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7 (수)

대학알리

세종대학교

후배님은 사발을 받들라! 어명이다

박채원 기자 itsmechae@sejongalli.com
주서현 기자 jsh@sejongalli.com

“이게 전통이라고요?”

 

‘사발식’은 일제강점기 시절 보성전문학교 학생들이 막걸리를 마시고 일제의 잔재를 토해낸다는 의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일제 헌병들이 있는 종로경찰서 앞에서 술을 한 사발 죽 들이킨 후 구토를 하며 외친다. 이 더러운 일제의 개들!

머지않아, 이는 대학에서 새내기를 맞이할 때 행하는 의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사발식은 냉면 대야와 같은 큰 사발에 술을 가득 붓고 한 번에 마시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갓 성인이 된 신입생들에게 이러한 행사는 가혹 행위에 불가하다. 대학 엠티 내에서 과도한 음주로 학생이 사망하는 등 논란이 불거지자 교육부는 ‘대학생 집단연수 시 안전확보를 위한 매뉴얼’을 배포하며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학교는 과 내 단체기합, 과도한 음주 강요 문화 등을 없애는 추세이다.

 

“대숲! ㅎ대학 연합엠티를 고발합니다!”

 

정시 합격자 발표가 모두 나고 17학번이 들어올 시기가 되면서 각 대학의 학생회는 오리엔테이션과 엠티를 준비하기에 분주하다. 이러한 시기 때문일까. 세종대학교 학우들이 하고 싶은 말을 익명으로 전해주는 세종대학교 대나무숲(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는 우리 학교의 군기 문화에 대한 글이 마구 쏟아졌다. 글로 만나보는 내용일 뿐이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을 주기엔 충분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문화가 존재한다고? 이에 모든 걸 직접 겪은 해당학과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평상시 ㅎ대학에는 이렇다 할 군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발식과 방돌림을 진행하는 연합엠티, 그 당시에만 엄청난 군기가 존재하는것이다. 엠티는 과 학생들의 친목 도모가 주된 목적이
다. 이 말은 엠티 당시의 신입생들은 아직 서로 친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신입생들이 주최 측의 부당한 대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조선시대 회초리보다 무서운 선배들의 눈초리”


그렇다면 사발식과 방돌림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 사발식을 위해 신입생들은 강당으로 모인다. 이 때 휴대폰은 가져가지 못한다. 심지어 어떤 선배들은 우리의 모습이 인터넷상에서 왈가왈부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까지 언급하기도 한다. 사발식은 정해진 구호(흔히 ‘FM’이라 불리는)를 목이 갈라지게 외치며 시작된다. FM 구호를 마치면 신입생들은 바가지에 든 막걸리를 한 번에 들이켜야만 한다. 사발식을 지켜보는 선배들은 신입생을 향해 “목소리 크게 안 하냐”, “빨리 안 마시냐”, “너희가 지금 흘리고 있는 건 너희 부모님의 등록금이다”, “와인 시음회 하냐” 등의 모욕적인 말을 섞어가며 비웃는다. 물론 사발식 시작 전에 술을 마시지 못하겠다고 말하면 술을 억지로 마시게 하지는 않는다. 대신 아침햇살 한 바가지를 준다. 인터뷰를 한 학생들은 모두 입을 모아 물이라도 한 번에 마시기 힘든 양이라고 말했다.

ㅎ대학 16학번 A 씨는 “그거 마시고 나서 동기들 다 난리가 났어요. 이런 걸 왜 하는지 당최 모르겠습니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ㅎ대학 14학번 B 씨는 선배들의 눈초리만큼 동기들의 수군거림 또한 매우 무서웠기 때문에 그냥 참고 술을 마셨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또 있다. 사발식이 진행되는 모습을 교수들이 뒤에서 지켜본다는 점이다. 사실 교수들이 학생 엠티에 동반하는 모습은 어느 과든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학생을 인솔하기 위해 참석한 엠티에서 그러한 가혹 행위를 가만히 지켜보는 교수는 드물 것이다.

 

“소리는 크게크게, 행동은 빨리빨리”

 

사발식만큼 가혹한 행위가 또 있었으니 이는 바로 ‘방돌림’이다. 방돌림이란 한 학번 선배, 동기들과 조를 이뤄 여러 개의 방에 들어가 고학번 선배들 앞에서 여러 가지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다. ‘선배를 웃겨라’, ‘절대음감게
임’, ‘동기 10명의 이름 거꾸로 말하기’ 등이 그 예이다. B 씨는 “저도 새내기 때는 정말 별의별 짓을 다 했죠. 매우 모욕적입니다. 그들을 위해 나 자신을 희롱하는 느낌이었으니까요.”라고 말하며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
내 “사실 저는 2학년 때 선배의 입장으로도 엠티에 참여했었는데요. 그때는 이미 제가 모두와 친해서였을까요. 벌을 받으면서 너무 힘든데 솔직히 재밌기도 했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방돌림 미션 도중에 실수 할 경우 한 학번 위 선배들은 바로 옆에서 얼차려를 받는다. 엎드려뻗쳐, 팔굽혀 펴기, 투명의자 등을 당하는 선배를 보며 신입생들은 간접적인 벌을 받는 것이다. 실제로 방돌림을 하던 도중 발생한 큰 소음 때
문에 민원이 들어와 방돌림이 잠시 중단되었다고도 할 정도이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해볼 만하다. 인터뷰를 한 ㅎ대학의 모든 학생은 이 모든 것들이 당연히 없어져야 할 나쁜 문화라고 힘주어 말했다. 선뜻 나서서 문화를 없애기에 난 그저 일개 학생일 뿐이었다고 말하는 그들을 보며 안타까움은 더 커져만 갔다.

 

 

“무리에 섞이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앞서 인터뷰한 A씨나 B씨와는 달리 이 행사에 수긍하지 않고 이의를 제기한 15학번의 C씨도 만나보았다. C씨 역시 초반의 분위기는 매우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신입생들에게 그 비밀스러운 행
사가 새어나갔을 때부터라고 했다. 대체 신입생에게 ‘비밀’을 누설한 사람이 누구냐며 범인을 찾는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선배들은 쌀죽을 끓이고 있었다. 곧이어 방돌림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기를 쓰고 서로의 이름을 외우고, 절대음감 왕밤빵을 외쳤지만 자신 때문에 한 학번 위 선배들이 얼차려 받으며 우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세 방을 차례로 거치면서 C는 생각했다. ‘이건 정말 부당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그래서 그는 선배들과 동기들에게 이 행사의 부당함에 대해 토로했다. 곁에 있는 동기들 또한 괴로워하고 있으니 그에게 동의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C에게 돌아온 눈빛은 싸늘했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그냥 그 고통이 빨리 지나가기를, 저런 식으로 항의해선 시간만 길어질 뿐 달라질 게 없을 것이라는 듯, C를 훼방꾼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이후 사발식도 마찬가지였다. 참여하고 싶지 않은 C와 같은 학생은 무리에 섞이지 못했다. 모두들 괴로워하지만 끝내 이 문화에 수긍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무리에 섞이고 싶기 때문에, 눈 밖에 나고 싶지 않기 때
문에. 억지로 오른 취기와 감정적인 연대의식 앞에서 선배들의 진심어려보이는 사과는 매우 타당해보였다. 그리고 이 행사를 제외하면 딱히 군기라고 할 만한 일도 없었다. 그냥 연대의식을 위한 행사일 뿐, 폭력은
아니었다. 아니, 돌이켜 보면 즐거울 수도 있는, 무리에 낀 학생들의 추억으로 남았다.

 

 

“거듭된 문제제기와 문제인식에도 불구하고 행사 지속”

 

이후 이 행사의 지속성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학생회 측에서는 단대 내 소모임 단톡을 이용해 학생들의 의견을 조사했다. C와 같은 사람은 끼지 못한 바로 그 단톡에서. 과연 이러한 조사가 진정성이나 객관성을 가질 수 있을까. ㅎ대 학생회는 연합엠티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인터뷰하는 것을 거절했다.

‘비밀’로 부쳐야만 하는 행사, 기록으로 남길 바라지 않는 모습, 단대 내 개선 논의 등을 통해 이 행사가 가진 악습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문제를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는 것일까? 정용철, 서강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엠비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군기문화를 개인의 잘못된 일탈로 보기보다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다루는 태도에 관한 문제로 봐야한다고 얘기했다.

 

“더 나은 대학문화를 위한 변화”

 

선배들이 행사를 통해 심어주고 싶었다는 동기들 간의 연대의식은 어떤 권위나 힘 아래에서 형성된다. 공포나 폭력아래에서 형성될 수 있는 연대의식은 에밀 뒤르켐의 저서 <사회 분업론>에서 나오는 것처럼 단순한 사회 구조를 지닌 과거 사회에서나 존재했다. 우리는 개인 간 사회적 차이가 크고 복잡한 구조를 지닌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신입생 개개인 모두는 스스로 선택해 유기적으로 연대할 수 있다. 결국 그들이 말하는 연대의식은 핑계다. 권위와 힘을 내세워 억압하지 않더라도 연대는 가능하다.

이것은 비단 ㅎ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서서 말하지 못했지만 A단대도, B학과의 학생들도 같은 고통 아래 고민한다. 어느 학교, 어느 학부, 어느 학과도 마찬가지다. 의식을 바꾸는 것부터 해야 한다. 학교 측에서 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도 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걸리지만 않게 숨어서 계속될 것이다. ‘외부에 알려지면 부끄러운 우리들의 하룻밤 추억’ 정도에 학생들의 생각이 그쳐서는 안 된다. 특히 ㅎ대는 개선의 필요성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기에 개선된 모습이 기대된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의식, 잘못된 전통은 바로잡아야한다는 생각들을 기반으로 스스로 변하고자 움직일 때, 더 나은 대학 문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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