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7 (수)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선배들의 솔직한 직장생활] 신입사원 퇴근일지⑤

* ‘신입사원 퇴근일지’는 실제 우리학교를 졸업한 선배님들이 솔직담백하게 작성한 일기로, 한 달에 한번 <외대알리>에서 연재됩니다. 사기업 마케팅부서와 언론계에 입사한 선배님이 각각 이야기를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지난호 퇴근일지를 보고 싶은 독자님은 hufsalli@gmail.com 으로 문의바랍니다.

권혁일(언론정보 07)

: 2013년 10월 1일 호남지역 모 일간지에 수습기자로 입사

2월 3일

87번째 퇴근.

우리 회사에는 교열기자가 없다. 사실 전국지들도 교열 작업을 외주로 돌리거나 교열기자를 줄여가는 추세고, 지역지는 교열기자를 따로 두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비용 때문이다. 어쨌든, 그래서 교열 작업을 각 취재부서 데스크와 편집기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 판 작업을 끝내면 다른 선배 편집기자들이 짠 판을 모니터링하며 오탈자가 없는지 확인하곤 하는데, 오늘도 오타를 몇 개 잡아냈다. 한 면은 인쇄소에 넘어간 것을 취소시키고 고쳐서 다시 보냈다.

한편 자꾸 반복되는 맞춤법 오류가 있는데, “A가 문제라는 지적이다”라는 식의 리드문장이 그렇다. 이렇게 써놓으면 누가 지적을 하는지 주어가 없고, 문장 구조상 ‘A라는 문제’와 ‘지적’이 등치되기 때문에 비문이 된다. 그래서 최대한 원문을 살려서 바꾸면 “A가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도로 바꿀 수 있겠다. 이건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 받아서 밑줄 쳐가며 읽던 맞춤법 매뉴얼에도 있는 건데 왜 이러는 것일까. 음, 그냥 교열기자를 뒀으면 좋겠다.

3월 16일

115번째 퇴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산다’는 식의 기사 사이클을 가진 일간지지만, 그 하루 안에서도 기사가 나오는 타이밍이 기사마다 또 다르다. 이를테면 주재기자가 송고하는 지역면(간지) 기사들은 굉장히 일찍, 그러니까 3시 이전에는 다 나온다. 반면 본지에 해당하는 문화면은 7시 이전에는 거의 안 나온다. 종합면은 그 날의 뉴스 중 가장 중요한 것만 추려서 내놓는 지면이기 때문에 오후 편집회의가 끝나기 전에는 손을 댈 수조차 없다. 이렇게 지면마다 각자의 타이밍을 가지고 있고, 편집기자들에게 면을 배분할 때에도 이를 기준으로 삼는다.

지역면처럼 아무리 늦어도 6시 전에는 모든 작업이 끝나는 면은 ‘빠른 면’으로, 종합면처럼 오후 편집회의가 끝나기 전에는 작업을 아예 시작조차 할 수 없는 면이나 문화면처럼 원래 기사가 늦게 나오는 면은 ‘느린 면’, 혹은 ‘저녁판’으로 분류된다. 편집부 인력을 풀로 돌리면 1인당 2면씩을 맡게 되는데, 모두 ‘빠른 면’ 하나와 ‘느린 면’ 하나씩을 잡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편집기자들은 오후 편집회의 전에 ‘빠른 면’을 작업해서 대교를 내놓고, 편집회의 결과를 받은 다음에 ‘느린 면’ 작업을 시작하는 식으로 일하는 것이다.

그런데 종종 지역면에서 종합면으로 기사가 빠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부장이 회의 중간중간에 나와서 이 기사는 빠진다,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주는데, 오늘은 회의 흐름이 어떻게 됐는지, 중간에 중톱기사가 다른 면으로 빠진댔다가 또 나중에는 그게 아니고 톱이 빠진다고 했다가 하는 식으로 내용이 자꾸 변경됐다. 사실 기사가, 그것도 톱이나 중톱 정도 되는 비중 있는 기사가 종합면으로 빠져나가면 당장 지면을 메우는 게 힘들어진다. 그러면 ‘이건 도저히 실을 수 없다’ 싶은 기사도 뿌려야 하고, 그조차도 없어서 부장이나 취재기자에게 기사 내놓으라고 싫은 소리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결국 오늘은 톱기사가 빠져나간 자리를 단신이나 보도자료 사진만으로 메우느라 ‘톱만 있고 나머지 기사들이 다 자잘한’ 면이 나오고 말았다. 이러면 기사들 간의 위계가 없어서 시선 놓는 게 불안정해지는데…….

K-43

3월 25일

120번째 퇴근.

“제목을 먼저 뽑아놓고 그 제목에 맞춰 레이아웃을 짜라”는 연수(주: 이 시점 며칠 전에 2박 3일로 편집 연수를 다녀왔다) 때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사실 기사 밸류 상으로는 5단까지 질러줄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5단으로 지르는 길이의 이 제목이 아니면 이 기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겠다 싶었다. 톱을 뿌려놓고 나니 다음부터는 비교적 술술 풀렸다.

연수 이후 내가 편집을 할 때 마음먹는 부분에서 달라진 게 있다면, 일단 사진을 뿌리는 데 있어서 좀 더 감각적인 방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물론 전에도 ‘예쁘게 짜는 것’에 대한 일종의 강박 같은 게 있긴 했지만, 그 때 했던 생각은 기껏해야 ‘가로세로 잘 맞춰서 블럭처럼 쌓는 것’이 전부였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단순히 ‘정돈되게 보이는’ 것을 넘어서 면의 전체적인 조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에는 ‘정돈’과 ‘매뉴얼’에 집착하다보니 밋밋하고 딱딱한 면을 만들기 일쑤였는데(그래놓고 대교지 출력해서 보면 이건 뭔가 아니다 싶어서 레이아웃을 다시 짜는 일도 있었다), 이제는 그 ‘매뉴얼’이라는 것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면을 조화롭게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였을 뿐임을 안다.

고작 2박 3일 배운 것 가지고 뭐 남는 거나 있겠어, 싶었는데, 직접 배운 것을 실천하기 시작하니까 아, 이거 뭔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을 들은 것은 2박 3일이지만, 배우고 익히는 것은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닌 것이다. ‘내 편집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 많은 시도를 하는 것이 ‘배우는 것’이구나. 재미있다.

Soorm(29)

2014421S모기업 마케팅부 정식사원 입사

8월 4일

79번째 퇴근.

우리 구매팀 인원의 절반 정도는 본사에서 구매 파트 업무를 하고 나머지 절반은 물류 센터에서 물류 업무를 하고 있다. 팀장님이 내게 주신 8월달 의 숙제는 물류 센터로 며칠간 출근하면서 그 쪽 일에 대해 교육을 받고 오라는 것. 구로에 있는 물류센터까지는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기 때문에, 30분 정도 걸리는 본사로 출근할 때보다 한 시간은 더 일찍 일어났다. 30분 더 걸리는 곳으로 가기 위해 1시간을 더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물류센터는 초행길이라 그래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막막한 두려움 같은 것을 가지는 타입.

K-41

어찌 됐든, 하루 종일 물류센터에서 재고 실사를 위해서 제품을 선반에 정리하기도 하고, 입고 검사를 거친 제품을 다시 포장하기도 하느라 온 몸이 땀에 젖었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나왔다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었을 텐데 나는 바보같이 흰 와이셔츠를 입고 온 것이다. 비록 흰 셔츠에는 먼지가 묻고 얼룩이 생겼지만 그래도 좋았던 점은 실제로 제품을 만져보고 들고 날라보기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6개월 간 영업 쪽에서 그리고 한 달 동안 구매 쪽에서 일하면서 내게 우리 회사 제품은 글자 또는 숫자에 불과한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제품이 입고되고 출하되는 것은 단순히 시스템에 숫자를 입력하는 것 이상의 일이구나 하는 너무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당장 내 눈 앞에 있는 것들,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이면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또 한가득 있나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야 비로소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될까.

8월 18일

93번째 퇴근.

간밤에 이상한 꿈을 꾸었다. 전쟁이 났다. 나는 구매팀에서 한 달 정도 일한 경력이 있었기 떄문에 부대의 구매팀으로 배치되었다. 하루 종일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쓰면서 무기 조달을 위해 견적을 받고 발주를 내었다. 들여온 무기의 입고를 잡고 전투병들이 필요하다 미리 포캐스팅한 내역에 맞춰 각 부대로 무기를 조달하다가 잠에서 깨었다. 세상에 월요일 밤에 일하는 꿈을 꾸다니, 이제 화요일일 뿐인데 벌써 이틀을 일한 기분이 든다. 차라리 교통사고라도 나서 한 달 정도 병원에 누워있는 꿈을 꾸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8월 22일

97번째 퇴근.

한 명의 결혼 소식으로 인해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난 주말. 나를 포함해 여섯 명쯤이 모인 남자 동기 중 네 명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한 명은 시험 준비를, 다른 한 명은 군대를 다녀온 후에 다른 대학에서 전혀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동기들끼리 이렇게 만난 건 참 몇 년 만의 일이지만, 많이들 변한 것 같지 않다. 다만 하는 이야기들이 대학을 다닐 때와는 확실히 다르다. 서로 명함을 주고받고, 회사 이야기를 하고, 결혼 이야기를 하고, 그 외의 이런저런 먹고 사는 이야기들을 한다. 우리가 불과 8년 전에 간밤의 술자리에서 누가 술을 덜 먹었느니 많이 먹었느니, 또는 누가 예쁘고 누가 더 예쁘다는 그런 이야기만 하던 아이들이 맞나 싶다. 고민을 나눴던 그 때와는 다르게 푸념만을 내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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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는 이야기들이 그 때의 이야기들보다 더 재미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오히려 대학 새내기 시절의 술자리가 훨씬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이십대 후반이 된 지금, 우리는 체면을 차리는 걸까 아니면 우리도 그냥 그런 이야기들밖에 할 수 없는 ‘어른’이 되어가는 걸까. 한 명이 주말 출근이라며 일찍 일어나야한다는 이야기와 동시에 술자리는 끝이 났다. 우리에게 다시는 새벽까지 소주를 마시면서 낄낄대는 시간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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