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3 (토)

대학알리

한국외국어대학교

[알리 WEEK 6일차] 방구석에서 떠나보자! 영화로 떠나는 세계여행

뭐라고? 이번 “알리 WEEK” 내내 쏟아지던 답답한 소식들에 이젠 신물이 났다고? 그럴 줄 알고 한 주의 마지막은 방학다운 기사를 가져왔다. 달콤한 방학, 해외여행은 가고 싶은데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당신! 걱정하지 마시라. 당신을 위해 준비했다. 본격 ‘방구석에서 떠나는’ 세계여행 아시아 편! 노트북 한 대와 편의점 팝콘 하나면 당신도 충분히 멋진 세계여행을 떠날 수 있다. 그 첫 번째 여행지로 먼저 아시아를 살펴보자. 아시아는 방대한 크기와 인구 탓에 같은 대륙 속에서도 그 문화의 양상이 천차만별인데, 우리나라와 닮은 듯 다른 듯 재미있는 차이를 영화로 간편하게 만나볼 수 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중국과 일본, 신들의 나라 인도에 이르기까지. 이번 방학은 영화와 함께 다양한 문화에 대한 견문을 넓혀보자.


1. 니하오! 중국

패왕별희(1993)
중국 문화의 꽃 경극과 중국의 근현대사를 한눈에
 
(출처: 네이버영화)

STORY!
‘두지(장국영 분)’와 ‘시투(장풍의 분)’는 노력 끝에 최고의 경극배우가 된다. ‘두지’는 ‘시투’에게 의지하면서 흠모하는 마음을 키워가지만 ‘시투’가 홍등가의 여인 ‘주샨(공리 분)’을 사랑하게 되면서 둘의 관계도 돌이킬 수 없이 틀어지기 시작하는데…
POINT?
중일전쟁, 국공내전, 문화대혁명 등 격동의 역사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는 두 청년의 이야기. 이제는 볼 수 없는 장국영의 아름다운 연기는 덤. 제46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중국 문화 들여다보기: 경극

‘베이징 오페라’라고도 알려진 경극은 음악, 노래, 낭송, 대사, 연기, 춤, 무예가 혼합된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 종합무대예술이다. 경극처럼 많은 요소가 결합된 공연양식은 전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유네스코는 그 가치를 인정하여 지난 2010년 경극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경극의 특징에는 정립된 배역, 다채로운 화장, 화려한 동작 등이 있다.

<패왕별희> 속 ‘두지’와 ‘시투’처럼 경극 배우들은 경극학교에서 매우 어린 나이부터 수련을 시작하여 일생 동안 단 하나의 배역만을 연기한다. 경극의 배역은 ‘생’, ‘단’, ‘정’, ‘축’으로 엄격히 구분된다. ‘생’은 남자 역할로 분장과 발성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며 주로 주인공을 맡는다. <패왕별희> 속 ‘시투’가 맡은 항우 역이 대표적이다. ‘단’은 여자 역할이지만 과거에는 남녀가 한 무대에 오르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여자가 아닌 남자 배우가 연기했다. <패왕별희> 속 ‘두지’가 남자임에도 여자인 우희 역할을 연기한 것도 그 이유이다. 이러한 관례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폐지된다. 이외에 ‘정’은 남성적인 배역으로 호걸과 악한을, ‘축’은 어릿광대를 연기한다.

경극배우들의 화려한 화장을 감상하는 것 역시 경극의 재미이다. 이러한 전통적인 화장을 ‘검보’라고 부르며, 검보의 색깔마다 상징하는 의미가 다르다. ‘빨강’은 충성심을, ‘검정’은 강직함을, ‘황색’은 흉악함을, ‘녹색’은 난폭함을, ‘금색과 은색’은 신선이나 요괴를 의미하여 관객은 이를 보고 각 배역의 성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간혹 가면처럼 두꺼운 화장 때문에 경극을 또 다른 중국 전통 공연예술인 ‘변검’과 혼동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변검’은 등장인물의 감정변화나 개성에 따라 여러 겹의 검보를 순식간에 바꾸는 공연기법으로서 경극과는 구분된다. (이러한 변검의 전통을 쉽게 접해볼 수 있는 1995년도작 ‘변검’이라는 영화도 있으니 ‘패왕별희’와 함께 감상해보길 추천한다.)

경극의 이해는 곧 중국 문화의 이해라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경극은 중국인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문화적 특징을 잘 담고 있다. 모두 <패왕별희>를 감상하고 중국 문화와 경극에 보다 쉽게 접근해보자.
 
 
2. 곤니찌와! 일본
 
쉘 위 댄스(1996)
중년의 위기와 극복, 그 이상
 

(출처: 네이버영화)

STORY!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따분한 일상에 무기력함을 느끼는 중년의 샐러리맨 ‘수기야마(야쿠소 고지 분)’. 그러나 우연한 기회로 사교댄스를 배우게 되면서 한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순수한 즐거움을 맛본다! 갑작스레 얼굴에 생기가 돌고 귀가가 늦어진 ‘수기야마’의 수상한 변화. 그의 아내(하라 히데오 분)는 급기야 ‘수기야마’가 외도를 한다고 오해하게 되는데…
POINT?
춤’으로 승화되는 인간관계의 진솔함. ‘리처드 기어’와 ‘제니퍼 로페즈’ 주연의 <셸 위 댄스(2004)> 할리우드 리메이크작을 함께 감상하는 것도 좋다.
 
일본 문화 들여다보기: ‘혼네’와 ‘다테마에’

일본인들의 기질과 대화 문화의 특징으로는 ‘혼네’와 ‘다테마에’라는 이원론적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들 수 있다. ‘혼네’는 차마 말하지 못하는 속마음, ‘다테마에’는 형식상 말해야만 하는 겉치레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별로 친하지 않은 일본인 친구의 집에 놀러갔을 때 “저녁이라도 먹고 갈래?”라고 묻거든 거절하는 편이 현명할 수 있다. “저녁이라도 먹고 갈래?”는 ‘다테마에’이고 ‘이제 시간이 늦었으니 돌아가줬으면 좋겠다’가 ‘혼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본의 ‘혼네’와 ‘다테마에’ 문화의 기원에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첫 번째는 이민족을 접하지 않는 섬나라의 특성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토착 공동체 내에 형성된 끈끈한 유대감을 유지하기 위해 굳이 ‘혼네’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보다 ‘다테마에’로 돌려말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무사정권의 영향을 받았다는 해석이다. 특히 에도시대의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권력자와의 의사표현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혼네’와 ‘다테마에’ 문화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본만의 돌려말하기 문화는 우리나라의 친근한 ‘정’ 문화와 사뭇 다르기 때문에 혹자는 이를 두고 자칫 ‘정 없다’라고 표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테마에’를 낯설다고 부정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일본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 분위기를 총체적으로 고려하여 일본인들만의 원만한 대인관계와 사회 적응을 위한 탁월한 수단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신중히 행동하는 일본인의 화합 정서가 이러한 문화에 잘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

영화 <셸 위 댄스>에서도 ‘혼네’와 ‘다테마에’를 잘 찾아볼 수 있는데, ‘수기야마’의 아내가 남편이 외도를 한다고 오해하면서도 직접 묻지 않고 구태여 사립탐정에게 미행을 의뢰하는 것이 그 예이다. 화목한 부부관계를 망칠까 ‘혼네’를 말하기를 주저하는 것이다. 물론 일본인의 정서를 일반화할 수 없듯이 ‘혼네’를 거리낌 없이 말하는 인물도 등장하지만 극중에선 말썽꾸러기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는 이 인물을 통해 상황에 따라 ‘다테마에’가 필요하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큰 주제는 결국 춤을 통해 ‘혼네’적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아름다움인 것을 잊지 않으며 <셸 위 댄스>를 감상해보자. ‘혼네’에서 이름을 따와 음악을 통해 진실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는 영국 밴드 ‘HONNE’의 음악도 함께 하면 더욱 좋을 것.

 


3. 나마스떼! 인도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2014)
인간을 만든 신? 인간이 만든 신?
 
(출처: 네이버영화)

STORY!
지구를 탐사하러 왔다가 우주선의 리모콘을 잃어버린 외계인 ‘피케이(아미르 칸 분)’. ‘피케이’는 리모콘의 행방을 사방팔방 수소문하고 다니는데, 어째 묻는 사람마다 하는 말이 “신께 물으면 답해주실 거예요”란다. 결국 ‘피케이’는 고향별로 돌아가기 위해 그 ‘신’이 대체 누구인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알아내고야 말리라 결심한다. 신 님! 대체 어디에 계신가요?!
POINT?
<세 얼간이>로 친숙한 ‘아미르 칸’의 또 다른 작품. 신들의 나라 인도에서 금기시되어온 종교에 대한 유쾌하고도 냉철한 풍자. 발리우드 영화만의 신나는 춤과 노래도 놓치지 말자.
 
인도 문화 들여다보기: 발리우드 이야기

인도 영화 산업의 통칭인 ‘발리우드’는 우리나라의 충무로와도 같은 ‘봄베이(1995년 뭄바이로 개명)’와 ‘할리우드’의 합성어이다. 발리우드 영화의 대표작으로는 <세 얼간이>가 있다. 발리우드 영화를 모르긴 몰라도 2009년에 개봉한 <세 얼간이>의 인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물론이고 뮤지컬 영화처럼 장면 사이사이 흥겨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배우들의 모습은 신선하고 재미있다. 발리우드 영화는 그런 춤과 노래 등이 향신료 ‘마살라’처럼 영화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양념 역할을 한다는 의미에서 ‘마살라 영화’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금 소개하는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에도 역시 그런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그럼 이쯤에서 우리는 궁금증이 하나 생긴다. 왜 인도 영화에는 춤과 노래가 빠지지 않을까?

그 첫 번째 이유는 신들의 나라 인도답게 종교적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파괴의 신 ‘시바’는 춤과 음악을 즐기며, ‘시바’가 춤을 출 때 세상이 파괴된다고 한다. 또한 ‘시바’의 여러 가지 모습 중 하나가 ‘춤추는 왕’이라는 뜻의 ‘나타라자’이다. 춤을 추는 ‘나타라자’ 상은 인도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조각상이다. 또, 춤추는 시바의 모습을 빗댄 ‘나타라자사나’라는 요가 동작도 있다. 더불어 인기가 많은 유지의 신 비슈누 또한 피리를 불며 음악을 즐기는 ‘크리슈나’라는 분신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신들이 음악을 사랑하니 종교 행사와 의식에서도 춤과 노래가 주를 이루고 인도의 생활양식으로 정착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영화 업계의 전략과 관련이 깊다. 인도는 상용어인 영어와 인구의 약 40퍼센트가 구사하는 힌디어 이외의 14개 공용어를 상용한다. 공용어로 지정되지 않은 언어까지 포함하면 인도에서는 정말 수많은 언어가 혼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자막만으로는 모든 인도인들의 공감을 사기에는 역부족일뿐더러 인도인들 사이에서도 영화의 이해의 간극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춤과 노래가 등장하면 이 간극을 충분히 메우고 나아가 하나로 화합까지 할 수 있는 훌륭한 소통 수단이 된다.

인도인들은 춤과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인도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흥이 오르면 얼마든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문화가 일상 속에 자리잡고 있다. 간혹 인도인들의 ‘가무 사랑’을 과장하여 ‘인도인들은 영화관에서도 춤추는 장면이 나오면 신이 나 다 같이 일어나 춤을 춘다더라’ 하는 루머가 돌기도 하는데 사실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샤룩 칸 주연의 <옴 샨티 옴(2007)>을 보면 샤룩 칸이 비슷한 짓을 하다가 다른 관객들에게 쫓겨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옴 샨티 옴> 또한 재미있는 발리우드 영화이니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봐도 좋겠다. 단, 우리나라 개봉판은 러닝타임을 무려 한 시간이 이상 줄였으니 꼭 무편집판으로 감상할 것.)

이제 이러한 발리우드 영화의 춤과 노래 장면의 속사정을 헤아리면서 <피케이: 별에서 온 얼간이> 속 뮤지컬 장면을 감상해보자. 나아가 ‘신들의 나라 인도에서 이렇게까지 종교를 풍자해도 되는 거야?’ 싶을 정도로 종교를 도전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영화를 읽으면서 진정한 종교의 의미는 무엇일지 숙고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지금까지 영화를 통해 중국, 일본, 인도, 세 나라의 문화를 살펴보았다. 이 글을 팝콘처럼 곁들이며 영화를 더욱 유익하고 재미있게 감상하길 바란다. 자, 이번 방학은 모두 방구석에서 멋진 세계여행을 떠나보자!


최재윤 기자(jae.rang.cho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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