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대학알리

세종대학교

교양 세종역사 특강 - 학생운동편

#1 (장소는 세종대학교 광개토관 1층 대강 의실) 학기 첫 특별강연을 듣고자 학생들 이 10X호 강의실로 모여들고 있다. 간만 에 만난 친구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학생 들도 있고, 학기 시작 전에 두세 번 만나 겨우 안면을 익힌 동기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신입생들도 있다.

#2 학생들이 수업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한 남자가 광개토관 로비에 들어선다. 익숙하단 듯 지하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사 들고 10X호 강의실로 향한다.

#3 (다시 강의실) 오후 시간이지만 암막 커튼이 반쯤 처져 있어서 대체로 어두운 분 위기에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흐르고 있 을 때, 강의실 불을 켜며 그 남자가 들 어온다. 남자는 전자 교탁 쪽으로 성큼 걸어가 짐을 내려놓고 마이크에 대고 말한다.

강사: 안녕하세요. 저는 전자정보통신 공학과 학생이자, 여러분께 ‘세종대 학생운동’을 소개할 일일 강사 OOO입니 다. 필수적인 강의도 아니고 전공수업도 아닌 특강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루하지 않도록 길지 않은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남자가 화이트보드에 적는다)

‘학원 사유화에 대항하는 학원 자유화 운동’

(학생들 사이에 작은 술렁임이 생기고 남자는 말을 잇는다)

때는 1980년 초, 새해를 맞이하는 활기찬 염원과 함께 한 가닥 바람이 전국에 불어오고 있었습니 다. 학원 자율화라는 바람입니다. 당시 사학재단 설립자들은 대학을 사유화하였고 교수와 학생들을 비민주적으로 대 하며 그들의 재산 불리기 수단으로 여겼 습니다. 인류 문화의 총화, 교육시스템 의 꽃인 대학은 한 집단이나 개인의 사 유물이 될 수 없습니다. 배움터에서 일 어나는 비민주적인 행태에 분노한 학생 들은 사학비리 구조를 뿌리 뽑고자 하였 습니다. 그동안 누적되어온 불만이 켜켜 이 쌓여 있었기에 자율화 운동은 전국적 으로 폭발적인 양상을 나타냅니다. 이 시 국 속에서 세종대학교 자율화에 대한 움 직임도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2월 8일(금)

 그 시작은 몇 개의 동아리에서 시작되는 데 초창기 학생들은 ‘학칙과 학생회칙의 민주적인 개정, 학도호국단의 폐지, 학생 회의 부활’을 목적으로 모이기 시작했습 니다. 이 모임을 주도했던 동아리들은, 죽순회, KUSA, UNSA, 군자문학회 등 입니다. 그들은 대학의 자율화를 이루기 위해 학생회의 부활이 중요하다고 보았 고, 학생회가 사라졌던 당시에 학생들의 뜻을 모을 구심점으로 동아리가 적합하 다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동아리 회장들 은 각 중대장(학생회장)과 동아리 회장 을 소집하여 ‘학원 자율화를 위한 전체 회의’를 열기로 합니다.

2월 28일(목) 전체 회의 결과 1. 학원 자율화 추진 위원회(10인추) 구성 2. 학칙개정 시 학생 의견을 반영토록 하자 3. 학도호국단 폐지 등등

3월 3일(월)

전체회의를 통해 추려낸 안건으로 학교 당국에 공청회를 요청했지만 학교 측 교 무위원회의에선 이를 거부합니다.

3월 14일(금)

학생들의 움직임을 비웃듯, 학교 측은 학 교에서 다루기 쉬운 학생장체제를 구상 하여 학칙개정 시안을 발표합니다. 내용 은 이름만 바뀐 학도호국단이었습니다. 학교 측의 비민주적인 행태에 일부 과에 서는 과대표를 선출하지 않았고 이에 따 라 학교 측에선 학과장, 지도교수가 일방 적으로 과대표를 지목, 학생들은 이에 반 발하여 항의하는 등의 소란이 일어납니 다. (물론 과대표로 지목받은 학생들도 그 자리를 받지 않았습니다)

3월 27일(목)

이전에 열린 ‘전체 과대표 월례회의’에서 학교 측은 마지못해 학생회 부활을 공식 승인합니다. 그러나 학교 측은 학생회를 통제할 방편으로 동아리 회장들을 배제 하여 월례 회의를 주도함으로써 오히려 학생들의 민주적 학생회 부활 의지를 자 극 했습니다.

3월 29일(토)

전날 열린 과대표 월례 회의에서의 문제 점을 들은 학생들은 ‘세종대학 학생회 부 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24명의 추진 위원(24추)을 두었습니다. 24추는 학칙 과 학생회칙을 개정하여 민주적인 학생 회를 부활시키는 것을 학생회 부활 추진 위원회의 임무로 설정하고 활동을 개시 합니다.

‘족벌의 전횡 구조를 잘 나타내는 표현’

“아빠는 학장(총장) 겸 재단이사, 엄마는 대학원장 겸 부학장&재단이사, 큰아들은 기획처장 겸 경영대학원장, 큰딸은 학과 장, 작은딸도 교수”

족벌체제와의 싸움

4월 3일(목)

24추는 학칙 및 학생회칙 개정 시안을 들고 체육관에서 공청회를 개최합니다. 당시 세종대학교 학생은 3000여 명이었 는데 그 장소에만 900명 이상이 모였다 면 학생회 부활을 위한 학생들의 열망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학칙과 학생회 칙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던 와중에 학교 체제에 대한 불만이 나왔습니다. 족벌체 제에 대한 학생들의 불만은 터져 나왔고 족벌체제를 무너뜨려야 학교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시됩니다.

24추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며 학생들 의견을 수렴한 ‘8개 요구안’을 마련하고 학교 측에 전달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학 생들은 학교 측이 ‘8개 항의 요구안’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힐 때까지 체육관 농성을 시작하게 되었고 세종대 학원 자 율화 운동이 시작됩니다.

농성이 진행되면서 학생과 학교간의 대 화는 이루어졌지만 자율화를 바라는 학 생과 그릇된 주인의식을 가진 설립자 간 의 견해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습니 다. 오히려 학생들의 의견을 지지하며 ‘ 평교수협의회’를 구성하고 성명을 발표 한 교수들에게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 며 교수들을 협박하기까지 합니다.

‘8개 항의 요구안’

1) 재단과 학원의 분리, 재산공개

2) 교무위원 전원 사퇴, 족벌체제 철폐

3) 학생처 개편, 책임자 징계

4) 교수임용제 계약제 철폐

5) 대학언론 자유 보장

6) 부와 권력에 편재한 교수 자진 사퇴

7) 등록금 산출근거와 예산 결산의 공개

8) 학장공관(애지헌) 학외 이전, 학생활동 공간 활용

비리를 폭로하다!

농성은 길어지다 4월 중순에 접어듭니 다. 학생들은 농성을 지속하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사태의 진척 없 이 대치구도만 지속하니 점점 초조해지 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측의 지연정책에 말려들 거라 판단한 24추는 족벌 부조리 를 폭로하여 여론을 이쪽으로 돌리고 정 부에 설립자 일가를 처벌하라 요구하기 로 합니다. 사실 학생 측에서도 비리를 폭로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이 러한 사실들이 결국 학교의 대외적 지위 를 손상하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4월 12일(토)

학생들은 성명을 발표하고 해당자들의 비리 사실에 대한 해명과 진퇴 여부를 다 음날까지 서면으로 해명할 것을 요구했 습니다. 그리고 비리를 책임지고 학장, 대학원장, 이사회 전원은 사퇴할 것을 요 구합니다. 하지만 사태는 좋아질 기미가 없었습니다. 학교 측에선 학생의 요구를 수용할 의지가 없었고 학생들은 문교부 와 대통령에게 청원을 넣었지만, 형식적 인 조사뿐이었습니다.

식어가는 싸움

계속되는 농성에 교수들과 학생들은 지 쳐가고 농성장에서 떠나가는 사람들은 늘어갔습니다. 4월 28일 교수들은 학교 측과 협상하여 학교를 어느 정도 정상화한 정도에서 농 성을 해제하고 떠났습니다.

4월 30일 사실상 농성은 해체됩니다.

 

#4 (강연이 끝났다. 하지만 강의실에는 아무 도 남아있지 않았다. 강연자는 텅 빈 강 의실을 바라보며 말한다)

80년도의 선배들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남겨준 것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에 문제 는 언제 어디서든 발생한다 는 것. 해결하기 위해선 맞 서야 한다는 것.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