근에 비하면 재미는 좀 덜하다. 막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부딪히고 그러는 게 재미있지, 종일 모니터만 들여다보며 머리 쥐어뜯는 건 별로 재미는 없다.
다만 외근은 감정노동의 강도가 매우 높다. 몸이 힘든 건 그렇다 쳐도, 사람을 만날 때마다 웃는 얼굴로 천연덕스레 얘기를 나눠야 하니 참 고역이다. 또 취재원들이 항상 협조적인 것도 아니고. 그런데다가 기자단 문화도 감당해야 한다. 청와대 기자단이 호구 짓으로 연일 화제가 되고 있지만, 출입처 시스템 속에서 커리어 쌓은 기자들 십중팔구는 다 똑같이 행동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편집기자는 그래도 감정노동 덜하고, 공무원한테 빚 질 일 없고, 그런데다 시간도 좀 여유로우니 좋다.
Soorm(29)
: 2014년 4월 21일 S모기업 마케팅부 정식사원 입사
7월 1일
51번째 퇴근.
회사의 사정으로 팀을 옮기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영어성적이 좋은 나를 영업관리에 두기에는 아까우니 외국어를 활용할 수 있는 팀으로 부서를 옮겨주겠다는 것이다. 깊은 전후이야기를 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지니 그냥 ‘만만한 게 신입’이라는 정도로 정리하자. 그렇게 나는 마케팅에서 6개월을 보내고는 구매팀 소속이 되었다.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진 부서전배였지만 사실 그렇게 불만이라거나 하는 것은 없다. 회사가 해 준 말 그대로 외국어를 써먹을 수 있기도 하고(우리 회사는 대만에 있는 OEM업체에서 제품을 만들어서 가져온다. 그 조달을 해내는게 구매팀의 역할이다.)
무엇보다 마케팅에 있으며 영업관리를 하는 것보다야 조금은 더 전문적인 일을 하면서 내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묘한 기대감마저 들 정도이다. 오늘, 그러니까 7월 1일자로 부서 발령은 났지만, 이 곳 8층에 남아서 정리해야 할 일도 있고, 2층에 있는 내가 앉게 될 자리에 현재 앉아 있는 분 역시 정리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이번 주 이번 주 금요일에 짐을 옮기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2층으로 출근하는 것으로 정리 되었다. 사내 인트라넷을 켰더니 어느새 소속이 구매팀으로 나온다. 구매팀에서 오고가는 메일들 역시 내 메일함에 쌓인다. 기분이 묘하다.
7월 16일
62번째 퇴근.
겨우 회사 생활을 7개월 해 놓고는 뭘 알겠느냐마는,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적응을 했던 생활과 일에서 벗어나 다시 완전한 ‘초짜’ 사원으로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업무에 적응을 해야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먼저번에 있던 팀과 지금의 팀은 분위기부터가 확실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매일 퇴근 시간이 되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나 싶다. 일이 많고 바쁘다는 건 피곤하다는 말이다. 하루에 메일이 7, 80통이 쌓인다. 그걸 모조리 읽고 흐름을 쫓아가는 것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입사 초 회사로부터 받았던 다이어리에 6개월 동안 메모했던 분량과 겨우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메모한 양이 비슷하다. 그래도 그럭저럭 만족할 수 있는 건, 실제로 내가 뭔가를 배우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다. 잔심부름만 하던 6개월에 비하면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중요한(물론 우리 팀 선배들이 보는 내 일은 그 중에선 또 잔심부름이겠지만) 일들을 하고 있다. 어쩌면 팀을 옮기고 새로운 일을 하게 된 것은 인생에 있어 좋은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7월 21일
65번째 퇴근.
눈 깜짝할 사이에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은 찾아온다. 이틀이라는 시간의 주말(정확히 말하자면 금요일저녁부터 일요일 밤까지의 마흔 몇 시간) 어떻게 보내든 결코 백퍼센트 만족할 수 없다. 뭐랄까, 아무리 맛있는 걸 먹는다한들 밥 반공기만을 먹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밤새 술이라도 마셔댔다가는 월요일아침이 되어도 피로가 채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말 내내 집에서 쉬기만 했다가는 애초에 주말이란 게 없었다는 듯, 마치 금요일 밤에 잠이 들어서 월요일 아침에 깨어버린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 나는 지난 주말에 몇 가지 약속이 있었다. 금요일에서 토요일 새벽까지 소주를 왕창 마셔버렸고, (일요일 오후부터는 집에만 있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어기고) 어제는 열한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는데, 그래서인지 월요일인 오늘 아침에 일어날 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노는 것조차 이런저런 사정을 생각해가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하다니 직장인들이란 참 골치 아픈 존재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늘만큼은 예외다. 21일, 월급날이다. 물론 내일 카드값이 왕창 빠져나가겠지만(이번 달에 큰 지름을 한 가지 해버렸다) 그래도 월급이 쌓여있는 통장을 보고 있으면 힘이 조금은 난다. 직장인이고 학생이고, 사람은 참 얄팍한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